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주요기사</title><link>http://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12-05-16T21:56:02+09:00</lastBuildDate><item><author>홍현진</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KBS는 "MBC와 공산당 믿지 말라" 했지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73</link><pubDate>2012-05-16T20:58:0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0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01_STD.jpg?87" align=center></DIV>
<P></P>
<P align=justify>KBS에 MBC는 "적군의 방송"이었다. 김현석 KBS 새노조위원장(46)은 "MBC와 공산당은 믿지 말라"던 선배들의 말을 전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44)은 "맞아. 노조끼리도 그랬다. 'KBS 쟤네 파업 안 해, 못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랜 시간 "적군"이었던 두 공영방송의 노조위원장은 요즘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정 위원장은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보니까 집사람보다 더 자주 본다"고 했다. &lt;오마이뉴스&gt; 인터뷰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향해 지나가던 조합원들은 "둘이 왜 이렇게 맨날 붙어 다녀. '낙차'가 너무 크잖아"라고 놀렸다. 두 사람의 키 차이를 두고 한 말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MBC 노조)는 지난 1월 30일, KBS 본부(KBS 새노조)는 3월 6일 '공정언론 사수'를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14일은 MBC 파업 106일, KBS 파업 70일째를 맞은 날이기도 했다. 현재 각 언론사의 최장 파업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두 노조는 지난 5월 7일부터 여의도 공원에 텐트 80동을 설치하고 '희망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14일에는 2주간 전면 파업에 돌입한 YTN 노조가 '입촌'했다. 두 위원장은 이날 입촌식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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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두 위원장은 '낙하산 사장'과 인연이 깊다. 2008년 이병순 사장 반대 투쟁에 앞장선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대변인이었던 김현석 위원장은 2009년 1월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는다(이후 징계 수위는 '정직 4개월'로 낮춰진다). 탐사보도팀에 복귀한 김 위원장은 김인규 사장 취임 2개월 만인 2010년 1월, 갑작스럽게 춘천으로 전보발령을 받아 '보복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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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정 위원장은 지난 4월 '해직언론인'이 되었다.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2년간, MBC 해직자는 모두 5명이었다. 정 위원장은 "2년 전 김재철 사장 입성할 때 이근행 위원장과 정대균 진주 MBC 노조위원장이 '낙하산 사장' 반대하다가 해고됐고, 이번에 저와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이 '낙하산 사장 나가라'고 하다가 잘렸다"고 말했다. KBS에서는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최경영 기자가 파업 이후 해임 처분을 받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파업 장기화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붕괴' 상태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두 위원장은 에너지가 넘쳤다. 김현석 위원장은 "특보사장 체제하에서 제대로 된 방송을 못 해왔다는 분노가 워낙 컸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70일을 이끌어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정영하 위원장은&nbsp;"100일은 지도부의 영도력으로 올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분노로 온 것"이라며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nbsp;김재철 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인터뷰는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다음은 두 사람과 나눈 일문일답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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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1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13_STD.jpg?85" align=center></DIV></DIV>
<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제대로 숟가락 놓는구나' 하던 시민들, 총선 이후 오해 불식"&nbsp; </STRONG></P>
<P align=justify><STRONG></STRONG>&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MBC 파업 106일, KBS 파업 70일. 어떻게 평가하나.</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하 정) :</FONT></STRONG> "잘 싸웠다. 똑같이 다시 파업해도 더 이상 잘 싸울 수 없을 것 같다. 100일은 지도부의 영도력으로 올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분노로 온 거다. 고마워한다면 김재철 사장한테(웃음). 저쪽에서&nbsp;이렇게 안 만들어줬으면 안 됐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현석 KBS 노조위원장(이하 김) : "</FONT></STRONG>특보사장 체제하에서 제대로 된 방송을 못 해왔다는 분노가 워낙 컸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70일을 이끌어온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MBC도 버텼는데, 뭐' 이러면서 쫓아갔다. 마라톤도 제일 앞에 가는 사람이 힘들지 않나. 저희는 앞에 가는 사람 보면서 따라가면 되니까."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KBS와 MBC가 서로 기대면서 왔다. KBS는 MBC를 보고, MBC는 KBS를 보고. 어느 언론사나 문제의식은 똑같다. '보도가 망가졌다', '시사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못했다'. 굳이 누가 이야기 안 했는데도 자연스럽게 연대가 됐다. 본질적인 연대다. 연합뉴스가 파업하는 것 보고 깜짝 놀랐다. 똑같구나, 상황이. 참 악랄하게 지독하게 (언론을) 장악했구나."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파업 시작할 때만 해도 시민들 반응이 냉담했다. 지금은 어떤가.</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100일, 70일 넘으니까 진정성 이해해주는 것 같다. 국민들 시선도 좋아졌다."&nbsp;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총선 이후 오해가 확실히 불식된 것 같다. 총선 전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다. '총선 결과 힘입으려고 저러는구나', '제대로 숟가락 놓는구나'. 그런데 저희들 싸우는 모습 보면서 많이 바뀐 것 같다. '저렇게 싸우는데, 지지해줘야지'."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파업 이탈자들도 나오고 있는데.</FONT>&nbsp;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까 피로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총선 전에는 (김재철 사장) 법인카드 문제도 있었고(기자주 :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지난 2년간 업무 외 용도로 법인카드 7억 원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국면 국면이 다이내믹했다. 뭔가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구성원들은 총선이라는 지형에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게 있었고. 그래서 그(총선) 이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느라 좀 애를 먹었다. 한 3주는 걸린 것 같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총선 끝났을 때가 MBC 파업 두 달 넘은 시점이라 육체적으로 피곤했는데 한 방이 더 온 거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반전됐다. '공정 방송을 떠나서 김재철 사장은 무자격 사장이다. 자질·함량 미달이다. 사장이 바뀌지 않고 어떻게 비리 보도를 하겠나. 다른 공기관들의 비리문제, 배임문제 어떻게 방송할 건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기자주 :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무용가 J씨에게 7년에 걸쳐 20억 원 넘게 특혜 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최근 아나운서 조합원 이탈이 화제가 되긴 했는데, 이번 파업은 한두 명이 이끌어가는 싸움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서 만든 싸움이다. 떨어져 나간 사람은 조합원 개인이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총선 이후에 불리한 지형이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 있었는데 최경영 기자 해임 이후 팀장 22명이 보직사퇴하고 내려오고(파업 합류), 지역팀장 6명이 내려오고, 오늘은 또 김철민 앵커 내려오고. 힘들 때마다 파업 동참하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분위기 좋다." </P>
<P align=justify>&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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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9481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130/IE001394811_STD.jpg?38" align=center></DIV>
<P></P><IMG id=IIE00141012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306/IE001410127_STD.jpg?33" align=center></DIV>
<P></P></DIV>
<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김재철 사장의 비정상적인 예능감" - "독특한 거 인정! 너무 세"&nbsp; </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KBS 내부에서 최경영 기자 해고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파업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기자주 : 최경영 KBS 기자는 집회 현장과 문자 메시지를 통해 김인규 사장에게 욕설했다는 이유로 '성실·품위 유지' 규정 위반으로 해임됐다).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방송사라는 게 얼굴 보면서 사는 집단이니까 그런 게 강하다. 특히 KBS는 지금까지 해직자가 없었다. 제가 파면당했다가 정직당했고. 게다가 해직사유가 워낙 어이가 없으니까. 사측이 최경영 기자 해임하고 원래 11명을 징계 회부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 기자 해임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쉽지 않겠구나' 판단한 것 같다. 모든 징계가 스톱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MBC에서는 대규모 징계가 강행됐는데.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이번 파업 이후 27명 정직에 저를 포함해 3명이 해고됐다. 지난 2년간 징계자가 100명이 넘는다. 파업 중에 누가 이렇게 과감하게, 마치 인질을 포획하고 있다가 처단하듯이 매주 징계를 때리나. 상상초월이다. (김재철 사장은) 아주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독특한 사장이다."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독특한 거 인정! &lt;나꼼수&gt;에서 KBS, MBC 어디 사장이 더 나쁘냐, (대결을 해서) 우리가 우승하기는 했는데 당할 수가 없다. 우리 싸움이 제일 힘든 게 김재철 때문에 제일 힘들다(웃음). 김재철 사장만 없었으면 김인규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nbsp;사장이고, 그동안 보도 막은 것들 근거로 충분히 '김인규 나가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김재철 사장이 너무 세다."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이 양반이 비정상적인 예능감을 갖고 있다. 어디 나가서 공개적으로 발언을 하면 항상 화제가 된다. 정상범주를 벗어난다. 노사협의회 할 때 노조가 그런 이야기 했다. '즉흥성 너무 센 거 아니냐'. 그러니까 김재철 사장이 그러더라. '사장의 감성경영을 그렇게 평가하지 마라'(웃음)."</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하하하. 감성경영(웃음). 김재철 사장 너무 세."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494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04/IE001434942_STD.jpg" align=center></DIV>
<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의 무용가 J씨 특혜 지원 의혹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J씨 건으로 파업 국면이 전환될 것이라고 보나.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이게 처음에는 법인카드 건이 터졌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nbsp;무용가 J씨가 나왔고, 무용가 접근하다 보니 뮤지컬 &lt;이육사&gt;가 나왔고, 이후 여러 가지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지금 다른 취재가 또 돌아가고 있다. 어디까지 나올지 저도 궁금하다."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lt;리셋 KBS 뉴스9&gt;는 내부는 (취재) 안 한다. '이달의 기자상' 받는 외부 취재만&nbsp;한다(웃음)."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저희도 원래 외부 취재해야 하는데 이런 잡범을... 기자들이 소 잡는 칼로 당근 썰고 있다(웃음)."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KBS 노조는 민주당 '도청의혹'을 받고 있는 장아무개 기자의 '심경고백'을 특보에 실었다. 총선 전에 입을 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야 공개한 이유가 있나(기자주 : 장 기자는 노조와 만나 "나는 도청도, 건네주지도 않았는데 다 내가 한 것처럼 알려져 억울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nbsp;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장 기자는 자기가 전달을 안 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취재 끝에 (한선교 의원 측에 녹취록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두 명으로 좁혀졌는데 그 이상 입을 안 연다. 사실 총선 전에는 야당이 이기면 쉽게 입을 열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청문회 하거나 진상조사를 하면 어차피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자백할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총선 결과가 나오니까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 그래서 화두를 던지는 차원에서 이번에 (심경 고백을) 깐 거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저는 작년에&nbsp;도청 건이 터졌을 때&nbsp;김인규 사장이 끝날 줄 알았다.&nbsp;뭔가 (증거가) 안 나와도 상식적으로 질 수밖에 없는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넘어가더라."</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FONT></STRONG>&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도청에) 관여된 사람이 있다면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기본 입장이다. KBS와 후배기자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모르겠다. 무슨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배들이 침묵하는 건지... 누군가 나서서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입사 4년 차, 완전 막내다. 그런데 선배들은 입 닫고, 후배 혼자 독박을 쓰게 만들었다. 이건 비겁한 행위다. 어쨌든 해결해야 한다. 도청문제는..."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KBS 기존노조도 파업에 들어갔다. 공조 없나.</FONT>&nbsp; </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희랑은 생각이 다르다(기자주 : KBS 기존노조는 '사장 퇴진'이 아닌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며 지난 4일 파업에 돌입했다). 그쪽에서는 파업도 제대로 안 하고 있고."</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1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12_STD.jpg?81" align=center></DIV>
<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이번 파업은 생존 위한 투쟁... 뉴스·프로그램 바꿔 인정받을 것" </STRONG></P>
<P align=justify><STRONG></STRONG>&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파업 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제1당인 새누리당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nbsp;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MBC나 KBS는 공적 기관이다. 영국에서는 공영방송인 BBC에서 위기나 문제가 생기면 영국 의회가 위원회를 만든다. 그리고 보고서 낸다. 대표적인 게 '다채널 시대에 공영방송 어떻게 되어야 하나'라는 보고서인데 지금까지도 언론학에서 교과서처럼 되어 있다. 이처럼 의회가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제 역할을 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새누리당에게 요구하는 건 그거다. 지난 4년간 새누리당이 해놓은 것을 보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 없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하는 곳, 프랑스하고 우리밖에 없다. 프랑스도 포기했다. 사르코지가 잘못했다고 하고 법개정 다 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공영방송은 중국 CCTV 수준이었다. 지금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있다. 또다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하는 정당이라면 '낙하산 사장'에 대한 입장, 밝혀야 한다. '너희들 언론 정책이 뭐냐. 이명박 대통령이 해 놓은 게 맞다는 거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이건 당당한 요구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언론사 파업을 "불법·정치파업"으로 규정했는데.&nbsp; </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제가&nbsp;춘천으로 쫓겨날 때 &lt;쌈&gt;에서 '해직자' 프로그램 만들다 쫓겨났다. 이명박 정권에서 해직시켰던 문화계, 언론계 인사. 정부가 단 한 건도 부당해고 소송에서 이긴 게 없다. 정연주 사장도 그렇고. 이건 국가기구의 폭력이다. 불법이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불법 주장하는데 자신들이 한 불법은 왜 이야기 안 하나."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새누리당은 그렇게 이야기할 거다. '내가 했냐. MB가 한 거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도 총선 전에 클리어하게 이야기했어야 한다. 저희가 주장한 것이 총선·대선, 이런 불공정 환경에서 방송 못 한다. 우리 맞아 죽는다. 어떻게 보면 이게 생존 투쟁이다. 우리가 파업을 안 했다면 아마 지금 국민의 원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거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그 임계점이 작년 12월 한미 FTA 보도 때 터진 거다. 나가라고. 이제 MBC 필요 없다고. 이건 우리가 살기 위해서 나선 길이다. 우리가 제자리를 안 찾으면 정권에 의해 장악된 건 둘째 치고 대한민국 땅에서 언론으로 발붙일 데가 없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번에 이한구 원내대표가 양쪽에 숟가락 하나씩 줬다. 사측에는 "불법·정치파업" 한 번, 노조에는 "공정방송 위한 환경 필요하다" 한 번. 아주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줄타기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당대표 뽑히면 (언론 정책)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더구나 박근혜 위원장은 대선주자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5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57_STD.jpg" align=center></DIV>
<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 김인규·김재철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곧바로 방송의 공정성이 담보되는 건 아니다. '공정언론 사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FONT></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사장을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제도로는 잘 뽑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평범한 시기에 법 개정하면 모르겠는데, 100일 넘게 파업한 사업장이 있고 이 정권의 지독한 언론장악을 국민들이 봤기 때문에 그렇게 일방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 모양새는 갖출 거다. 이런 환경은 다시 안 올 거다. 최악의 상황이다."</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김 :</FONT></STRONG> "뉴스와 프로그램 바꿔내는 것으로부터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김인규가 있건, 나가건. 김인규보다 더 나쁜 사장이 오더라도 뉴스와 프로그램이 달라져야 한다. 그걸 통해 국민들이 KBS를 인정해줄 거다. 뉴스와 프로그램들을 바꿔내는 게 최종 목표다. 그것을 위해서 김인규 퇴진을 주장하는 거고.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게 진정한 인정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FONT color=#996633>정 :</FONT></STRONG>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 말처럼 프로그램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 딱 이 정권 시작하기 전 상태로 방송할 수 있으면, 그런 정도 제작자유, 그런 정도 보도가 보장되면 좋겠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가람</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집 나간 엄마, 어떻게 20년을 참았을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244</link><pubDate>2012-05-16T17:24:50+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5월 15일, 엄마가 집을 비운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어리둥절 남겨진 아빠와 언니, 나.&nbsp;우리 세 사람은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정신이 없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아침마다 청소하고, 눈 깜짝할 사이 불어난 빨래를 하고, 빨래가 마르면 곱게 접어 옷장에 집어넣어야 한다. 집에선 더 이상 밥 냄새가 나지 않고, 가스레인지도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서인지&nbsp;어떨 때는 한 번에 가스 불이 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누렇게 뜬 변기를 닦고,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자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강아지들의 배변을 치워야 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배변 패드도 갈아야 한다. 신발장엔 왜 갑자기 신발들이 쌓여가고, 집에선 왜 퀴퀴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 걸까.</P>
<P align=justify><BR>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nbsp;하루만 청소를 안 해도 집안에&nbsp;이렇게 개털이 쌓이는 것을, 빨래는 세탁기만 돌리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요리는 마술처럼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변기 색깔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쓰레기는 아저씨들이 집 앞까지 와서 가져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아지들이 똥오줌을 하루에 한 번만 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집에는 매일매일 일거리가 쌓인다. 그동안 이 모든 걸 엄마는 혼자 해왔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렇다고 해서 남겨진 세 사람이 모두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집안일의 대부분은 내게 전가돼 있다. 직업군인 생활을 하다가 전역 후 회사 생활을 했던 아빠는 퇴직 이후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지만, 우리네 아버지들이 그렇듯 가사노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nbsp;프리랜서로 일하는 언니는 최근 바쁘긴 하지만, 쉬는 날조차 피곤하다는 이유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nbsp;때문에&nbsp;마침 일을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는, 반 백수인 내가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는 게 아빠와 언니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굳이 말은 안 하지만 말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여태까지 엄마가 혼자 다 했다고 생각해 봐"</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5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58_STD.jpg"></DIV>
