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서울</title><link>https://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26-08-17T14:48:09+09:00</lastBuildDate><item><author>김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폭우 뚫고 온, 까만봉지 속 담긴 수박한통, 그냥 수박이 아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52</link><pubDate>2026-08-17T14:44:40+09:00</pubDate><description><![CDATA[[관련기사] 음료수 박스에 들어있던 봉투..아찔한 순간 지나고 받은 훈장증 <a target="_blank" href="https://omn.kr/2j3o3">https://omn.kr/2j3o3</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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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8년 만의 재회였다. 그녀들을 처음 만난 건 2005년이다. 당시 나는 시설을 지도감독하고 처분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녀들은 그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처분을 내리는 자와 처분을 기다리는 자라는 냉정한 관계였다. 어려운 업무 지침서를 들고 나는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은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며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결코 좁힐 수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단 한 번의 식사 자리조차 거절해야 했던 평행선 같은 관계였다. 그 관계가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제 저녁(14일) 마침내 마주하게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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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아침부터 그녀들을 만날 생각에 사실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사실은 재직시절, 나는 그녀들이 인간적으로 참으로 좋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각자의 시설을 잘 운영하는 모습에 늘 마음으로는 고마움과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지도·감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었고, 지도·감독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업무였다. 자칫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릇된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거리를 두고 자신을 단속했던 것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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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스로 빗장을 굳게 잠그고 여러 부서를 거쳐 나는 퇴직을 했고, 소식을 들은 그녀들이 밥 한번 먹자며 그들의 모임에 저녁 식사 초대를 한 것이다. 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그녀들을 맞이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만났지만 내 앞에는 그 시절의 그녀들이 서 있었다.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나고 우리는 만났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속일 수 없는 나이 듦이 있어도 2005년 그 시절로 돌아간 우리의 만남은 그때와 달리 따뜻하고 반가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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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주인공이 제일 먼저 오셨네요."</font><br>
<font color='#996633'>"에잇…. 무슨 주인공입니까. 언니들 만나러 나왔는데,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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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이영천</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다소 황당한 이유로 파헤쳐진 광화문 사거리]]></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160</link><pubDate>2026-08-16T19:56:59+09:00</pubDate><description><![CDATA[언젠지 모르게 우리 발길이 공중과 땅 밑으로 떠밀려 강제되었다. 그때 도로는 더는 발길을 받아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신호를 기다려 건널목을 건너는 대신, 육교와 지하도로 길을 건너야 했다. 육교는 시청 부근이, 지하도는 세종대로 사거리(옛 광화문 사거리)가 시작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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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2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2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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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에 비례하여 자동차가 늘었다. 차가 빨라지고, 인프라가 다듬어지면서 차와 사람 사이 교행 규칙이 엄격히 구분되었다. 어지간한 교차로엔 신호등이 걸음을 붙잡았다. 길을 건너려면 기다려야 했다. 그랬어도 교차로마다 작은 낭만이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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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4월, 서울시장이 '교통난 완화책'을 발표한다. 도로와 지하도, 육교를 건설하고 전차 폐지와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로써 육교나 지하도가 무수히 계획된다. 일종의 통제장치다. 육조거리와 세종대로 사거리의 광장이 넓혀졌어도, 걸음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4.19와 5.16이 격랑으로 지나며 강제가 시작되었다. 그랬어도 느린 전차에 보차혼용이 일상 풍경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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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2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2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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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종대로를, 1966년 10월 방한하는 존슨 대통령 환영 시가행진 때문에라도 단장해야 했다. 전차 궤도가 뜯기고 사거리에 9월 30일 지하도가 뚫린다. 지상은 통제되고, 계단을 내민 지하도가 걸음을 재촉한다. 조금만 내려가도 희미한 전등에 기대야 했다. 차 소리보다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침침한 지하도는 공기도 습했다. 반대로 땅 위는 더욱 빨라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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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2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2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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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보다 육교가 더 우후죽순이었다. 처음엔 구경거리였던 게 차츰 억지처럼 여겨진다. 무단횡단이 빈번해진다. 왜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는 분명 도시가 강요한 행위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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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은 차량 공간이니, 사람은 육교와 지하도로만 다니라는 정해진 위계였다. 모든 게 속도로 흘렀다. 그렇다고 사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빨라진 도로에 느린 발걸음이 공중과 지하로 돌려졌을 뿐이다.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지하도는 발걸음만 돌려세운 게 아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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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먼지 날리는 일상</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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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80만인 1966년, 모 일간지에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연재되고 있었다. 도성 일원과 영등포에 한정했으니 만원이라 할 만하다. 절대적 증가보다 사회적 증가세가 두드러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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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00만 명을 넘겼으니, 가히 놀라운 속도다. 무섭게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할 도시계획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즉흥 계획이 난무했다. 그 시절 서울은 파헤쳐진 흙에 먼지 날리는 뿌연 일상이었다. 삽과 곡괭이, 덤프트럭과 불도저의 소음,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구르는 바퀴 소리가 시대의 배경음악처럼 도시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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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라는 서울시장 지휘 아래, 도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넓어진 길은 미래로 포장되었고, 직선으로 뻗은 도로는 무한 확장하는 근대처럼 보였다. 