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사는이야기</title><link>https://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26-08-18T11:53:11+09:00</lastBuildDate><item><author>정미란</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끝없는 변화, 피카소가 흙으로 펼친 세계]]></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746</link><pubDate>2026-08-18T11:50:21+09:00</pubDate><description><![CDATA[<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영감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일할 때 나를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br>
- 파블로 피카소</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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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는 회화 뿐 아니라 판화, 드로잉, 도예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 다작의 예술가였다. 큐비즘이라는 독창적인 미술사조를 완성하며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꾼 그에게 도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 언어였다. 특히 발로리스에서 탄생한 도예 작품들은 회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휘된 그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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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031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7/IE00366031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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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주말, 전북도립미술관 전시관은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저물어가는 여름날, 피카소가 흙 위에 펼쳐놓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마주하며 또 하나의 예술 세계를 만났다. 피카소가 본격적으로 도예를 시작한 것은 1946년, 그의 나이 65세 무렵이었다. 당시 연인이었던 프랑수아즈 질로와 함께 프랑스 남부 발로리스의 마두라 공방을 찾은 것이 계기였다. 마두라 공방을 운영하던 조르주와 수잔 라미 부부와의 만남은 그의 예술 세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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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에게 마두라 공방은 단순히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장이 아니었다. 흙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만나며 평면의 회화에서 벗어나 입체와 표면, 형태와 질감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흙을 빚고, 긁고, 붓으로 그리고, 천이나 다양한 물체의 흔적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그는 도자기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처럼 다루었다.<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74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정남준</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사진] 바다를 내주던 달동네, 오래된 평상에서 바라본 풍경]]></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856</link><pubDate>2026-08-18T11:03:0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041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8/IE00366041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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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폭우가 쏟아지던 부산 남구 우암동 달동네의 '달상회'를 오랜만에 찾았다. 가파른 골목을 따라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다. 한때 이 골목 어디쯤에서도 부산항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온 동네였지만, 적어도 바다만큼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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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달동네 앞으로 거대한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재개발로 시작된 공사는 어느덧 준공을 앞두고 있다. 낮은 지붕과 오래된 담벼락 너머로 솟은 아파트들은 이제 바다 대신 골목의 풍경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선 앞에 거대한 벽 하나가 세워진 듯하다. 동네가 바뀌고 집값이 오르고 도시가 발전한다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오래 바라보던 풍경 하나를 잃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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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상회 인근 좁은 골목 사이 오래된 집에 사는 어르신을 만났다. 집 앞 작은 평상에 앉으면 그나마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어르신은 그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된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볕 좋은 날에도 그 자리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오랫동안 말없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었던 풍경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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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받는 위로는 어쩌면 거창한 보상보다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 앞에 불어오는 바람, 골목 끝으로 보이는 바다, 작은 평상에 앉아 바라보는 저녁노을 같은 것들. 도시가 높아지고 화려해질수록 그런 작은 위로마저 가난한 사람들의 몫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폭우가 지나가는 우암동 골목에서, 높은 아파트 사이로 겨우 남은 바다를 바라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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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85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홍영미</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치!" 손주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습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12</link><pubDate>2026-08-18T09:37:21+09:00</pubDate><description><![CDATA[토요일 아침, 아이들의 시계는 어른들보다 늘 부지런히 돌아간다. 자고 있던 우리방으로 첫째 손주 둥둥이가 "할머니!" 하고 들어섰다. 손에는 작고 알록달록한 동화책 한 권이 쥐어져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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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할머니, 이거 읽어주세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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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눈도 제대로 뜨이지 않은 피곤한 아침이었지만, 둥둥이의 반가운 목소리에 얼른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이가 내민 책은 &lt;어떡해요?&gt; 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인 &lt;샘이 날 땐 어떡해요?&gt;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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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다녀오는 열흘 동안 받침 있는 글자까지 다 뗐는지, 이제는 동화책을 혼자서도 척척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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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제목은 둥둥이가 직접 읽도록 두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표지 뒷면에는 주인공 '캐빗'을 소개하는 글이 나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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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성격 : 야무진 똑순이, 규칙을 잘 지키는 규칙왕<br>