<P></P>
<P align=justify>화가 났다. 모두 늘 바쁜 것은 아니니, 적당히 역할을 나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나만의 상상이었다.&nbsp;모두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고 나마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스스로의 생각은 더욱 날 화나게 했다. 앞으로 엄마 없이 지낼 날들이 아득하기만 했다.&nbsp;그때 내가 도움을 청한 건 내 친구였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기혼인 내 친구는 홀로&nbsp;가사노동을 모두 맡고 있다. 그 친구가 남성, 게다가 직업도 있다. 이런 조건들을 조합해 볼 때&nbsp;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찾을 수 없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물론 부인도 직업이 있다).&nbs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사회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친구이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 영향인지 그 친구는 한국 사회의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nbsp;특히 그는 여성의 일방적인 가사노동에 대해 반대한다.&nbsp;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나름대로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5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요리를 제외한 모든 집안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위로를 받으려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nbsp;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그냥 네가 다 해, 스트레스받지 말고"란다.&nbsp;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보고 자랐으니 바뀌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언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nbsp;그리고 몇 마디 더 보탰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996633>"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면 너라도 앞으로 가사노동을 도와. 엄마가 여태까지 그걸 혼자 다 해 왔다고 생각해 봐. 나중에 네가 다시 일을 시작해서 가사노동을 할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면,&nbsp;그 모든 걸 책임졌던 어머니께&nbsp;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해." </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친구의 단호한 말에 멈칫하다가 나중엔 심술이 났다.&nbsp;결론이 '너 혼자서 다 해'라니.</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늘도 역시 나는 혼자 집안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쌓인 설거지를 하고, 가만히 있어도 냄새가 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씻겼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강아지들을 씻기느라 더러워진 화장실을 청소했다. 복층으로 된 집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오전이 훌쩍&nbsp;지나갔다.&nbsp;어느새 몸에서는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P>
<P align=justify><BR>저녁이 되니&nbsp;집을 나갔던 언니와 아빠가 돌아왔다.&nbsp;밖에서 사온 먹거리들로 저녁을 해결하니, 또 설거지거리가 쌓였다.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언니는 저녁을 먹은 뒤&nbsp;방으로 휙 하고 올라가 버리고,&nbsp;아빠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덩그러니 식탁에 남은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 혼자 집안일을 한다는 '억울함'에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청소하고 치워놓은 것들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것, 최소한의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것이 더 서러웠다.&nbsp;그렇게 서러워하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nbsp;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이게 친구가 말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nbsp;그제야 마음이 동했다.</P>
<P align=justify><BR>내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게 언제였을까. "용돈은 아빠가 주니까 엄마는 안 줘"라던 엄마가&nbsp;가끔 언니 몰래 용돈을 줬을 때, 신발이나 옷을 사줬을 때, 그리고 의무적으로 쓰는 어버이날 편지를 쓸 때.&nbsp;내가 엄마에게 고맙다고 했던 건 그럴 때뿐이었던 듯하다.&nbsp;매일 엎드려 걸레질하느라 망가진 엄마의 무릎에, "답답하다"며 고무장갑도 없이 설거지하고 걸레를 빠는 주름진 엄마의 손에 고마웠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어떻게 엄마는 20여 년을 참았을까</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5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59_STD.jpg"></DIV>
<P></P>
<P align=justify>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중에&nbsp;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하곤 했다.&nbsp;어릴 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 '평생 엄마, 아빠랑 살 거야'라는 어린아이의 거짓말이 아니었을까.&nbsp;하지만 내 생각은 스물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이젠 나름의 이유가 생겼다. 요즘 흔히 말하는 청년의 고충, '삼포 시대' '육포 시대' 같은 것은 아니다.&nbsp;내가 하는 일, 앞으로 내가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을 일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P>
<P align=justify><BR>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전히 여성 사회활동을 제약한다.&nbsp;어느 정도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많이 바뀐 것은 없다. 아마 가까이서 엄마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아서,&nbsp;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이만큼 자라오면서 나는 깨닫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늘어나는 만큼, 가정에서 엄마라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그 자신을 위해 포기할 것이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을.</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결혼 전 직장에 다니던 엄마는, 결혼 후 군인인 아빠와 이곳저곳 떠돌게 됐다. 그 뒤로 엄마는 늘 집에만 있었다.&nbsp;워낙 활동적이고 진취적인지라 끊임없이 취미를 갖고 공부를 했지만, 일을 할 순 없었다. 그런 생활이 10년, 20년 굳어져 오다 보니 엄마는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됐다.&nbsp;마치 당연한 것처럼…. 물론 언니와 내가 커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긴 했다. 엄마는 더 활동적인 취미를 가질 수 있었고, 서울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후에는 전통공예작가라는 직업도 생겼다.</P>
<P align=justify><BR>하지만 엄마의 생활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모든 집안일을 혼자 맡아서 했고, 공예작가로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가사노동을 하며 틈틈이 생기는 시간에 한정돼 있었다.&nbsp;너무 오랫동안, 너무 당연하게 엄마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편과 두 딸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쯤은 엄마니까 당연한 것이라고….&nbsp;가족들은 물론 엄마 자신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 세월 속에서, 엄마가 얼마나 서러웠을까'라는 생각을 이제야 비로소 하게 됐다.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참아 왔을까.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엄마가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43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30_STD.jpg?45"></DIV>
<P></P>
<P align=justify>지난 4월 15일 밤. 엄마는 집을 나갔다.&nbsp;등에 큰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엄마는 들떠 있었다. 여전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당신이 떠날 그곳, 스페인에 가 있는 듯했다.&nbsp;엄마는 1년 전부터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걷기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새로 생긴 엄마의 꿈이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아빠는 처음에 "당신이 없으면 집은 어떻게 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퇴직 이후 아빠의 오랜 관념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집 청소를 맡아서 하고 있을 때,&nbsp;밖에서 들어올 땐 잊지 않고 장을 봐오는 것이나, 손수 식사를 챙겨 드시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앞서 나름대로 불평불만을 늘어놨지만,&nbsp;아빠도, 언니도, 나도 엄마가 없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예전엔 스스로 하지 않았던 뭔가를 하나둘씩 해야 했다.&nbsp;그러면서 각자가 느끼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 삶을 돌이켜보며 눈물지었던 것처럼.</P>
<P align=justify><BR>이제 5월 말이면 엄마가 돌아온다. 처음엔 언제 오나 싶었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가족들로선 반가운 마음이지만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P>
<P align=justify><BR>엄마가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랜 세월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엄마의 모든 것에 고맙다는 말, 그리고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 나는&nbsp;앞으로 지속적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해야겠다고 생각했다.&nbsp;엄마의 작품 활동과 취미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훗날 나이가 더 들어서 다시 엄마에 대한 글을 쓸 때, 그 글이 지금처럼&nbsp;참회의 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nbs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엄마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물론 한참 달콤한 여행을&nbsp;즐기고 있을&nbsp;엄마는 원치 않겠지만 말이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구영식</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진보당에 '노동' 사라지고 '정파'만 남아"]]></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78</link><pubDate>2012-05-16T15:35:4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2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27_STD.jpg"></DIV>
<P align=justify>15일 오후 2시 인터뷰를 위해 민주노총 위원장실에 들어서자, 김영훈 위원장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담배 네 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중앙위 폭력사태로 이어진 '통합진보당 사태'가 김 위원장에게 남긴 고민의 흔적이었다. </P>
<P>&nbsp;</P>
<P>김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아주 힘들어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지난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 폭력사태를 겪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계 대표(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진보정당 당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트라우마(trauma)가 충분히 치유되기 전에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긴 형국이다.&nbsp;&nbsp;&nbsp; </P>
<P></P>
<P>&nbsp;</P>
<P><STRONG>"진보정치 망가지는 장면 찍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STRONG> </P>
<P>&nbsp;</P>
<P></P>
<P>김 위원장은 이날 &lt;오마이뉴스&gt;와 한 인터뷰에서 "세계 진보정당 역사상 노동단체와 정당의 관계가 이렇게 된 적은 없었다"며 "공당의 대표가 폭행당한 것도 처음일 것이고, 노동 출신의 대표가 진보정당에서 저렇게 폭행을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P>
<P>&nbsp;</P>
<P>김 위원장은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당권파 쪽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부실-부정투표가 조중동을 위시한 극우언론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이라며&nbsp;"그런데 그렇게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 되지 말자고 했던 사람들이 그럴 수 있나?"라고 당권파 주도의&nbsp;폭력사태를 비판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4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48_STD.jpg"></DIV>
<P></P>
<P>"보수언론은 그 폭력이 난무하고 진보정치가 망가지는 그 장면 하나를 찍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어떻게 폭력사태를 일으킬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nbsp; </P>
<P>&nbsp;</P>
<P>이어 김 위원장은 중앙위 폭력사태의 발단인 진상조사위 조사결과와 관련해서는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부정과 부실이 있었지만 그 행위 주체는 나와 있지 않다"며 "당권파나 '경기동부연합' 같은 표현을 쓰며 자신들의 세력을 지목하니까 억울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상조사 어디에도 누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P>
<P>&nbsp;</P>
<P>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총체적인 부실선거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며 "부실이 어디서 어디까지냐, 얼마만큼 부정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진상조사보고서는 그것(총체적인 부실선거라고 지적한 것)으로 역할을 다 한 것이고 후속조치는 합당한 논의를 통해 하면 될 문제"라고 말했다.</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629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29_STD.jpg?31"></DIV>
<P></P>
<P>김 위원장의 지적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는 이정희 전 대표의 시각에도 향해 있었다. 당 운영과 관련해 일어난 '정치적 문제'를 엄격한 사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P>
<P>&nbsp;</P>
<P>김 위원장은 "(대중정치인은) 자기가 커왔던 토대에서 커야 하는데 왜 이정희 대표가 일관되게 당권파를 옹호해왔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 대표는 진보정치에서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정파를 떠나서 그런 정치인을 키워내야 할 책무가 당에 있다"고 강조했다.</P>
<P>&nbsp;</P>
<P>김 위원장은 "진보정치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함께했던 공당의 대표(이정희 대표)를 향한 무차별적인 매도나 비난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냉철한 이성으로 평가해야 하고 우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P>
<P>&nbsp;</P>
<P>특히 김 위원장은 '당원 총투표로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를 정하자'는 이석기 당선자의 주장에는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200만 표나 되는 국민들에 의해서다"라며 "그가 있는 자리가 당직이라면 모르겠지만 (총투표로 정하자는 주장은) 당직자와 공직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P>
<P>&nbsp;</P>
<P>'비례대표 후보 총사퇴'의 표적이 된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경우 이미 국회의원으로 등록한 상태라 이들을 사퇴시키기는 어렵게 됐다. 일각에서 '출당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있긴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것은 당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P>
<P>&nbsp;</P>
<P>다만 김 위원장은 두 당선자의 자진 사퇴를 완곡하게 요구했다. 그는 "국회의원 1-2석이 그렇게 중요한가, 국회의원이 누굴 위한 자리인가?"라고 물은 뒤 "충분히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고 신원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깊이 고려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P>
<P>&nbsp;</P>
<P><STRONG>"집단탈당-분당? 불타는 절을 바라보는 중의 심정도 있다"</STRONG>&nbsp;&nbsp; </P>
<P>&nbsp;</P>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2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28_STD.jpg?33"></DIV>
<P></P>
<P>그런 가운데 관심은 오는 17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 쏠리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와 집단 탈당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기 때문이다.&nbsp;&nbsp;</P>
<P>&nbsp;</P>
<P>김 위원장은 "현재의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현시점까지 당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폭력사태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였기 때문에 당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P>
<P>&nbsp;</P>
<P>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공동대표단에서 결정한 혁신비대위 출범과 사무총장 해임,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권고 등은) 최소한의 조치이고, 이 정도도 못한다면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며 "계속 지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 뒤의 과정을 지켜보며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P>
<P>&nbsp;</P>
<P>다만 김 위원장은 집단 탈당과 분당 가능성 등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지만 불타는 절을 바라보는 중의 심정도 있는 것"이라며 "분당도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은 먼저 나가면 지는 거라는 분위기 아닌가?"고도 했다. </P>
<P>&nbsp;</P>
<P>이어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다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할 시점은 아니고, 혁신비대위도 인정하지 않는 당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며 "강기갑 위원장이 (민주노총에) 비대위 참여를 요청해왔고, 그것까지 포함해 중앙집행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P>
<P>&nbsp;</P>
<P>강 위원장도 15일 &lt;한겨레&gt;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당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통합진보당에 대거 들어와 당의 주체로서 혁신하고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P>
<P>&nbsp;</P>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6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67_STD.jpg"></DIV>
<P></P>
<P>강기갑 위원장은 중앙위가 열리기 전날인 16일 오전 민주노총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 혁신비대위 참여를 공식 제안했다.&nbsp;&nbsp;&nbsp; </P>
<P>&nbsp;</P>
<P>김 위원장은 &lt;오마이뉴스&gt;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의 개입력은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며 민주노총의 영향력 약화를 인정했다.&nbsp;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은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이 사라지고 '정파중심성'만 남았다"고 진단함으로써 혁신비대위 참여 등 '개입전략'을&nbsp;통해 '노동중심성 강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종철</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출구 안 보인다"...금융시장 개미들 '패닉'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38</link><pubDate>2012-05-16T17:29:45+09:00</pubDate><description><![CDATA[<P>또다시 찾아왔다. 유럽발 경제위기 공포감이다. 이젠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길만했지만, 역시나였다. 게다가 최근 미국 대형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JP Morgan)의 대형 금융사고까지 겹쳤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P>
<P>&nbsp;</P>
<P>16일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1840선까지 밀려났다. '심리적 저지선'이던 1850선마저 무너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고개를 숙였다. 바닥을 점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1700선까지 내려갈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nbsp;올 들어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였던 외국인들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P>
<P>&nbsp;</P>
<P><STRONG>또다시 찾아온 금융시장 패닉...&nbsp;"출구가 안 보인다... 바닥이 어디야?"</STRONG></P>
<P>&nbsp;</P>
<P>16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4.43포인트(3.08%) 폭락했다. 최종 마감은 1840.53이었다. 1850선이 무너진 것은 올 1월 16일 이후, 꼭 넉 달만이다. 이날 하루 동안 기업들의 시가총액 23조 원이 사라졌다. 또 이번 달 들어 코스피지수만 160포인트 이상 폭락했다.</P>
<P>&nbsp;</P>
<P>코스피지수는 장이 열리자마자 거의 모든 종목이 파란불(하락을 의미)을 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세는 더 커져갔다. 온라인의 주식 커뮤니티에선 이곳저곳서 한숨섞인 글들이 올라왔다. </P>
<P>&nbsp;</P>
<P>아이디 freedom은 "출구가 안 보인다. 오늘 다 던진다"고 썼다. 이 글 덧글에는 "갖고 있는 ** 종목이 떨어져서 물타기(자신이 갖고있는 회사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 평균 보유가격을 낮추는 주식투자의 한 방법)에 들어갔는데, 헉~ 더 떨어지네여.&nbsp;바닥이 어딜까&nbsp;ㅜㅜ"라는 글이 따라붙었다.</P>
<P>&nbsp;</P>
<P>일부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위기가 기회"(아이디 동녘)라는 시각도 있었다. "우량주을 싼값에 사들일 수 있는 때"라는 글이었지만, 시장의 공포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P>
<P>&nbsp;</P>
<P>특히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가 계속됐다. 16일 하루에만 5004억 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았다. 최근 10일 넘도록 수조 원에 달하는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올 들어 '바이 코리아'로 주식을 끌어올렸던 외국인들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nbs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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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그리스 부도와 미국 JP모건 금융사고 등&nbsp;영향 </STRONG></P>
<P>&nbsp;</P>
<P>최근 금융시장의 불안 이유는 역시 그리스 쪽이다. 이번 달 총선을 실시한 그리스는 각 계파 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이어 다음 달 2차 총선이 불가피하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쳤다. </P>
<P>&nbsp;</P>
