﻿<?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여행</title><link>https://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26-09-07T16:53:08+09:00</lastBuildDate><item><author>이안수</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1492년 콜럼버스 상륙이 남긴 상처, 그 땅에서 마주한 비극의 역사]]></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5896</link><pubDate>2026-09-07T16:50:2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443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02/IE00365443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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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푸에르토리코를 방문 후 다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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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히스파니올라 섬(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섬) 중 우리가 직접 접근 가능한 첫 정착지인 히스파니올라 섬의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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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콜럼버스의 기함 산타 마리아가 좌초된 곳인 산타 마리아 비치와 좌초된 산타 마리아의 목재로 세운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유럽인 기지인 라 나비다드(La Navidad)의 경우, 아이티 공화국의 치안 불안으로 한국 정부가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한 상태였으므로 방문이 불가능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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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곳은 콜럼버스가 1493년 두 번째 항해 때 세운 아메리카 최초의 공식 유럽인 정착지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라 이사벨라(La Isabela)였다. 아이티와의 국경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라 나비다드와는 차로 3시간쯤의 거리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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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의 모터사이클 라이더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당도한 라 이사벨라는 국립 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잘 정비되고 관리되고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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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내의 박물관과 콜럼버스의 집터, 최초의 교회, 묘지, 요새 흔적 등을 유적지 관리 공무원으로부터 안내받고 질병, 허리케인, 식량 부족,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해 불과 몇 년 뒤 남쪽의 산토도밍고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들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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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콜럼버스의 집터에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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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사벨라 콜럼버스의 집터에서 대서양의 거친 바람과 파고 너머의 유럽쪽을 바라보았다. 중세적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근세 세계 체제를 열었던 시대의 초입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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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항해로 촉발된 대서양 횡단 항로는 유럽인의 지리적 상상력을 완전히 바꾸었다. 유럽 경제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 세계적 자본주의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천 년간 이어온 문명들이 수십 년 만에 붕괴되는 엄청난 비극과 오늘날 이 대륙에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들의 시작이기도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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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타이노족은 1492년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거의 사라졌고 아메리카는 식민지와 착취의 공간으로 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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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61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7/IE00366861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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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사벨라 방문 후 몬테크리스티(Monte Cristi)에서 며칠을 머무는 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 감소와 문화적 파괴를 촉발한 사건이기도 한 콜럼버스의 항해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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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12일의 '콜럼버스 데이'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논쟁이 되면서 일부 지역에서 '원주민의 날'로 바꾸어 기념하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 업적 중 하나였던 그의 항해가 아메리카의 기존 정치·종교·언어 체계를 급격히 무너뜨리고 식민지 사회로 재편되는 시작이었음에 대한 시각의 반영인 셈이다. 콜럼버스 개인 또한 '발견자'에서 '침략자와 파괴자'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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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옆에 있으면서도 갈 수 없게 된 아이티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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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589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영빈</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말은 전쟁영웅 됐는데 이름도 남지 않은 사람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5245</link><pubDate>2026-09-07T16:29:07+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연천에서 만난 6·25전쟁의 숨은 얼굴들</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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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처음 접한 동물 전쟁영웅이 있었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에서 활약했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의 말이었다. 너무도 인상적인 내용이어서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 그 말이 실제 활약했던 경기도 연천의 한 마을에는 그 이름을 기념하기 위한 거리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꼭 그곳을 들러보겠다고 벼르다 지난 주말 드디어 그곳을 다녀왔다. 레클리스의 흔적과 기억을 더듬으며 또 한 가지 간과하고 지나갈 뻔한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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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말은 전쟁영웅이 되어 곳곳에 이름과 동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 말과 같은 전선에서 지게를 지고 탄약과 식량을 나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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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전쟁 중 미 해병대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싸운 전마 레클리스(Reckless). 최전선 고지전의 보급을 책임졌던 지게부대 노무자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나라에 와서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영국의 젊은이들. 경기도 파주와 연천 일대를 돌아본 이날의 여정에서 계속 마음에 남은 것은 단순히 전쟁이란 단어 하나가 아니었다. 그 전쟁을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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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57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7/IE00366857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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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 거리가 있는 연천군 백학면으로 가는 길, 우연히 그 길목에 영국군 추모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멀리 돌아가는 길도 아닌데 못 들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간 곳은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감악산 자락의 골짜기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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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 일대에서는 영국군 글로스터셔연대 제1대대와 중공군 63군 예하 3개 사단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포위된 글로스터 대대는 철수로가 막힌 뒤에도 진지를 지키며 싸웠다. 글로스터 대대의 분투는 중공군의 진격을 늦춰 유엔군이 전열을 정비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벌어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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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57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7/IE00366857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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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속 병사들은 지금도 골짜기를 따라 걸어가는 듯했다. 앳된 얼굴도 보였다. 그들에게 한국은 이름 한번 들어보지도 못한 먼 나라였을 것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이 낯선 산골까지 와서 목숨을 걸게 했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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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과연 생면부지의 나라에서 저렇게까지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을까. 전적을 읽는 동안 그 질문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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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57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7/IE00366857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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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기대어 세운 오래된 전적비 앞에서는 발걸음이 오래 머물렀다. 돌에 새긴 글씨들은 색이 바래 육안으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손끝으로 더듬어야 비로소 읽힐 듯했다. 이끼 낀 글자들은 마치 세월이 만든 점자 같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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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비가 남아 있다고 해서 기억까지 저절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찾아와 주고, 읽고, 그 의미를 다음 사람에게 전할 때 비로소 기억은 살아 있을 것이다. 