좋아하는 것 : 책 읽기, 규칙왕 배지, 베리 양 선생님</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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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엇, 캐빗, 둥둥이랑 똑같은데, 특히 요 책 읽기 좋아하는 것."</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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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말에 둥둥이도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으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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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그렇네 할머니, 나하고 똑같네. 근데 우리 선생님은 하00 선생님인데, 베리 양 아닌데."</font><br>
<font color='#996633'>"그렇구나, 둥둥이는 하00 선생님 정말 좋아하지."</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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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프로필에는 '싫어하는 것 : 우유'라고 적혀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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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엇, 이것은 둥둥이랑 다르네. 둥둥이는 우유 엄청 좋아하잖아, 그치?"</font><br>
<font color='#996633'>"응, 맞아. 나는 우유 좋아해."</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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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며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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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질투라는 마음의 파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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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7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7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1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홍윤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제주 고등학생 제안이 불러온 변화... 해수욕장이 달라졌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638</link><pubDate>2026-08-18T07:16:05+09:00</pubDate><description><![CDATA[지난 8월 8일 제주 표선해수욕장에서는 '표선해변 하얀모래축제'가 열렸다. 바다에는 비치 휠체어가 떴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번갈아 옮겨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9월 두 달 동안 주말엔 서핑 강습도 연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발달장애가 있는 이도 보드에 누워 파도를 탈 수 있는 '적응형 서핑(adaptive surfing)'이다. 올해로 3년째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만든 주역은 여행사도 복지기관도 아니다. 제주 표선고등학교 인권 동아리 '이끼' 학생들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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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학생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이끼가 주최해 작년 가을 도의원들과 전문가들을 모아 무장애관광 활성화 정책 포럼에 가서 발표했을 때였다. 당시에도 '학생들이 이런 주제로 정책포럼을 연다고?'라며 놀랐던 기억이다. 이를 계기로 표선고 학생들이 모모탐사대(학교 휠체어접근성을 학생들이 직접 탐구하는 무의의 프로젝트)에 직접 학교 화장실 정보를 리서치하여 보내주기도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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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어른이 있다. 지역 사회복지사인 김민석씨다. 학생들과 함께 3년간 적응형 서핑을 운영하다가 아예 비영리단체 유니버설서프를 차린 그를 지난달 23일에 만났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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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참담한 해수욕장 이동권 실태... 아이들이 던진 질문</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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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29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29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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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 학생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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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에 표선고 학생들이 저를 찾아왔다. 당시 장애인 단체 지하철 시위가 정치권에서 집중포화를 맞던 시기였다. 학생들이 그걸 보고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를 한다고 이렇게 비판 받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 학생들이 그 전 해 이동권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했던 터라, 이 이슈를 제대로 파보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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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 그래서 무엇부터 시작했나?</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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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활동이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지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해수욕장이다. 그래서 해수욕장 이동권 실태조사를 해봤는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휠체어를 타면 백사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샤워실이나 편의시설도 전무했다. 그때 학생들이 던진 질문이 이거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바다를 바라만 봐야 하나요?'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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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 그 질문이 출발점이 된 셈이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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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보지 않게 만들어보자고 했다. 실태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카카오의 지역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에 지원해 해변용 매트와 수륙양용 휠체어 같은 장비를 그 지원금으로 구입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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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비장애인도 해수욕장에 가서 물에 몸만 담갔다 나오지는 않지 않나. 바다에서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다양한 장애가 있어도 서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적응형 서핑이었다. 올해로 3년째 진행하고 있다. 표선해수욕장은 전체적으로 수심이 얕아 허리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역동적인 파도를 타기는 어렵지만, 처음 물에 들어가 보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다. 마침 부산에서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가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 지원으로 여는 장애인 서핑을 직접 보고 온 뒤 제주에서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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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34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34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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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834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2/IE00365834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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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우리와 생각이 반대되는 동아리원 한 명은 있어야"</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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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863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점록</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나보고 '어르신'이라는 카페 점원... 