<P>그리스는 이미 유럽연합 쪽에 다음달 말까지 긴축이행 법안 통과를 약속했었다. 2차 총선이 진행될 경우, 해당 법안 통과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 등은 그리스 의회가 긴축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구제금융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결국 그리스 부도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P>
<P>&nbsp;</P>
<P>게다가 최근 터진 미국 대형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JP Morgan) 사태 역시 만만치 않다. JP모건이 올해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2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특히 이번 사태가 미국 대선과 맞물리면서, 미 정치권에서 금융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P>
<P>&nbsp;</P>
<P>국내 한 증권사 투자분석팀장은 "미국 JP모건 사태로 금융규제 강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면서 "국제 금융자본 입장에선 결코 반갑지 않은 구도인데다, 유럽 쪽 정치상황까지 안개국면이다 보니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주영</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순대야 밥 줘"... 순대씨 노점 음식점 성공할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79</link><pubDate>2012-05-16T21:02:05+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4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43_STD.jpg?37" align=center></DIV>
<P></P></FONT>
<P><FONT color=#996633>"순대야 밥 줘~"</FONT></P>
<P>&nbsp;</P>
<P>머리를 질끈 묶은 여학생이 '요리실험실'이란 노점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주인인 순대씨(닉네임)는 단호박과 연근, 햄을 튀겨 미소장국과 함께 내놨다. 학생은 말없이 허겁지겁 요리를 먹었다. 그는 순대씨의 학부 친구이자 노점의 단골이다. 날마다 바뀌는 맛난 요리를 3000원대에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자주 온다고 했다. </P>
<P>&nbsp;</P>
<P>그 친구만이 아니었다. 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정문 앞. 가로 15cm, 높이 20cm 규모의 노점으로 학생 대여섯 명이 수시로 찾아와 "밥 달라"고 졸라댔다.&nbsp;그들은 자주 여기서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서리나현(사회과학, 09학번)씨는 "학생식당과 비슷한 가격인데 여기가 훨씬 맛있다"며 노점을 찾는 이유를 말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4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44_STD.JPG" align=center></DIV>
<P></P>
<P>&nbsp;</P>
<P><STRONG>3000-4000원 받고 일본·이탈리아 음식 등 내놓아</STRONG></P>
<P>&nbsp;</P>
<P>이상은(27). 노점 '요리실험실' 주인인 순대씨의 본명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05학번으로 2011년 2월에 졸업했다. 친구들은 학교를 떠난 뒤 취업 준비를 했다. 평소 요리하는 걸 즐기던 순대씨는 학교 안 느티나무 아래 자리를 깔았다. 1500원짜리 주먹밥을 팔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40~50개를 만들어 가면 학생들이 전부 사갔다. 1년 동안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비를 썼고, 학교 친구들과 잔치를 여는 데 비용을 보탰다. </P>
<P>&nbsp;</P>
<P>2009년에도 순대씨는 비슷한 일을 했다. 끼니 챙겨먹는 일조차 바쁜 친구들을 불러 매주 한 번 카레를 끓여줬다. 친구들이 주는 돈과 식자재로 1년 동안 함께 음식을 나눴다. 순대씨는 "맛있다고 감탄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며&nbsp;그 순간을 회상했다. </P>
<P>&nbsp;</P>
<P>두 번의 경험 덕분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그에게 생겼다. 올해 4월 순대씨가 학교 앞에서 본격적으로 노점을 시작한 이유다. </P>
<P>&nbsp;</P>
<P>노점의 단골은 주로 밥 해먹을 시간과 비싼 밥 사먹을 돈이 없는 자취생들이다.&nbsp;싼 가격으로 정성이 담긴 음식을 제공하는 게 이 가게의 목표다. 그래서 순대씨의 노점은 3000~4000원을 받고 일식, 이탈리아 요리 등 날마다 색다른 음식을 그날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손님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순대씨 페이스북에 매일 원산지와 원가를 공개한다. </P>
<P>&nbsp;</P>
<P>노점에는 '자립'이라는 순대씨의 철학이 스며 있다. 각자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 생활을 꾸려가는 것. 이것이 순대씨가 원하는 자립의 삶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영자-노동자 틀이 아닌,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고 그 속에서 노동의 대가를 얻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자립이야말로 출퇴근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과도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순대씨는 말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4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47_STD.jpg?62" align=center></DIV>
<P></P>
<P></P>
<P>&nbsp;</P>
<P><STRONG>"음식점에서 기약 없이 설거지만 하긴 싫다"</STRONG></P>
<P>&nbsp;</P>
<P>하지만 혼자 장사해서 먹고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을 터. 순대씨는 "해보니 진짜 힘들다"고 고백했다. 특히 손이 많이 드는 게 가장 힘들다. 아침마다 '오늘은 뭘 만들까'라고 고민하며 장보는 일, 노점을 설치하는 작업 등 홀로 기획부터 노동까지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했다.</P>
<P>&nbsp;</P>
<P>아직 충분하지 않은 수입도 순대씨를 괴롭힌다. 매일 5만 원의 이익을 내는 게 순대씨의 목표다. 1그릇 당 1000원의 이득이 남긴다고 치면 하루 50그릇을 팔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는 매일 평균 20그릇 정도밖에 팔지 못한다. </P>
<P>&nbsp;</P>
<P>음식점에 취업할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언젠가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기약 없이 설거지만 하는 이 업계의 현실이다. 당장 요리하며 돈 벌고 싶은 순대씨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P>
<P>&nbsp;</P>
<P>"그래도 노점에서 사람들과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다보면 머릿속에서 '힘들다'는 생각이 달아난다"고 순대씨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응원도 순대씨에게 힘이 된다. 한때 식당 운영을 하던 순대씨의 어머니는 그의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선배이자 노점 운영금을 지원해주는 지원군이다. </P>
<P>&nbsp;</P>
<P>순대씨는 한 학기 동안 노점 운영을 지속해볼 작정이다. 두 번의 성공사례도 있기 때문에 노점도&nbsp;끝까지 밀고 나가면 잘 될 거라 그는 믿는다. </P>
<P>&nbsp;</P>
<P>노점을 중심으로 한 조합을 만들어 가게 운영에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nbsp;계획도 세우는 중이다. 이미 열댓 명의 친구들을 모았다.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며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고, 개인이 자립할 수 있는 요리기술을 퍼트리고자 한다.&nbsp;&nbsp; </P>
<P>&nbsp;</P>
<P>노점 '요리실험실'은 성공회대 정문 앞에서 매주 수요일~금요일 영업한다. 영업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선대식</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해고되면, 온 가족이 죽음의 구렁텅이로..."]]></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74</link><pubDate>2012-05-16T21:14:38+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8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89_STD.jpg" align=center></DIV>
<P></P></DIV>
<P></P>
<P align=justify>"보편적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으면 산업정책을 혁신시키기 위한&nbsp;구조조정을 하기가 어렵다.&nbsp;쌍용차처럼 무식하게 작업장에서 퇴출되면 모든 가족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이런 구조에선 불가능하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됐을 때 기본적 삶을 지켜줄&nbsp;제도가 없으면,&nbsp;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의 말이다. 그는 "개방경제는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복지안전망이 필수"라며 "이미 경제개방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보편주의적 사회안전망'을 갖춰, 세계경제 변동에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한국노동연구원 출신인 은수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성장을 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사실이지만, 모두 허드레 일자리"라며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 판갈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 심포지엄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승자독식형 경제질서를 극복해 '99%를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한국 복지국가 초입... 대선 승리로 진정한 복지국가&nbsp;발판 만들어야"</STRONG>&nbs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김연명 원장은 "현재 한국은 복지국가 초입에 들어섰다"면서 "하지만 '줄푸세'를 공약으로 내건 이들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을 잡으면 복지국가에서 탈락할 것이다, 진보진영은 진정한 복지국가로 갈 확실한 발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합친 국민부담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사회복지가 국가성장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김연명 원장은 또한 공공부문의 복지와 공적 사회보험을 강조했다. 그는 "어린이집 파업처럼 민간 복지공급자가 과도한 이윤추구 행위를 막아야 한다"며 "또한 국민들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사회보험보다 민간 생명보험에 더 많은 돈을 내고 있는 상황은 복지국가 건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2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27_STD.jpg" align=center></DIV>
<P></P>
<P align=justify>은수미 당선자는 한국의 소득격차, 근로시간, 저임금비중, 임시직비중, 1년 미만 단기근속 비중 등 노동자에게 나쁜 통계 대부분은 경제혁렵개발기구 1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일자리를 많이 창출한 게 아니라 노동판갈이를 통해 일자리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는 허드레 일자리가 아닌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여성에게 더 좋은 일자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정규직을 없애고, 연봉 5000만 원이 '신의 직장'이 아닌 평균 임금이 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노동3권 보장을 통해 노조 가입률과 노사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P>
<P align=justify>&nbsp;</P>
<P></P>
<P align=justify>홍종학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승자독식형 경제를 뛰어넘자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자살률이 늘어났다"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부자감세·작은 정부·규제 완화·친기업·반노조와 같은 보수주의 정책과 함께 토건주의·관치가 이뤄져, 그 폐해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는 "보편적 복지, 노동시장 개혁,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중심의 새로운 경제체제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날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대-중소기업간·지역간·계층간 양극화 해소, 일자리 문제 해결, 새로운 성장전략 모색, 사회안전망과 같은 복지정책 확충 등을 통해&nbsp;'99%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조정훈</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장자연 사건 관련 <조선>의 연이은 패소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80</link><pubDate>2012-05-16T20:09:34+09:00</pubDate><description><![CDATA[<P>고 장자연씨의 성상납 의혹 사건과 관련, 방상훈 &lt;조선일보&gt; 사장이 연관됐다며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던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던 &lt;조선일보&gt;가 또다시 패소했다.</P>
<P>&nbsp;</P>
<P>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노만경)는 16일 &lt;조선일보&gt;와 방 사장이 박석운 민주언론운동연합(민언련) 대표와 박상주 &lt;미디어오늘&gt;&nbsp;논설위원, 신상철 인터넷언론 &lt;서프라이즈&gt; 대표, 김성균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대표 등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P>
<P>&nbsp;</P>
<P>재판부는 "원고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될 수 있어 명예가 훼손되었다 볼 수 있다"며 방 사장의 명예가 훼손된 점은 인정하면서도 "신인 연기자인 장씨로부터 술 접대와 성 상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 주된 목적이라 할 것이므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P>
<P>&nbsp;</P>
<P><STRONG>"소송으로 재갈 물리려는 &lt;조선&gt; 패소 당연"</STRONG> </P>
<P>&nbsp;</P>
<P>박석운 대표와 김성균 대표 등은 2009년 당시 &lt;조선일보&gt; 앞에서 열린 '고 장자연씨 사망 사건, 왜곡 축소보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씨 사건과 방 사장이 관련돼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박상주 논설위원은 '더러운 포식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신문사 대표와 재벌총수라는 사람들이 던지는 끈적거리는 눈길과 손길을 거부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던 한 여배우의 좌절감과 수치심, 분노를 상상해보라"고 썼다.</P>
<P>&nbsp;</P>
<P>이에 &lt;조선일보&gt;는 지난 2009년 5월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대표와 김 대표, 박 논설위원, 나영정 진보신당 대외협력실 국장 등을 상대로 각각 2억~5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lt;조선일보&gt;가 청구한 손해배상 총 금액은 모두 13억 원에 이른다.</P>
<P>&nbsp;</P>
<P>재판부의 '원고 청구 기각' 결정과 관련,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민사, 형사소송을 통해 재갈을 물리려고 횡포를 부린 &lt;조선일보&gt;의 패소는 당연하다"며 "사필귀정이고 아직은 사법정의가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힘없는 여성 연예인이 목숨을 버린 사건인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법정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의구심을 제기하고 수사를 촉구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P>
<P>&nbsp;</P>
<P>이들을 변론한 이재정 변호사도 "&lt;조선일보&gt;는 처음부터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소송을 진행한 것 같다"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언론을 책임져야 하는 동료들에게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lt;조선일보&gt; 스스로 언론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P>
<P>&nbsp;</P>
<P>이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장자연 사건에 그 어떤 것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아프게 생각한다"며 "아직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거나 공론화해서 제대로 법안(일명 '장자연법')에 반영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P>
<P>&nbsp;</P>
<P>&lt;조선일보&gt;는 이번 소송과 별도로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MBC, KBS 소속 기자 등을 상대로 총 55억 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잇달아 패소한 바 있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주연</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손학규 "박근혜 개발독재 리더십, 이젠 안 통해"]]></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40</link><pubDate>2012-05-16T17:36:34+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648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08/IE001436488_STD.jpg"></DIV>
<P></P>
<P>"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은 '아버지가 잘 살게 해줬지 않냐, 가만히 있어라'라는 개발독재의 리더십이다. 이제는 안 통한다. 박근혜 대표가 얘기하는 맞춤형 복지는 모든 인격체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철학이 없고 뜨거운 열정을 갖지 않은 사람이 제대로 복지를 실천할 수 있겠나."</FONT></P>
<P>&nbsp;</P>
<P>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P>
<P>&nbsp;</P>
<P>16일 민주당 정치개혁 모임의 초청으로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손 상임고문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당장은 안정적으로 만들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소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요소들 때문에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비용을 더 치르게 될 것"이라며 연신 박 전 위원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P>
<P>&nbsp;</P>
<P>문재인 상임고문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제시한 공동정부 구상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우리로는 안 된다'고 자포자기 할 필요가 없다"라며 "당원과 지지자들 사이에 잠재적으로 민주당만으로 안 됨을 기정사실화시키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자신의 사명감과 책임감도 낮아지게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벌써부터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며, 민주당의 자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P>
<P>&nbsp;</P>
<P>통합진보당과의 연대 지속 여부에 대해 그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진보는 의연하게 우리와 함께 갈 것"이라며 "통합진보당도 이를 계기로 쇄신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서 국민이 함께 잘사는 공동체 사회를 이뤄나가는데 파트너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P>
<P>&nbsp;</P>
<P><STRONG>"진보건 보수건 내 입에 빵을 넣어주는 것이 내 편"</STRONG></P>
<P>&nbsp;</P>
<P>이어 그가 제시한 것은 '안정적인 리더십'이다. 야권의 대선주자로서 자신이 "사회 통합과 진보적 성장을 만들어낼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상임고문은 "진보건 보수건 내 입에 빵을 넣어주는 것이 내 편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주느냐가 우리의 과제"라며 "지속가능한 진보를 우리가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
<P>&nbsp;</P>
<P>이달 초 유럽 5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그는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복지와 고용이 함께 가는 진보적 성장이 필요하다"라며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 동력을 만들어 국민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진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P>
<P>&nbsp;</P>
<P>이를 위해 그는 교육-노동-복지를 연계시키는 '공동체 시장경제'를 제안했다. 손 상임고문은 공동체 시장의 핵심 요소로 강자독식 특권 구조를 타파하는 '정의', 성장과 생산 및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복지', 노동시간 감축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일궈낸 '진보적 성장'을 꼽았다. </P>
<P>&nbsp;</P>
<P>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조정식·신학용·유인태·이용섭·이낙연·원혜영·이석현·오제세·설훈 등 35명가량의 18대 의원, 19대 당선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자는 취지로 마련된 간담회는 지난 4일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초청해 진행되기도 했다. </P>
<P>&nbsp;</P>
<P>손 고문은 17일 전남대 특강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대학과 단체 등을 순회하는 '전국비전투어'를 펼칠 계획이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지영</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20년 투자했는데 반토막...증권사 믿지 마세요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97</link><pubDate>2012-05-16T17:05:49+09:00</pubDate><description><![CDATA[<P><FONT color=#996633>"OO증권사 정문에는 바늘 없는 시계가 있습니다. OO증권사 직원들은 출근할 때마다 그 시계를 보며 오늘의 시간을 잊고, 장기투자의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FONT></P>
<P>&nbsp;</P>
<P>모 증권사의 예전 광고문구다. 이익과 손해에 연연하지 말고, 시간을 잊고 장기투자하라는 뜻일 것이다. </P>
<P>&nbsp;</P>
<P>이처럼 투자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장기투자라는 말이다. 시장이 오르건 내리건 개념치 말고, 장기투자하면 복리 효과와 함께 분명 높은 수익율을 얻을 것이라는 이 이야기는 투자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그러면서 투자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당신이 장기투자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장기투자만 하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지? 장기투자가 가지는 함정과 위험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P>
<P>&nbsp;</P>
<P><STRONG>복리효과? 수익율 변동성이 크면 오히려 원금 손실</STRONG></P>
<P><STRONG></STRONG>&nbsp;</P>
<P>1천만 원을 가지고 다음의 4가지 시나리오로 장기투자를 해 보자. </P>
<P>&nbsp;</P>
<P><FONT color=#333399>①&nbsp;연 5% 수익율이 고정되어 있음. </FONT></P>
<P><FONT color=#333399>②&nbsp;첫 번째 년도는 20% 이익, 두 번째 년도는 10% 손해 </FONT></P>
<P><FONT color=#333399>③&nbsp;첫 번째 년도는 50% 이익, 두 번째 년도는 40% 손해</FONT></P>
<P><FONT color=#333399>④&nbsp;매년 10% 이익, 10년마다 50% 손해</FONT></P>
<P>&nbsp;</P>
<P>①, ②, ③은 모두 직관적으로 2년 동안 약 10% 이익이 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①번은 고정금리라면 나머지는 모두 투자결과에 따라 수익율이 달라지는 변동성이 존재한다. 조건만 보면 직관적으로는 모두 이익이 나는 상황(2년에 10%)으로 보이는데, 투자 결과는 생각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3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39_STD.jpg?80"></DIV>
<P></P>
<P>②번을 보면 이익과 손해를 반복하면서 결과적으로 조금씩 원금이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특정 시점에 이르러서는(그래프상 20년 되는 시점)에는 오히려 ①번보다 수익율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③번의 상황은 참담하다. 10년 째부터는 수익은커녕 원금을 까 먹기 시작해서 20년째에는 원금이 반토막이 난다. ④번의 경우 10년까지는 가장 월등한 수익율을 보이지만, 10년째마다 50% 손해를 보게&nbsp;된다. 마지막 30년째에는 그 이익이 크지 않는 결과를 맞이한다.</P>
<P>&nbsp;</P>
<P>이 결과를 통해 우리는 수익율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지는 것은 변동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장기투자할수록 변동성의 역할은 매우 커지게 된다. 높은 수익율을 거둬 불려놓은 원금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약 주식 시장이 하락하면, 손해보는 돈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③번 시나리오가 가장 낮은 수익율을 보인 이유도 +50%에서 -40%에 이르는 높은 변동성이 그 원인이다. 이 경우, 많이 벌고 많이 까먹는 것이 반복되면서 수익은커녕 원금도 반토막이 나는 결과가 된다.</P>