설마리를 떠나 임진강을 건넜다. 목적지는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의 레클리스 거리였다.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면 휴전선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6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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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웅이 된 말, 쓸쓸해진 거리</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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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57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7/IE00366857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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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524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송혜림</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중국 구이저우 샤오치콩과 서강천호묘채에서 보낸 여름날]]></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31</link><pubDate>2026-09-07T14:13:54+09:00</pubDate><description><![CDATA[<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font color='#996633'>"我们的飞机已经抵达贵阳。(우리는 이제 구이양에 다다랐습니다.)"</font></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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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밤 12시, 비행기가 막 공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비행기 안내음에 눈을 비비며 캐리어를 챙겼다. 동승객들은 모두 중국인, 한국인은 오직 나 하나다. 공항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 꼬박 새운 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재개발 한복판에 들어선 듯 허름한 건물들, 연륜이 느껴지는 노인들, 황량하나 어딘가 친숙한 거리들. 여긴, 한국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비인기 지역 중국 구이저우성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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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고속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리보(荔波). 중국 구이저우 남부 첸난부이족먀오족자치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허름한 식당에서 요우티아오(油条)와 도우쟝(豆浆)을 입에 욱여넣고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덩터덩,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모두 푸르다. 새벽빛을 받으며 살랑살랑 흔들리는 논밭, 색색 보따리를 양손에 짊어진 채 버스를 오르는 노인들, 전광판이 없어 목소리로 정류장을 알리는 버스 기사. 잔비가 내리는 듯 창가엔 토톡톡 물그림자가 생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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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font color='#996633'>"韩国小姐姐，去小七孔的话，就在这儿下车。祝你玩得开心!"</font><br>
<font color='#996633'>(한국인 아가씨, 샤오치콩에 가려면 여기서 내리면 돼요. 좋은 여행 되세요!)</font></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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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 갔을까,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 내게 소리쳤다. 그의 친절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버스를 나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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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여인의 머리결 같은 물폭포, 샤오치콩</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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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아 더욱 풍성해진 숲과 에메랄드빛의 호수. 비를 머금어 더욱 진해진 녹음의 향을 맡으며 비로소 자연의 한가운데에 왔음을 실감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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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14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14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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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한 곳은 소칠공고교(小七孔古桥). 일곱 개의 아치가 있는 돌다리로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긴 세월을 오롯이 버텨온 다리 곳곳에는 넝쿨이 가득 앉아 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다리 위를 사뿐사뿐 걸어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유구한 중국의 역사가 발끝에 어린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듯 무수히 꺾이고 어긋난 고목의 가지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려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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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14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14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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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지나 다시 버스를 타고 삼십여 분 이동하면 샤오치콩의 또 다른 대표 명소 와룡담(卧龙潭)을 만날 수 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둑을 따라 잔잔한 수면 아래로 물이 커튼처럼 떨어진다. 사진 속에서 봤던 여인의 잘 빗어진 머리카락처럼 수려하고 아름답다. 폭포가 만들어낸 하얀 물보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한가득 불어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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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선 기다란 나무배를 탄 묘족 청년이 노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묘기를 부린다. 그가 두 다리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물 위로 둥그런 파장이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그 모습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신비로워서 멍하니 응시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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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치콩에서는 미니 보트를 타고 강가를 지나갈 수 있는 간이 체험이 마련돼 있다. 중학교 선생님인 링링과 보트를 합승한 뒤 나무 노를 저으며 샤오치콩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둥글게 허리가 휜 고목들과 거뭇하게 말라 비틀어진 잎들이 강이 지나온 세월을 짐작게 했다. 한여름을 잊게 하는 서늘한 바람이 양 볼을 스쳤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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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링링과 한 시간 남짓의 체험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사춘기 대학생 딸에 대하여, 자신이 다녀온 수많은 여행지에 대하여. 문득 사람 사는 삶은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당연한 생각을 낯설게 떠올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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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배에서 내린 뒤 각자의 여행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곧 또 다른 도시로 떠나는 링링과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언젠가 서울에 놀러 오면 가이드를 해달라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뱃삯을 대신 내어주고 가방 속 간식마저 나의 손에 가득 들려 보내는 그 낯선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짧았고, 함께한 추억은 길었다.<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3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상기</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참 신비로운데 어쩌면 폐쇄될지 모를 세계유산]]></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5013</link><pubDate>2026-09-07T10:40:50+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유</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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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25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25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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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는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온천수로 인해 생겨난 테라스 형태의 백색 석회암반, 헬레니즘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도시 유적, 초기 기독교 유적은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종교적 가치를 보여준다. 히에라폴리스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57년부터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살렌토(Salento)대학교 고고학과 중심으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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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결합한 복합유산이 될 수 있었던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히에라폴리스는 그리스․로마 시대 특수한 자연환경에서 만들어진 온천 시설의 뛰어난 사례다. 아폴로 신전, 플루토니움, 님페움, 여신 디아나에게 헌정된 극장, 2㎞에 이르는 공동묘지, 온천과 수영장 시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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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25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25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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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히에라폴리스에 4세기~6세기 사이 건립된 대성당, 세례당,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유적은 초기 기독교 건축 양식의 뛰어난 사례다. 북서쪽 성벽 밖에 위치한 중요한 유적으로 성 필립 순교기념관이 있다. 셋째 파묵칼레는 높이 200m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하얀 계단식 지형으로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석회암반 위를 흐르는 온천수가 웅덩이와 폭포를 이루고, 종유석을 만들어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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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들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보호조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파묵칼레 테라스 출입이 가능했는데, 수질 오염과 석회암의 변색 방지를 위해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극장은 공연과 축제와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광객이 고대 기둥과 대리석 건축 장식 사이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질 오염이 생겨나고, 고대 유적이 지속적으로 침식되는 문제점도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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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파묵칼레 석회암반 살펴보기</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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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25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25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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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는 석회암 지대를 온천수가 흐르면서 만들어낸 특이한 지형이다. 