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강원제주</title><link>https://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26-10-17T11:43:08+09:00</lastBuildDate><item><author>박장식</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전국체전서 소방관 언급한 이 대통령 "제복 입은 시민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6006</link><pubDate>2026-10-17T11:38:1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549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7/IE00368549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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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제복 입은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이들이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헌신하는 것에 비한다면, 우리가 그 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 싶다"라고 연설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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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대통령은 매년 전국체육대회를 방문하고 있는 재외 동포 선수들을 향해서도 "고국을 찾을 때 큰 부담이 생기지 않도록 대한체육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약속하기도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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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 대통령 축사 전 "사경 속 소방관·부상 장병에 쾌차의 격려 보내달라"</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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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 대회에 이어 두 해 연속으로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읽기 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주 도민 여러분과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신 국민 여러분께 한 가지 교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문을 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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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곽성호</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잘 싸웠지만 패배... 강원, 험난해진 16강 여정]]></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75695</link><pubDate>2026-10-16T09:06:32+09:00</pubDate><description><![CDATA[로테이션을 가동한 강원이 홈에서 프놈펜에 충격적인 패배를 떠안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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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 감독이 이끄는 강원FC는 지난 15일 오후 7시 강릉하이원아레나에서 열린 '2026-2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2(ACL2)' H조 2차전서 프놈펜 크라운(캄보디아)에 1-2로 패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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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강원은 1무 1패 승점 1점, 프놈펜은 2승 승점 6점을 획득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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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리그 5위를 차지한 강원은 엘리트 무대 한 단계 아래 격 대회인 챔피언스리그2에 나설 자격을 얻었다. H조에 편성된 가운데 1차전에서는 홍콩 명문 키치SC 원정을 떠나 0-0 무승부를 거뒀다. 승리에는 실패했으나 대규모 로테이션 속 얻은 값진 승점 1점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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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으로 돌아와 마주한 상대는 지난 시즌 캄보디아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프놈펜.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으나 정경호 감독은 "절대 쉽게 볼 상대는 아니다"라며 방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 강원은 전반 44분 마즐란드의 깜짝 중거리 포에 당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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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7569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슬옹</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서예교실에서 시작해 45년을 함께 걸은 스승과 제자]]></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5598</link><pubDate>2026-10-16T09:50:1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4805"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5/IE003684805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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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2026년 한글날, 제주특별자치도문예회관에는 '한글문화큰잔치'가 차려졌다.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한글서예사랑모임(이사장 현병찬)이 여는 이 잔치가 올해로 스물다섯 번째다. 한글서예초대작가전(85인), 제25회 한글사랑서예대전(254점 출품, 184점 입상), 제25회 제주말씨학생서예대전, 한글날 기념 현장 휘호, 한글서예 체험교실이 10월 9일부터 15일까지 문예회관 제1·2·3전시실을 채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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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0월 10일 오후 '훈민정음 해례본과 월인천강지곡의 가치와 의미' 강연을 맡아 제주에 내려갔다. 강연에 앞서 둘러본 전시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경기·인천·강원·대구·경북·광주의 작가들에 미국 뉴욕 한글서예연구회와 일본 고려서예연구회 작품까지 한자리에 걸렸고, 한글으뜸상(대상)을 비롯한 여러 입상작이 &lt;월인천강지곡&gt;을 글감으로 삼은 것은 월인천강지곡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바라는 이에게 더없이 반가운 장면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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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동을 안고 같은 날 오전 11시 행사장에서 1995년 (사)한글서예사랑모임(전신: 한곬한글서회)를 창립하여, 이 잔치를 25년 동안 이끌어 온 한곬 현병찬 이사장(한글사랑서예대전 운영위원장)과, 1995년 창립 때부터 사무국장으로 살림을 도맡았던 결곶 김수애 부이사장(제주대학교 연구교수)을 함께 만났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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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ᄒᆞᆫ디 손심엉 한글문화올림픽"</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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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시의 주제를 묻자 현 이사장은 제주말로 답했다. "모든 행사를 다 합쳐서, 제주도 말로 'ᄒᆞᆫ디 손심엉 한글문화올림픽'입니다. 함께 손잡고 여는 한글문화 올림픽이지요." 도록 표지와 초대작가전 첫 장에도 이 말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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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라 특별히 마음을 쓴 대목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두 숫자를 꼽았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그리고 한글날 제정 100주년입니다. 주시경 선생님이 '한글'이라는 말을 써 주셔서 우리가 이 이름으로 잔치를 할 수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 이사장은 도록 인사말에서도 제주어가 지닌 향토색과 한글문화의 융성을 함께 보전하는 것이 이 잔치의 뜻이라고 적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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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480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5/IE00368480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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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스물다섯 해, 그 뒤에 있던 사람</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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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사장은 25회 모두를 직접 주관했다. 감회를 묻자 그는 자기 이야기 대신 옆자리의 제자를 가리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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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이 행사가 탄생하기 전 1995년 창립한 (사)한글서예사랑모임(전신은 한곬한글서회) 단체에 이 사람이 총무에서 사무국장으로 다 맡아서 키웠습니다. 그 사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가."</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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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애 부이사장이 받아 셈을 바로잡았다. "1983년부터 선생님께 배웠고, 1995년 '한곬한글서회'을 꾸리면서 총무를 맡았습니다. 2001년에 사단법인한글서예사랑모임을 만들고 2006년까지 사무국장을 했으니, 꼬박 열여덟 해를 그렇게 길들여진 셈이지요." 모임 이름은 본래 '한곬한글서회'였는데, 2001년 공모전을 만들면서 '사랑'과 '서예'의 자리를 바꿔 '한글사랑서예대전'이 되었다고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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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출신인 그는 본디 느긋한 성격이었단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뭐든 느렸어요. 그런데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회원 관리에 기자들 만나는 일까지, 밥도 꾹꾹 씹어 먹던 사람이 얼른 먹고 행사 치러야 하니 모든 행동이 빨라진 거예요." 현 이사장이 웃으며 거들었다. "일을 많이 시키고, 빨리 안 하면 호통을 쳤으니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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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밤 11시의 떡집, 눈물 섞인 컵라면</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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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이사장이 꺼낸 초창기 일화 하나가 이 모임의 25년을 압축했다. 