<P>&nbsp;</P>
<P>④번의 경우와 같이 10년마다 -50%가 되는 상황이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998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10년마다 한국주가가 반토막 이상 나는 상황을 겪어왔다. 다음 10년에서 그러한 상황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과연 할 수 있을까?</P>
<P>&nbsp;</P>
<P>장기투자에 대한 흔한 생각 중 하나가 삼성전자 같은 주식을 사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면 높은 수익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 잘 나가는 회사 주식을 고르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쉬운 투자방법으로 보인다. </P>
<P>&nbsp;</P>
<P>그러나 기업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잘 나가던 회사도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면 순식간에 뒤쳐지는 것이 바로 요즘이다. 일본 기업 '소니'를 생각해 보자. 10년 전만하더라도&nbsp;그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그때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지를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
<P>&nbsp;</P>
<P>실제로 전문가가 조사한 결과 2002년 가장 우량기업이라 할 수 있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10년간 장기투자했을 때, 이익이 남는 종목은 5개 밖에 없다고 한다(&lt;조선비즈&gt; 2012년 4월 25일 기사 인용). 내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SK텔레콤'이나 'LG카드'를 선택했다면 반토막 내지 회사가 없어지는 상황도 맞이할 수 있다. </P>
<P>&nbsp;</P>
<P><STRONG>적립식으로 투자하면 주식시장이 하락해도 괜찮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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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P>
<P>주식시장이 하락하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적립식 투자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적립식 투자의 장점은 코스트 에버리지(Cost Average) 효과에 있다. 이것은 매달, 같은 돈을 일정하게 투자하면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더 싼 값에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 하락에 상관없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적립식 투자를 통한 수익율 극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건 이론상 이야기일 뿐.&nbsp;투자 행위는 이론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P>
<P>&nbsp;</P>
<P>적립식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시장이 하락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두 번째, 더 많이 하락할수록 이익은 더 크다. 10만 원씩 1년을 투자한다고&nbsp;가정해 보자.&nbsp;A라는 주식은 6개월 동안 매달 5%씩 하락한 후 그 후 6개월 동안 다시 5%씩 상승하여 제자리로 돌아왔고, B는 매달 10%씩 하락한 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경우 10% 하락이&nbsp;5% 하락보다&nbsp;수익율은 2배가 된다.</P>
<P>&nbsp;</P>
<P>그리고 세 번째, 이게&nbsp;제일 중요하다. 시장의 오르내림에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상&nbsp;이건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 사람의 심리와 행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더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꾸준히 적립식으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주가가 오르면 욕심으로 투자하고, 폭락하면 공포심으로 팔아버리기 쉽다.</P>
<P>&nbsp;</P>
<P>이런 인간의 심리에 대한 실험도 있다. 20달러를 가지고 시작해, 동전을 던질 때마다 1달러를 걸어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으며, 반대로 걸지 않고 건너뛰어 위험을 피할 수도 있는 게임에 사람들이 참여한다. 게임을 20번 동안 지속한 결과 사람들은 돈을 잃은 직후에는 주어진 기회의 41%만 판돈을 걸었다. 심지어 돈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P>
<P>&nbsp;</P>
<P>이 상황은 투자에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이 하락해서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투자를 지속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적립식 투자는 더 많이 하락하면 하락할수록 유리하다. 그럼에도 주식시장 하락의 공포심을 극복하고, 꾸준히 투자하는 배포 두둑한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있을까? </P>
<P>&nbsp;</P>
<P><STRONG>10년 동안 묶여둘 수 있는 돈 얼마나 있으십니까</STRONG></P>
<P>&nbsp;</P>
<P>"투자는 빚을 내서 하지 말고, 절대 여윳돈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하라"는 이 말을 잘 지키고, 운좋게 투자 실패의 나쁜 시나리오를 다 피했다고 해보자. 이 상황이 가능하려면 여윳돈이 그것도 장기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한번 따져보자. 대부분의 가정에서 과연 그런 여윳돈이 얼마나 될까? </P>
<P>&nbsp;</P>
<P>2년마다 전세금 올려줘야 하고, 부모님 병원비도 필요하고, 차도 바꿔야 한다. 아이들 커가면서 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맞벌이라 괜찮을 것 같다가도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기라도 하면 당장 생활비도 쪼들리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묶여둘 수 있는 여윳돈이 있겠는가? 만약, 있다 하더라고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 않을까? 투자실패 시나리오를 운 좋게 피했다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내 기대만큼&nbsp;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P>
<P>&nbsp;</P>
<P>특히,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하락할 때 투자 전문가는 앵무새처럼 "시장의 등락에 동요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떠들면서 장기투자를 못하는 것이 마치 개인의 조급함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다. 특히, 개인은…. 당장 돈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장기투자 하겠다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P>
<P>&nbsp;</P>
<P><STRONG>장기투자는 무조건 성공한다는 믿음은 거짓</STRONG></P>
<P><STRONG></STRONG>&nbsp;</P>
<P>"장기투자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시된다. 그러나 장기투자 성공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nbsp;없어도 상관없는 여윳돈이 많아야 하고, 좋은 주식이나 펀드를 고를 줄 알아야 하고, 주식 시장이 아무리 하락에도 공포에 휩싸여서도 안 된다. 시장이 반 토막 나는 위기상황은 미리 예측하고, 여기에 대비도 해야 한다. 보통 사람이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는 조건이다.</P>
<P>&nbsp;</P>
<P>물론, 장기투자로 성공한 시나리오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실패의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제는 좀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의 오르내림에 나의 기분이 좌우되는 삶은 불행하지 않을까? 돈을 잘 모으는 것은 내 돈을 손해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맘 편하게 필요한 돈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투자보다는 화려하지 않을 지는 몰라도 행복지수는 훨씬 더 높을 수 있을 것이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올바른 돈 관리는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cafe.naver.com/goodsalim" target=_blank>푸른살림</A>에서&nbsp;후회 없는 소비,&nbsp;새지 않는 돈관리, 잃지 않는 저축 방법을 만날 수 있습니다.</FONT></P>]]></description></item><item><author>장재완</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정몽준 "새누리, 진보당보다 투명하다 할 수 있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21</link><pubDate>2012-05-16T17:18:2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7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73_STD.jpg"></DIV>
<P></P>
<P>대전을 방문한 정몽준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투명성'이고, 최근 최대의 관심사인 통합진보당 폭력사태도 '투명성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과연 새누리당은 투명성을 기준으로 볼 때 통합진보당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P>
<P>&nbsp;</P>
<P>정 예비후보는 16일 오후 새누리당 대전시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많은 분들이 복지 이야기를 하고, 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저는 복지와 경제살리기는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P>
<P>&nbsp;</P>
<P>그는 이어 "민주주의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최근 최대의 관심사인 통합진보당 폭력사태도 투명성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은 투명했는지, 비례대표 순위에서 어느 후보가 1번이고 어느 후보가 24번인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들어보지 못했다, 과연 우리당은 투명성을 기준으로 볼 때 통합진보당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P>
<P>&nbsp;</P>
<P>그러면서 그는 "지금 같은 정치관행으로는 우리 정치가 나아질 수 없다"며 "저는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 이번 대선과정에서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P>
<P>&nbsp;</P>
<P>그는 또 정당개혁에 대해서도 "우리 정당들은 모두 실력자가 결정하면 모두가 따라가고, 당원은 전당대회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국민은 선택이 제한되어 있어서 정당이 후보를 내면 그 후보를 선택하는 식"이라면서 "이런 식의 정치틀로서는 더 이상 우리나라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P>
<P>&nbsp;</P>
<P>이어 "현행 헌법 내에서도 대통령권한을 분산시킬 것은 분산시키고 제도도 바꿀 것은 바꾸어야 한다"며 "수백억 원의 국고를 받아가면서도 정당들이 투명하지 못하다, 또 헌법정신을 지키지 않는 정당에게는 국고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
<P>&nbsp;</P>
<P><STRONG>"'비박' 후보 단일화? 박근혜 대 비박구도 바람직하지 않아"</STRONG></P>
<P>&nbsp;</P>
<P>정 예비후보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권에서 중도실용을 내세우며 이념을 뛰어넘었다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P>
<P>&nbsp;</P>
<P>그러면서 "이념이라는 것은 5천만이 살아가는 가치관이다, 따라서 새누리당도 앞으로 우리 새누리당의 가치관을 잘 정립해야 한다"며 "지도부가 새누리당의 가치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P>
<P>&nbsp;</P>
<P>그는 또 '비박' 후보들의 단일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박근혜 대 비박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새누리당 후보는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에서 플러스 5%는 되어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총선에서 잘 됐다고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후보구도도 중요하지만 전체 대선구도를 바꿀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P>
<P>&nbsp;</P>
<P>한편, 정 예비후보는 이에 앞서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대덕연구단지 내 항공우주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 등을 방문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유혜준</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60여평 관사 거부하고 23평 '내집' 사는 군포시장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590</link><pubDate>2012-05-16T14:53:4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44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49_STD.jpg" align=center></DIV>
<P></P>
<P>김윤주 군포시장이 지난 1998년, 시장으로 당선됐을 때, 많은 이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잘 할 수 있을까? 이유는 그의 학력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었던 것. 하지만 김 시장은 취임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고집과 추진력으로 시정을 펼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3선 도전에 실패, 4년의 공백 기간을&nbsp;거친 후 두 번째로 3선에 도전, 당선됐다. </P>
<P>&nbsp;</P>
<P>지난 1998년, 김 시장의 고집(?)은 취임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김 시장은 60여 평의 시장관사 입주를 거부하고 산본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입주했던 '내 집'에서 계속 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23평형 서민아파트였다. 일부 공무원들은 시장이 당연히 '관사'에 입주해야 한다고 밀어붙였지만, 김 시장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3선 시장이 된 지금도 김 시장은 23평짜리 '내 집'에서 살면서 시청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계속하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이 집에서 살고 있다. </P>
<P>&nbsp;</P>
<P>3선 시장으로 임기 절반을 지나고 있는 김 시장을 지난 14일, 시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시장은 군포의 중요 시책과 정책, 그리고 현안문제에 대해 명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한 김 시장은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절대로 꿈을 버리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P>
<P>&nbsp;</P>
<P>김 시장은 현재 불거지고 있는 안양·군포·의왕 통합과 관련해서 "자치권과 재량권이 부여되었을 때 통합의 가치가 있다"며 "몸집불리기 식의 통합은 반대"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 시장은 "지금까지 표를 얻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시설이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시정을 펼쳐왔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김 시장은 거창한 시설을 만들어서 업적을 홍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P>
<P>&nbsp;</P>
<P><STRONG>"책 하면 군포가 생각나고, 철쭉을 생각하면 군포가 떠오르게 하자"</STRONG></P>
<P>&nbsp;</P>
<P>다음은 김 시장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3선 시장으로 당선돼 임기가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초선 시장과 다른 관록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소감은 어떤가?<BR></FONT>"나는 관록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록이 붙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관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 가졌던 마음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선이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고, 초선의 마음을 가지려고 늘 노력해왔다. </P>
<P>&nbsp;</P>
<P>처음 시장이 되었을 때는 뭐가 뭔지 잘 모르니 배우면서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시정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가진 소신대로 일을 해왔던 것 같다."</P>
<P>&nbsp;</P><FONT color=#333399>
<DIV align=left><IMG id=IIE001439448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48_STD.jpg" align=right></DIV>
<P></P>
<P>- 시장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책이나 공약은 무엇인가?<BR></FONT>"군포는 특징이 없는 도시로 사실 내세울 게 거의 없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군포를 대표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군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청소년과 교육문제였다. 그 문제를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책과 철쭉이었다. 책은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채우고, 인간의 삶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철쭉은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면서 도시를 공원처럼 만들어주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생각했다. 책 하면 군포가 생각나고, 철쭉을 생각하면 군포가 떠오르게 하자. </P>
<P>&nbsp;</P>
<P>'책 읽는 군포' 시책을 마련했고, 도시 곳곳에 철쭉과 나무 등을 심었다. 책과 철쭉이 어우러진 도시에서 시민들이 함께 즐기면서 행복하게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즐기고 함께할 수 있는 것에 맞춰서 시책을 만들었다. 초막골 캠핑장이나 눈썰매장, 그리고 찾아가는 음악회 등이 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P>
<P>&nbsp;</P>
<P>김 시장이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 중학교에도 못 가는 주제에 진학을 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사춘기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다."</FONT></P>
<P>&nbsp;</P>
<P>김 시장이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 된 이유는 가난이었다. 진학을 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갖가지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책이었다. 여기서 든 의문 한 가지. 경북 예천의 시골마을에서 어떻게 책을 구해서 읽었을까? </P>
<P>&nbsp;</P>
<P>김 시장은 당시 외삼촌이 조그마한 서점을 경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점은 시골마을이니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벽면에 책들이 가득했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외삼촌은 때때로 그에게 서점을 맡기고 외출을 했고, 서점 창문으로 교복을 입고 오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워 하던 그는 어느 날 결심을 한다. 비록 학교에는 가지 못했지만 내가 너희들보다 책만은 더 많이 읽을 것이라고. 덧붙여 서점 안의 책을 모조리 읽겠다는 생각도 하고, 실천에 옮긴다. 책은&nbsp;그의 인생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술회다. </P>
<P>&nbsp;</P>
<P>그 뒤, 그는 노동자의 삶을 살다가 노동운동을 시작,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경기중부지역지부 의장을 역임했다. </P>
<P>&nbsp;</P>
<P>군포에는 현재 5개의 도서관과 24개의 작은 도서관, 20개의 미니문고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군포시청사에는 '밥상머리'라는 이름의 북카페가 들어서 있어 운영되고 있다.&nbsp;지난해부터는 '군포의 책'을 선정해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현재 부곡에 도서관을 새로 건립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과 미니문고를 40개로 확장할 계획이며, 공원이나 전철역 등 언제 어디서든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예정이다."</FONT></P>
<P>&nbsp;</P>
<P>김 시장은 30~40년 뒤에 군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을 때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군포의 작은 도서관 때문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P>
<P>&nbsp;</P><FONT color=#333399>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44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46_STD.jpg" align=center></DIV>
<P></P>
<P>- '책 읽는 군포'나 '가족이 행복한 도시' 등의 시책은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고 너무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BR></FONT>"맞다.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시책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표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한 적이 없다. 청소년이나 교육 정책은 다들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nbsp; 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금방 효과가 드러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이다. 생색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P>
<P>&nbsp;</P>
<P>그래서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nbsp;아이들에 대한 투자 효과는 30~40년이 지난 후에 나타난다. 나는 군포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정말 모범적이면서 꼭 필요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설이 아닌 사람에게 투자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자치단체장 대부분이 업적을 남기려고 거대한 시설을 만드는데 나는 그런 것을 안 하려고 한다. 거창한 시설을 만들어서 업적을 홍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 도서관은 짓는다. 시설이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노인복지관도 꽉 차서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짓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시설을 굳이 크게 지을 필요가 없다."</P>
<P>&nbsp;</P>
<P><STRONG>"군포 위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권한이 미약해 안타깝다"</STRONG></P>
<P>&nbsp;</P>
<P><FONT color=#333399>-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는 자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자치단체장의 권한이나 역할이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3선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지 않았는지? <BR></FONT>"관선시장이 시민들이 뽑는 민선시장으로 바뀐 것만 갖고도 민의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관선시장과 달리 민선시장은 시민이 뽑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아무리 못마땅해도 임기를 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시민을 위해 일을 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P>
<P>&nbsp;</P>
<P>진정한 지방자치가 되려면 시장에게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3권이 필요하다. 우선은 입법권이 필요한데, 시장에게는 조례를 만들 권한이 없다. 상위법에 근거해야만 만들 수 있으니 그건 권한이 아니다. 인사권도 없다. 인사권이란 필요한 인원을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게 없다. 공무원을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옮기는 게 무슨 인사권인가? 아니다. 예산권도 없다. 시장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나 도에서 정해줘서 (예산을) 내려 보내준다. 국·도비를 지원받아 그것에 의해서&nbsp;하는 게 무슨 예산권인가.</P>
<P>&nbsp;</P>
<P>다른 사람들이 보면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고 권한도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라고 할 수 없다. 군포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권한이 미약해서 안타깝다."</P>
<P>&nbsp;</P><FONT color=#333399>
<DIV align=left><IMG id=IIE001439447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47_STD.jpg" align=left></DIV>