마음이 이상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08</link><pubDate>2026-08-17T18:16:35+09:00</pubDate><description><![CDATA[폭염의 뒤끝이 여전히 맹렬하던 말복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열기를 식히려 인근 카페에 들렀다.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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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어르신,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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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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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부르는 거지?'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직원의 시선과 목소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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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입을 통해 직접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언젠가는 이 낯선 단어와 대면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하긴 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이나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를 보며 나이 듦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세월을 확인하는 것과, 낯선 이의 목소리로 내 인생의 계절이 바뀌었음을 통보받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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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08">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혜인</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입맛 없는 여름, 국수로 대충 때우게 될 때... 이거 하나만 더해봐요]]></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49</link><pubDate>2026-08-17T18:08:20+09:00</pubDate><description><![CDATA[<br>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6021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7/IE00366021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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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여름만 되면 입맛이 없어요. 그래서 맨날 과일이나 시원한 메밀국수, 콩국수 같은 걸로 대충 때우는 게 습관이 됐어요.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입맛이 없으니까 그냥 굶거나 대충 먹게 돼요. 식습관을 고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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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원님이 보내주신 고민입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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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추워서 못움직이고 여름에는 더워서 만사 귀찮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뭘해도 의욕이 잘 안나고 불쾌지수가 높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여름에 입맛이 떨어지는건 정말 자연스러운일이기도 합니다.<br>
<br>
사실 우리 몸이 정말 똑똑해서 그래요. 알아서 체온조절 중추를 통해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려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더우면 몸은 체온을 내리는 데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그러다 보면 소화기로 가는 혈류가 상대적으로 줄고, 입맛도 자연스럽게 떨어져요. 그래서 시원한 국수를 먹고 싶다는 건, 체온을 내리려는 내 몸의 일종의 본능인 셈이죠.<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4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형웅</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잔디 대신 돌나물? 벌초 없는 무덤 실험하는 유럽]]></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44</link><pubDate>2026-08-17T15:53:08+09:00</pubDate><description><![CDATA[추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가 되면 전국 산야에서 예초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벌초다. 조상의 봉분을 덮은 잔디와 잡초를 깎아내는 이 노동은 추석을 앞둔 한국 사회의 오래된 풍경이지만, 해마다 그 무게는 조금씩 더 버거워지고 있다.<br>
<br>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벌초할 사람 자체가 줄고 있다. 벌초 대행업체를 찾는 발길이 늘고, 형제자매끼리 날짜를 맞추기 어려워 벌초를 미루다 추석 직전에야 부랴부랴 다녀오는 집도 흔하다. 여기에 매년 기록을 갱신하는 폭염은 잔디마저 버티기 힘들게 만든다. 여름 땡볕에 누렇게 타들어간 봉분, 장마 뒤 폭우에 쓸려나간 흙더미를 마주하는 일도 이제 낯설지 않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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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오래된 숙제에 대해 유럽의 몇몇 묘지는 이미 다른 답을 찾아냈다. 잔디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세덤'이라는 식물을 심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식물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물어볼 만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애초에 왜 무덤에 잔디를 심기 시작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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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잔디는 원래 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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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를 처음 무덤에 입힌 이유는 지금처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면 비바람에 흙이 씻겨 내려가고, 장마철에는 무너질 위험도 있다. 이때 잔디뿌리가 흙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무너진 봉분에 떼를 다시 입히는 일을 '사초(莎草)'라 불렀고, 『상례편람』 등에는 이를 세 단계 의례로 규정해 놓았을 만큼 정성을 들인 작업이었다.<br>
<br>
흥미로운 건 조선의 왕릉도 획일적으로 잔디만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억새로 덮여 있다. 고향 함흥을 그리워한 태조의 유언에 따라 함흥의 억새를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인조실록』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도 국가유산청은 매년 한식마다 '청완예초의'라는 이름으로 이 전통을 재현한다. 상황에 맞는 식물을 골라 봉분을 지키는 감각이 이미 그때부터 있었던 셈이다.<br>
<br>
서양의 경로는 정반대였다. 빽빽한 도심 교회 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세기 미국과 영국은 도시 외곽에 나무와 잔디를 갖춘 '정원식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831년 문을 연 미국 마운트 오번 묘지가 대표적이다. 이후 1850년대 신시내티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서 조경가 아돌프 스트라우흐가 울타리와 장식을 걷어내고 넓게 트인 잔디 경관, 이른바 '랜드스케이프 론 플랜'을 선보이면서 오늘날 익숙한 잔디 묘지의 원형이 자리 잡았다. 20세기 들어 이 방식이 더 확산된 이유는 간단했다. 넓고 평평한 잔디는 기계로 한꺼번에 관리하기 편했기 때문이다.<br>
<br>
정리하면, 한국은 먼저 봉분이 있었고 그 흙을 지키려 잔디를 덧입혔다. 반대로 서양은 잔디밭이 먼저 조성되고 그 안에 무덤이 들어섰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도착한 결과는 같았다. 지금 우리에게 잔디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됐고, 무성하게 자라지 않으면 관리 소홀로 여겨진다. 봉분을 보호하려고 심었던 잔디가 이제는 후손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관리 대상이 되어버린 역설이 여기서 시작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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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유럽 묘지들이 잔디 대신 선택한 식물</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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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익숙한 고민에 대해, 유럽의 묘지들은 이미 다른 답을 실험하고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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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44">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향숙</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빛을 되찾은 날 떠오른 귀인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06</link><pubDate>2026-08-17T15:14:21+09:00</pubDate><description><![CDATA[광복절 81주년을 맞이했다. 1945년 8월 15일, 선조들이 피 흘려 되찾은 민족과 조국의 의미를 되새기며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한순간이라도 깊이 파고든다. 광복절 하루 전날 우연하게 지역 책방의 인문학 강연(2026.8.14.)의 주제로 선택한 근대시인, 이육사 시인(1904-1944). 민족의 저항시인이자 광복을 채 보지 못하고 순국한 그의 정신이 후세의 사표로서 강연장에도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가득했다.<br>