세종한글큰뜻모임 행사와 규당미술관 개관식을 겸해 서울에서 200명 가까이 내려오는 큰 잔치를 앞둔 날이었다. 행사 개막식에 올릴 시루떡을 '큰 시루 네 개'로 맞추라는 말을 그는 '한 시루에 큰 초 네 개'로 알아들었다. 밤 10시가 넘어 보고를 드리는 자리에서 그 착오가 드러났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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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조연섭</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동해 연필뮤지엄서 57년 디자인 인생 조명]]></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5415</link><pubDate>2026-10-15T10:35:3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455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5/IE00368455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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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를 탄생시킨 김현 디자이너가 14일 오후 4시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연필뮤지엄에서 특별강연을 열고 57년에 걸친 디자인 인생과 창작 철학을 공유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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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뮤지엄 기획 전시 '우리가 사랑한 멋글씨' 와 연계해 마련된 이번 강연은 '정체성 있는 디자인의 원칙과 실천'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현 디자이너는 자신의 대표작과 작업 과정,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소개하며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 과정과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설명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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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은 대중에게 친숙한 '호돌이'의 창작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이자, 한 디자이너의 경험을 통해 한국 현대 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김 디자이너는 50여 년 동안 축적한 작업 자료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생각을 풀어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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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이날 강조한 창작 원칙은 생각과 계획, 현장 조사, 핵심 추출, 시각적 구현,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였다. 그는 디자인을 시작할 때 먼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현장을 직접 찾아 대상의 특성을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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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541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광식</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스물둘에 돌아온 고향에서 김유정은 무얼 느꼈을까]]></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4022</link><pubDate>2026-10-12T13:54:0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66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0/IE00368266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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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김유정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일부</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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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과 실레마을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단순히 고향, 태어난 곳을 넘어선다. 지금도 그렇다. 김유정이 실레마을이고 실레마을이 김유정이다. 2014년 유아기를 갓 벗어난 여섯 살에 떠났다가 1930년 스물둘에 돌아온 고향에서 김유정이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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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스물다섯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고향마을에 있던 기간은 불과 3년 여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간동안 작가는 고향 농촌이 처한 모순을 깊이 깨닫고 소설을 통해 농민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농촌현실을 마냥 어둡고 슬프게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해학과 풍자. 어찌보면 어수룩하기 그지 없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만든다. 그렇게 생애 첫 작품이 된 것이 친구 안회남의 주선으로 잡지 &lt;제일선&gt; 3월호에 발표한 '산골나그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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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lt;조선일보&gt; 신춘문예에 1등 당선한 '소낙비', &lt;조선중앙일보&gt;에 가작 입선한 '노다지'가 모두 농촌을 다뤘다. 이후 &lt;개벽&gt; 3월호에 단편 '금따는 콩밭'을 시작으로 &lt;조광&gt; 12월호에 '봄, 봄'을 발표하기까지 농촌과 고향을 소재로 한 소설과 수필을 연달아 써낸다. 이후 폐결핵으로 병이 깊어지면서도 김유정은 농촌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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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귀향해서 실레마을에 야학당(이는 이듬해 '금병의숙'이란 이름의 간이학교로 인가 받는다)을 열고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 등을 조직해 활동한 것 또한 농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하나였을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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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작가 김유정을 만나러 가는 길</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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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부터 이어진 연휴에 기차표는 일찍부터 매진. 10일 아침 경춘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상봉역을 떠난 열차는 1시간 이상을 부지런히 달려 김유정역에 닿는다. 역을 나서니 이른 가을냄새가 콧속으로 밀려왔다. 방치된 옛 철로 끝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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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66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0/IE00368266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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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역은 경춘선 개통 후 오래도록 신남역이었던 것이 2004년 김유정문학촌 개설과 더불어 김유정역으로 탈바꿈했다. 김유정역은 우리나라 역명으로 사람이름이 쓰인 최초의 역. 서울 춘천을 오가던 열차가 서던 김유정역은 폐역이 되어 현대식으로 지어진 현 역사 부근에 기념비처럼 남아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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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402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황의봉</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 신기한 꽃... "무릎 꿇게 돼"]]></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703</link><pubDate>2026-10-12T11:52:0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1948"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1948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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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늘거리는 억새의 은빛 물결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수 없다. 봄철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과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제주도는 야생화, 곧 들꽃의 천국이다. 1950m에 달하는 한라산이 섬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어 고도에 따라, 계절마다 다양한 들꽃들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360여 개의 오름도 들꽃들의 터전이다. 섬을 둘러싼 바닷가의 현무암 바위 위에서도 여러 종류의 들꽃이 피어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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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t;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gt;(비아아트)라는 책을 펴낸 고은희 작가는 제주 들꽃에 반해 평생을 들꽃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들꽃을 좋아하기보다는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들꽃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들꽃 인생' 고은희 작가가 책에서 '첫사랑'이라고 표현한 '한라돌쩌귀'와의 인연부터 들어보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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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194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194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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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제가 제주대학교 원예학과를 나왔어요. 재학시절 한라산 나무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한라산을 자주 찾았는데, 9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을꽃들은 한라산 높은 곳에서 먼저 피기 시작해 밑으로 내려오거든요. 그때만 해도 제가 들꽃 이름을 자세히 알지 못했을 때인데, 영실 올라가는 길에서 한라돌쩌귀의 보라색 빛깔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 뒤로도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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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한라돌쩌귀는 보통 들꽃들이 자그마한 데 비해 키가 커서 눈에 잘 띕니다. 큰 것은 허리춤까지 올라올 정도예요. 