데니즐리 시내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눈처럼 하얀 석회석이 멀리서도 보인다. 히에라폴리스에서 흘러나온 온천수가 폭 30m 길이 70m의 석회암 암석을 녹이며 탄산칼슘을 분해시킨다. 이 탄산칼슘이 흘러 내려가며 굳어지고 결정을 이뤄 층계를 이룬다. 그 층계가 단을 이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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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5013">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정형</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평화대교 건너 삼형제섬으로… 신도·시도·모도의 변화]]></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41</link><pubDate>2026-09-07T10:07:2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15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15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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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아침 8시, 인천 영종도와 옹진군 북도면 신도를 잇는 신도평화대교를 자동차로 건너는 것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편도 1차선 도로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자전거 도로가 눈에 띄었다. 수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평화대교는 개통 초기 수많은 차량이 몰리며 교통 혼잡을 빚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섬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변화의 바람이 느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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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정차한 곳은 과거 삼목항에서 출발한 페리호가 닿던 신도항이다. 30분마다 드나들던 여객선이 사라진 도크에는 배 대신 낚싯대를 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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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전국 3대 어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잡히는 물고기는 드문 편이다. 묵직한 조과를 기대할 만한 전문 낚시터는 아니지만, 맑은 공기와 정비된 편리한 시설 덕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없이 상쾌한 공간이다. 항구를 따라 거닐며 바라보는 바다 경치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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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변공원 산책로에 들어서자 걷기 편한 데크길이 이어졌다. 데크 너머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는 마치 유럽의 어느 해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멀리 보이는 영종도 해변마저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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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4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전갑남</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일출은 놓쳤어도... 비 오는 낙산사에서 만난 천년의 숨결]]></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07</link><pubDate>2026-09-07T09:52:36+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책임의 무게를 내려놓고 만난 낙산</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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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08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08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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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의 낙산에 왔다. 낙산 하면 해수욕장과 낙산사가 먼저 떠오른다. 현직에 있을 때 수학여행 인솔차 들렀던 곳이다. 그때는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의 운치를 누릴 겨를도 없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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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의상대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 길을 나서려는데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에 잠이 깬 아내가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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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비 오는데 나가려고?"</font><br>
<font color='#996633'>"우산 쓰고 해변이라도 좀 걸어보려고."</font><br>
<font color='#996633'>​</font><br>
내가 우산을 챙겨 들자 아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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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혼자 맘껏 낭만을 즐기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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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이불을 고쳐 끌어당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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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가는 낙산해수욕장은 고요했다.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 철썩이는 파도 사이로 남은 파라솔들이 한적한 정취를 더했다. 발걸음에 놀라 날갯짓하는 갈매기와 도요새들, 모래 위에 새겨진 작은 발자국을 따라 백사장 산책로를 걸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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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07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07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807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6/IE00366807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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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던 젊은 부부에게 낙산사 가는 길을 물으니 "저쪽 길로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낙산사가 나온다"고 했다. 빗줄기도 어느새 가늘어졌다. 내친김에 낙산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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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어진 빗속의 숲길은 오히려 더 맑고 싱그럽게 열리고 있었다. 빗물을 머금은 흙내음과 짙은 솔향이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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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천년의 이야기 위에 얹어지는 빗소리</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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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에 색깔을 하나 입힌다면 단연 푸른색일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동해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깊은 산중에 들어온 듯한 정적이 감돈다. 바다와 산, 그리고 관음신앙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 그것이 낙산사만의 특별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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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90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문운주</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이 섬에는 듣기 좋은 해변이 있습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2856</link><pubDate>2026-09-04T10:50:1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9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9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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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0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730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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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야 닿을 수 있다는 불편함도 섬 여행에서는 즐거움이 된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바다를 건너 낯선 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여행은 특별해진다. 섬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품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다. 그래서 또 다른 섬을 찾아 나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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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섬에 대한 관심이 더욱 특별하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가 9월 5일부터 11월 4일까지 여수 돌산 진모지구와 금오도, 개도 일원에서 열린다.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섬의 자연과 문화, 미래 가치를 조명하는 국제행사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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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를 앞두고 가까이에 있지만 미처 가보지 못한 섬들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했다.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보기보다 섬길을 걷고 주민들의 삶과 그곳에 남은 이야기를 만나보는 여행이다. 지난 8월 17일 낙월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섬은 송이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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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아침 8시, 향화도항을 떠난 배가 칠산바다로 나아간다. 선착장이 조금씩 멀어지고 어느새 사방이 바다다. 갈매기가 배를 따라 날고 잔잔한 물결 너머로 크고 작은 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난간에 기대 바닷바람을 맞는다. 육지가 멀어질수록 섬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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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도 선착장에 내렸다. 마을길을 따라 걷자 낮은 지붕의 집들과 민박집, 펜션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마을 앞에는 둥근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이 길게 펼쳐진다. 