교차로에 멈춰서는 차의 시간을 단축해내는 걸 숙제로 여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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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2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2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3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3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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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철학이 가장 또렷하게 구현된 장소가 세종대로와 시청, 명동 입구다. 서울의 얼굴이라는 곳부터 땅과 지하, 공중으로 갈렸다. 명확히 나뉜 사람과 자동차의 위계다. 그건 단순한 교통 개선이 아닌, 도시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였다.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가의 지표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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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서광식</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70이 넘으면 할 일, 서울역 앞에서 찾았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464</link><pubDate>2026-08-16T19:55:54+09:00</pubDate><description><![CDATA[집과 일터가 다 서울역과 가깝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서울역은 단순히 기차역만이 아니라 지하철 1, 4호선,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에 더해 최근에는 지티엑스에이(GTX-A)역까지 생겨 아주 복잡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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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는 기차뿐 아니라 버스 환승센터도 있다. 역에 내린 사람들을 인천, 수원, 분당, 용인 등 수도권으로 싣고갈 광역버스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그 사이로 시내버스와 택시가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합실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로, 또 지하철에서 기차역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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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목적이 있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라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서울역이기 때문일까.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유독 더 바쁘고 정신도 없어 보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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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다 월요일 대체공휴일까지 연휴가 이어지면 서울역 일대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러다 보니 바쁜 일정에 길을 잃고 '멘붕'에 처한 사람들도 자주 본다. 짐보따리는 자꾸 끌리고 일행을 찾는 목소리는 한층 높아진다. 당황하니 당황해서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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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701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0/IE00365701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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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464">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최호림</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상식보다 법이 앞서는 사회, 우리가 잃어버린 '어른다움']]></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78</link><pubDate>2026-08-15T16:25:12+09:00</pubDate><description><![CDATA["고소하겠습니다."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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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상에서 지극히 사소한 갈등조차 쉽게 법적 문제로 비화하곤 한다. 거대한 비즈니스 계약이나 대형 범죄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평범한 이웃과의 대화, SNS상의 한 줄 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다렸다는 듯 '법적 대응'을 들먹이는 시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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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심각한 인권 침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법은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무조건 참고 넘어가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자리에서조차 너무 쉽게 '법'부터 꺼내 드는 현실을 짚어보고 싶은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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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에 대한 비판이 불쾌했다고, 혹은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곧바로 "고소하겠다"거나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는 순간 소통과 대화의 문은 닫혀버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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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갈등에는 언제나 맥락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언행이 유난히 거칠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 역시 상대방을 자극했거나, 평소 쌓여 있던 감정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한쪽의 말과 행동만 떼어내 놓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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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져보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오래된 속담은 단순한 옛말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이치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이들은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기에 앞서 상대방의 법적 책임부터 찾아내려 한다. 내가 한 말은 정당한 비판이고, 상대방이 한 말은 명예훼손이라는 식의 아전인수(我田引水)적 태도도 곳곳에서 나타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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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태도가 반복될수록 소통의 여지가 절대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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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서로의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소'라는 칼자루를 먼저 꺼내 드는 순간, 상대방은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싸워야 할 대상이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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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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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대화가 들어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그 빈자리를 분노와 적개심, 승패에 대한 집착이 채우게 된다. 옳고 그름은 뒷전이고 누가 이겼는지가 중요해진다. 갈등을 풀기보다 내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마저 '누가 이기느냐'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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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7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강득주</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서울시의회 박유진 의원-노동이사협의회, 월례 정례협의체 출범]]></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70</link><pubDate>2026-08-15T16:59:2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0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0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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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박유진 의원(정책수석부대표)과 서울시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서노이협),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공노이협)가 8월 13일 월례 정례협의체를 출범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동이사제 활성화를 위한 예산 확보 방안과 서울시 노동이사제 조례 전면개정 등이 논의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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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매월 1회 정례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노동 몫 비례대표인 유주동 의원도 정례회의에 합류해 노동이사 관련 현안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협의회 측은 서울시의회 내 (가칭)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 연구모임" 형태의 의원연구단체 구성도 제안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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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례협의체 출범과 조례 전면개정 추진은 과거 박 의원 의정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2024년 5월 3일 제323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 박 의원은 당시 표결 직전 반대토론에 나서 노동이사제 적용 기관을 기존 21개에서 13개로 줄이려는 개정안을 '역사의 퇴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사회 내에서 소수에 불과한 노동이사 활동의 현실과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오해와 왜곡된 여론을 반박했지만, 표결을 뒤집지는 못했다.