<br>
<font color='#996633'>내가 들개들에게 길을 비켜줄 수 있는 겸양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나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金剛心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 -</font> 이육사 「계절의 오행」 중에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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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한 안상학 시인은 이육사 시인의 동향으로 그 어떤 시인보다도 육사의 정신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육사의 고향 풍경과 그의 시 &lt;초가&gt; &lt;청포도&gt; &lt;광야&gt; &lt;절정&gt; &lt;연보&gt;를 중심으로 낭송하며, 이육사 생가와 묘지, 육사가 가장 존경했던 문인 루쉰과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일반 시민들이 처음 듣는 다채로운 시인의 시 세계를 들려주었다.<br>
<br>
이육사 시인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조국의 해방을 갈구하며 온몸으로 시대를 돌파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웅장하면서도 가냘픈 시어들은 오늘날 우리 민족의 깊은 곳에 남아서 뜨거운 울림을 준다. 시인이 노래한 시어마다 '희망'을 꿈꾸지 않은 곳이 없고, 마침내 그의 꿈인 광복으로 이어져서 우리가 살고 있으니, 어찌 그냥 지나갈 손인가.<br>
<br>
<font color='#333399'>- 지금 눈 내리고</font><br>
<font color='#333399'>매화梅花 향기香氣 홀로 아득하니</font><br>
<font color='#333399'>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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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다시 천고千古의 뒤에</font><br>
<font color='#333399'>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font><br>
<font color='#333399'>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font> 이육사 &lt;광야&gt; 중에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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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 말한 &lt;청포도&gt;를 통해, '내 고장'이 우리 '조선'이고, '청포도'가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희곤의 &lt;이육사&gt; 평전 중에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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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의 &lt;청포도&gt; 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안상학 시인이 들려준 &lt;청포도&gt; 시의 숨은 뜻은 시를 알지 못하는 청중에게도 쉽게 다가왔다. 일제강점기 시인이 시의 은유성을 써서라도 조국의 광복을 기원했던 마음을 능히 알 수 있었다. 시인이 노래한 '내 고장 칠월,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1945년 8월 15일(음력 7월 8일)에 정말 조국의 광복이 찾아온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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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0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폭우 뚫고 온, 까만봉지 속 담긴 수박한통, 그냥 수박이 아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52</link><pubDate>2026-08-17T14:44:40+09:00</pubDate><description><![CDATA[[관련기사] 음료수 박스에 들어있던 봉투..아찔한 순간 지나고 받은 훈장증 <a target="_blank" href="https://omn.kr/2j3o3">https://omn.kr/2j3o3</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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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8년 만의 재회였다. 그녀들을 처음 만난 건 2005년이다. 당시 나는 시설을 지도감독하고 처분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녀들은 그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처분을 내리는 자와 처분을 기다리는 자라는 냉정한 관계였다. 어려운 업무 지침서를 들고 나는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은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며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결코 좁힐 수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단 한 번의 식사 자리조차 거절해야 했던 평행선 같은 관계였다. 그 관계가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제 저녁(14일) 마침내 마주하게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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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아침부터 그녀들을 만날 생각에 사실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사실은 재직시절, 나는 그녀들이 인간적으로 참으로 좋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각자의 시설을 잘 운영하는 모습에 늘 마음으로는 고마움과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지도·감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었고, 지도·감독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업무였다. 자칫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릇된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거리를 두고 자신을 단속했던 것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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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스로 빗장을 굳게 잠그고 여러 부서를 거쳐 나는 퇴직을 했고, 소식을 들은 그녀들이 밥 한번 먹자며 그들의 모임에 저녁 식사 초대를 한 것이다. 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그녀들을 맞이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만났지만 내 앞에는 그 시절의 그녀들이 서 있었다.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나고 우리는 만났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속일 수 없는 나이 듦이 있어도 2005년 그 시절로 돌아간 우리의 만남은 그때와 달리 따뜻하고 반가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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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주인공이 제일 먼저 오셨네요."</font><br>