화려한 건물도, 북적이는 관광객도 없다. 산과 마을, 바다가 나란히 어우러진 조용한 섬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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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낙월면에서 두 번째로 큰 송이도는 소나무가 많고 섬 모양이 사람 귀를 닮았다고 해서 송이도(松耳島)라 불린다. 한때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조기 파시(시장)가 크게 섰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선착장에 정박한 몇 척의 어선만 바람과 물결에 흔들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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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 몽돌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에 들어서자 모래 대신 둥글고 매끈한 몽돌이 발아래 가득하다.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갈 때마다 몽돌이 서로 부딪치며 자그락거린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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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파도, 몽돌 구르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눈으로만 보는 해변이 아니다. 귀로도 즐기는 송이도의 첫 풍경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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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8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8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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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9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9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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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해변을 벗어나자 해안의 표정이 달라진다. 둥글고 매끈한 몽돌 대신 검은빛 갯바위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하얀 포말이 일었다 사라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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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바위를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조금 전까지 귓가를 채우던 파도 소리가 멀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숲길을 오를수록 돈나무와 붉나무, 왜방풍, 쑥부쟁이 등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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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0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730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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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285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상기</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분묘 수 1200기, 로마시대 최대 공동묘지]]></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436</link><pubDate>2026-09-04T10:46:4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6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6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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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를 떠나 찾아간 곳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와 파묵칼레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시대 양모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기원후 2~3세기 로마시대 번성한 고대도시다. 파묵칼레는 지하에서 샘솟는 온천수가 하얀 석회붕을 만들어 마치 목화의 성(Pamukkale)처럼 보인다.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는 바로 인접해 있어 이곳에서 신전, 교회, 극장, 공동묘지, 목욕탕, 계단식 석회암 지형과 그 사이를 흐르는 온천수를 볼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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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7세기 다산과 풍요의 어머니 여신 퀴벨레(Cybele)를 섬기는 성스러운 도시였다. 헬레니즘시대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로마시대 플루토와 페르세포네를 섬기는 플루토니움(Plutonium) 신전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3세기 고급의 양모가 생산되었고, 이를 염색해 고급의 의류를 생산해 부를 축적했다. 여기에 온천이 발견되어 경제활동과 휴양이 가능한 풍요로운 도시로 발전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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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7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7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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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세기 이 지역은 로마의 땅이 되었고, 기원후 129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방문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215년 카라칼라 황제가 이 도시를 방문해 네오코로스(Neocoros)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신전, 극장, 체육관, 아고라, 시장, 도로, 온천과 목욕탕이 건설되었고, 산업과 무역은 물론이고 예술과 철학도 발전했다. 전성기에 인구가 1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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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공인되면서 히에라폴리스가 주교좌 성당이 들어섰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531년 대주교로 승품되어 기독교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7세기 초 페르시아의 침략과 이어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고,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리고 1354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비잔틴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패할 때 히에라폴리스 고대도시 유적이 완전히 파괴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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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7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7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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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히에라폴리스는 파괴된 고대도시, 공동묘지로 사용된 네크로폴리스, 중세 기독교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먼저 고대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남문으로 들어간다. 남문은 5세기 초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길을 따라 똑바로 북쪽으로 가면 고대의 온천수 수영장을 지나 아케이드가 있는 거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1세 때 만들어진 북문에 이르게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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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을 지나면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원래의 북문이 있다.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도미티아누스 개선문으로 84~86년 프론티누스(Julius Frontinus)에 의해 건설되어 프론티누스문이라고도 불린다. 북문을 나가면 죽은 자들의 세계인 네크로폴리스가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그리스․로마 시대 만들어진 다양한 분묘를 볼 수 있다. 이들 분묘는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건축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기둥과 아치 그리고 지붕이 붕괴된 채로 널려 있다. 분묘의 수가 1200기나 된다고 하니 로마시대 최대의 공동묘지 유적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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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로마시대 극장을 찾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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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43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전갑남</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신령한 거문고 소리 따라 걷는 길, 속초 영금정]]></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446</link><pubDate>2026-09-04T10:04:41+09:00</pubDate><description><![CDATA[강원도 동해안을 찾았으니 우리 일행은 속초 동명항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맛보기로 했다. 음식점을 찾기 전, 항구 근처의 멋진 명소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강원도 길에 익숙한 일행이 가볍게 말을 건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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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이름이 영금정이지만, 단순히 정자 이름으로만 생각하면 그 참뜻을 놓치기 십상이죠."</font><br>
<font color='#996633'>"이름 끝에 정자 정(亭) 자가 붙어 있지 않나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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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8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8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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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亭) 자를 잠시 떼어놓고 '영금(靈琴)'이라는 글자를 먼저 떠올려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신령한 거문고'라는 뜻이다. 본래 이곳은 정자가 아니라 바닷가에 펼쳐진 암반 지대를 가리키던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이 바위에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독특한 소리가 났는데, 그 울림이 마치 거문고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영금정'이라 불렀다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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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그런데 정자가 왜 두 개나 있을까?"</font><br>
<font color='#996633'>"같은 영금정이지만 위치와 풍경이 조금 다르지. 하나는 바다 쪽으로 나아가 있고, 하나는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고!"</font><br>
<font color='#996633'>​</font><br>