<P></P>
<P>- 안양·군포·의왕 3개시 통합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안양시가 적극적으로 3개시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nbsp;어떤 의견이신지? <BR></FONT>"통합은 아주 잘못된 발상이다. 처음에 통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전국을 70개의 도시로 나누면서 '도'를 없앤다는 것이었다. 자치를 강화한다는 얘기로, 권한이 전부 자치단체로 이양되고, 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가 없어지고 모든 권한이 자치단체장에게 이양이 되면 지금보다 비용도 훨씬 절감되면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통합이라면 좋다고 생각했다. </P>
<P>&nbsp;</P>
<P>그런데 그런 논의는 사라지고, 안양·군포·의왕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만 남았다. 이건 결국 안양·군포·의왕의 3명의 시장을 1명으로 줄인다는 의미밖에 없다. 청사 문제나 행정적인 절차 등을 거치려면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어 낭비일 뿐만 아니라 지역 갈등만 유발한다.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전혀 없다. 이런 통합은 하면 안 된다. 자치권과 재량권이 부여되었을 때 통합의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고 몸집만 불려 비대해지게 만드는 건 아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최근 6개의 자치단체(군포·안양·동작·구로·금천·영등포)가 국철 1호선 지하화 협약을 맺었다. 막대한 예산 소요 등으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BR></FONT>"해야 한다. 불가능한 게 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안 된다고 해도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P>
<P>&nbsp;</P>
<P>국철 1호선은 철도를 사이에 두고 (군포의) 저쪽과 이쪽이 단절이 되어 다른 동네처럼 되어 버렸다. 문화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고 구분이 되어버려 아주 문제가 많다. 철길이 지나가는 동네마다&nbsp;문제가 많다. 이 사업은 자치단체가 하는 게 아니고, 국가가 해야 맞는 것이다. 돈 들어가는 것, 생색이 나지 않는 것,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안 한다. 이런 국가정책이 문제인 거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꾸 얘기를 하고 문제를 삼아야 한다.</P>
<P>&nbsp;</P>
<P>실제로 군포는 1호선보다 4호선이 고가로 다니게 되어 있어 더 문제고 시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아직은 안 되니까 1호선 문제를 먼저 제기한 거다."</P>
<P>&nbsp;</P>
<P>지난 5월 3일, 군포시·안양시와 서울 구로구·금천구·동작구·영등포구 6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서울 노량진역부터 군포 당정역까지 약 26km 구간을 지하화를 해야 한다면서 공동 노력을 하자는 내용으로 협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군포지역에 해당되는 구간은 금정역, 군포역, 당정역 구간으로 4km 정도 된다. </P>
<P>&nbsp;</P>
<P><STRONG>"군포에서 책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STRONG></P>
<P>&nbsp;</P>
<P><FONT color=#333399>- 처음 시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BR></FONT>"4단지에 그대로 살고 있고, 아침마다 걸어서 출근 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P>
<P>&nbsp;</P>
<P>김 시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23평형으로, 지난 1992년에 분양받은 뒤 20여 년째 김 시장은 줄곧 그 집에서 살고 있다. 현재는 자녀들이 장성해서 출가해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23평형이라 좁지 않나? 큰 집으로 옮길 예정은 없는지?<BR></FONT>"그게 쉽지 않다. 나는 불편하지 않은데 아버지 때문에 생각이 많다. 85세인 아버지께서 혼자 사시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 집에서 모셨으면 좋겠다. 그게 도리인 것 같고."</P>
<P>&nbsp;</P>
<P><FONT color=#333399>- 군포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BR></FONT>"군포에서 책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통과 화합이다. '군포의 책'을 선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똑같은 책을 시민들이 전부 다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도 읽은 책이 같다면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누구와 만나도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 책은 간접 경험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라면, 축제는 현실에서 함께 어우러져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냄새가 나는 군포를 만들고 싶다. 시민들께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공감해주시길 기대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주연</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당권파 반발..."마녀사냥으론 사태 해결 못해"]]></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37</link><pubDate>2012-05-16T16:04:1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5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56_STD.jpg"></DIV>
<P></P></DIV>
<P></P>
<P>강기갑 통합진보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당 쇄신 업무로 '경쟁명부 비례대표 사퇴' 건 해결을 공표한 가운데, 당권파 측에서 "사태를 마녀사냥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P>
<P>&nbsp;</P>
<P>당권파인 김미희 국회의원(성남중원) 당선자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2012년 진보세력의 최대목표가 당권파 제거로 바뀌고 있다, 당권파를 해부하고 잘라내야 할 암 덩어리 괴물로 보기 시작했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854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54_STD.jpg"></DIV>
<P></P>
<P>김 당선자는 "통합진보당 당선자들의 국회 진출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금의 집권세력,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합진보당이 국회의원을 사퇴해야 할 만큼 문제 있지 않다"고 강변했다. </P>
<P>&nbsp;</P>
<P>그는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와 현재&nbsp;가진 직업과 소속된 언론사 입장 때문에 양심을 다 발휘못한다는 것 이해한다"라며 "모든 사태는 잘못된 보도와 오해로부터 발생했다"며 통합진보당 사태의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P>
<P>&nbsp;</P>
<P>김 당선자는 지난 12일 중앙위에서 벌어진 폭력사태의 책임을 심상정 의장에게 지웠다. 그는 "중앙위원회의 당강령 개정 안건 상정과정에서 이정희 대표가 합의하지 않은 안건을 현장발의로 올린 심상정 의장은 마이크를 모두 꺼버리면서까지 발언권을 주지 않고, 이의제기를 무시하며 일방적 날치기 처리를 통해 중앙위원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라며 "이 과정에서 중앙위가 파행으로 치닫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P>
<P>&nbsp;</P>
<P>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가 추진한 중앙위 전자회의 결정 과정도 불인정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했던 전자투표방식으로 중차대한 결정을 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중앙위원회 성원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것을 포함한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다"며 '적법성 논란'을 제기했다. 김 당선자 스스로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한 전자투표, 즉 온라인 투표 방식의 정당성에&nbsp;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P>
<P>&nbsp;</P>
<P>그는 이석기 당선자 등이 꾸준히 주장해 온 '당원 총투표' 얘기를 다시 꺼냈다. "(통합) 3주체의 합의로 만들어진 창당정신에 기초한 당원 총투표만이 국민 앞에 내놓을 유일한 출로"라는 것이다. </P>
<P>&nbsp;</P>
<P>그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의원직뿐 아니라 어떤 것도 내놓을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당과 당원의 명예가 근거 없이 더럽혀지고 모욕당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며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당내 문제는 철저히 규명해서 혁신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을 공명정대한 인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
<P>&nbsp;</P>
<P>자신의 입장만을 짤막하게 밝힌 김 당선자는 '당권파만의 당원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이냐, 폭력사태의 책임 인정하느냐, 비대위에 참석할 것이냐'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날 강기갑 위원장이 발표한 1차 비대위 인선에 대해 "유감이다"라고 짧게 밝혔을 뿐이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구영식</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나경원 기소청탁' 공개 박은정 검사, 보복성 감찰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50</link><pubDate>2012-05-16T14:49:1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left><IMG id=IIE001408026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229/IE001408026_STD.jpg"></DIV>
<P></P>
<P>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부장판사로부터 기소청탁을 받은 당사자로 지목된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는 지난 3월 2일 오전 8시께 검찰 내부통신망에 짧은 사퇴의 글을 올렸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검찰을 떠나고자 한다. 그동안 도와준 선후배 동료 검사와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건강하고 늘 행복하십시오."</FONT></P>
<P>&nbsp;</P>
<P>이유나 배경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소청탁 의혹이 검찰 안팎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자 부담감을 느껴 사퇴를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검사의 글을 접한 대검은 "박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사유가 없다"며 사퇴서를 반려했다. </P>
<P>&nbsp;</P>
<P>특히 대검은 박 검사 감찰 여부와 관련해&nbsp;"박 검사가 기소 청탁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했다고 해도 사적 행위에 해당하므로 감찰 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박 검사의 감찰 가능성을 보도하자 "명백한 오보"라며 "감찰조사에 착수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P>
<P>&nbsp;</P>
<P><STRONG>"판사의 월권행위는 덮어주고 박 검사를 검찰한다고?"</STRONG></P>
<P>&nbsp;</P>
<P>그런데 대검 감찰본부(본부장 홍지욱)가 최근 박 검사를 대상으로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16일 "박 검사의 수사사항 누설 등에 관한 민원이 3월 말께 접수되는 등 조사 필요성이 있고 관련 사건의 수사가 4월말 종결됨에 따라 박 검사 감찰조사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P>
<P>&nbsp;</P>
<P>대검이 박 검사의 감찰 내용을 "수사사항 누설"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이는 김 판사로부터 기소를 청탁받았다는 박 검사의 검찰 진술이 어떻게 팟캐스트 방송인 &lt;나는 꼼수다&gt;(나꼼수) 쪽에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nbsp;&nbsp; </P>
<P>&nbsp;</P>
<P>김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을 처음 제기한 &lt;나꼼수&gt;는 지난 2월 28일 방송에서 "박 검사가 공안수사팀에 김 판사로부터 기소 청탁을 받은 사실을 말했다"며 "박 검사는 검찰이 나꼼수 패널인 주진우 시사인 기자의 구속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고 설명했다.&nbsp; </P>
<P>&nbsp;</P>
<P>하지만 대검이 김 판사의 기소청탁 논란이 크게 일었던 지난 3월 "박 검사의 행위는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던 것을 뒤집고 박 검사 감찰에 나선 배경을 두고 "보복성 감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당 패배'라는 지난 4월 총선 결과에 따른&nbsp;나꼼수 압박 조치라는 관측도 있다.&nbsp; </P>
<P>&nbsp;</P>
<P>박 검사와 연수원 동기인 백혜련(전 대구지검 형사3부 수석 검사) 변호사는 이날 &lt;오마이뉴스&gt;와 한 전화통화에서 "대검이 당시(3월)에는 감찰조사 안하겠다고, 계획도 없다고 해놓고&nbsp;이제 와서 박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한 입으로 두 말 하기"라며 "이런 건으로 감찰에 나선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감찰은 '보복성 감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P>
<P>&nbsp;</P>
<P>특히 검찰이 지난달 24일 박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한 김재호 판사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는 점에서도 박 검사의 감찰은 형평성을 잃은 조치라는 지적이 많다. 한 변호사는 "검찰이 판사의 월권행위는 덮어주고 박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법과 상식에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P>
<P>&nbsp;</P>
<P>대검 감찰본부는 감찰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검사징계위에 박 검사의 징계를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시연</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인피니트 오빠'와 수다? '구글+'로 넘어와!]]></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78</link><pubDate>2012-05-16T16:19:11+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3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38_STD.jpg" align=center></DIV>
<P></P>
<P>"인피니트 오빠! 카산드라입니다. 피리핀 와서요(필리핀에서 왔어요). 보고 싶어."</FONT></P>
<P>&nbsp;</P>
<P>남성 7인조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는 일본 방문 중이던 지난달 22일 한국 팬들과 온라인&nbsp;화상 채팅을 했다. 구글 소셜 미디어 서비스인 구글플러스(Google+) '수다방(행아웃)'에서 이뤄진 이날 팬미팅&nbsp;장면은&nbsp;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당시 400개가 넘는 댓글 가운데는 서툰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러시아어까지 전 세계 언어가 망라돼 있었다. </P>
<P>&nbsp;</P>
<P><STRONG>구글플러스 확산과 K팝 홍보... '두 마리 토끼' 잡기</STRONG></P>
<P>&nbsp;</P>
<P>구글이 K팝 스타들을 앞세워 국내 소셜미디어 시장 공략에 나섰다. 구글코리아(대표 염동훈)는 16일 오전 역삼동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구글플러스 한국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발표했다. 구글이 지난해 6월 '페이스북'에 맞서 구글플러스를 선보인 뒤 이미 전 세계 사용자가 1억 7000만 명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국내 스마트폰&nbsp;이용자 공략은 많이 늦은 셈이다.&nbsp; </P>
<P>&nbsp;</P>
<P>구글은 이날 아이폰-안드로이드폰용 앱 소개와 더불어 구글플러스 'K팝 허브' 프로젝트를&nbsp;공개했다. 'K팝 허브'(<A href="http://www.google.com/intl/ko/+/kpop/">www.google.com/intl/ko/+/kpop/</A>)란 구글플러스를 활용해 K팝 스타들과 국내외 팬들의 소통을 돕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현재 인피니티, 비스트, 애프터스쿨, 씨스타 등 4개 아이돌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P>
<P>&nbsp;</P>
<P>구글플러스가 내세우는 '수다방'(행아웃)과 서클 관리 기능을 국적이 다양한 K팝 팬 관리에 접목했다. K팝 스타들이 수다방을 이용해 최대 팬 10명과 화상 채팅을 할 수 있고, '행아웃 라이브' 기능을 통해 이 장면을 전 세계 팬들에게 생중계할 수도 있다. 또 인맥을 그룹별로 관리할 수 있는 '서클' 기능을 활용하면 K팝 팬들을 한국팬, 일본팬 등 국적별로 나눠 개별 소통이 가능하다. 구글에서도 K팝 스타가 올린 글을 영어로도 번역해 해외 팬들과 소통을 돕고 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2_STD.jpg" align=center></DIV>
<P></P>
<P>조상돈 구글코리아 마케팅팀장은 "K팝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20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유튜브에 올리는 것 외에 통합 채널이 없어 쌍방향 소통과 홍보 채널이 부족했다"면서 "K팝 허브를 영어, 일본어, 한국어 3개 국어로 서비스하고 구글과 유튜브 메인 화면에도 홍보해 K팝 열풍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P>
<P>&nbsp;</P>
<P>'비스트' 기획사인 박충민 튜브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유튜브가 해외에 K팝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듯 'K팝 허브'는 한국 팬뿐 아니라 해외 팬까지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서비스"라면서 "해외 투어 같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비스트 멤버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국내외 팬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nbsp;&nbsp;&nbsp; </P>
<P>&nbsp;</P>
<P>구글코리아는 현재 튜브, 스타쉽, 플레디스, 울림 엔터테인먼트 외에 다른 기획사들과도 접촉하고 있어 K팝 허브 참여 스타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또 서비스 대상 지역 역시 현재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P>
<P>&nbsp;</P>
<P><STRONG>"국내 소셜서비스와 경쟁? 기존 구글 서비스 업그레이드"</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4_STD.jpg?83" align=center></DIV>
<P></P>
<P>다만 아직 국내 기반이 약한 구글플러스 이용자층이 K팝 팬들인 10, 20대로 채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조상돈 팀장은 "K팝 허브는 한류 콘텐츠 글로벌화를 돕는 '코리아 고 글로벌' 프로그램에 따른 것으로 구글플러스 마케팅이 K팝 사용자층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다양한 목표 이용자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P>
<P>&nbsp;</P>
<P>한편 구글플러스가 기존 국내 소셜 서비스들과 '불공정 경쟁'이라는 지적에 대해 조원규 구글코리아 R&amp;D센터 총괄사장은 "구글플러스는 독립된 소셜 서비스이면서 지메일, 검색, 유튜브 등 수십 가지 구글 서비스에도 영향을 주는 '스파인(척추)' 기능이 더 중요하다"면서 "독립된 서비스로 보면 기존 국내 소셜 서비스들과 경쟁 구도가 상상되겠지만 '스파인' 개념으로 보면 구글 전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의미여서 불공정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엄을순</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엄마의 '임종', 왜 이리 후회가 될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356</link><pubDate>2012-05-16T10:02:25+09:00</pubDate><description><![CDATA[<P><FONT color=#996633>"집안에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문도 안 열어주고 전화도 안 받으시는 모양인데요. 배달 간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나서 연락을 했던데 빨리 확인 좀 해보세요."</FONT></P>
<P>&nbsp;</P>
<P>어버이날 꽃 배달을 부탁했는데 집 앞까지 도착한 꽃을 안 받겠다고 엄마가 문도 안 열어주시고 우기고 있는지 화가 잔뜩 난 꽃집 사장님이 전화를 했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시들면 금방 버려야 되는데 아깝잖아. 네가 꽃 보냈다고 받으라고 해서 내가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안 받으면 너 돈 안 내도 되잖냐. 물건도 안 받았는데 돈을 내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너 돈 내지마."</FONT></P>
<P>&nbsp;</P>
<P>정말 미치겠다. 결국 돈은 돈대로 다 내고 오히려 꽃집 사장님한테 혼만 잔뜩 났다. 우리 엄마는 이런 분이다. 보통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참 알기 힘든 분이다. </P>
<P>&nbsp;</P>
<P><STRONG>평생 자식 위해&nbsp;사신 엄마, "꽃 시들면 아까운데... 돈 쓰지 마라"</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5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59_STD.jpg" align=center></DIV>
<P></P>
<P>중학교 몇 학년이었던가. 엄마랑 같이 버스를 탔다. 그때 누군가 일어나며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 앉지 않고 대신 나를 그곳에 눌러 앉히면서 "우리 딸이 몸이 좀 불편해서요"라고 말했다. </P>
<P>&nbsp;</P>
<P>몸이 멀쩡한 난, 엄마가 위에서 찍어 누르는 바람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홍당무가 된 채 고개를 숙이고 눈도 아예 감고 있었는데 옆 자리 어떤 청년이 엄마를 위해 또 자리를 양보한 덕에 둘이 나란히 앉아 집에 온 적도 있다. 그때 그 당황스러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P>
<P>&nbsp;</P>
<P>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체면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교양도 없는 분. 몸은 약한 분이 그럴 때마다 어디서 힘이 나오시는지 무지 용감하다. 그렇게 당신 몸은 챙기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시더니 말년에는 몸이 안 좋아 자식들 애를 무던히도 먹이셨던 엄마.</P>
<P>&nbsp;</P>
<P>엄마, 아버지 부부 사이는 그저 그랬다. 그 시절 남자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그다지 자상하지도 그다지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남들처럼 오래라도 사시면 좋았을 것을 쉰 조금 넘어 암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엄마는 마흔여섯 나이에 혼자가 되셨다. </P>
<P>&nbsp;</P>
<P>지금 생각하면 여자나이 46살, 참 한창 때인데. 그 후로 30여 년을 혼자 외롭게 사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짜안해진다. 그나마 딸 하나 있는 것이 미국에 있어 자주 보지도 못하고 아들들은 결혼해서 자기 식구들 챙기느라 엄마 외로움에 별반 도움도 못 되고. 그러다가 내가 영구 귀국하게 되었다.&nbsp; </P>
<P>&nbsp;</P>
<P>보는 이들마다 한마디씩 했다. "딸이 옆에 있으니 기가 사셨네"하며 엄마가 매우 밝아지셨다고. 하지만 내가 귀국한 지 10년도 못 채운 어느 날 엄마는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합병증 끝에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내 곁을 떠나셨다. 입원하신 지 7개월 만이었다. </P>
<P>&nbsp;</P>
<P><STRONG>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그리며 들은 노래 '유정천리'</STRONG></P>
<P>&nbsp;</P>
<P>간병인을 두고, 난 이틀에 한 번쯤 병원에 들락거렸는데 어느 날 엄마 침대 맡에 40대 초쯤 된 어느 낯익은 남자 사진이 붙어있었다.&nbsp;'하이칼라' 머리를 하고 백구두에다 손은 허리에 얹은 채 잔뜩 멋을 부린 남자.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젊은 시절의 아버지 사진이다. 아들보다도 어린, 사진 속 아버지가 맘에 드셨던지 하도 만지고 품고 다녀서 애들이 갖고 노는 딱지만큼이나 너덜너덜해졌다. </P>
<P>&nbsp;</P>
<P>팔뚝에는 링거를 꽂으신 채 눈을 가늘게 뜨시고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던 엄마. 갑자기 "얘, '유정천리'라는 노래 요즘도 들을 수 있냐?"하신다. 아버지가 생전에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노래라면서. 다음날, 잘 아는 엘피판 뮤직바에 들러 사장님께 부탁을 해 녹음해서 갖다드렸다. 그 후로 중환자실로 가시기 전까지 몇 달 동안이나 그 노래를, 다 헐어 발갛게 짓무른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들으셨다.</P>
<P>&nbsp;</P>
<P>팔뚝에 아무리 바늘을 수없이 꽂아대도, 한주먹 약을 입에 털어 넣으셔도 귀에는 '유정천리'다. 가끔은 마치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꿈이라도 꾸시는 듯 눈동자가 몽롱하니 풀어진 채 입가엔 잔잔한 미소까지 지으신다. 한창 때의 아버지 사진을 품고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유정천리'를 들으며 엄마의 생명은 그렇게 천천히 꺼져가고 있었다.</P>
<P>&nbsp;</P>
<P>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폐에 물이 차고 가래가 심하게 끓어 정신을 잃은 뒤 엄마는 중환자실로 가셨다.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한 지 보름쯤 되었던가. 모든 상태, 모든 장기가 쇠약해져 이제는 이삼일도 버티시기 힘들 것 같다며 일반 병실로 옮겨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P>