<font color='#996633'>"에잇…. 무슨 주인공입니까. 언니들 만나러 나왔는데,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font><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5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재경</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바꿀 수 없는 타인, 바꿀 수 있는 나]]></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34</link><pubDate>2026-08-17T14:36:56+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333399'>"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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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의 한 구절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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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구원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명확한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가 관계에서 겪는 수많은 고통과 피로감은 대부분 '바꿀 수 없는 타인'을 바꾸려 애쓰거나, '바꿀 수 있는 내 영역'을 타인에게 내어줄 때 발생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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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기도가 말하는 '분별하는 지혜'의 핵심은 바로 내 삶의 '경계선(바운더리)'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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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73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6/IE00365973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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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34">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유영숙</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훈맹정음 100주년,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선생님을 찾아서]]></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30</link><pubDate>2026-08-17T13:46:01+09:00</pubDate><description><![CDATA[올해가 훈맹정음 100주년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알았지만 '훈맹정음'이라는 말은 알지 못했다. 3월 말에 인천송암점자도서관에 '소리 나누미' 봉사활동 하러 처음 갔을 때 도서관 외벽에 쓰여 있는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이라는 글을 보면서 '훈맹정음'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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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9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9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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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개관한 도서관을 보면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아서 마치 멋진 카페에라도 간 것처럼 쾌적하다. 요즘 무더위로 도서관이 좋은 피서지가 된 것도 좋은 시설 때문일 거다. 오마이뉴스에서 '캐리어 끌고 도서관'을 연재하고 있는 이인자 기자님의 기사(참고기사 : <a target="_blank"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56948">담배공장의 무한 변신, 이 도서관 진짜 재밌네</a>)를 놓치지 않고 읽는다. 기사에서 본 도서관은 한 곳 한 곳이 모두 특징이 있어 '도서관이 이렇게 좋아?'라며 기사를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고 마음이 끌려서 방문해보고 싶어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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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처음 가본 인천송암점자도서관은 겉에서 보기에도 작은 도서관이었다. 1층은 주차장이고 2층에 사무실과 열람실이 있고, 3층에 송암 박두성 기념관과 소리 나누미 제작실, 강의실이 있었다. 공간이 좁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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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층에 있는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점자책이다. 열람실도 넓지 않고 스물다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점자도서관이라 일반 서가와 점자 서가가 구분되어 있다. 점자 도서 옆에 있는 동화책에는 점자가 덧씌워져 있고, 시각장애인은 이곳에서 오디오북도 이용할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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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9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9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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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도서관이라서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하다. 나도 봉사활동 하러 갈 때 2층 열람실에 들러서 책을 대출해 온다. 신간 코너가 따로 있어서 먼저 신간 도서가 있는 곳에 가서 제목을 보고 책을 대출해 온다. 작년 6월에 내가 출간한 &lt;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 &gt; 책을 기증했는데 신간 도서에 꽂혀있는 내 책을 보니 흐뭇했다. 한 분이라도 읽어주시면 좋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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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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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부터 주 1회 소리 나누미 봉사 활동하러 점자도서관을 방문하지만, 3층에 있는 송암 박두성 기념관을 자세히 둘러보지 않다가 7월에 '훈맹정음 100주년 기념' 행사 안내판을 보고 방문해서 전시물을 자세히 관람했다. 기념관은 크지 않았고 박두성 선생님의 발자취, 점자의 구조와 원리,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우수성, 점자제작을 위한 인쇄기 및 제본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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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60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60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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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30">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유경선</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말랭이 마을에서 만난 '빈 숟가락' 벽화]]></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10</link><pubDate>2026-08-17T13:39:38+09:00</pubDate><description><![CDATA[말랭이 마을 경로당 앞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몇 걸음 걷다 보면, 불현듯 과거의 한 장면으로 소환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난다. 그것은 어쩌면 잊고 지냈던 그리운 냄새일 수도 있고, 빛바랜 담벼락의 질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우연히 마주친 낡은 벽화일 수도 있다. 김수미 가옥의 뒷문을 통해서도 마주칠 수 있는데 골목으로 나오자마자, 시선은 한순간에 어느 오래된 가족의 식탁으로 향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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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는 한 가족이 좁은 방, 앉은뱅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있다. 가운데는 보글보글 끓었을 법한 노란 냄비가 놓여 있고, 그 주위로 밥그릇과 반찬 그릇들이 단출하지만 정겹게 놓여 있다. 인물은 총 네 명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분과, 청년으로 성장한 듯한 남자 둘,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 (이들의 관계가 엄마, 아빠와 1남 1녀인지, 혹은 엄마와 2남 1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의 표정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따뜻한 애정이 가득 차 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기 때문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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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87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6/IE00365987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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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평화롭고 화목한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옥에 티' 혹은 '수수께끼'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네 식구 모두가 들고 있는 숟가락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빈' 상태라는 점이다. 찌개를 뜨는 손동작이라면 숟가락 위에 얼큰한 국물이나 건더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마땅하고,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중이라면 밥알 몇 개가 숟가락에 붙어있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숟가락은 약속이나 한 듯, 깨끗하게 비어있다. 엄마의 숟가락조차도 냄비 속 내용물을 뜨기 '직전'의 상태로 고정되어 있다. 밥을 입에 넣기 '직전'인지 '직후'인지 모르겠지만 소녀 역시 빈 숟가락을 허공에 들고 있다. 