바다 쪽으로 길게 이어진 다리 끝에 있는 것이 영금정 해돋이정자이고, 언덕 위에 자리한 정자는 영금정 일대와 동해를 바라보는 전망 공간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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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바다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신령한 거문고 소리​</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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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바다 쪽으로 길게 이어진 다리를 따라 걸었다. 육지에서 조금 멀어질수록 발아래로 동해의 푸른 물결이 일렁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다리 아래 바위를 때리는 파도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자,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작은 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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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8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8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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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38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4/IE00366738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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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해돋이정자다. 정자에 올라서니 사방이 막힘없이 탁 트였다. 뒤로는 속초의 해안선과 병풍처럼 펼쳐진 설악산이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동해가 아득한 수평선과 맞닿아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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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다의 품 한가운데서 육지를 되돌아보는 듯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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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쉼 없이 바위에 부딪쳤다. 그 웅장한 울림을 듣고 있자니 옛사람들이 왜 이곳에 '영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거친 바위와 부딪쳐 일어나는 파도 소리가 오래된 거문고의 선율처럼 들려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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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파도 소리를 거문고 선율로 들었다니, 옛사람들의 풍류가 참 멋지네."</font><br>
<font color='#996633'>"멋도 멋이지만, 이 푸른 바다와 하얀 물보라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까지 시원해."</font><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44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연순</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갓 튀긴 밥에 눈 질끈, 시칠리아에서 감동한 맛]]></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322</link><pubDate>2026-09-03T17:24:5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717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717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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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시칠리아로 간다. 공항에 도착해 라이언 항공사를 찾아 짐을 부치고 잠시 카페에 앉았다. 에스프레소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맛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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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50여 분을 날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했다.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레르모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으로, 이탈리아의 마피아 범죄 조직을 소탕한 검사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와 파올로 보르셀리노(Paolo Borsellino)의 이름에서 유래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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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시칠리아에 도착하다</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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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비 오는 시칠리아라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까지 낭만적이다.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버스를 탔다. 중앙역에서 내려 5분 걸으면 숙소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여전히 비가 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비 맞으며 다닌다. 우리도 현지에 적응해야지, 그냥 비 맞으며 숙소까지 걸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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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사이트에서 예약하고 이틀 전에 확인도 했건만, 당일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도 어째 연락이 안 된다.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정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인터폰은 없는 데다 인터넷도 안 터진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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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 작은 카페테리아가 보여 일단 그리로 들어갔다. 춥고 배고프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샌드위치와 파니니, 커피를 주문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숙소 운영자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했으나 묵묵부답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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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리아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맞은편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숙소 주인을 아느냐 물었다. 다행히 잘 아는 사람이란다. 그리고는 전화를 하는데 역시 전화 연결이 안 된다. 그렇게 애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 직원은 급기야 직접 가보겠다며 빗속으로 뛰어나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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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비에 흠뻑 젖어 돌아왔지만 역시 연락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든다. 인근의 다른 호텔을 안내해 주겠다는 말에 우리는 이미 숙박비를 지불했으니 좀 더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오래된 동네 사람처럼 친절한 호의에 감복하며 우리는 뭐라도 더 팔아주고 싶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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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 맥주를 주문했다. 비가 오는데 차가운 맥주를 마시자 으슬으슬 한기가 돌며 몸이 떨려 온다. 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오늘 들어갈 수는 있는 건가. 이럴 수가. 꿈에 그리던 시칠리아, 내가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닌데...<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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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32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양진형</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어르신들 몰리는 고군산섬잇길, 이걸 모르고 가면 낭패]]></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408</link><pubDate>2026-09-03T11:44:3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72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1/IE00366572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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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고군산군도 외곽의 방축도~명도~말도 등 5개 섬을 4개의 해상 인도교로 연결한 바닷길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서해 푸른 바다를 보면서 걷는 총길이 8.64km의 해상 트레일, 이른바 '고군산섬잇길'이다. 섬과 섬을 잇는 인도교를 따라 자연경관과 지질 유산, 섬마을의 전설과 만나는 이 길은 지난 8월 8일 임시 개통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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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여객선 객실엔 70대 고령층 수두룩한데</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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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전국 각지의 산악회와 트레커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주말이면 한국해운조합 여객선 예약 사이트의 배편이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한다. 코스는 방축도에서 말도까지 이어지는 종주 코스와 각 섬을 중심으로 한 가족형 원점회귀 코스 3개로 구성되어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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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72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1/IE00366572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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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오전 11시, 군산시 옥도면 장자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일기예보상 오후 1~2시 사이 소나기가 예보되어 있어 우비와 우산을 챙겼다. 정원 178명의 여객선 객실은 만석이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승객의 연령대로, 약 60% 이상이 70대 이상의 고령층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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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옆자리에 앉은 대전 출신의 70대 여성은 "여객선비와 식대 포함 5만 원을 내고 아침에 산악회를 따라왔다. 평소엔 산사(山寺) 투어를 주로 다닌다"고 전한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군가가 "고군산섬잇길은 바위를 가로지르는 계단이 참 많다"고 알려주자 내심 불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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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72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1/IE00366572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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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8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년층도 여럿 보였다. 최근 폭염 속에서 섬잇길을 걷다가 온열질환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산악회 관계자는 이들에게는 8.64km 전체 완주보다는, 명도에서 내려 방축도나 말도 쪽으로 구간을 쪼개 걸어보는 트레킹할 것을 권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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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오랜 세월이 빚은 방축도 독립문바위… 500개 계단 넘는 광대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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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20분, 섬잇길의 동쪽 출발점인 방축도 선착장에 내리며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마을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여성 주민에게 "요즘 외지 사람이 많이 찾아오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어 "관광객이 많이 몰리니 좋으시냐"고 재차 묻자, "별로…"라는 외마디를 남긴 채 갈길을 재촉한다. 