한라돌쩌귀처럼 꽃 이름 앞에 '한라'가 붙으면 모두 제주 토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지역에는 없습니다. 지금도 이맘때쯤이면 한라돌쩌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요즘 산이나 들에 나가면 한라돌쩌귀는 물론이고 진범이나 누린내풀 같은 예쁜 들꽃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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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194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194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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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작가의 본격적인 제주 들꽃 이야기는 '세복수초'로부터 시작한다. 제주도의 봄이 이 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별히 기다려지고, 꽃이 필 시기만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세복수초 이야기를 들어보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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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이면 영등할망이 몰고 오는 영등바람으로 꽃샘추위가 매서운데, 이때 영등할망이 온갖 곳에 봄꽃 씨를 뿌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등달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다 2월 보름에 영등할망을 실은 배가 떠나야 비로소 제주도에 봄이 온다는 겁니다. 이 무렵 숲속에서는 세복수초를 시작으로 변산바람꽃, 새끼노루귀 등 봄의 전령사들이 차가운 땅 위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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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2월 말이나 3월 초 눈이 내릴 때면 눈 속의 세복수초를 보고 싶어 무조건 현장으로 떠납니다. 절물휴양림 쪽에 있는 민오름이나 왕이메오름 굼부리에 가면 가장 일찍 세복수초를 만날 수 있어요. 일반 복수초와는 달리 꽃과 가느다란 잎이 동시에 나오는 세복수초는 해가 질 무렵이면 활짝 열었던 황금빛 문을 닫아버리는 영리한 사랑꾼입니다.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라 부르지만, 우리에게는 눈과 얼음을 녹이며 피어나는 가장 따뜻한 '눈색이꽃'이자 '얼음새꽃'이에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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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저는 매년 이 무렵이 되면 저도 모르게 설레게 돼 세복수초를 찾아가게 됩니다. 제가 어떤 분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병원에서 만난 중환자분이 눈 속을 뚫고 피어나는 세복수초 사진을 보고는 자기도 좀 더 살아야겠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된다고 하더라는 겁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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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들꽃 찾아다니며 느낀 잊을 수 없는 순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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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1943"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1943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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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작가가 펴낸 책의 부제목은 '제주 들꽃과의 눈 맞춤 설렘과 환희의 순간들'이다. 어떤 들꽃과 눈 맞춤을 하며 환희의 순간을 맛보았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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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손바닥난초를 촬영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라산 날씨가 변화무쌍하지 않습니까. 작년 7월이었어요. 산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불고 안개가 자욱해지는 겁니다. 겁도 나고 위험하기도 하고 해서 망설이다가 그대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못 찍으면 한 해가 또 허탕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올라가 마침내 제 눈과 마주친 것이지요. 그땐 제가 책에 표현한 대로 '알현'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람이 거세 옆의 풀들은 다 누웠고, 손바닥난초만 똑바로 선 모습을 찍을 수 있었어요. 이 손바닥난초는 다른 난초들에 비해 좀 단단합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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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진재중</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오늘만 같았으면"... '오징어 풍년'에 웃음꽃 핀 주문진 어시장]]></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4199</link><pubDate>2026-10-12T10:37:59+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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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연휴 둘째 날인 지난 10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 어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모처럼 오징어가 많이 잡혔다는 소식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시장 전체가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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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골목마다 싱싱한 오징어와 각종 해산물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오징어를 살펴보는 관광객, 해산물 가격을 묻는 손님, 손질한 횟감을 건네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상인들의 목소리에도 모처럼 힘이 실렸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와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면서 어시장은 오랜만에 활기찬 주말 풍경을 연출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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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64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0/IE00368264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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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추석 대목보다 손님이 많아요", 상인들의 즐거운 비명</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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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장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오징어였다. 최근 오징어가 많이 잡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싱싱한 오징어회를 맛보려는 관광객들이 주문진으로 몰려들었다. 오징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해산물을 파는 이춘옥 상인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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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추석 대목 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온 것 같아요. 손님들이 이렇게 많으니 장사하는 사람들 기분도 좋지요. 정말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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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의 말에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시장에 대한 반가움이 묻어났다. 평소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던 상인들에게 이날의 북적임은 단순히 장사가 잘 되는 하루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해산물이 팔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하루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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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64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10/IE00368264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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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오징어회 먹으러 왔어요", 관광객들도 만족</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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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4199">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진재중</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40년 만에 한 무대서 만난, '청년 유열'과 '돌아온 유열']]></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2881</link><pubDate>2026-10-10T18:49:1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43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5/IE00368043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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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들이마시는 일,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걷는 일, 노래 한 소절을 부르는 일. 우리는 그것을 살아 있는 동안 당연히 주어지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가수 유열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그 당연했던 '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숨 한 번 제대로 쉬는 것이 힘들어졌고, 말을 잇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평생 노래해온 가수에게 노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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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은 40㎏ 남짓까지 줄었다. 연명치료 이야기가 나올 만큼 죽음 가까이 갔다. 폐 이식은 두 차례나 무산됐다. 그 긴 터널 끝에서 유열은 기적처럼 새로운 폐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숨을 쉬었다.<br>