<P>&nbsp;</P>
<P>이미 예상도 했고 마음의 준비도 한 상태였지만 막상 '마음의 준비'라는 그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엉엉 울면서 엄마를 일반 병실로 옮기고 다른 식구들에게도 얘기를 했다. 다들 달려왔다. 사실 하나도 놀랄 일 없는 닥칠 것이 왔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데 한 명. 캐나다로 이민 간 동생이 큰일이다. 그곳서 지금 표 끊고 와도 일 당하면 엄마를 못 볼 것 같은데. </P>
<P>&nbsp;</P>
<P>"알았어, 곧 갈게"하던 동생. 일주일이 넘도록 오지를 않고 이삼일이라던 엄마는 계속 버티고 있는&nbsp;하루하루가 이어졌다.&nbsp;아침 회진 때마다 의료진이 "참 신기하네요, 이 상태에서 어머님이 어떻게 계속 버티고 계신지, 아마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라고 하신 지 열흘 가까이 되었다. 금방 온다던 동생은 소식이 없고 오빠, 언니, 올케, 모두 예전에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지, 아님 하던 일을 그리 비워둘 수 없어서인지 이제는 위급하다고 해도 믿지도 않고 늦장이다. </P>
<P>&nbsp;</P>
<P><STRONG>"엄마, 버티느라 애썼어... 우리가 나중에 따라 갈게"</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5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58_STD.jpg" align=center></DIV>
<P></P>
<P>난, 얼굴에 온통 호수며 마스크로 중무장하신 엄마의 얼굴을 살며시 감싼 채&nbsp;들여다 보았다. 벌써 발가락과 척추 옆에는 괴사가 생겨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발갛게 짓무른 엄마 귀에 입을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엄마, 이제껏 버티느라 힘들었어. 애썼어. 이제 그만 가도 돼. 동생이 엄청 바쁜가 봐. 엄마 가면 금방 올 거니까 맘 편히 먹고 가. 우리가 나중에 엄마 따라 갈게."</FONT></P>
<P>&nbsp;</P>
<P>그러면서 엄마 얼굴을 한없이 만지고 쓰다듬고 입 맞추고… 그때 정말 원 없이 스킨십 한 번 제대로 해봤다. 그런지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혈압이 떨어져서 비상벨이 계속 울리더니 다시 회복하지 못하시고 그렇게 내 말 대로… 평온한 얼굴로 가셨다.</P>
<P>&nbsp;</P>
<P>다행히 장례 첫날 동생이 도착했고, 이미 보름 가까이 마음의 준비가 끝난 식구들은 순서대로 장례 준비를 했다. 그런데 큰일이다. 화장을 할 것인지 아버지가 계신 선산에 모실 것인지 미처 엄마한테 물어보질 못했다. 그러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P>
<P>&nbsp;</P>
<P><FONT color=#333399>"나 죽거든 화장해서 깨끗하게 태워버려라. 무덤이 있어봐야 너네들이 제대로 오지도 못 할 것이고 부담도 주기 싫다."</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오빠, 엄마가 나한테 그러셨어. 화장하라고."</FONT></P>
<P><FONT color=#996633>"아니 그래도 아버지 옆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선산도 있는데."</FONT></P>
<P>&nbsp;</P>
<P>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엄마랑 가장 가까우니 내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고 화장터로 향했다. 관을 화덕 같은 곳에 밀어 넣기 전, 모든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불의 스위치를 당기게 되어 있는 순간. 난 갑자기 발작을 했다. 청개구리 엄마가 자기 자식에게 "나 죽거든 물가에 묻으라" 한 말처럼 내가 말 안 들으니까 속상해서 화장해버리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을까.</P>
<P>&nbsp;</P>
<P><FONT color=#996633>"잠깐. 엄마 거기서 꺼내세요. 아니에요. 내가 실수했어요. 아니 나 맘 바꿨어요. 아니 엄마가 뜨거운 거 싫대요. 야, 뭐해. 빨리 꺼내라니깐."</FONT></P>
<P>&nbsp;</P>
<P>유리창을 두드리며 난 발악을 했고, 오빠는 내 어깨를 잡고 말렸고, 유리 너머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전혀 요동하지 않고. 그렇게 난, 엄마를 화장시켰다. 그렇게 난, 근근이 생명줄을 잡고 있는 엄마를 가시라고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가 보낸 엄마가 무척이나 그리워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끓어오른다.</P>
<P>&nbsp;</P>
<P>평소에 엄마 말을 잘 안 듣고 빤질거리던 내 별명은 청개구리. 혹시 화장하라하면 선산에 모실 것 같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까.</P>
<P>&nbsp;</P>
<P><FONT color=#996633>"엄마, 그때 뜨거웠지? 나도 죽으면 화장하라 했어. 엄마만 뜨겁게 할 수는 없잖아."</FONT></P>
<P>&nbsp;</P>
<P>평생을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시고 남편 말, 자식 말이라면 무조건 토를 달지 않으시던 엄마. 내가 성인이 된 다음에는 내 말만을 철석같이 믿으시던 엄마. 난 그런 엄마를 그렇게… 내 맘대로… 보냈다. 오월만 되면 수백 번도 더 되뇌는 말.</P>
<P>&nbsp;</P>
<P><FONT color=#996633>"엄마! 미안해."</FONT></P>]]></description></item><item><author>심규상</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충남도, 독후감 평가 승진가점제 '논란'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19</link><pubDate>2012-05-16T16:34:4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2304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630/IE001323047_STD.jpg"></DIV>
<P></P>
<P>공무원의 사고능력 배양을 위해 충남도가 운영 중인 독서대학 승진가점제을 놓고 졸속운영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직사회 안팎에서 억지 독서분위기를 조성하는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nbsp; </P>
<P>&nbsp;</P>
<P></P>
<P>독서대학은 안희정 지사가 공무원들의 융·복합적 사고능력 배양과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제안한 것으로 지난해 5월부터 일부&nbsp;공무원들에게&nbsp;책을 사주는 방식으로 시작했다.&nbsp;'독서 승진가점제'는 올 1월부터 시행한 것으로 매달 도 공무원 600명에게 책을 읽게 하고 독서 감상문에 해당하는 '독서단상'을 제출하게 해 80점 이상 평가자에게 분기별로 0.1점(최대 1점)의 승진가점을 부여한다. 도는 이를 위해 올해 1억7000만 원의 예산을 반영해 민간교육위탁업체를 통한 평가채점과 공무원들이 읽을 책을 사주고 있다. </P>
<P>&nbsp;</P>
<P>1억7000만 원 중 약 1억여 원은 책(권당 1만5000원 미만)을 사주는데 드는 비용이고, 나머지는 채점 및 위탁관리에 드는 비용이다. 독서교육대상자는 매달 실과 추천을 받아 선정하고 있다.</P>
<P>&nbsp;</P>
<P><STRONG>도청 내부 행정게시판 "3번 제출한 독서감상문 평가서, 같았다"</STRONG></P>
<P>&nbsp;</P>
<P>승진가점제가 시행되면서 졸속운영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평가의&nbsp;신뢰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도청 내 한 공무원은 최근 도청 내부 행정망에 익명으로 올린 글을 통해 "올해 3번 독서 감상문을 제출하고 평가결과를 받았는데 매번 글자 한자도 안 틀리고 똑같은 평가문을 받았다"며 부실 평가의혹을 제기했다.</P>
<P>&nbsp;</P>
<P>해당 공무원은 각각 다른 책을 읽고 독서단상을 제출했지만 200자 분량의 전문가 평가의견이 매달 같았다는 것이다. 해당 전문 평가위원들이 독서단상을 제대로 읽지 않고 평가했거나 읽었다 하더라도 평가 및 첨삭지도를 형식적으로 했다는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해당 공무원은 "담당과와 위탁기관에 직접 건의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P>
<P>&nbsp;</P>
<P>내부 공무원들은 "승진 여부에 영향을 주는 평가를 무성의하게 할 수 있느냐", "이런 함량미달의 평가위원들에게 비싼 심사비를 줘가며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항의하고 있다.&nbsp; 또 다른 직원도 "0.001점 차이로 승진 여부가 갈리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신뢰성을 의심하게 하는 평가방식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P>
<P>&nbsp;</P>
<P>논란이 커지자&nbsp;충남도 독서대학 담당자는 "빠른 시일 내에 잘못된 점을 파악, 보완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P>
<P>&nbsp;</P>
<P><STRONG>공직사회 밖 "책 읽는 억지 분위기조성 공감 안 된다"</STRONG>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5182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925/IE001351825_STD.jpg?63"></DIV>
<P></P>
<P>&nbsp;</P>
<P>하지만 승진가점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운영 취지가 '공무원들의 사고능력 배양과 지식을 도정에 반영하기 위한 것인 만큼 독서대학은 유지하되 승진가점을 주는 것은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P>
<P>&nbsp;</P>
<P>공직사회 외부의 시선은 좀 더 다르다. 충남의 한 시민단체관계자는 "공무원들의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책을 읽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연간 2억 원의 세금을 써가며 공무원들에게 책을 사주고 여기에 승진가점을 주면서까지 억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P>
<P>&nbsp;</P>
<P>이어 그는 "초중고에서도 자율적인 책읽기 지도가 대세인데 공무원들을 사설교육업체 위탁 관리하면서까지 독서지도를 해야 하느냐"며 "타율성이 강한 운영방식에 공감할 수 없고 창의적이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효니</author><category>사는이야기</category><title><![CDATA[연상녀에게서 푸근함?<br>그게 가능할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45</link><pubDate>2012-05-16T12:16:3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5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50_STD.jpg"></DIV>]]></description></item><item><author>오상용</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사막에서 신혼생활<br>참 부럽습니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46</link><pubDate>2012-05-16T15:25:04+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
<DIV align=left>중국&nbsp;타클라마칸 사막의 사랑방인&nbsp;수정방</STRONG></DIV>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중국 최대 규모 사막인 타클라마칸 사막 횡단을 시작하고 3일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에서 따듯한 밥과 오매불망&nbsp;그리워했던 시원한 얼음물로 컨디션을 회복하고 서둘러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지나가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일몰. 계획했던 시간보다 휴식시간이 길었던 터라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결국, 해가 진 이후에 다시 출발 된 오늘의 여정. 목표했던 거리의 반도 못 온 터라 이날은&nbsp;야간 라이딩을 하기로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뒤 조명 하나 없는 어둠의 길을 달린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7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76_STD.jpg?89"></DIV>
<P></P>
<P></P>
<P align=justify>자전거 핸들바에 달아놓은 라이트가 없다면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막의 밤. 우여곡절 끝에 오늘 목표했던 구간에서 40km를 더 달려 새벽 3시가 되고 나서야&nbsp;일정을 마무리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야영하기에는 주변 환경은 물론 빛이 없어 힘든 상황. 결국 비박을 하기로 하고 도로 옆쪽에서 잠을 자는데, 열기로 가득한 모래 위와는 달리 일교차가 심해 이른 아침까지 추위와 싸워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넓지는 않지만...&nbsp;함께 있기에 행복한 공간</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7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77_STD.jpg?1"></DIV>
<P></P>
<P></P>
<P align=justify>어찌 됐든간에&nbsp;일정을 조금 앞당 긴터라 조금은 여유가 있어&nbsp;여유로운 사막의 아침을 시작한다. 출발 후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마지막 수정방(水井房). 수정방은 타클라마칸 사막 확대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와 중국 석유에서 사막 4~5km 지점으로 우물을 파고 시설을 관리 직원을 파견하기 위해 만든 건물인데, 타클라마칸 사막을 시작한 지점에서 이곳까지 총 108개(중국 자료에 의하면 110개라고 한다)가 준비돼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수정방은 정확하게 4~5km마다 있는데, 거의 모든 수정방이 언덕에 위에 있어 평지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르막길을 예고하는 보기 싫은 건물이기도 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7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78_STD.jpg?74"></DIV>
<P></P>
<P></P>
<P align=justify>사진 속의 수정방은 사막 초입에서 방문한 107번 수정방. 이후 되도록 수정방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한 탓에 다른 수정방 내부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들린 001번 수정방을 지키는 이의&nbsp;말에 따르면 수정방 내부는 기계가 들어가 있는 방과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매년 계약직으로 사람을 뽑아 보내기에 내부가 모두 다르다고 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한 달 일정 금액의 보수(약 15만 원~20만 원)를 받고 도로 청소와 정해진 시간에 기계를 켜 도로 주변에 심어 놓은 나무에 물을 주며 생활하고 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7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79_STD.jpg?41"></DIV>
<P></P>
<P></P>
<P align=justify>넓지 않은 공간이기에 화장실을 개조해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107번 수정방. 이곳에 사는 노부부에게 물어보니 급한 일은 어디서도 해결할 수 있지만 먹는 것은 모래바람을 피해야 하기에 화장실 변기를 막고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토막이야기]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유전 및 가스가 나오고 있어 불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5000위안(元)&nbsp;이상의 벌금 또는 구속까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막에서 캠프파이어를 한 우리 일행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혹 이 구간에서 불을 사용해야 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불 사용이 허가된 수정방에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도록 하자.</FONT></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0_STD.jpg?30"></DIV>
<P></P>
<P></P>
<P align=justify>주방이라고 해봤자 도마와 그릇 그리고 조미료가 전부.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 늦은 밤에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며 수정방 생활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을 이야기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음식재료는 지나가는 차량 기사에게 부탁하는데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기에 이제는 가족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타클라마칸 사막을 지키는 사람들</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1_STD.jpg?24"></DIV>
<P></P>
<P></P>
<P align=justify>부족하지만 이방인에게 끊인 물을 대접하는 107번 수정방 노부부. 어떠한 사연으로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nbsp;수정방 사람들 대부분은 부부와 함께 지내며 바쁜 현대 삶이 아닌 느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3_STD.jpg?21"></DIV>
<P></P>
<P></P>
<P align=justify>20번 수정방에서 만난 한 가정. 대부분 수정방은 노부부가 살고 있지만,&nbsp;언제부터인가 중국 정부와 중국 석유에서는 신혼부부 혹은 젊은 부부를 뽑아 이곳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가정을 시작하는 이들은 사막을 통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사막을 지키는 수정방 사람들. 그들은 다소 외로워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사막 여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마지막 수정방</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5_STD.jpg?15"></DIV>
<P></P>
<P></P>
<P align=justify>4일을 달려 도착한 첫 수정방이자 반대 방향에서 온 우리에게는 마지막인 001번 수정방. 4~5km마다 만났지만, 막상 마지막 수정방이라고 생각하니 타클라마칸 여정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섞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nbsp;사막 모래도 담을 겸 자전거를 세우고 내부를 살핀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6_STD.jpg?67"></DIV>
<P></P>
<P></P>
<P align=justify>이방인의 방문에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고 달려오는 강아지. 수정방에는 동물을 키울 수 없다. 하지만,&nbsp;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001번 수정방에 사는 이의 친척이 강아지와 함께 음식재료를 가지고 놀러왔다고.</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생명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막을 지나왔기에 더욱 반가운 녀석. 함께 온 동료가 강아지를 안고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하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동료 얼굴이 사막에서 생활하는 옛사람 모습 같아 웃음주머니가 터져버렸다.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8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88_STD.jpg?64"></DIV>
<P></P>
<P></P>
<P align=justify>옆에서 함께 웃던 동료도 기록을 남기고 싶다며 강아지를 들고 찍은 인증사진. 수염이며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태양에 탄 피부로 현지인 못지않은 외모에 나는 물론이요 동료 모두 크고 시원한 웃음 노래를 불러본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9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90_STD.jpg?64"></DIV>
<P></P>
<P></P>
<P align=justify>역시 가장 어린 막내 동료는 재미있는 사진보다는 멋진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는 경민이. 후배 녀석과 001번 마지막 수정방 뒷길을 이용 사막으로 들어가 잊을 수 없는 사막에서의 추억을 기록한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토막이야기] 사막 구간 출발 전까지만 해도 배 근육이 뚜렷하지 않았던 후배 녀석이 4일간의 사막 라이딩으로 선명한 배 근육이 완성되었다.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았다는 후배 녀석.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가도 이때의 기억과 배 근육을 잊지 않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지내길 기원한다.</FONT></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9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91_STD.jpg?96"></DIV>
<P></P>
<P></P>
<P align=justify>마지막 수정방을 떠나 5km를 달려 도착한 사막 구간의 마지막 지점. 562km 지점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오면서 0km 지점은 멀고 먼 길로만 생각했는데 벌써 사막 횡단의 끝을 알리는 표석을 만나게 됐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어떻게 보면 긴 거리. 하지만 0km에서 돌아본 562km는 너무 짧은 구간이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nbsp;평생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았던 타클라마칸 사막. 염원했던 목적지이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고개를 뒤로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건넨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오상용</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사막에서 어색함, 한방에<br>무너지게 한 여배우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491</link><pubDate>2012-05-15T17:39:49+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타클라마칸 사막 남부 오아시스 마을 민펑을 지나 약 520km 사막구간을 지난다. 사막 북부 모아시스 마을 룬타이로 향한다. 꿈만 같았던 사막에서의 야영.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동료와 함께 진한 커피와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꿈만 같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한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6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68_STD.jpg?10"></DIV>
<P></P>
<P></P>
<P align=justify>사막 구간 출발 이후 맞이한 3일째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부지런히 일어나 오늘만 만날 수 있는 아침을 가슴 가득 담고 두 바퀴 여정을 이어 나간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우리.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형제들처럼 이제는 서로의 표정만 봐도&nbsp;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출발 전에 앞서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힘든 여정임에도&nbsp;서로에게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0_STD.jpg?48"></DIV>
<P></P>
<P></P>
<P align=justify>사막의 아침 기온은 41도. 계속 이어지는 무더위에 이제는 적응할 만도 한데 여전히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쫴는 뜨거운 태양에 마음 같아서는 지나가는 차라도 붙잡고 싶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996633>"형, 모래 폭풍 불고 있어요. 빨리 지나가야 할까요? 기다려야 할까요?"</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996633>"글쎄 일단 지금 힘드니까 기다렸다가 가자. 언젠가는 지나가겠지."</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시도 때도 없이 불어닥치는 모래 폭풍. 자칫 잘못해 폭풍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땀으로 범벅된 몸 구석구석을 치고 들어오는 모래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방향을 가름할 수 없는 자연의 몸부림.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녀석 덕에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구경하며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조금 아쉬운 것은 더위를 이겨 낼 시원한 물이 없는 덧,</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2_STD.jpg?7"></DIV>
<P></P>
<P></P>
<P align=justify>사막 모래 폭풍을 피해 이어진 오늘의 일정. 이번 실크로드 여정을 준비하면서 사막 구간 중간에 휴게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 점심은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미뤘다. 그런데 좀처럼 휴게소가 보이지 않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전날과는 달리 앞에 휴게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꿈에 그리던 시원한 음료와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나태함에 빠져 오히려 어제보다 더 힘든 라이딩을 이어간다. 그래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지금 이 순간. 비록 몸과 마음은 지쳐가지만 달콤한 상상에 기분만은 좋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4_STD.jpg?66"></DIV>
<P></P>
<P></P>
<P align=justify>예상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사막공로 휴게소. 중국 정부가 이곳 타클라마칸 사막 일부 지역의 유전 개발을 승인하면서 중국 대기업이 타클라마칸 사막 북부와 일부 지역 개발이 시작되었고, 사막공로를 지나 사막 남부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주유소 및 식당과 숙박시설을 갖춘 휴게실을 만들어 놓았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소식에 발 빠른 중국 상인들이 몰려들어 규모가 제법되는 사막 휴게소. 3일 만에 현대 문명으로 돌아온 만큼 최고의 식당에서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고자, 주변 상점을 돌아 가장 시원한 곳으로 정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6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65_STD.jpg"></DIV>