최근 섬잇길 개통으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한 번잡함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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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72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1/IE00366572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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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축도는 고군산군도 북서쪽에 자리해 주변 섬들을 외풍으로부터 막아주는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이다. 섬의 면적은 2.167㎢, 해안선 길이 6.5km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당나라 상인들이 표류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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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축도 최고의 명물인 독립문바위로 진입하는 전망 데크에는 군산시 소속 지질해설사 2명이 있다. 이들로부터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독립문바위에 대한 설명을 흥미롭게 들은 뒤 무인도인 '광대도'로 향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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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72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1/IE00366572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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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40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숙귀</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 왜 유명한지 알겠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682</link><pubDate>2026-09-03T11:13:0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27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1/IE00366627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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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장마처럼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며칠 동안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었던 답답함을 풀어보려고 1일, 가까이에 있는 장수암에 갔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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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장수암은 역사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바다가 보이는 절집으로 인스타에서 유명한 곳이다. 집에서 가까운데도 처음 찾게 되었다. 절집에 도착하여 차를 세우고 나서니 전각으로 오르는 108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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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27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1/IE00366627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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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13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1/IE00366613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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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68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전갑남</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쉬고 또 쉬고... 아내도 꼭 다시 오자는 곳]]></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143</link><pubDate>2026-09-03T09:59:2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81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681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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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맞닿은 양양의 암자, 휴휴암(休休庵)을 찾았다. 산중 사찰이 아닌 바다와 바위, 불교적 상징이 어우러진 이곳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쉬고 또 쉰다는 뜻을 지닌 암자. 세상살이의 번뇌와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쉬어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싶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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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에 들어서며 처음 마주한 것은 거북이 바위와 그 위에 놓인 토끼상이다. 거북이 등에 토끼라니, 뜻밖의 조합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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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무슨 의미가 있을까?'</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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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바위는 관세음보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등 위에 올라앉은 토끼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 기묘한 조합이 재미있어 한동안 바라보게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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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은 오랜 역사와 서사가 있는 고찰은 아니다. 1997년 홍법 스님이 작은 법당인 묘적전으로 창건 했고, 1999년 바닷가에서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을 닮은 바위가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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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81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681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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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81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681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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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적전 벽에 그려진 관세음보살 바위 그림을 보니 실제 바위 모습이 궁금해져 아래 바닷가로 내려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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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내려놓음의 풍경​</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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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너럭바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앉아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은 바닷속을 향해 있었다. 아내와 함께한 일행도 바다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내뱉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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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와, 저 물고기 좀 봐.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네."</font><br>
<font color='#996633'>"먹이를 주니까 퍼덕거리며 몰려드니 신기하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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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에는 황어 떼가 까맣게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몰려들 때면 물고기들이 서로 뒤엉키며 수면이 출렁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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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82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682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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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82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3/IE00366682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4143">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희종</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나들이가 버거운 나이가 되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608</link><pubDate>2026-09-03T09:10:10+09:00</pubDate><description><![CDATA[1박 2일의 동해안 여행, 왕복 600여 km의 운전이 가능할까? 겁이 없던 젊음은 갔고 운전이 두려운 세월이다. 8월이 가기 전에 간단한 준비물을 싣고 동해안으로 출발이다. 서두르는 이유는 춘천에서 닭갈비 점심을 하기 위해서다. 보슬비가 내리는 중앙고속도로에 올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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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척산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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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길은 먼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서히 피곤할 무렵에 도착한 춘천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호수를 품은 도시가 그랬고, 서서히 흐르는 삶이 그래 보였다. 맛깔난 감자 빵을 사들고, 소양댐방향으로 길을 잡아 도착한 닭갈비집, 대기 순번이 54번이란다. 여전히 맛이 있는 모양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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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전거여행 중에 찾아낸 유명 닭갈비집, 순번이 50번이었다. 간신히 주차하고 기다리자 얼른 들어오란다. 많은 테이블은 기다림을 줄여주는데, 역시 맛은 있었다. 순식간에 음식이 제공되고, 불에 익어가는 닭갈비는 그럴듯했다. 매콤함에 질기지 않은 부드러운 맛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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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비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두운 눈으로 택배신청을 하고 배를 불린 오후, 나른한 몸을 이끌고 속초로 향했다. 소양호를 따라 달리는 여행길은 한가했다. 굽이굽이 삶이 서린 골짜기는 한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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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60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전갑남</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강릉 화폐전시관에서 만난 두 얼굴, 참 특별하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874</link><pubDate>2026-09-02T11:37:25+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대관령 황태구이와 학창 시절의 기억​</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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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용대리는 그야말로 황태 요리 천국이었다. ​넓은 주차장에 드넓은 식당은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맛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당연한가 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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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정식에 황태구이, 황태탕, 황태찜까지 한 상이 푸짐하다. 조가 섞인 밥에 서비스로 내온 도토리묵까지 곁들이니 배가 부르다. 거기에 강원도 옥수수막걸리 한 잔까지 더하니 여행의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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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이제 맛난 것도 먹었으니 오죽헌을 거쳐 휴휴암으로 갑시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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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오르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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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우리 수학여행 온 기분인데…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얼이 서린 곳을 찾아가니 말이야."</font><br>