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0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0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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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4년 개정 당시 <strong>21개 기관, 34명</strong>이던 서울시 노동이사제는 조례개정으로 10개 기관에서 제도 자체가 일몰되고, 2026년 7월 기준으로 <strong>11개 기관, 14명</strong>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는 단순히 인원이 줄어든 차원을 넘어, 이사회 내부에서 경영진을 견제하고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통로 자체가 사라졌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70">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성화</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누구를 위한 개편인가?"]]></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17</link><pubDate>2026-08-15T11:30:2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42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42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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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부동산 세제개편안 긴급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를 필두로 권영세, 조은희, 신동욱, 박수민, 최보윤, 최수진, 강명구, 김승수 의원 외 다수의 동료의원이 자리를 함께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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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에는 김현기 강남구청장을 비롯하여 서울시 강남구 대표 시의원, 강남구의회 이재진 의장과 함께 다수의 구의원이 참석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남구민들은 제2소회의실의 좌석이 부족하여 간이 의자를 놓아야 할 만큼 적극적 관심으로 토론회에 집중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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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42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42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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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인 서명옥 의원은 개회사에서 "지난 8월 3일의 세제개편안은 세율과 세 부담이 인상되었고 비거주 1주택자 공제는 축소되었다"라며 "실거주 보호를 내세우지만 정작 특정 계층에 대한 세 부담을 과도하게 지우는 이중적 설계"라고 지적했다. 이에 서명옥 의원은 "8월 3일 세제개편안 발표가 있던 그날 1세대 1주택 비과세 기준과 장기특별공제 등을 현실에 맞게 상향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고 밝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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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1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성호</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덴마크 형은 왜 동생들에게 한국 보여주려 했나]]></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9122</link><pubDate>2026-08-14T16:44:09+09:00</pubDate><description><![CDATA[13일, MBC에브리원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 &lt;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gt; 덴마크 편 첫 방송을 시청했다. 웃고 즐기기 위한 오락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그저 타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의 신기한 광경에 감탄하는 단순한 볼거리나 일회성 예능 재미에 그치지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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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너머에는 한 덴마크 청년이 왜 그토록 한국을 그리워하고, 또 동생들에게 그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정작 우리 스스로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 속 생활방식에 대한 정교한 재발견이 담겨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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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lt;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gt;의 포맷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모국에 있는 친구를 초대해 함께 여행하는 방식이었다면, 지난 3월 프랑스 파코 편을 기점으로는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을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한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여행에 나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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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포맷 바뀐 &lt;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gt;의 매력</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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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26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26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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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애니메이션 &lt;케이팝 데몬 헌터스&gt;의 공동 감독 크리스 아펠한스가 가족과 함께 출연했고, 한국학자 마크 피터슨 교수가 27년 전 제자들과 다시 한국을 찾은 것도 이 새로워진 포맷 안에서였다. 앞서 방송된 이탈리아 미슐랭 셰프 편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주인공인 셰프 레레는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인물로, 과거 한 차례 출연했던 경험이 아쉬워 다시 한국을 찾은 경우였다. 이번 덴마크 편의 요나스와 동생들의 한국 여행도 마찬가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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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포맷 전환의 계기를 짐작해 보면, 지난 시즌 종영을 장식했던 네팔 소년 타망과 라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원래 &lt;어서와&gt; 출신이 아니라 다른 예능(&lt;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gt;)에서 먼저 화제를 모은 인물들이었고, 시청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제작진이 뒤늦게 초대한 경우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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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회차가 시즌 최고 수준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국 거주 외국인의 지인 초청'이라는 기존 틀 대신, '이미 한국에 대한 로망과 화제성을 지닌 이를 직접 초대한다'는 방식이 뜻밖의 흥행 카드로 증명된 셈이다. 이후 곧바로 시즌이 재정비에 들어갔고, 컴백 후 첫 회부터 아예 이 방식이 새 포맷의 기본값이 된 걸 보면, 지난 시즌 마지막 회의 성공이 이번 개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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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서사를 이끄는 중심인물은 덴마크 삼 형제 중 맏형인 요나스다. 그의 한국 인연은 뜻밖의 장소에서 시작됐다. 2012년 뉴질랜드에서 영어 공부를 하던 시절, 수업을 함께 듣던 한국인 친구들이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당시 그는 채식주의자였다. 무례하게 굴고 싶지 않아 마지못해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은 순간, 그는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며 그 자리에서 채식주의를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우연한 삼겹살 한 점이 한 덴마크 청년의 인생 궤적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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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계기로 한국에 눈뜬 요나스는 이후 3주간 한국을 여행했고, 그것으로도 갈증이 풀리지 않아 교환학생으로 한국행을 택했다. 교환학생 생활은 인턴십으로, 인턴십은 다시 정식 취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는 약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br>
덴마크로 돌아간 지 수년이 흘렀지만, 그의 일상에는 한국에 대한 깊고 아련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었다.<br>