그에게 그 첫 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나눠준 덕분에 얻은 '두 번째 삶'의 시작이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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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가수 유열이 지나온 긴 어둠의 시간과 다시 찾아온 삶, 그리고 두 번째 인생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무엇일까. 다시 시작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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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 3학년이던 한 청년이 MBC 대학가요제 무대에 올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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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style="border-left:5px solid #CCCCCC; padding:7px">"사랑을 이야기할 땐 그대의 눈을 바라보면서<br>
마음을 전하려 할 땐 그대의 손을 꼭 쥐어요."</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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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 서정적인 선율을 타고 흐르는 노랫말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부른 노래는 &lt;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gt;. 마침내 대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 '유열'이라는 이름이 호명됐다. 무대에 올랐던 풋풋한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전국의 주목을 받는 가수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은 40년 음악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의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질문에 유열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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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풋풋했죠."</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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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꿈을 안고 무대에 섰던 스물다섯 살 청춘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학가요제 이후 그의 음악 인생은 빠르게 펼쳐졌다. 1집 &lt;이별이래&gt; &lt;가을비&gt;에 이어 2집 &lt;화려한 날은 가고&gt; &lt;하늘을 닮은 그대에게&gt;가 연이어 사랑받았다. 이후에도 &lt;에루화&gt; &lt;어느 날 문득&gt; &lt;사랑의 찬가&gt; 등을 발표하며 유열만의 서정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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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노래 제목처럼 유열의 '화려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 알지 못했다. 수십 년 뒤 자신이 노래했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제목처럼 삶의 가장 깊은 어둠을 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어둠 끝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날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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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43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5/IE00368043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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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라디오는 청취자와의 데이트였습니다"</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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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목소리가 머문 곳은 무대만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라디오 DJ로 청취자들의 아침을 열었다. 특히 &lt;유열의 음악앨범&gt;을 13년 동안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듣고 음악을 통해 위로를 건넸다. 그에게 무대와 라디오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그는 그 시간을 '데이트'라고 표현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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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라디오는 데이트 같았어요. 13년 동안 아침마다 청취자들과 데이트를 한 거죠."</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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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288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곽성호</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707일 만의 복귀, 황문기가 증명한 '국가대표 풀백'의 클래스]]></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74025</link><pubDate>2026-10-09T19:46:32+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44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9/IE00368244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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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07일 만에 K리그 무대로 돌아온 국가대표 풀백 황문기. 그의 기량은 여전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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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 감독이 이끄는 강원FC는 9일 오후 4시 30분 강릉하이원아레나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6' 31라운드 부천FC에 2-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강원은 11승 13무 7패 승점 46점 3위에, 부천은 7승 11무 13패 승점 32점 11위를 유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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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A매치 휴식기를 앞두고 강원은 다소 아쉬운 흐름이 이어졌다. 28라운드 전북전 1-1 무승부 이후 김천(무)·제주(패)·인천(무)에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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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경기는 달랐다. 전반은 다소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으나 후반 23분 모재현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키커로 나선 김대원이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선제 일격을 가했다. 기세를 이어 후반 34분 김건희가 쐐기 골을 터뜨리며 활짝 웃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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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7402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진재중</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부산 바다 '부캉이'에 환호할 때, 강릉 남대천 '잉어'는 신음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775</link><pubDate>2026-10-12T09:35:5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34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9/IE00368234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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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바다가 뜻밖에 찾아온 낯선 손님으로 뜨겁다.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대형 물고기 한 마리가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이 낯선 방문객에게 '부캉이'라는 친근한 이름까지 붙여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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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산과학원의 분석 결과, 몸길이 약 3m에 달하는 암컷 흑상어로 최종 확인되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좀처럼 보기 힘든 대형 상어의 출현에 시민들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고, 바닷속을 유영하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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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강릉 남대천에서도 눈길을 끄는 물고기들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강릉 잠수교 아래 얕은 물 속에 여러 마리의 커다란 잉어가 모여 있었다. 햇빛을 받은 물결 사이로 검은 몸체가 드러났고, 물고기들은 무리를 지어 천천히 움직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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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176"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2176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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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흑상어처럼 특별한 이름도, 사람들의 환호도 없었다. 그저 우리 주변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잉어였다. 하지만 이 평범한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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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한 물고기의 출현에는 열광하면서 정작 우리 곁의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하천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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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강릉 남대천, 물고기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하천 바닥</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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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17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217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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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남대천에서 촬영된 사진 한 장. 