<font color='#996633'>​"그래. 그분들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라도 느껴보면 좋겠지."</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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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초충도 정원에서 만난 '예술가' 신사임당​</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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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9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9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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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빽빽하다. 젊은 사람부터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까지 발길이 이어졌다. 오죽헌이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내에 들어서니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입구와 까만 대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배롱나무도 한창 붉은 꽃을 피워 경내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br>
​<br>
그런데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신사임당의 그림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가꾸어 놓은 정원이다. 특히 &lt;초충도&gt;에 그려진 식물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기분이 새롭다. 평소 밭이나 들에서 흔히 보아왔던 풀과 꽃들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눈을 통해 위대한 그림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br>
​<br>
늘 보아오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신사임당은 진즉에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그 앞에 머물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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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보인다. 한 사람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였고, 한 사람은 조선을 대표하는 예술가였다. 그런데 우리는 신사임당을 너무 오랫동안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해 온 것은 아닐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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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40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40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40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40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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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독립된 예술가였다. 자연과 생명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작품으로 표현한 거장이었다. ​신사임당의 동상을 바라보다 아내에게 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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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874">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양진금</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하늘이 내려와 호수가 되었나... 구채구에서 만난 천하절경]]></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841</link><pubDate>2026-09-02T10:57:11+09:00</pubDate><description><![CDATA[나는 원래 산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아름다운 산이나 호수보다는 도시를 둘러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유명한 자연경관을 일부러 사진으로 찾아보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이번 중국 출장에서 구채구를 찾게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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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구채구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직원들과 지인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청두까지 왔는데 구채구를 안 보고 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 평소 산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망설여졌다. 하지만 언제 다시 이곳까지 와보겠느냐는 생각에 결국 밤잠까지 줄여 구채구로 향했다. 8월 28일의 일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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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8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8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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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만났다. 눈앞에 펼쳐진 비취빛 호수를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파란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맑았고, 초록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었다. 옥빛 같기도 하고 비취빛 같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물빛이 정말 있었구나." 사진으로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풍경이라 그 감동은 더 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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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7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7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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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84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상기</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지중해 최대 휴양도시에서 만난 문화유산]]></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804</link><pubDate>2026-09-02T13:22:04+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3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3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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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는 지중해 최대의 휴양도시다. 그것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리조트가 많고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매년 1700만 명 정도 외국인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었다. 대표적인 볼거리는 하드리아누스문으로부터 항구에 이르는 구시가지인 칼레이치(Kaleiçi)에 모여 있다. 칼레이치는 구도심 또는 성내(城內)라는 뜻을 가진 튀르키예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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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인 하드리아누스문에서 출발하면 칼레이치 박물관, 케식(Kesik) 미나렛, 요새 겸 등대 역할을 한 흐들륵(Hidirlik) 탑까지 길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하드리아누스문은 기원후 130년 하드리아누스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세 개의 아치형 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튀르키예어로는 위츠카플라르(Üçkapilar)라 불린다. 셀주크투르크 시대 문밖을 성벽이 둘러싸고 있어 잘 보존될 수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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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3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3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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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길을 내기 위해 성벽을 철거하면서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1959년 복원공사를 거쳐 로마시대 바닥을 드러나도록 했다. 일부 바닥에는 투명 아크릴을 덮어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므로 계단을 통해 바닥으로 내려간 다음 가운데 아치문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칼레이치로 들어설 수 있다. 바닥에는 홈이 파여 있는데, 그것은 성문을 드나들던 마차의 바퀴 자국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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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아치형 문을 네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기둥의 주두(柱頭)는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이 결합한 장식을 보여준다. 주두 위 좌우에는 꽃무늬 장식이 있고, 2층과 연결되는 기둥 상단부에는 사자머리 장식이 있다. 아치형 문 천정에도 꽃무늬 장식이 있다. 하드리아누스문은 2층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다. 연구자들은 2층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관련 조각이 새겨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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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3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3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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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양쪽으로는 성벽과 연결되는 탑이 있다. 율리아 산타 탑으로 불렸으며, 13세기 셀주크투르크 카이쿠바드 1세에 의해 아라비아 양식의 탑으로 개조되었다. 발굴 복원시 문 아래쪽에서 12개의 청동 글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글자들은 하드리아누스를 기리는 비문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발굴 당시 나온 주초석과 기둥 일부가 한쪽 옆에 전시되어 있다. 하드리아누스문은 안탈랴 관광의 출발지여서 늘 붐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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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구시가지에 분포한 문화유산 살펴보기</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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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633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2/IE00366633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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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전갑남</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일곱 가족이 떠난 강원도 늦여름 여행의 시작]]></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498</link><pubDate>2026-09-01T10:44:52+09:00</pubDate><description><![CDATA[​여름의 끝자락이다. 마음이 잘 맞는 일곱 가족이 함께 강원도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여럿이 함께 나서는 길이라, 출발 전부터 마음속에 설렘이 밀려 든다.<br>