<a href="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912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주일순</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알고리즘이 골라준 휴가, 정하기 전에 물어야 할 것]]></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02</link><pubDate>2026-08-14T16:06:38+09:00</pubDate><description><![CDATA[휴가철이 시작되자 휴대전화는 내가 가야 할 곳을 먼저 알려주기 시작했다. '올여름 꼭 가봐야 할 휴가지', '예약 1위 숙소', '4,582명이 선택한 리조트'. 몇 번 검색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타인의 화려한 휴가 사진과 '마감임박' 경고 창을 잇달아 화면에 밀어 올렸다. 높은 별점과 수천 개의 후기도 나를 재촉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듯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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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기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전 9년 동안 곁을 지켜온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딸과 아들이 "이제 우리 다 같이 여행 한 번 가요"라고 했다. 남편은 캐나다에, 딸은 미국에, 아들은 영국에 살았고 나는 한국에 남아 어머니를 돌보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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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을 이어가느라 흩어져 살았던 가족이 어렵게 다시 만나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더 근사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 기다린 시간만큼 좋은 숙소와 멋진 풍경이 필요하다고 믿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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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검색이 만든 함정</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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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가족의 이동 시간과 비용을 따져 그나마 부담을 덜 수 있는 도시 근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숙소를 검색했다. 검색할수록 더 좋은 곳이 나타났고, 더 좋은 곳을 볼수록 처음 보았던 곳은 초라해 보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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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조금씩 올라갔다. 어느새 '우리가 편히 쉴 곳' 보다 '남들이 좋다고 한 곳'을 고르고 있었다. 그중 한 리조트가 자꾸 화면에 나타났다. '4,582명이 선택한 숙소', 높은 별점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결정을 재촉했다. 이만큼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면 실패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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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27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27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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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그 숙소를 보여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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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여기 어때? 9년 만에 다 같이 만나는 건데,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지내면 좋잖아."</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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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먼저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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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0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형민</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3만 6500개 후보 중 현대의 첫 차가 될 뻔했던 이름]]></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771</link><pubDate>2026-08-14T14:51:1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39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3/IE00365839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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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국내 최초의 한국산 승용차에 붙일 차명(車名)과 심볼 마크를 모집합니다. 해외 시장에서 쉽게 통용될 수 있는 이름을..."</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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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여름, 주요 일간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가 실렸다. 그해 가을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자동차박람회에 출품할 현대자동차 최초 독자 승용차의 차명 공모였다. 39일 동안 5만 8223명이 참여했고 3만 6500개의 이름이 등장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무려 887명이 제출한 '아리랑'. 휘닉스와 무궁화가 뒤를 이었다(권용주, "'아리랑' 될 뻔했던 현대차 '포니'", 한국경제TV, 2023년 5월 22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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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산 모델의 이름은 '아리랑'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고 영어 발음도 부드러웠다. 그런데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다. "어, 그런데요. 차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면 어떡합니까." 모두가 경악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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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가 그제야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다. 십 리도 못 가 퍼지는 차? 상상하기도 싫었다. 결국 아리랑은 탈락한다. 온갖 궁리 끝에 현대자동차가 믿어 보기로 한 건 응모 엽서를 정리하던 여대생들의 감각이었다. 그들은 조랑말 '포니(Pony)'를 골랐고 현대 국산 차 1호의 이름은 포니가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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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랑말의 발길질에 채였을망정 아리랑에 표를 던진 이들에게나 아리랑을 치워 버린 이들에게나 이 노래의 무게는 다르지 않았다. 아리랑은 구절양장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배우고 흥얼거리고 목청껏 불렀던 '민족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분단의 칼바람조차 이 노래는 가르지 못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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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중재 아래 남북 단일팀 구성이 논의됐다. 남과 북은 티격태격했다. "국기는 무조건 태극기를 써야 한다"는 남한 측 주장을 북한이 받을 리 없었다. 그런데 가장 이의 없이 합의된 대목이 있었다. "단일팀의 국가(國歌)는 &lt;아리랑&gt;으로 한다." 남이건 북이건 거부감 없이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민족의 노래'였기 때문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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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이후 남북학생회담이 제기됐을 때 대학생들도 "우리 민요 &lt;아리랑&gt;을 부르자. 이렇게 '민족의 노래'를 서로 같은 시각에 부름으로써 하늘을 통한 동족의 호흡을 잠시라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lt;동아일보&gt;, 1961년 5월 14일). 관련 기사가 난 이틀 뒤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한낱 미몽으로 끝났지만 노래 &lt;아리랑&gt;의 위상을 보여주는 예이리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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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일팀 국가로 아리랑을 택한 데 볼멘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lt;동아일보&gt; 칼럼은 아리랑이 "민족의 얼을 담뿍 실은 국민가요"임은 인정하면서도 남북 선수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를 부른다면 "좀 해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lt;동아일보&gt;, 1963년 1월 26일). 사실 좀 웃기지 않는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국가가 울려 퍼지는데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니.<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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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가장 큰 공헌자는 춘사 나운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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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77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퇴직 8개월 나를 위로한 생면부지 사람의 글 ]]></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195</link><pubDate>2026-08-14T15:53:39+09:00</pubDate><description><![CDATA[&lt;오마이뉴스&gt;를 만난 지 8개월째, 내가 퇴직한 지도 8개월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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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퇴직 후 내게 주어진 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큰 공백이었다. 