회색빛을 띤 하천 바닥에는 퇴적물로 보이는 물질이 쌓여 있고 곳곳에 작은 이물질들이 흩어져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하천의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다소 씁쓸하게 느낄 만한 풍경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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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77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이유찬</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춘천 토박이도 몰랐던 이 축제, 왜 4만 명이 몰렸을까?]]></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830</link><pubDate>2026-10-09T13:41:32+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218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8/IE00368218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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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는 지난 3일부터5일 까지 사흘간 애니메이션박물관 일대에서 열린 '2026 춘천애니토이페스티벌'에 시민과 관광객 4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행사보다 약 1만 2000명 늘어난 규모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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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가 주최하고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축제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어린이와 온 가족이 애니메이션과 토이 콘텐츠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 문화행사로 진행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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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 축제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아트토이, 피규어, 굿즈, 크리에이터 콘텐츠 등 다양한 서브컬처와 문화 상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창작 아티스트와 팬, 컬렉터들이 만나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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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인 3일에는 오후 2시 개막식과 최현우의 스페셜 매직쇼를 시작으로 메인무대 공연이 이어졌다. 4일에는 베베핀 해피콘서트, 5일에는 고고다이노 싱어롱쇼 등 인기 캐릭터 공연이 열렸다. 이 밖에도 빵신TV 게임쇼, 인싸가족 버라이어티쇼, 키즈 EDM 댄스 파티, 에브리바디 원투 스위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야외 씨네파크에서는 '극장판 헬로카봇' 상영회와 가위바위보 게임 등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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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830">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정주</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구럼비·수라갯벌 위에 세워질 '시멘트 무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475</link><pubDate>2026-10-08T10:18:10+09:00</pubDate><description><![CDATA[제주해군기지 정문에 서서 강정 앞바다를 바라본다. 10년 넘게 매일같이. 제주해군기지는 구럼비라는 거대한 너럭바위와 그곳에 기대어 살아갔던 생명체들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해군기지를 통과하여 불어오는 바닷바람에서 죽음의 전운을 느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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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서 미군의 폭격에 죽어가던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에서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감옥에 수감 되어 반인권적인 처우를 당하며 생존하는 것이 곧 저항인 팔레스타인들의 피눈물 냄새가 난다. 그 바람에서 오키나와의 끝 미야코지 섬에서 전쟁 유사시 상황을 대비해 강제이주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절규가 느껴진다.<br>
<br>
늦은 오후 정박해 있던 군함이 거대한 뱃고동 소리를 내며 기지를 떠난다. 전쟁터로 떠나며 전쟁을 준비하라고 알리는 소리같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 당장 밖으로 달려나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전쟁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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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지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온 몸을 던져 막고자 했던 투신에도 군대가 강정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느새 구럼비 바위 라는 신성한 자연이 인간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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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161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7/IE00368161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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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47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신경준</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수조 속 상어는 물고기 안 잡아 먹나요?" 아쿠아리스트의 답]]></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102</link><pubDate>2026-10-06T18:12:05+09:00</pubDate><description><![CDATA[나는 이날까지 살면서 한 번도 아쿠아리움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쿠아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채정희씨와 인터뷰를 하러 간다니, 동물원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사육사부터 만나는 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쿠아리움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에 있는 동물들을 보려는 것이 나의 소비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서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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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8월 28일 채정희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달라진다. 채씨가 아쿠아리스트로서 상어를 돌보는 경험, 그리고 그가 일하는 아쿠아리움인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상어를 보호하는 방식을 듣고 기록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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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79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6/IE00368079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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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상어를 돌보는 생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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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 자기소개와 아쿠아리스트라는 직업 소개해 주세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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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어류 파트장을 맡고 있는 채정희입니다. 저희 파트에서는 상어나 가오리 같은 어류는 물론이고 산호, 해파리, 갑각류, 양서류와 파충류까지 다양한 생물들을 함께 돌보고 있습니다. 동물원에 사육사가 있듯이 아쿠아리움에서 수중 생물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통틀어 아쿠아리스트라고 부릅니다.<br>
<br>
수조 하나하나는 작은 바다이자 독립된 생태계입니다. 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저희의 일인데요. 밥을 챙겨주는 건 기본이고 수조 청소와 다이빙, 수질 체크, 건강 관리부터 새로운 생물 수급, 전시 기획이나 시설 유지보수까지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고 있습니다.<br>
<br>
특히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국내 아쿠아리움 중 최초로 메디컬센터가 세워진 곳이라 저희 아쿠아리스트들이 현장에서 수의사,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들과 손발을 맞춰 생물들의 건강을 지켜내고 있습니다."<br>
<br>
<font color='#333399'>- 상어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와 실제 상어의 모습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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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상어를 떠올릴 때 가지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에는 정말 큰 차이가 있어요. 아이들은 만화에 나오는 골치 아픈 상어를 생각하고 어른들은 영화 &lt;죠스&gt;처럼 무섭고 난폭한 포식자만 떠올리시거든요.<br>
<br>
그런데 실제로 아쿠아리움에서 상어를 보면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똑똑한 '반전 매력'을 가진 동물입니다. 몸에 있는 '로렌치니 기관' 덕분에 모래 속에 숨은 작은 생물의 미세한 전기 신호까지 알아채고, 물속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죠.<br>
<br>
게다가 머리도 정말 좋습니다. 너스상어나 제브라상어 같은 친구들은 사람을 알아보고 메디컬 트레이닝까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해요. 흉상어류는 밥 주는 시간이나 장소는 물론이고 밥 준비할 때 나는 소리까지 기억하거든요.<br>
<br>
사료를 들고 수조에 가보면 이미 상어들이 먼저 와서 똘똘하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알고 보면 무섭기보다는 참 신비롭고 교감하기 좋은 친구들이에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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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333399'>- 상어는 최상위 포식자인데, 한정된 수조 안에서 다른 어류들과 어떻게 공존하나요?</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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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에 오시면 관람객분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시는 게 '상어가 다른 물고기 다 잡아먹지 않아요?'거든요. 물론 수조 안도 작은 바다이자 생태계라서 먹이사슬이 아예 없진 않지만, 서로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게 아쿠아리스트들의 몫입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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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102">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남권</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권성동 의원직 상실' 강릉 보궐선거, 후보군 우루루]]></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121</link><pubDate>2026-10-06T17:15:19+09:00</pubDate><description><![CDATA[국민의힘 권성동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내년 4월 7일 치러지는 강릉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점차 잇따르며 물밑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내리 5선, 16년간 '철옹성'으로 불리던 권 전 의원의 퇴장으로 당선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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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권성동 전 의원은 지난 7월 통일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이번 보궐선거 당선인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2028년 5월 말까지다.<br>