마치 화가가 '식사'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그리려다, 그 직전의 '찰나'를 박제해 버린 것만 같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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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화가는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는 단순한 화가의 실수일까, 아니면 의도된 장치일까? 이 '빈 숟가락'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일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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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10">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민호</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16세 미만 SNS 금지'... 이후 호주 가정에서 생긴 일]]></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99</link><pubDate>2026-08-17T11:38:4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6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6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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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정부가 16세 미만 아이들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운영사인 메타플랫폼스(메타)가 호주의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법' 에 따라 해당 연령대의 소유로 추정되는 계정 75만6000개를 비활성화했다고 지난 12일(현지시각) 밝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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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인스타그램 계정 46만2000개, 페이스북 계정 29만4000개의 접근을 차단했다고 전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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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로 호주 전체가 시끄럽다. 위반하면 한국 돈으로 1,000억 원 가까운 벌금을 물린다며 빅테크 기업들을 조이는 호주 정부의 서슬 퍼런 모습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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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 호주에서 13세 아이와 매일 저녁 밥상을 함께하는 나에게는, 그 거창한 법안이나 뉴스 속 이야기들이 이상하리만큼 현실과 멀게 느껴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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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9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황윤옥</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자식을 두고 떠나는 아버지의 편지, 우리들의 '네버랜드'가 되기를]]></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09</link><pubDate>2026-08-17T11:25:07+09:00</pubDate><description><![CDATA[우리 집에는 넷플릭스나 OTT 같은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식이 느린 편이다. 많은 사람이 봤다는 오징어 게임이나 폭싹 속았수다 같은 대작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도 자세히는 모른다. 드라마는 공중파 주말 방송만 보는 어쩌면 나이 든 할머니일지언정 그리 불편한 점은 없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도 않는 편이지만 오전에 집안일을 마치고 커피 마실 때 소파에 앉아 잠시 켜는 것이 다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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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재방송으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았다. 무심코 화면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한 출연자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 앞에서 마시던 커피마저 다 식어버리고 말았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 오더니, 이내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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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7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7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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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주인공은 &lt;안녕, 피터팬&gt;을 쓴 전경철 작가였다. 한때 잘나가던 IT 기업 대표였던 그는 첫돌 무렵 중증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 제원군을 27년간 홀로 키워온 싱글파파다. 의학적 정신 연령이 2.3세에 머물러 있는 아들에게 누군가가 '자라지 않는 아이'라며 비유했던 그 말. 아버지는 그 단어를 애정 어린 별명으로 삼아 아들을 27년 동안 '나의 피터팬'이라 부르며 삶을 버텨왔다. 아들인 제원씨가 너무 잘생겼다며 하하 웃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웃음으로 보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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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의 비극은 느닷없이, 그리고 한꺼번에 찾아왔다. 치매와 뇌경색을 앓던 어머니를 배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간암 말기와 기대 여명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질, 여전히 두 살 배기 마음에 머물러 있는 27살의 아들. 아버지는 자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의 보금자리를 찾아 헤맸다. 1,000 여 곳의 시설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한 군데에서도 받아주질 않았다. 우리 사회가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내어주는 자리는 너무나 좁고 차가웠다. 절망의 끝에서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잡은 것은 펜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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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40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홍영미</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수선사 연꽃과 지리산 바람, 동의보감촌 돌 세 개의 비밀]]></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03</link><pubDate>2026-08-17T11:17:44+09:00</pubDate><description><![CDATA[무더위가 기세를 부리던 지난 8월 11일, 오랜 시간 배움과 우정을 나눠온 독서토론 모임 동료들과 함께 경남 산청 수선사와 동의보감촌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그동안 교정에서 함께 흘린 땀방울을 뒤로하고 모임의 마지막 퇴직자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한 여정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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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승용차로 1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한 산청은 지리산 자락이 품은 청정함과 정갈한 아름다움으로 지친 일상에 시원한 쉼표를 찍어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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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연꽃 가득한 수선사에서 지리산 한방 족욕까지</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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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적지는 아름다운 연못 정원으로 유명한 '수선사'였다. 예전에는 수선사로 들어가는 도로가 좁아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난감했었는데, 새롭게 다리가 놓여 한결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 연꽃과 눈부신 백일홍, 그리고 목수국의 마지막 수줍은 고백이 수놓은 아담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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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37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37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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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사 내 카페 주방 뒤쪽 테라스에 자리를 잡으니 에어컨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시원한 지리산 산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의 별미인 시원한 팥빙수와 커피로 목을 축인 뒤, 연못 위로 나 있는 고즈넉한 데크길을 따라 거닐었다. 