35년간 몸에 밴 알람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 시간에 맞춰져 있다. 퇴직을 하고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같이 새벽 밭일이 필요할 때는 기상 시간을 달리하지만, 평상시는 정해진 루틴이 비슷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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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초기엔 눈을 떠도 당장 가야 할 목적지가 사라진 아침이 너무나 낯설었다.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 큰 공백을 무엇으로라도 메꿔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그렇게 글쓰기는 시작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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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18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18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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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집 안을 정리하고 늘 하던 대로 토마토 주스 한 잔을 두고 노트북을 켜 오마이뉴스에 들어간다. 다른 시민기자들이 쓴 글을 읽는다. 14일 올라온 기사를 검색하다 한 기자님이 쓴 글을 읽고 마음이 쿵 가라앉았다. 23년 한 우물을 팠던 일이 끊기고 50의 나이에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겪는 감정을 솔직하니 담은 글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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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19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손미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 32인치 초대형 캐리어를 끌고 79세 엄마가 왔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308</link><pubDate>2026-08-14T11:55:02+09:00</pubDate><description><![CDATA[대구에서 불볕더위를 헤치며 원더우먼이 올라왔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쫄바지에 삼각팬티를 두르고 온 건 아니었지만, 강렬한 빨간 안경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엄마가 올라왔다. 엄마는 여행용 캐리어를 두 개나 앞장세우고 들어왔다. 심지어 하나는 32인치 초대형 크기였다.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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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엄마, 어디 해외여행 가?"</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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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641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07/IE00365641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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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캐리어에는 엄마의 옷과 화장품 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큰 캐리어를 열자, 각종 농수산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외삼촌 집 텃밭에서 키운 마늘과 양파, 당근, 성주에서 온 참외, 김천 자두 등이었다. 신문지를 벗기자 웬만한 도마보다 더 큰 크기로 얼린 다진 마늘 한판도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압권은 제주도에서 잡았다는 생물 갈치 세 마리였다. 엄마가 급속 냉동을 해놨다가 SRT로 운반해 왔다. 거의 모든 것이 산지직송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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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서울에서는 이런 거 절대 몬 구한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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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비장했다. 몸을 보신하는 데는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 최고라는 지론이었다. 엄마의 음식솜씨는 인정하지만, 이건 좀 오바다 싶어 소파에 누운 채 피식 웃었다. 이 더운 여름에, 서울에서도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뭐 이리 요란하게 가져왔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의 오지랖이 꽤 반가웠다. 나는 그만큼 엄마가 절실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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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도와줘" 한 마디에 올라온 엄마</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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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가 자가면역질환으로 대학병원에 일주일 넘게 입원을 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내가 여러 자가면역질환을 보유한터라 내 체질을 물려준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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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둘째와 매일 병원 복도를 같이 산책하고, 낄낄대며 장난도 쳤다. 어떤 난관도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게임은 퇴원 후였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차리고, 먹는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했다. 학교에 보내놓고도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은지, 무리하지는 않는지, 다시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내내 마음이 쓰였다. 나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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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무리했던 탓인지 방광이 금세 고장났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공원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근처 공중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배가 뒤틀리고 머리에 쥐가 나는 듯 어지러웠다. 온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화단에 눕혀놓고 계속 팔다리를 주물렀다. 한참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는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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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30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정보공개센터</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국회의원이 타는 자동차 확인해보니... 씁쓸한 결과]]></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599</link><pubDate>2026-08-13T19:33:1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12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12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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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 정하고 있다. 지난 7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 줄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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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후환경단체들은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회가 앞서 진행한 시민 공론화에서도 시민대표단 다수는 온실가스를 초기에 더 많이 줄이는 방안을 선택했다. 지금 감축을 미룰수록 미래세대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고, 그 사이 커지는 기후위기의 피해와 비용 역시 미래세대가 떠안게 된다는 이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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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사안은 누가, 언제부터 감축에 나설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동차도 그 대상 중 하나다. 정부는 수송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핵심 과제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수소차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환을 법과 정책으로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의 자동차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정보공개센터는 국회의원 299명의 재산공개 자료를 살펴봤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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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국회의원 소유 자동차 221건 중 214건이 내연기관</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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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08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08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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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재산공개 자료상 본인 차량이 확인된 의원은 166명이었다. 