<br>
지역 내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당 모두 후보군 숫자가 늘어나는 모양새지만, 특히 국민의힘의 경쟁이 심화되는 추세다. 그동안 권 전 의원의 위세에 눌려 출마를 망설이던 인물들이 앞다퉈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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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6일 기준) 강릉 지역 내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모두 12명이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최욱철 현 강릉시지역위원장 직무대행, 김한근 전 강릉시장,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강릉시지역위원장, 정의경 현 국토부 2차관, 김효정 현 국토부 도로국장 등 5명이 거론되고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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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권혁열 전 강원도의회 의장, 김광래 전 강원도경제부지사, 김용래 전 강원도의원, 오세인 변호사, 이호영 전 여의도연구원 고문, 최돈익 전 경기안양만안 당협위원장, 고광록 변호사 등 7명이 직간접 출마의사를 밝힌 상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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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121">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연순</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다가갈수록 비현실적, 시칠리아 '신전의 계곡']]></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2840</link><pubDate>2026-10-06T11:49:3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369"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5/IE003680369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시칠리아 북쪽 팔레르모에서 5박을 하고 시칠리아 동쪽에 있는 카타니아로 간다. 중간에 남쪽의 아그리젠토에 들렀다가 갈 예정인데, 지도를 보니 거의 'ㄴ(니은)'자로 간다. 아침 7시 40분 기차를 타야 해서 서둘러 정리하고 체크아웃했다. 중앙역까지 도보로 4분, 배낭여행자들에겐 교통 편한 곳이 최고다. 중앙역에 도착해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서 기차에 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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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 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아그리젠토 역에 내렸다. 대합실로 나가려는데 엘리베이터는커녕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그저 깔끔하고 반질반질한 계단만 있을 뿐...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욕이 절로 나온다. 유아차와 휠체어, 노인 등 보행 약자는 다니지 말라는 건가. 여행 가방을 끌 때와 들 때의 차이는 상당하다.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기운이 다 빠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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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드니 드디어 대합실이 보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사진 한 장 찍으려고 역 이름이 있는 간판 앞에 섰는데, 남편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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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으악, 여기가 아니야!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데!"</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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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아그리젠토 이름의 역은 하나 더 있었던 거다. '아그리젠토 중앙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역사 안내판의 아그리젠토만 얼핏 보고 '아그리젠토 바사' 역에서 내린 거다. 남편은 기차표를 예매하며 그걸 알고 한 정거장 더 가는 연장 티켓을 구매했는데, 내릴 무렵 핸드폰을 보다 깜빡했단다. 나는 자다가 남편이 깨워서 일어나 허둥지둥 부지불식간에 내렸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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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고마운 기억과 함께 도착한 아그리젠토 중앙역</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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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차를 검색하니 두 시간 후에 온다기에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시골의 작은 역이라 그런지 역무원도 보이지 않는다. 공사장 작업복을 입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보여 그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고 택시 부르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자기들은 영어를 못한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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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떼로 모여 우리를 보며 어떻게든 도우려고 한다. 그리고는 택시와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그리 연결해 통화를 해 주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십분 정도 후에 택시가 왔고 가볍게 아그리젠토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그리젠토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시 카타니아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는데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참 다행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기차역을 잘못 내렸다고 말했더니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단다. 우리만 그러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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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근처에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가 있다.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카페인데 일단 그리로 가서 짐을 맡겼다. 세 시간에 8유로다. 짐을 맡기고 손이 자유로우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중앙역 바로 앞에는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드디어 고대 그리스 유적지 '신전의 계곡'으로 갔다. 고대 신전이 있는 아그리젠토라니, 그 이름만 읊조려도 설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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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37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5/IE00368037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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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계곡'은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5세기 후반 경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 대규모의 고고학 공원인데 언덕의 능선을 따라 신전들이 열을 지어 서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입구는 두 곳이라는데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보다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높은 곳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에서 내러 몇 걸음 걸으니 저 멀리서 신전이 보인다. 신전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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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만난 신전은 '헤라 신전'이다.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 이 신전은 기원전 450년 경의 신전으로 고대 결혼식이 거행되던 제례 공간이었다고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을 보고 있자니 그 오랜 시간 제례와 축제, 전쟁 같은 참상을 모두 견디어 낸 신전의 시간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먹먹해진다. 2000년도 더 오랜 시간을 지나 오늘 이곳에 그대로 존재하며 지중해와 계곡을 발아래 두고 우뚝 서 있는 헤라 신전을 보며 말 못 할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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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80371"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1005/IE003680371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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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둘러보다 '콩코르디아 신전'으로 향했다. 기둥만 남아 있는 헤라 신전과는 달리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외형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인데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모습이 흡사하다. 콩코르디아 신전이 훼손되지 않고 이렇게 건재한 이유는 6세기경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면서 벽체와 구조가 보강되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 그리스 도리아식 신전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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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르디아(Concordia)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화합과 조화의 여신인데, 16세기 인문학자 피에트로 보니뇨가 인근에서 발견된 라틴어의 문구를 이 신전과 연결 지으며 붙은 명칭이다. 