보통 연지는 둘레를 걸으며 먼발치에서 연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연지 가운데로 난 데크를 통해 연꽃을 좀 더 가까이 세밀하게 만날 수 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오는 길에 수선사 갤러리에 들러 도자기와 나무 공예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전시도 관람할 수 있었다. 조용한 힐링을 원하는 여행객에게 수선사가 제격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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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숙소인 '산청한방 가족호텔'로 이동해 체크인을 마쳤다. 숙박객에게 제공되는 별관 족욕장은 통창 너머로 푸른 지리산 숲이 한눈에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뜨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창밖 초록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달아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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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37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37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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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숙소에서 소박하지만 정성 어린 퇴임 축하 자리가 열렸다. 모임 상장을 수여하고, 모두가 마음을 다해 쓴 편지도 전달하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지리산 자락의 첫날밤을 정겹게 채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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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동의보감촌 3대 기석(氣石)과 무릉교 출렁다리</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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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03">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종섭</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중고품 시세까지 척척... AI가 밝혀낸 매장의 '진짜 가치']]></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82</link><pubDate>2026-08-17T11:14:07+09:00</pubDate><description><![CDATA[아내를 승용차로 직장까지 출근시켜 주고 오랜만에 캐나다의 대표적인 중고품 매장인<br>
'벨류 빌리지(Value Village)'라는 중고품 매장에 들렀다. 예전 이민 초기 몇 년 동안은 취미 생활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곳이다. 당시에는 매일같이 새로 진열되는 중고품들을 보며 물건을 사는 기쁨보다는, 낯선 현지 문화에 대한 신기함과 구경하는 재미가 훨씬 더 컸었다.<br>
<br>
요즘은 예전 같은 열정이 없다. 어쩌다 한번 들러볼 정도이고, 막상 들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별로 없다. 이민 초기에 너무 신기해하며 많이 구경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격 때문이다. 예전에는 중고품답게 가격이 저렴한 수준을 넘어 헐값에 가까울 정도로 쌌고 꽤 쓸만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여전히 개인에게 기증받아 판매하는 물품인데도 신제품 가격과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다. 옛날 생각을 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br>
<br>
오늘도 별다름 없이 매장을 한 바퀴 돌고 그냥 나오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입구 쪽에 조성되어 있는 유리 부스를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은 고가품이나 분실 위험이 있는 물건을 유리 진열장에 열쇠로 잠가놓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대부분 귀금속이고 그중에는 희귀한 물품도 갖추어져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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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 안에 스페인 월드컵 대회 때 기념품으로 판매되었다는 기념주화와 우표 세트가 놓여 있었다. 가격은 24.99달러. 생각보다 저렴해서 '혹시 정말 가치가 나가는 희귀한 물건인데 매장에서 사전 지식이 없어 가격을 싸게 매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페인 하면 축구 강국이니 이런 월드컵 기념우표·주화 세트라면 제법 값이 나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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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52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5/IE00365952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38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지영</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책방 문 연 지 6개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할 이야기]]></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22</link><pubDate>2026-08-17T17:46:0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27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4/IE00365927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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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록님.<br>
안녕하세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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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제법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 게 느껴지더군요. 눈록님은 오이 넝쿨에 오종종 매달린 오이를 직접 따 먹어본 적 있으신가요? 어린 티가 물씬 나는 여린 오이를 아무 미안함도 없이 뚝 따내어 베어 물었을 때, 입 안 가득 느껴지던 아주 작고 미미한 시원함. 오늘 아침 바람이 꼭 그 맛을 닮았습니다. 가을 바람이라고 우겨보기에 충분한 바람입니다. 이렇게 또 계절이 바뀌나 봅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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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개업식 때 오셨으니까 다녀가신 지 벌써 육개월 정도가 흘렀네요. 그때는 꽤 쌀쌀한 날씨였지요. 지나시다가 이런 곳에 책방이 생긴 게 신기해서 들어오셨다고 하셨지요? 지금도 여전히 눈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런 곳에 책방이 있는 게 신기해서' 오시는 분들이 주 고객이랍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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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일 더 열심히 했다면 '신기해서 들어오는 책방'이 아니라 '책을 사러 오는 책방'일 수도 있었을까요? 저란 사람이 워낙 비주류 인간이라서 그런지 책방에게도 비슷한 프레임이 씌워진 것 같아서 어떤 땐 책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부끄럼 많고 비주류인 저란 인간과 작은 공간이지만 찬란하고 아름다운 반달책방은 오늘도 무사합니다.<br>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22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현국</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일본 교토 사람들이 해마다 8월 16일에 하는 일]]></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46</link><pubDate>2026-08-17T10:29:09+09:00</pubDate><description><![CDATA[일본 사람들은 8월 15일을 '오봉'이라고 해서, 15일 전후 일주일을 '오봉 휴가'라고 하면서 쉬는 직장이 많습니다. 교토에서는 해마다 8월 16일 '교토오산 오쿠리비' 민속 행사를 엽니다. 이 행사는 교토 시내 동쪽 산에서 북쪽산, 서쪽 산까지 한자 대 자, 묘 자, 법 자, 배 모양, 한자 대 자, 도리이 모양들로 불을 밝힙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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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95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7/IE00365995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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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리비 행사는 교토뿐만 아니라 나라나 다른 곳에서도 열리지만, '교토 오산 오쿠리비' 행사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행사를 하는 이유는 8월 13일 자신의 집을 찾은 조상 영혼들이 행사를 마치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날에 맞추어 불을 밝혀서 조상의 영혼들을 무사히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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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리비 행사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 전 8월 16일 집을 방문한 조상신을 보내는 행사로, 집마다 횃불을 밝혔는데 이것을 모아서 한 곳에서 치게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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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오산 오쿠리비 행사는 오후 8시 동쪽 산등성이에 한자 대 자로 불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5분 간격으로 묘, 법(20:05), 배 모양(20:10), 서쪽 한자 대 자(20:15), 도리이 모양(20:20) 순으로 진행됩니다. 