<P></P>
<P></P>
<P align=justify>화물차 및 유류차 기사들이 대부분 이용해서 그런지 서비스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식당. 이방인의 관심에 말조차 섞으려 않는 직원들과 사람들로 조금은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데 마침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집중하며 보고 있는 중국 드라마에서 낯익은 인물이 시야에 들어온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 진출 후 중국 전국으로 인기몰이하고 있는 장나라양. 마침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가 나오고 있어 한국 사람이라는 주제 하나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한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중국에서 인기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도 아닌 사막 한가운데서 장나라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푸는 중국 사람들. 한류 아니 장나라양 덕분에 다소 불편은 이내 사라지고 장라나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5_STD.jpg?38"></DIV>
<P></P>
<P></P>
<P align=justify>맛있는 식사와 중국 사람들과의 즐거운 대화에 이어 쉬지 않고 들이킨 얼음물과 각종 음료. 언제 다시 이 순간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꿀맛 같은 달콤한 시간을&nbsp;보낸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6_STD.jpg?93"></DIV>
<P></P>
<P></P>
<P align=justify>지금의 달콤함 순간에 빠져 있으면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자전거 여행.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오늘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있기에 서둘러 짐을 챙겨 자전거에 몸을 싣고 북쪽으로 향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장나라양 자랑으로 예상보다 늦어진 출발. 어느새 사막 한쪽으로 하루의 끝을 알리는 일몰이 시작된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7_STD.jpg?49"></DIV>
<P></P>
<P></P>
<P align=justify>사막 모래 지평선 아래로 조금씩 몸을 숨기는 오늘의 태양. 언제나 그렇듯 조금씩&nbsp;강한 기운을 잃어가는 태양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과시하듯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남은 열기를 내뱉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에 질세라 하루 반나절 태양에게 받은 뜨거운 열기를 내뱉는 사막 모래. 덕분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정오보다 뜨거운 열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nbsp;이를 저지하는 어둠과 바람의 협공으로 기분 좋은 사막에서의 일몰을 즐긴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7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79_STD.jpg"></DIV>
<P></P>
<P></P>
<P align=justify>넓은 자연 앞에서는 너무나 작은 존재. 한참 동안을 저 멀리 지평선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뒤도 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 시간.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왔을까?</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 미소를 지을 뿐이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승혜</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CDATA['보일 듯 말듯'<br>누가 찍었을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175</link><pubDate>2012-05-15T11:42:27+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인천혜광학교(시각장애)학교 사진동아리 '잠상'의 두번째 사진전 '보다'가 인천 동구 금곡동 고서적거리에 위치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nbsp;오는 23일까지&nbsp;열린다. </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공식적으로는 인천에서 처음으로&nbsp;개인소유 사진 전문 갤러리로 문을 연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첫번째 오픈 전시로 열리고 있다.&nbsp;시각장애인의 사진으로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사실 이 전시장을 꾸민 사람은 학생들의 지도교사인 사진가 이상봉씨다. 그는&nbsp;여러 번의 개인전시를 거치면서 인천에 대형 전시장만 있어 개인전을 열기에 적합한 자그마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nbsp;직접 갤러리를 마련했다. 그 첫번째 사진전을&nbsp;그의 제자들의 작품으로 전시하게 된 것이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지도교사인 이상봉은&nbsp;"보이지 않는 학생들은&nbsp;흐릿하게 볼 수 있는 저시력 학생과 팀을 이루어 사물을 언어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대화하면서&nbsp;촬영해 왔다"고 소개했다. </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사진액자 아래쪽에 붙어있는 '전맹' 또는 '저시력'이라는 메모를 보면서 '볼 수 없는데 사진을 찍었다고요? 그럼 자기가 찍은 사진도 못 본다는 건가요?' 하며 의아해 한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99>'본다는 것이 뭘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본다는 의미를 느끼고 싶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보이는 것이 일상인 일반인에게는 가슴 찡하게 하는 충격적인 질문이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항상 옆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하는 질문이다. 본다는 것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사진가 16인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지난해, 1년간 사진기를 통해 담아온 자신의 일상을 담아온 세상이다. 함께 다니며 촬영하여 만들어낸 사진을 16명 스스로가 보는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지도교사의 서평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FONT></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FONT>&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그리곤 액자 속의 사진들이 제각각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FONT></P>
<P>&nbsp;</P>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99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8997_STD.jpg?1"></DIV>
<P></P></DIV>
<DIV align=center>&nbs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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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99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8999_STD.jpg?80"></DIV>
<DIV align=center>&nbsp;</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0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02_STD.jpg?38"></DIV>
<DIV align=center>&nbsp;</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0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05_STD.jpg?2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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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0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08_STD.jpg?5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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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1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10_STD.jpg?11"></DIV>
<DIV align=center>&nbsp;</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1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11_STD.jpg?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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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2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27_STD.jpg?4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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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2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28_STD.jpg?31"></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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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2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29_STD.jpg?15"></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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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3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30_STD.jpg?1"></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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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3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31_STD.jpg?13"></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3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9033_STD.jpg?24"></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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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3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034_STD.jpg?64"></DIV>
<DIV align=center>&nbsp;</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03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035_STD.jpg?38"></DIV>]]></description></item><item><author>김은주</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잊을 수 없는 테헤란의 뚱보 아저씨]]></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17</link><pubDate>2012-05-16T15:01:0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justify>뚱뚱하고 잘 웃는 그 남자 뒤를 따라가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훈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피로감이 싹 사라지면서 기분이 극적으로 반전되는 걸 경험한 적 있는데 뚱뚱한 아저씨를 뒤따라 다니면서 난 이런 식의 다이나믹한 감정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시끄럽게 들리던 사람들의 소음도, 귀찮기만 하던 짐수레도 다 좋게만 여겨졌습니다.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와 친절함에 감동받아서 갑자기 뇌가 행복감을 느꼈기에 만사 다 좋게 여겨지는 듯했습니다.</DIV>
<P>&nbsp;</P>
<P>그를 만난 것은 테헤란 바자르에서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선물을 사기 위해 테헤란 바자르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테헤란 바자르는 중동 최대의 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골목과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진 구조였는데 이런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잃고 점점 지쳐갔었습니다. 그때 그 아저씨를 만난 것입니다. 아저씨는 정말 많은 땀을 쏟으면서 우리에게 길을 찾아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의 친절이 나를 감동시켰기에 난 테헤란 바자르를 떠올리면 가슴이 푸근해지는 기억을 갖게 됐습니다.</P>
<P>&nbsp;</P>
<P><STRONG>'이란 여자들은&nbsp;차도르 안에&nbsp;굉장히 야한 속옷을...'</STRONG>&nbsp;&nbsp;&nbsp;&nbsp;</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8_STD.JPG"></DIV>
<P></P>
<P>아침에 바자르에 들어섰을 때 처음&nbsp;본 가게는 여자들 속옷을 파는 가게였습니다. 검은 차도르 안에 이란 여자들은 굉장히 야한 속옷을 입는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속옷이 화려했습니다. 애들은 야하다고 난리였습니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런 속옷을 파는 사람이 모두 젊고 잘생긴 남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남녀를 구별해서 태우고, 외간 남자 앞에서는 머리카락도, 심지어 눈만 내놓고 다니는 이란에서 좀 모순된 풍경이었습니다.</P>
<P>&nbsp;</P>
<P>골목을 따라 아무리 걸어도 여자 속옷이나 천을 끊어서 파는 가게밖에는 안 나왔습니다. 테헤란 바자르엔 이 두 가지 물건만 파는가, 하고 생각할 때쯤 카펫가게가 나왔습니다. 꼭 카펫을 사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가격을 한번 알아봤는데 만만찮았습니다. 첫 집에서는 1300달러를 달라고 하고, 다음 집에서는 600달러를 불렀습니다. 페르시아 카펫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펫인 건 알았지만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
<P>&nbsp;</P>
<P>테헤란 바자르에선 한 골목에 한 종류의 물건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골목을 지나쳐야 견과류 골목을 발견할지 참 막연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올 때만 해도 팔팔했는데 어느덧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우린 많이 지쳤습니다. 두리번거리면서 많이 걸었고,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장시간 있다 보니 정말 피곤했습니다. </P>
<P>&nbsp;</P>
<P>시장 한가운데 있는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로 들어가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는 특이하게 테헤란 바자르 한가운데 있고, 시장의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생활에서 기도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란인이다 보니 장 보러 왔다고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P>
<P>&nbsp;</P>
<P>좁은 공간에 물건과 사람으로 넘쳐나는 정신없는 테헤란 바자르에서 벗어나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로 들어오자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 됐습니다. 모스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정오의 나른한 햇빛을 받으면서 잠깐 졸았던 것도 같습니다. 내가 쉬는 동안 아이들은 모스크 광장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만지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갖고 나서 간식을 사먹고 다시 테헤란 바자르 투어를 나섰습니다.</P>
<P>&nbsp;</P>
<P align=center><IMG id=IIE00143975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9_STD.JPG"></P>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6_STD.JPG"></DIV>
<P></P>
<P>&nbsp;</P>
<P><STRONG>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뚱뚱한 그 남자... '이게&nbsp;아닌데'</STRONG></P>
<P>&nbsp;</P>
<P>우리가 뚱뚱한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대추야자와 무화과를 사기 위해 골목골목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다가 학용품 거리, 종이 거리를 지나 장신구 거리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그는 허리띠 가게 주인인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길을 물으면서&nbsp; 아몬드, 호두, 땅콩을 영어로 쓴 종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P>
<P>&nbsp;</P>
<P>그는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알겠다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그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이제 드디어 견과류 가게를 찾는구나, 하고 안심을 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배가 불룩 나온 뚱뚱한 남자는 우리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이리저리 사람과 수레를 피해가며 잘도 걸었습니다. </P>
<P>&nbsp;</P>
<P>그리고 마침내 계단을 올라 2층 어느 집 앞에서 예의 그 웃음을 보이며 여기가 아니냐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식당이었습니다. 내가 먹는 제스처를 해 보였더니 배고픈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니라고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한 편으로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대추야자와 아몬드 사는 건 포기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 뚱뚱한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무수하게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에게 물었지만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기대를 했던 그에게서조차 결과가 이렇게 되자 이미 많이 지쳐있던 나는 기대를 접었던 것입니다.</P>
<P>&nbsp;</P>
<P>그런데 그는 다시 우리에게 자기 가게까지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사실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희망을 완전히 버렸기에 공연히 헛수고만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우리를 위해 땀을 흘리면 애쓰는 모습이 고마워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가게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와서 대신 가게를 봐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P>
<P>&nbsp;</P>
<P>뚱뚱한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해서 좀 전에 우리가 써준 영어를 읽었습니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아몬드, 월넛, 피넛, 스토아."</FONT></P>
<P>&nbsp;</P>
<P>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정말 알겠다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의 뒤를 인파를 헤치며 또 수레를 피하며 따라갔습니다. 그의 넓은 등과 가늠하기 어려운&nbsp;굵은 허리를 바라보면서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몹시 지쳐 있었는데 그런 지친 기분은 모두 달아나고 훈훈한 마음으로 변했습니다.</P>
<P>&nbsp;</P>
<P><STRONG>한 시간이 헤맨 끝에 드디어... 오래도록 남을 그의 친절&nbsp;</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5_STD.JPG"></DIV>
<P></P>
<P>사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에 견과류 가게가 없어도 상관없었습니다. 행복한 기분을 경험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갔습니다. 아마도 그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내 머릿속에서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했는지 난 행복했습니다. 지친 마음은 어디 갔는지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난 완전히 반해버린 것입니다. </P>
<P>&nbsp;</P>
<P>낯선 여행자를 위해서 자기 일도 내팽개치고, 그리고 그 뚱뚱한 몸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려면 굉장히 힘들 것인데, 그렇게 우리에게 견과류 가게를 찾아주기 위해 근 1시간은 애쓰는 그의 태도가 타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이고, 친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넘쳐나는 걸 좀 나눠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난 이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감동받았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못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P>
<P>&nbsp;</P>