실제 고대 그리스 시절 어떤 신에게 바쳐진 신전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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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이유찬</author><category>스타</category><title><![CDATA[야구는 1000만, 농구는 100만... 간극이 좁아질까?]]></title><link>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72440</link><pubDate>2026-10-05T11:15:02+09:00</pubDate><description><![CDATA[프로야구(KBO)가 올 시즌 역대 최소 경기인 565경기 만에 1000만 관중을 넘겼다. 지난해보다 22경기 빠르다. 3년 연속 1000만 관중이자, 역대 가장 빠른 도달 속도다. 반면 프로농구(KBL)는 9년째 100만 관중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의 두 프로스포츠가 이렇게 다른 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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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야구와 농구, 다른 두 '프로리그'의 길</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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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는 1982년 6개 구단으로 출범, 첫 시즌 240경기에서 143만8768명을 모았다. 이후 1983년 200만, 1990년 300만, 1993년 400만, 1995년 500만 관중을 차례로 넘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263만 명까지 급감하는 굴곡도 있었지만, 이후 꾸준히 회복해 2011년 600만, 2017년 840만688명(당시 역대 최다)을 기록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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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4년, 출범 42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 1000만 관중(671경기 만에 달성)을 넘겼다. 2025년엔 1231만2519명으로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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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도 비슷한 흐름이다. K리그1은 2025년, 승강제 도입(2013년) 이후 최소 경기(96경기)로 100만 관중을 넘겼다. K리그1·2 합산 200만 관중 도달 경기 수도 2023년 324경기, 2024년 282경기, 2025년 278경기로 2년 연속 최소 경기 기록을 새로 썼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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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7년 8개 구단으로 출범해 이듬해 10개 구단 체제를 갖췄던 KBL은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야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2013-14시즌 129만5125명으로 역대 최다를 찍었는데, 같은 시즌 KBO 총관중은 644만1945명이었다. KBL이 역대 가장 많은 관중을 모았던 그 시즌조차, 야구와의 무려 5배의 차이를 보였다. 이후 KBL은 2015-16시즌을 마지막으로 100만 관중을 넘지 못했고, 2022-23시즌엔 68만7303명까지 떨어졌다. 2025-26시즌 81만1185명으로 전년 대비 6.46%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100만 명에는 못 미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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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농구는 왜 못 따라갔나</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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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침체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2015-16시즌엔 전·현직 감독과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에 연루된 사건이 터지면서, 그 시즌 평균 관중이 3천471명으로 전 시즌의 3천865명보다 10% 감소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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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운영의 불안정성도 문제였다. 2022-23시즌을 앞두고 고양 오리온을 인수한 데이원스포츠가 선수단 임금을 체불하는 등 부실 운영으로 KBL에서 제명됐고, 리그는 한동안 9개 구단으로 파행 운영될 위기에 놓였다. 이후 소노 그룹이 인수해 10구단 체제를 겨우 유지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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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 의존을 둘러싼 논란도 꾸준히 제기됐다. KBL은 리그 흥행을 위해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등 여러 차례 규정을 바꿔왔는데, 이 과정에서 "리그의 주연이 국내 선수에서 외국인 선수로 옮겨간다"는 우려가 팬들 사이에서 계속 나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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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진재중</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매일 빈 종이 앞에 앉는 남자가 얼굴로 그린 '자서전']]></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6717</link><pubDate>2026-10-04T19:14:16+09:00</pubDate><description><![CDATA[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처음 통화하는 사이인데도 어색함이 없었다. 편안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목소리에서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느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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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아, 나는 너무 작은 사람입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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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는 말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정겨움 속에 세상을 오래 바라본 사람만의 여유와 재치도 묻어났다.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 그는 강원일보와 스포츠조선에서 오랫동안 펜을 잡으며 시대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시사만화에 담아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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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건네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상의 모순을 짚어냈고, 날카로운 풍자 속에서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는 '작은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를 관통해온 시사만화가의 삶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바라본 세상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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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5004"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1/IE003675004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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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빈 종이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인생</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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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빈 종이 한 장이 책상에서 그를 기다린다. 신문사에 있을 때도 그랬고, 퇴직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웃음과 분노, 욕망과 슬픔을 한 컷에 담아왔지만, 매일 마주하는 종이는 언제나 처음처럼 하얗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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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빈 종이는 늘 부담스럽죠. 그런데 또 그 빈 종이를 보면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그릴까 생각하게 됩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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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석 화백에게 만화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었다. 시대를 바라보는 창이었고,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었으며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가 그려온 수많은 얼굴에는 한국 사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정치인의 얼굴부터 이름 없는 시민의 표정까지, 한 컷의 그림 속에는 당대의 사회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때로는 웃음을 주었고, 때로는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날카롭게 되돌아보게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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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시사만화는 결국 사람을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나 사건을 소재로 삼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고 했습니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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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컷을 그리기 위해 늘 세상을 살폈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듣고, 사람들의 표정과 사회의 변화를 눈여겨봤다. 사건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시대가 있고 사람이 있다. 수많은 그림을 그려온 지금도 빈 종이는 여전히 시작이다. 그는 다시 종이 앞에 앉아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의 표정과 세상의 풍경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한 컷의 만화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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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언젠가는 만화도 예술이 될 거야"</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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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499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1/IE00367499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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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미술시간이면 공책 한쪽에 몰래 만화를 그리곤 했다. 그러다 교사에게 들켰다. 