나머지 133명, 전체의 44.5%는 본인명의 차량이 없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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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있는 166명의 재산공개에서 확인된 자동차 내역은 모두 221건이다. 이 가운데 214건, 96.8%가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차량이었다. 주행 중 배출가스가 없는 무공해차(전기·수소차)는 7건, 3.2%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 무공해차 등록대수 비율 4.3%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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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arget="_blank" href="https://datawrapper.dwcdn.net/k2xXn/1/">[2026년 국회의원 자동차 소유현황] </a>전체보기<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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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기후특위 의원이 소유한 자동차는 모두 내연기관</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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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59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곽성호</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5G 5골' 상암 왕자 정승원... 물오른 퍼포먼스로 10년 만에 우승 안길까]]></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8957</link><pubDate>2026-08-13T16:12:4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76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3/IE00365876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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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왕자로 거듭난 정승원이 이달의 선수상까지 휩쓸며 미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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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공식 채널을 통해 "FC서울 정승원이 K리그 공식 비디오게임 파트너 일렉트로닉아츠(EA)가 후원하는 2026년 7월 'EA SPORTS 이달의 선수상(Player Of The Month)'을 수상했다"라고 밝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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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상은 7월에 펼쳐진 K리그1 16라운드부터 20라운드까지 총 5경기를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연맹 TSG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후보군(김대원, 마테우스, 완델손, 정승원)을 바탕으로 TSG 투표(60%), K리그 공식 홈페이지 팬 투표(25%), FC 온라인 유저 투표(15%)를 합산해 최종 수상자를 가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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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은 전 부문 1위를 싹쓸이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TSG 투표 21.43%, K리그 팬 투표 13.71%, FC 온라인 유저 투표 5.85%를 기록, 합산 점수 40.98점을 얻어 2위 마테우스(FC안양·27.63점)를 13.35점 차로 넉넉하게 따돌리면서 이달의 선수상 수상을 차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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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895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참새부대와의 밀당, 엄마의 국산 참깨 사수기]]></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931</link><pubDate>2026-08-13T16:07:3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68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3/IE00365868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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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요놈들 좀 봐라. 하하. 어째 여길 들어갔을꼬…."</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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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하던 어느 날, 엄마가 황급히 남편과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참새 두 마리가 해바라기에 씌운 양파망 속에 갇혀 파닥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해바라기를 좋아하신다. 우리 밭 둘레를 전부 해바라기를 심고 싶은데 올해는 씨가 부족해 일부만 심은 걸 두고 영 마음에 걸려하셨다. 내년에는 꼭 밭 전체를 해바라기로 가득 채워 노란 물결을 보겠다는 게 아버지의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해 잘 핀 해바라기에서 씨를 수확해야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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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아버지는 새들로부터 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촘촘한 초록색 양파망까지 씌워 매일매일 확인하면서 애지중지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틈새를 뚫고 들어갔는지 참새 두 놈이 결국 사고를 쳤고, 현장을 엄마가 목격한 것이었다. 양파망 속에 갇힌 두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 양파망을 벗겨 주니 휑하니 날아가 버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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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생명의 은인도 몰라보다니…. 다음에 오면 국물도 없어."</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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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93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오성훈</author><category>교육</category><title><![CDATA[메달 못 따면 1년이 실패인가요? 기능교육 현장이 묻습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757</link><pubDate>2026-08-13T11:57:4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38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38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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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전국 기능 경기 대회를 앞둔 서울로봇고 '산업용로봇' 실습실. 출전을 앞둔 한 학생의 모니터 주변에는 실패한 코딩의 흔적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책상 아래에는 몇 번이고 다시 자르고 다시 물린 전선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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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피복을 벗기고 단자를 조이는 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한 손에는 밴드가 여럿 감겨 있다. 보호장구를 갖춰도 남는, 배선 작업의 흔한 자국이다. 더운 여름방학 내내 실습실을 지킨 아이들의 땀방울이 기어이 메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치열했던 계절마저 실패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메달이라는 단 하나의 영광 외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청춘들을 축복할 언어가 없단 말인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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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실습실에 남기고 가는 것은 매끈하게 완성된 작품만은 아니다.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연결하고, 분해하고, 조립했던 실패의 흔적들이 작업대 위에 켜켜이 쌓여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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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위에 물감을 두껍게 덧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은 그림에 입체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매끄러운 평면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거친 질감은 시간과 고뇌의 두께를 증명한다. 교육의 캔버스 위에서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성공의 매끄러움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의 두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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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금메달 하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 영광의 이면에 가려진 수십 번의 좌절은 우리 사회가 함께 껴안아야 할 소중한 자양분이다. 