​<br>
​강화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향하는 길, 첫 목적지는 오대산 월정사다. 대관령을 넘어 강원도의 맛으로 점심을 나누기로 했으니, 월정사는 이번 여정의 문을 열어주는 첫 번째 여행지가 된 셈이다.<br>
​<br>
​<strong>전나무 아래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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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84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1/IE00366584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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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는 몇 년 전에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가장 깊은 잔상을 남긴 것은 절 입구부터 곧게 이어지던 전나무 숲이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전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을 때 온몸으로 스며들던 숲의 청량함, 그 푸른 기운 속에서 일상의 번잡함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가던 기억이 아련하다.<br>
​<br>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 만날 월정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일곱 부부가 숲길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형제처럼 우애를 나누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 쌓아온 우정의 깊이가 은은하게 묻어난다.<br>
​<br>
누군가 숲의 정적을 깨고 탄성을 내뱉는다.<br>
​<br>
​<font color='#996633'>"와, 우리 여기 너무 잘 왔다."</font><br>
<font color='#996633'>"이런 시원함을 늦여름에서 느낄 수 있다니."</font><br>
<font color='#996633'>"끈적거림 없는 숲 흙길이 청량하고. 참 좋네."</font><br>
<font color='#996633'>"그러게 말이야. 이런 데서 세상 근심 다 내려놓고 며칠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font><br>
​<br>
​정담(情談) 너머로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전나무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호위하듯 따라온다. 사람들의 말소리마저 숲의 정적 속에서 자연스레 한 뼘 낮아진다.<br>
​<br>
<strong>​하늘로 솟은 탑, 발치에 엎드린 기도​</strong><br>
​<br>
​전나무 숲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자, 예전에는 미처 깊이 보지 못했던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월정사가 품은 천년의 유산에 마음이 끌린다.​<br>
​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83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1/IE00366583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br>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단연 팔각구층석탑이다. 고려 시대에 세워진 이 탑은 다채로운 팔각형의 형태부터 남다르다. 천 년 전 고려인들의 뛰어난 조형 감각과 깊은 불교적 세계관이 조화롭게 입혀져 있다. 날렵하게 솟아오른 각 층 처마 끝은 하늘을 향해 가볍게 비상하듯 들려 있어, 오랜 세월을 견뎌온 중후함 속에서도 경쾌하고 단아한 미를 잃지 않는다.<br>
​<br>
​석탑 앞에 얌전히 놓인 석조보살좌상에 눈길이 간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다리를 세운 채 두 손을 모아 탑에 공양을 올리는 형상이다.<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49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상기</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호수 지나고 산맥 넘어 만난 로마시대 극장]]></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3066</link><pubDate>2026-08-31T13:35:04+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아스펜도스 극장 찾아가는 길</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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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22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0/IE00366522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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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야는 해발 1016m의 고원지대에 있는 평야 지대다. 콘야를 떠나면서 고개를 넘는데, 콘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중해 해변 도시 안탈랴로 가려면 중간에 토로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 때문에 해발 1300m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고개와 터널을 지나 고도를 서서히 낮추게 된다. 중간에 점심 겸 휴식을 위해 호숫가 도시 베이셰히르에서 잠시 쉬어간다. 베이셰히르는 셀주크 왕조의 여름 궁전이 있던 곳으로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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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마침 여름 축제가 열리는 중이어서 도시가 시끌벅적하다. 점심을 먹고 시장도 둘러보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도 살펴본다. 해발 1123m쯤 되는 호수에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호수 서남쪽으로 토로스 산맥이 이어진다. 호수는 동서 폭이 20km 남북 길이가 40km쯤 된다. 호수 남쪽을 따라 안탈랴로 가는 E687 도로가 이어진다. 버스는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 해발 1300m 정도까지 올라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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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22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0/IE00366522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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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발 1000m에 있는 데미르카프(Demirkapi) 터널을 지난다. 2023년에 새로 개통한 길이 5068m의 터널로, 4~5분이면 통과할 수 있다. 이 터널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시작한다. 이제 콘야 지역을 떠나 안탈랴 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서 기온이 높고 습한 지중해성 기후로 바뀐다. 고도를 낮출수록 울창한 숲을 볼 수 있다. 지중해가 가까워지자 해안을 연결하는 D400 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안탈랴에 이르게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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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로마 시대 만들어진 아스펜도스 극장을 찾아간다. 아스펜도스 극장은 쾨프리차이강을 따라 상류로 5km쯤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아스펜도스에는 극장만 있는 게 아니다. 안탈랴 동쪽 40km 지점에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 번성했던 도시다. 지중해로부터 16km 정도 내륙으로 들어간 산록에 위치한다. 강을 따라 무역선이 아스펜도스까지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소금, 올리브 오일, 포도주, 양모 교역으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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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23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0/IE00366523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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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커지면서 산에서 수로를 통해 도심에 물을 공급하고, 도시에 물탱크를 만들었다. 중심부에 분수 광장, 아고라, 시장, 사원, 교회, 원로원 건물, 아크로폴리스 등이 위치하게 도심을 구성했다. 그리고 4대문 밖에 경기장과 체육관, 극장, 대중목욕탕 등이 들어섰다. 그러므로 귀족들은 시내에 거주하면서 주말 또는 행사가 있을 때 경기장, 극장, 목욕탕 등에서 시민과 함께 어울렸다. 전성기 때인 2~3세기 아스펜도스는 팜필리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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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아스펜도스 극장의 역사</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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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전명원</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아직 식지 않은 행렬, 영월 청령포 가는 길]]></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2962</link><pubDate>2026-09-01T07:59:28+09:00</pubDate><description><![CDATA[지난 2월, 우리나라 극장가를 관통한 하나의 영화라면 바로 단종의 이야기를 그린 &lt;왕과 사는 남자&gt;일 것이다.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인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와 단종의 이야기다. 유배 오는 양반 덕에 마을의 미래를 꿈꿔보고자 했던 엄흥도의 바람은 '각종 물건을 지고 오는 당나귀 행렬'로 구체화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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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 모두 짐작하는 일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울고 웃었던 기억이 내게도 생생하다. 특히 함께 영화를 보았던 남편은 눈물까지 흘리고 감동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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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509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30/IE00366509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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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여러 해 전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영화로 유명해지기 전의 청령포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마당과 그 마당을 향해 기울어 자라는 소나무들을 오래 바라보다 돌아왔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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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청령포가 영화로 유명해진 이후 날이면 날마다 관광객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흥도가 그리 바라던 광천골의 '당나귀 행렬'이 이제라도 이뤄진 것일까 싶은 사진을 보면서 남다른 기분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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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