당시만 해도 만화는 예술이라기보다 아이들이나 보는 그림으로 여겨졌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언젠가는 만화도 예술로 인정받을 거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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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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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6717">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의사 32명뿐인 평창군, 90세 할머니가 삶을 지켜온 방법]]></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0835</link><pubDate>2026-10-02T19:46:0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726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8/IE00367726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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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 서울 은평구에서 방문 진료 얘기로 편지를 보내드렸는데(관련기사 : <a target="_blank" href="https://omn.kr/235gh">누구에게나 필요한 돌봄... 돌봄노동의 가치를 되짚다</a> https://omn.kr/235gh), 지금은 강원도 평창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을 개최했고, 스키장들, 목장들 그리고 소설 &lt;메밀꽃 필 무렵&gt;에 나오는 봉평장, 대화장이 있는 그 평창군 맞습니다. 평창군은 아주 넓어서,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중 네 번째로 크고요, 서울과 비교하면 서울의 2.4배 면적을 가지고 있어요. 평창군의 남부에는 평창읍, 미탄면, 방림면, 대화면이 있고, 북부에는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대관령면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여기도 햇살이 엄청 뜨겁고 상당히 더웠지만, 해발고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서 이제 저녁에는 선선해졌어요. 4월까지도 손이 시려서 아침에 출근할 때 장갑을 끼고 운전했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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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평창군 전체에 의사 32명, 그래도 주민들이 일궈온 '삶의 건강함'</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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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주로 북부 4개 면에서 보건지소를 기반으로 일차 의료 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평창군의 인구는 3만 9800명 수준이에요.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서울 은평구의 인구가 45만 명이었으니, 인구가 많지 않죠. 거기에 면적이 넓으니, 평창군의 인구밀도는 서울의 1/560 정도 되어요. 560분의 1. 그래서 병의원이 많지 않아요. 병원은 한 곳도 없고, 주로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선생님들이 개원하신 의원들과 평창군 보건의료원-보건지소-보건진료소로 이어지는 공공의료 체계가 평창군의 의료를 지키고 있어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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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평창군 전체에 (치과, 한의과 선생님들 빼고, 보건의료원과 공중보건의사 포함해서) 의사가 32명이었네요. 군 전체에 32명. 지금 소아청소년과, 정신과 선생님은 평창군 보건의료원에만 한 분씩 계시고, 안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의 전문 과목은 평창군 내에 한 분도 안 계셔요. 서울에서는 큰 사거리에 서서 둘러보면 병의원이 20~30개는 보이고, 그러면 그 사거리에만 50~60명의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뜻인데, 이렇게 비교하면 뭔가 씁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네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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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0835">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박도</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혼자 부산행 열차 타던 아이가 본 세상... 80세 되어 정리합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1083</link><pubDate>2026-09-29T10:12:13+09:00</pubDate><description><![CDATA[사주팔자에 역마살을 타고 난 탓인지 어려서부터 여행을 참 많이 했다. 어린 시절 첫돌이 지날 때부터 부모님이 신접살림으로 조부모님 품에서 자랐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향인 경북 구미역에서 여름, 겨울 방학 때면 으레 부모님이 사시는 부산에 혼자 열차를 타고 가서 지내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에 돌아왔고, 주말에도 이따금 부산을 오르내렸다. 그럴 때 객차 내 손님들은 자그마한 어린이가 혼자 먼 열차 여행을 한다고 놀라곤 하셨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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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7670"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9/IE003677670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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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및 대학 시절은 아버지가 당시 지공업(紙工業)을 했기에 화물 꼬리표를 만드셔서 전국 역에 딸린 대한통운에 납품했다. 그 시절은 오늘날과 같은 온라인 계좌 이체가 없었던 터라 우편으로 대금 정산했다. 그런데 수금이 잘되지 않자 내가 주말이나 방학 때면 수금을 다녔기에 전국의 웬만한 역은 거의 다 다녀보았다. 오래전에 사라진 수인선(수원-인청 간 협궤선 열차), 수여선(수원 –여주 간 협궤선 열차)의 그 작은 역에도 수금을 다닌 바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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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는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lt;오마이뉴스&gt; 시민 기자가 되고는 수시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취재 노트 한 권을 가방에 담아 국내외 여러 곳을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쏘다녔다. 역사 현장 답사는 물론 유명 관광지에도 발자취를 남기며, 그 현장에서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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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7672"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9/IE003677672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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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1083">전체 내용보기</a>
]]></description></item><item><author>김태리</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수강생으로 만났는데... 1년 뒤 나란히 강단에 섰습니다]]></title><link>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1050</link><pubDate>2026-09-29T09:54:3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img align="center" id="IIE003677617" src="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28/IE003677617_STD.jpg" style="max-width:60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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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맘때, 나는 제주도민대학의 '나도 제주도민대학 강사'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처음 기획한 수업의 주제는 'AI로 뚝딱! 인스타그램 브랜딩에서 릴스까지'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익힌 온라인 마케팅 경험과 AI, SNS 활용법을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묶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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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6회차로 진행됐고, 11명의 수강생 중 9명이 개근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재수강과 심화 수업에 대한 요청도 이어졌다. 그때의 경험과 감동은 &lt;오마이뉴스&gt; 기사로도 남겼다(관련 기사: <a target="_blank" href="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68851">새내기 강사가 짠 AI 수업, 내 인생을 녹여냈습니다</a> <a target="_blank" href="https://omn.kr/2fgmm">https://omn.kr/2fgmm</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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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기사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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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6633'>"나는 이제 이 무대에서, 강사와 수강생의 삶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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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여전히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감사하게도 하나의 강의는 또 다른 강의로 이어졌다. 평생학습관과 지역 교육기관에서 SNS, 콘텐츠 제작, AI 활용법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고, SNS를 통해 강의 제안을 받거나 지인의 소개로 장애인복지관과 아동복지관 등에서도 강의를 하게 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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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과 8월에 수업을 들었던 한 수강생은 과정이 끝난 뒤 다른 강의에도 찾아왔다. 그는 "강의를 듣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른 강의가 있으면 또 듣고 싶다"고 했다. 처음 만난 수강생이 다른 강의의 재수강생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새내기 강사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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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1년 전 수강생이 동료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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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변화도 있었다. 2025년 9월, 첫 강의를 시작할 당시 수강생으로 만났던 한 수강생이 이제는 복지관 강의에서 나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내가 주강사를 맡고 그분이 보조강사로 참여하며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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