어두운 밤 각기 불이 피워지면 구경꾼들을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기도 합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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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4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광식</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70이 넘으면 할 일, 서울역 앞에서 찾았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464</link><pubDate>2026-08-16T19:55:54+09:00</pubDate><description><![CDATA[집과 일터가 다 서울역과 가깝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서울역은 단순히 기차역만이 아니라 지하철 1, 4호선,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에 더해 최근에는 지티엑스에이(GTX-A)역까지 생겨 아주 복잡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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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는 기차뿐 아니라 버스 환승센터도 있다. 역에 내린 사람들을 인천, 수원, 분당, 용인 등 수도권으로 싣고갈 광역버스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그 사이로 시내버스와 택시가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합실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로, 또 지하철에서 기차역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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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목적이 있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라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서울역이기 때문일까.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유독 더 바쁘고 정신도 없어 보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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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다 월요일 대체공휴일까지 연휴가 이어지면 서울역 일대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러다 보니 바쁜 일정에 길을 잃고 '멘붕'에 처한 사람들도 자주 본다. 짐보따리는 자꾸 끌리고 일행을 찾는 목소리는 한층 높아진다. 당황하니 당황해서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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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701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0/IE00365701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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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7464">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홍영미</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손주들과 외친 "대한독립만세", 그림책이 이어준 광복절]]></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46</link><pubDate>2026-08-16T14:19:36+09:00</pubDate><description><![CDATA[광복절을 앞둔 지난 13일, 딸아이가 손주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그림책 세 권을 빌려왔다. &lt;안녕 태극기&gt;, &lt;모두의 태극기&gt;, &lt;태극기 다는 날&gt;까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태극기 시리즈'였다. 전직 교사였던 나보다도 아이들 시기에 맞춰 책을 잘 골라오는 딸의 센스에 속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74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6/IE00365974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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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다녀오느라 열흘 만에 할머니를 만난 첫째 손주, 세 살 '둥둥이'는 부쩍 어리광을 부리며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다. 요즘 제법 글자에 호기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아직 긴 줄글은 어른의 목소리로 듣는 걸 좋아한다. 둥둥이가 원하면 언제든 준비된 할머니는 즉시 태극기 책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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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그림책 속 '파란 거인과 붉은 거인', 만세 삼창으로 이어진 삼대(三代)의 시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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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펼쳐 든 &lt;안녕 태극기&gt;는 태극기에 담긴 우주 창조의 원리를 '붉은 거인'과 '파란 거인'의 신화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었다. "으라차차!", "순풍!" 같은 의태어와 의성어가 나올 때마다 운율과 악센트를 살려 목소리를 변조해 읽어주니, 둥둥이도 깔깔거리며 신나게 따라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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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들고 온 &lt;모두의 태극기&gt;를 다 읽고 나서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3·1 운동부터 근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마다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태극기의 역사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책을 덮자마자 둥둥이, 그리고 한 살배기 둘째 손주 '에그'와 함께 두 손을 번쩍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손에 태극기가 들려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맨손으로 외치는 만세 삼창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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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다소 빽빽한 세 번째 책 &lt;태극기 다는 날&gt;은 그림 위주로 살피며 옛날 태극기의 다양한 모습과 국기 게양의 의미를 공부했다. 다 읽고 나니 곧 다가올 광복절에 우리 집에도 태극기를 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태극기가 없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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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어디서 구하지?" 고민하던 차에, 마침 오늘 첫째 둥둥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견학을 간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아하, 그래서 딸이 이 그림책들을 미리 준비해 빌려왔던 거구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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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내가 설명해 줄게!" 세 살 꼬마 도슨트의 당당한 안내</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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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두 손주를 데리고 곧장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향했다. 한 살이라 너무 어린 에그는 견학을 못 갔던 터라, 아침에 먼저 다녀온 둥둥이에게 "오늘 다녀왔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한테 안내해 줄래?" 하고 부탁했다. 그러자 세 살 둥둥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았어, 내가 설명해 줄게!" 하고 의기양양하게 앞장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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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5974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16/IE00365974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546">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