실패를 넉넉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더 나은 기술도, 성숙한 사람도 길러내지 못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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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경기 대회의 메달 뒤에는 국가가 호명하지 않은 수많은 학생의 탈락이 존재한다. 구조는 냉정하고, 현실은 건조하다. 선수로 뽑힌 학생은 1년을 온전히 실습실에 바치지만, 결과는 단 한 번의 경기로 결정된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학교 안팎의 시선은 금세 차가워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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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과정보다 메달 색깔로 모든 평가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결과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의 몫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메달을 따지 못하면 지난 1년의 시간이 실패처럼 취급될 때가 있습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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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산업용로봇 직종 지도교사의 말은 오래도록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15년여 전의 나를 떠올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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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밥솥과 쌀로 버틴 5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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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절, 나는 '정보기술' 직종 기능반(현 전공심화동아리)을 맡았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입학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면 맨 뒤에 놓이던 학교였다. 주변에서는 그 아이들이 코딩을 해낼 리 없다며 비웃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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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는 저녁 먹일 예산조차 없었다. 집에서 밥솥과 쌀을 가져와 아이들 저녁을 지어 먹이며 함께 공부하고 훈련했다.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코딩을 위해서도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도 매일 영어를 함께 공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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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반 창설 2년 차가 되던 해, 아이들은 지방 기능 경기대회에 나가 이른바 상위권 특성화고들을 모두 물리쳤다. 해마다 성적이 올라 전국 기능 경기대회에서 우수상, 동메달, 은메달을 차례로 목에 걸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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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기능반 활동에 매달리느라 다른 교우 관계를 맺을 기회를 놓친다는 것, 그리고 전국 대회에서 끝내 입상하지 못했을 때 그 학생들의 진로였다. 그래서 입상하지 못해도 취업할 수 있도록 교과 공부와 자격증 취득을 함께 챙기는 전략을 세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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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도 실습실 불을 밝히던 그 시절은 내 교직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힘겨웠고, 메달을 따지 못할 거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입상하지 못한 아이들조차 보란 듯이 좋은 기업에 취업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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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75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혁진</author><category>책동네</category><title><![CDATA[도서관은 '라이프러리'로 거듭나고 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666</link><pubDate>2026-08-12T16:51:2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26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26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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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lt;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gt;(2025년 6월 출간)는 내로라하는 국내 '도서관 활동가'들의 대담집이다. 도서관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 견해와 생각을 주고받고 사안에 따라 토론도 벌이고 있다. 이 책은 사서만을 위한 안내서가 아니라 도서관의 제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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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작은도서관에서 느낀 도서관의 '미래'</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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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올해 3월 작은도서관에서 환경지원 업무를 하면서 장서와 독서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두 번째는 도서관이 책 이외 지역 공동체로서의 거점 역할도 하기에 도서관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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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에 근무하기 전, 은퇴 후 공공도서관에서 한동안 신문과 잡지를 원 없이 탐독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어렴풋이 도서관의 순기능을 짐작했지만 이후 작은도서관에 근무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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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66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최경식</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단종의 아버지 문종은 어떤 인물이었나]]></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329</link><pubDate>2026-08-12T16:43:56+09:00</pubDate><description><![CDATA[영화 &lt;왕과 사는 남자&gt;는 우리에게 잊힌 역사인 단종을 성공적으로 소환했다. 아울러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이향)에 대한 호기심도 자극했다. 사실 단종 비극의 출발점은 문종의 이른 죽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사람들은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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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59072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309/IE00359072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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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단명만이 안타까움을 자아낸 것은 아니었다. 문종이 아버지(세종)를 쏙 빼닮아 훌륭한 군왕으로서의 자질을 타고났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그가 더 오래 살아서 국정을 운영했다면, 조선이란 국가는 크게 발전했을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것이 좌절됐기에 문종의 죽음에 대한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도대체 문종은 어떠한 인물이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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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천재 군주</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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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은 세종 재위 때부터 세자로서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세종이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세자가 국정을 대신 운영하는 '섭정' 역할을 맡아 상당한 정치 경험을 쌓았다. 즉위한 후에는 이미 국정 운영에 익숙한 상태였다. 따라서 문종의 통치를 평가할 때, 단순히 2년 4개월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만을 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세종 후반기부터 이어진 문종의 정치 활동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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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32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인혜</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어릴 땐 몰랐는데... 수영장에서 마주한 낯선 공포]]></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7867</link><pubDate>2026-08-12T14:47:48+09:00</pubDate><description><![CDATA[어릴 때는 물이 무섭지 않았다. 깊은 물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헤엄쳤다. 특히 천장을 바라보며 배영을 할 때는 몸이 두둥실 뜨는 느낌이 묘하면서도 편안했다. 그렇게 물에 나를 맡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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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수영장을 찾은 날, 물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수영장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물안경 너머로 흔들리는 레인 줄도 그대로였는데, 정작 물에 들어가자 호흡을 챙기면서 동시에 팔다리를 움직이는 감각이 어색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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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레인에서 사람들이 매끄럽게 지나가는 동안 나만 자꾸 리듬을 놓쳤고,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다리가 제멋대로 허우적거렸다. 몸이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졌고 숨은 자꾸 짧아졌다. 분명 예전엔 무섭지 않던 깊이가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물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내 몸이 이전만큼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은 것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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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낯선 감각을 이겨내 보고자 큰맘 먹고 다양한 수중스포츠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댈 곳의 유무에 따라 내 몸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실제로 물속에서 페달을 밟는 아쿠아 바이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수영장 바닥에 기구가 단단히 고정돼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안도감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발밑에 물이 있다는 사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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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프리다이빙이었다. 장비 없이 숨 하나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부터 이미 다리가 떨렸다. 실제로 물속에 들어가 조금씩 깊어지는 수심을 눈으로 확인하자, 발밑이 아득해지는 감각과 함께 숨이 가빠졌다. 같은 물이라도 발이 닿는 곳에 있느냐, 아무것도 붙잡을 게 없는 깊이로 내려가느냐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저 깊고 고요한 물속에서는 내 몸을 결코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가 온몸을 짓눌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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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786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오성훈</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사고 가해 운전자의 발뺌 잡아낸 결정적 목소리]]></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459</link><pubDate>2026-08-12T10:21:51+09:00</pubDate><description><![CDATA[새 차를 뽑은 지 겨우 한 달.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친구와의 반가운 재회는 불쑥 찾아온 사고와 뒤엉킨 수사 과정 때문에 어수선하게 끊기고 말았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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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날 땐 전화기를 멀리 치워두는 편이다. 그것이 마주 앉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믿기 때문이다. 친구와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식들의 혼사를 이야기 하는 동안, 내 전화기는 테이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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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빠듯한 친구와 서둘러 카페를 나선 뒤에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두 통, 그리고 문자가 와 있었다. 현장 사진까지 정성껏 첨부되어 있었다. 찌그러진 새 차의 범퍼를 확인하는 순간, 짧았던 재회의 여운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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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792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792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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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목적지까지 바래다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따뜻한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채 서둘러 헤어졌다. 범퍼에 남은 흠집은 단순한 물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도주한 운전자가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간 '비양심의 무게'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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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45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성호</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집무실 말고, 수도를 옮기자]]></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367</link><pubDate>2026-08-12T09:18:09+09:00</pubDate><description><![CDATA[오늘 세종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겠다는 방향성은 좋지만, 문제의 해법을 다루는 정부의 어프로치를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왜 묵직한 '수도 이전'이라는 본질적인 표현은 꺼내지 못한 채, 고작 '집무실 이전'이라는 지엽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인가. 겨우 제2집무실 하나 더 만든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개선될 리 없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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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부가 '수도 이전'이라는 표현을 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며 신행정수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 이후 정부는 절충안으로 세종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해 국무총리실과 여러 부처를 이전시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는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고, 오늘 발표된 것 역시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제2집무실'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절반의 이전이 20년째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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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관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 근거인지는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드러난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백제는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웅진과 사비로 두 차례나 천도했다. 신라의 수도는 경주였고, 고려는 개경이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서울=대한민국의 수도'라는 등식은 조선 건국 이후 약 600년, 그것도 한 왕조가 군사·풍수적 이유로 정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시대마다 권력의 중심이 바뀌면 수도도 함께 옮겨졌다는 것이 한반도 역사의 실제 문법이다. 그런데 유독 21세기 대한민국만은 이 관성을 '관습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하고 있는 셈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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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지금의 서울이 놓인 위치 자체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은 원래 경기도 양주(楊州)에 속한 작은 고을이었다가, 태조 이성계가 한반도 전체를 국토로 삼은 조선의 도읍으로 낙점하면서 비로소 수도가 된 곳이다. 당시로서는 국토의 중심에 가깝고 한강을 낀 요충지였기에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이 전제는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수십 km 떨어진, 사실상 국경 도시다. 안보적으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수도가 적성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는 뜻이고, 국토 균형이라는 관점에서도 남한 영토만 놓고 보면 서울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라 북쪽으로 치우친 변두리에 가깝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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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도 위에서 합리적이었던 좌표가 대한민국의 지도 위에서는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관습헌법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관습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어 온 것이지, 특정 시점에 영구히 박제되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원리가 아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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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36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