<P>마침내 우리는 견과류를 파는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는 그에게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마침 밧데리가 다 돼서 찍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넉넉하고 따뜻한 미소를 가졌던 아저씨의 모습은 이란의 모습으로 아마도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노시경</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이 아름다운 건물에서 그렇게 무서운 일이...]]></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31</link><pubDate>2012-05-16T10:43:33+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이른 아침에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출발한 기차는 정연하게 정리된 초원을 지나고 또 지난다. 기차 안에서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신영이는 공책과 함께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든다. 신영이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여행기로 남기고 있다. 아내는 그 옆에서 밀린 잠을 자고 있다. 낮은 구릉에는 밀이 자라고 혹은 양들이 놀고 있다. 기차는 불과 4시간 만에 런던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에 도착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6_STD.jpg?7"></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신영이는 킹스 크로스 역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킹스 크로스역은 영화 &lt;해리포터&gt;(Harry Potter)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Hogwarts)로 통하는 플랫폼이 있던 역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가 기차를 탔던 킹스 크로스 역의 9 3/4 플랫폼에는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nbsp;신영이는 기차를 타고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9번 플랫폼 쪽으로 들어서려면 기타 승차권을 가지고 자동 검표기를 통과해야 했다.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었는데 신영이가 런던까지 올 때 사용했던 기차표를 개찰구에 넣고 플랫폼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신영이는 9번 플랫폼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며 잠시 서성였다. 신영이 머리 속에는 영화 &lt;해리 포터&gt; 속의 상상력이 다시 재연되고 있었을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런던 해머스미스(Hammersmith) 지하철역 부근 호텔에 짐을 맡기고 지하철 피카딜리 (Piccadilly)라인을 탔다. 지하철 안은 일요일 오후라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오늘의 목적지 런던 타워는 오후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나는 과거 런던 배낭여행 당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라는 배낭족의 바이블을 들고 다녔다. 그 여행서에 '런던에서 한 곳만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한다면, 그곳은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다'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런던 초행길이었던 나에게 런던에는 볼 곳이 많았고, 입장료가 비쌌던 런던 타워는 여행 일정에서 제외됐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무시무시한 사자가 지키고 있는 성</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7_STD.jpg?5"></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템즈(Thames) 강 북단, 타워 힐(Tower Hill)역을 나와서 연결통로를 나오자 런던 타워의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족들의 발길을 재촉해 런던타워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검색했던 정보와는 다르게 런던 타워는 오후 5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돼 있었다.&nbsp;런던타워의 누리집을 검색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아쉽지만 더 열심히 둘러보기로 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런던 타워의 거대한 성벽을 보면서 밀려오는 기대감에 입장료가 비싼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신영이에게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걸어줬다.&nbsp;신영이는 런던 타워에 늦게 입장하면서 성안을 가이드 해주는 비피터(Beefeater)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는 게 불만이다. 하지만 쾌활한 성격의 신영이는 금새 런던 타워 답사를 신나게 시작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8_STD.jpg?33"></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설레는 기분으로 런던 타워 입구의 해자를 건너려는데 합성고무로 만든 사자상이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진짜 사자인양 서 있는 사자상 앞에는 구덩이가 파여 있다. 중세 시대에 이 성을 침입하던 적들은 이 구덩이에 빠져서 사자 밥이 됐다.&nbsp;먹이를 노리는 사자들의 눈이 내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나는 사자들 앞에 놓인 '무시무시한 성 입구'라는 안내문을 읽었다.&nbsp;대한민국의 성장한 국력을 상징하듯 영어와 함께 한국어가 병기돼 있다.&nbsp;중세 당시 런던 타워 입구에는 활을 쏘는 궁수들이 성벽을 단단히 방어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방문한 침입자가 궁수들을 피해 깊은 물 가득한 해자를 건너더라도 게이트 타워 앞에서 위로 들리는 다리인 도개교(跳開橋)를 만나게 돼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도개교 아래에 진짜 사자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 후기의 국왕들은 도개교 건너편의, 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사자타워 감시 망루에서 사자와 같은 야수들을 키웠다. 도개교를 연결하는 핀을 풀어버리면 도개교가 들리면서 침입자는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고 바로 사자 밥이 됐던&nbsp;것이다.&nbsp;울부짖는 사자들은 당시 런던 타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국의 왕을 상기시키는 동물이기도 했다. 중세 영국 왕실을 지키던 영국 군대의 상징 문장이 세 마리의 사자로 이뤄졌기 때문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런던 타워에 사자들이 으르렁거렸다는 것은 단지 전해 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1936년에 고고학자들이 라이온 타워와 도개교 구덩이를 발굴했을 때 600년 이상이나 된 사자의 두개골 뼈가 발굴됐기 때문이다.&nbsp;런던 타워의 성문 입구를 지키던 사자들은 1832년에 런던 리젠트 공원(Regent Park)의 동물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물을 가득 채워 적이 성벽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던 해자에는 물이 모두 빠져 있고 짙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나는 해자를 건너면서 생각해 보았다. 해자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런던 타워가 더 운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과거 모습 그대로 돌려놓는 것이 제대로 된 복원이기 때문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지금은 평온한 비극의 무대</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9_STD.jpg?12"></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런던 타워 내부는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넓었다. 왜 이 거대한 성이 '타워'라는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11세기에 노르만의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Ⅰ)가 화이트 타워와 함께 3개의 탑을 지은 이후 영국의 역대 국왕들은 런던 타워를 확장시켜 총 13개의 타워를 건설했고 그 타워들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였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nbsp;이 아름다운 런던 타워의 커다랗고 높은 담은 감옥의 담장을 연상시킨다. 런던 타워가 세워진 11세기 초 이후 왕의 거주지로 사용됐던 런던 타워는&nbsp;17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주로 감옥으로 사용됐기 때문일 것이다.&nbsp;이 런던 타워 감옥 안에는 신분이 높은 왕족과 국사범(國事犯)들이 주로 투옥됐다고 한다.&nbsp;영국의 왕좌를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인사들은 이곳에서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영국의 역사를 읽고 나면 이 런던 타워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는 피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510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0_STD.jpg"></DIV>
<P></P>
<P align=justify>비극의 무대는 지금 평화롭기만 하다. 나는 런던 타워 안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눈길로 둘러봤다.&nbsp;반나절을 보내도 충분할 정도로 타워 안에는 다양한 중세의 건축물이 있고 그 건물마다 이야기가 녹아 있다.&nbsp;나는 어느 건물의 역사 속으로 먼저 들어갈지 정해야 했다. 런던 타워 내에서는 가장 크고 핵심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화이트 타워다. 외벽을 하얗게 칠했다고 해서 '화이트 타워(white tower)'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성에 비하면 실로 단순한 이름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약 1000여 년 전에 지어진 화이트 타워는 높이가 30미터인데, 그 당시에 런던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타워 꼭대기의 빛 바랜 원형 청동지붕이 화이트 타워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화이트 타워 입구는 묘하게도 검은 목재 계단으로 1층을 올라서 건물 외벽에 난 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돼 있다.&nbsp;화이트 타워의 웅장한 벽면을 올려다보며 입장을 하기에 화이트 타워가 더욱 커 보인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화이트 타워 안으로 들어섰다. 화이트 타워 안에는 영국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헨리 8세(Henry VIII)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화이트 타워 안을 돌다보니 헨리 8세의 갑옷이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nbsp;이 갑옷은 헨리 8세가 젊었을 적에 입었던 도보용 갑옷(Foot Combat Armour)이다. 이 갑옷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마상전투용 갑옷이 아니라 도보전투 전용 갑옷인데 헨리 8세가 전투에서 입기 위한 갑옷은 아니었다. 이 갑옷을 입으면 말을 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갑옷이 온몸을 막아서 공기도 통하지 않고 관절을 꺾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갑옷을 오래 입고 있으면 질식해서 죽었을 듯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헨리 8세의 위엄... 도끼에 놀란 가슴</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1_STD.jpg?66"></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상당히 거구였던 헨리 8세답게 갑옷도 다른 왕의 갑옷보다 아주 크다. 바로 옆에 예술품같은 외모의 찰스 1세 갑옷과 비교해 봐도&nbsp;위풍당당하게 생겼다. 이 갑옷을 보면 2미터의 키에 2백 킬로그램의 거구를 자랑했던&nbsp;헨리 8세가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있는 듯했다.&nbsp;그는 결혼을 여섯 번이나 했지만, 두 명의 부인을 화이트 타워 앞의 사형장에서 목을 쳐 죽일 정도로 냉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2_STD.jpg?4"></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화이트 타워 안에는 영국의 역대 왕들이 사용했던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nbsp;왕의 칼과 총, 마구들을 보다 보니 유독 잔인함이 느껴지는 유물이 있다. 영국의 사형 집행인들이 왕비 등 사형수의 목을 칠 때 썼던 도끼와 처형대가 한 전시관 안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조선 같이 왕비들에게 사약을 내려 죽음의 예우를 갖춰 준 것도 아니고, 도끼로 왕비들의 목을 내리쳤던 유물이니 전율이 느껴진다. 나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가늘고 긴 목이 걸쳐졌을&nbsp;처형대와 그녀의 목을 베었을 도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4_STD.jpg?77"></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나는 도끼의 잔상이 머리 속에 남은 채로 화이트 타워의 밖으로 나왔다. 화이트 타워 앞에 녹색의 싱그러운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잔디밭은 타워 그린(Tower Green). 타워 그린은 이름과 달리 영국 역사 속 인물들의 잔혹함을 보여줬던 악명 높은 곳이다. 이 타워 그린에서만 총 7명이 사형을 당했는데, 그 중에 영국 사람들의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천일의 앤 불린'이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타워 그린 뒤편으로 들어서니 짙은 갈색의 목재와 하얀 벽면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퀸즈 하우스(Queen's House)가 눈앞에 나타난다. 내 머리 속에 이 퀸즈 하우스 1층에 유폐됐던 앤 불린의 모습이 들어왔다.&nbsp;그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간통죄에 몰려 처형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 퀸즈 하우스에는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아내였던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도 갇혀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이 왕비들은 사촌 간이었다. 사촌 자매를&nbsp; 아내로 두고 결국은 모두 참수해버린 헨리 8세의 잔인함은 놀라움을 넘어선다. 조선 왕조가 양반사회를 유지하기 위해&nbsp;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nbsp;헨리 왕이 지배하던 영국 왕조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부부는 살다 보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다툼이 큰 싸움이 되고 헤어지기까지 한다. 지금이야 여권이 신장돼&nbsp;여성들이 제기하는 이혼소송도 다반사지만, 왕정국가에서 왕을 남편으로 둔 여인은 부부싸움을 해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헨리 8세는 3년을 같이 한 아내의 목을 벨 정도로 분노에 차 있었던 같다. 하지만 앤 불린의 처형 이후에도 이어지는 헨리 8세의 여성편력과 괴팍함을 보면 왕비로서의 앤 불린의 삶은 고단했을 것 같다.&nbsp;&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퀸즈 하우스의 평범한 방에서 앤 불린은 무시무시한 눈앞의 처형장을 봤을 것이다.&nbsp;그녀는 처형자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형되는 죄수들의 모습도 봤을 것이다. 그리고&nbsp;앤 불린은 자신을 죽이려는 처형대를 만드는 모습도 지켜보고 밤새 타워 그린에 처형대를 만드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영화 &lt;천일의 스캔들&gt;에서 사형대로 올라가던 앤 불린(나탈리 포트만 분)의 모습이 퀸즈 하우스 앞에 겹쳐졌다. 천일 동안 왕비로 있던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해 누명을 쓰고 마녀가 됐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앤 불린은 그녀가 보았던 것과 같이 타워 그린의 처형대에서 목이 잘려나갔다. 1536년 5월, 앤 불린에 대한 처형은 그야말로 단칼에 끝났다. 그녀가 죽자 런던 타워에 설치된 총포는 불을 내뿜으며 일제히 왕비의 죽음을 알렸다. 앤 불린을 처형한 날, 헨리 8세는 진수성찬을 즐기며 누구도 앤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야 많은 영국인들이 헨리 8세를 이야기 거리로 삼으며 즐기지만 당시 헨리 8세는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앤 불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왕비의 목이 잘리던 날... 하늘은 파랬다</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5_STD.jpg?14"></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그녀가 죽음을 당한 때는 계절의 여왕, 5월이었다. 한참 아름다운 5월. 그녀는 타워 그린에서 목이 잘렸다. 그녀가 참수 당하던 날, 평소에 흐리고 비 내리기로 유명한 런던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고 한다.&nbsp;그래서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슬프도록 푸른색은 역설적이게도 '앤 블루(anne blue)'라고 부른다. 지금도 그녀가 처형당한 날이 되면 런던 탑 주변에는 자신의 잘린 목을 팔에 끼고 마차를 몰고 달리는 앤 불린의 유령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유령 이야기에는 안타깝게 목이 잘려나간 왕비에 대한 동정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무소불위의 권력, 헨리 8세도 앤 불린이 처형당한지 11년 후인 1547년 1월에 런던 타워의 화이트 타워에서 사망한다. 그후 런던 타워는 앤 불린의 죽음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죽은 후 몇 세기 동안 앤 불린과 헨리 8세의 이야기는 영국의 예술 작품에 다양한 영감을 줬다고 한다.&nbsp;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의 정점에 섰던 앤 불린의 처참하고 극적인 죽음은 영국 대중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앤 불린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흐린 하늘 안에 검은 먹구름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람은 시원했다. 런던 타워 안의 잔디밭은 더 없이 푸르렀다. 나는 아내, 신영이와 함께 아름답기만 한 런던 타워 곳곳의 답사를 계속 하기로 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박용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조국은 항일 선열 이중화를 기억하지 않았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19</link><pubDate>2012-05-16T14:53:52+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left>"말을 바르고 옳게 하고, 글을 바르고 옳게 써서 우리의 정신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를 튼튼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빛이 널리 퍼지면 우리는 다 같이 그 때에 우리가 우리의 할 바를 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nbsp; - 이윤재, &lt;표준 한글사전&gt;의 머리말 중.</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이중화의 말이다.&nbsp;우리 민족의 분발을 촉구하였던 항일 선열 이중화는 조국을 온 몸으로 사랑하였으나, 조국은 그를 기억해 주지 않았다. 여기서 소개하는 이중화(李重華, 1881-1950? 호는 동운)는 일제시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정국시기에도 우리나라를 반듯하게 세운 활동을 한 애국지사였다. </P>
<P align=left><BR><IMG id=IIE001439499 hspace=15 align=lef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99_STD.jpg"></P>
<P align=left>그러나 6·25전쟁 도중인 1950년 7월 24일 서울 종로에서 인민군에 납치되어 납북된 뒤, 이후 그의 업적은 매몰되었다.(인터넷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납북자 명단에 나옴.)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납북될 당시의 나이가 70세였다. 그의 후손들도 빈곤에 허덕이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그런 관계로 지금까지 선열을 제대로 예우할 수 없었다.</P>
<P align=left><BR>필자는 최근에 조선어학회의 항일 선열을 정리하는 도중 항일투쟁을 활발히 하였음에도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한 이중화 선생을 발견하였다.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이중화는 1881년 한성시 징청방 두석동(현재 종로1가)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에 10년간 한문을 배웠다. 1899년 9월 민영환이 설립한 흥화학교에 입학한 뒤에 영어와 지리와 역사 과목을 수학하였다. 특히 남궁억 교사에게 영어를 배웠다. 1903년 6월 흥화학교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흥화학교가 폐교되자, 그 해 11월 배재학당에 조선어와 역사지리 교사로 부임하였다.(&lt;배재학보&gt;제일호, 1918, 33쪽) 주시경과 함께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P>
<P align=left><BR>배재학교에서 3·1운동 때 독립선포문을 작성하여 배포한 혐의로 그는 교사 강매, 김진호, 김성호와 학생대표 김병호 등 18명과 함께 일제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nbsp;아울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출신 이일선과 독립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인쇄하여 외국인의 집에 배포하기도 하였다.(&lt;배재80년사&gt;, 1965, 448쪽.) 이후 1935년까지 배재학교에서 근속한 뒤, 같은 해 경성 여자 미술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P>
<P align=left><BR>그는 1910년 일제 강점시기부터 그들의 강압통치에 불만을 품고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였다. 조선어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1936년 4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조선어사전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8월에는 조선어 표준말 사정위원회의 제3회 독회에 참여하였고, 표준어 제정의 수정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에도 참여하였다.</P>
<P align=left><BR>일제가 일으킨 조선어학회 사건에 그도 연루되었다. 1942년 10월 1일 서울에서 체포되어 함남 홍원경찰서와 함흥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때 나이가 62세였다. 일제는 환갑이 넘은 연로한 인사도 구속하여 구타하고 고문을 자행하였다. 아들 이순호와 며느리 지명식(현재 92세)씨가 함흥감옥에 면회를 갔을 때, 그는 감옥 생활의 고통을 얘기하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이는 지명식씨가 자식인 이봉수(이중화의 직계손자, 현재 56세)에게 전한 이야기다.&nbsp; </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5_STD.jpg"></DIV>
<P></P>
<P></P>
<P align=left>1945년 1월 16일에 이중화는 일제로부터 1심 판결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일제는 예심종결결정문에서 이중화가 "조선어학회가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인 줄을 알면서도 사무원이 되어 조선독립의 목적을 위해 수행한 점과,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는 조선어사전 편찬에 종사한 점이 일제의 치안유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기술하였다. 형기를 모두 마친 뒤 1945년 1월에야 석방되었다. 나이 65세에 풀려났다.</P>
<P align=left><BR>한편 일제시기에 그는 3권의 책을 저술하여 우리 민족에 기여하였다. &lt;경성기략(京城記略)&gt;(1918)은 그가 일제시대 조선의 서울인 경성의 역사를 방대한 문헌에 의거하여 기술한 책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에 조선으로,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 대신에 경성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하였다.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그는 책 저술의 배경으로 서울의 명승고적이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훼손됨을 안타까워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적이 보존되기를 염원하여 이를 기술하였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그는 백제 온조왕 때부터 도읍지 역할을 한 서울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전부 서술하였다.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점령과 고려조 남경의 역사, 조선조 한성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기술하였다. 아울러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다만 이 책의 한계는 일제의 총독정치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는 그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면서 극복해 나갔다.<BR></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6_STD.jpg"></DIV>
<P></P>
<P></P>
<P align=left>두 번째 저술인 &lt;경주기행&gt;(1922)은 저자가 배재고보 교원시절인 1918년과 1920년에 걸처 경주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방대한 역사문헌에 의거해 서술한 것이다. 아울러 신라인의 종교, 미술, 무용(武勇)까지 기술한 점에서 미루어 보면 신라문화유산답사기로 볼 수 있다. </P>
<P align=left><BR>그는 머리말에서 "'기번'에 비기지 못할지로대 김부식의 저서를 읽는 선비여, 조선의 로마라 일컬을 경주에 유람하는 사람들이여, 기왕에 찬란한 우리 미술의 장관이 다시 재현케 함을 도모하기 원하노라"라고 썼다. 아울러 그는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무열왕과 문무왕의 공훈과 김유신의 업적만을 드러내서는 아니된다고 일침을 가하였다. 신라인들이 진취주의의 기상을 유지하는 높은 품성을 가졌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한 마음을 유지하여 나라를 위하였기에 통일의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점은 일제시대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P>
<P align=left><BR>&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7_STD.jpg?81"></DIV>
<P></P>
<P></P>
<P align=left><BR>세 번째 저술인 &lt;조선의 궁술&gt;(1929)은 조선궁술연구회가 조선역사학계의 권위자였던 이중화에게 편찬을 부탁하여, 그가 저술한 명저이다. 조선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활과 화살에 대해, 활쏘기에 대한 일을 방대한 역사문헌에 의거하여 서술하였다. 아울러 1백여 명에 달하는 활쏘기의 달인들의 일화까지 수록하였다. 더욱 빛나는 부분은 활과 화살에 관련된 수많은 어휘를 수집하여 우리말로 뜻풀이를 한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조선민족의 꺾이지 않는 기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책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lt;새롭게 읽는 조선의 궁술&gt;(이성곤 옮긴이, 국립민속박물관, 2008)로 쉽게 풀이되어 나왔다. </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8_STD.jpg"></DIV>
<P></P>
<P></P>
<P align=left><BR>해방 뒤 그는 다시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lt;조선말 큰사전&gt; 편찬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큰 사전에 실린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제도와 음식에 대한 용어를 그가 풀이하였다. 1948년 한글학회가 재단법인으로 설립될 때, 학회를 위해 경기도 부천에 있는 9962평에 달하는 토지를 기증하였다.(&lt;한글&gt;107, 1949, 71쪽) 1949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은 인사들이 조직한 십일회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9_STD.jpg?38"></DIV>
<P></P>
<P>아울러 그는 한글학회의 후원재단인 '한글집'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48년부터 국학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였다.(이상의 이중화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서술은 이강로의 ｢동운 이중화 스승｣(&lt;조선어학회수난 50돌 기념 글모이&gt;, 한글학회, 1993.)을 참조하여 작성함) 학장으로 재임 도중에 6·25전쟁 때 인민군에 납치되었다. </P>
<P>&nbsp;</P>
<P>아들 이순호는 아버지 이중화가 '학교에 나가신 뒤에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말을 최호연(당시 조선어학회에서 이중화와 함께 근무함)에게 하였다고 한다.(최호연, &lt;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gt;하, 진명문화사) 아직까지 생사확인도 알지 못한 상태에 있고,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포상하나 받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정부 기관은 그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길 바란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임윤수</author><category>책동네</category><title><![CDATA[암을 알고 자연을 알면 완치할 수 있다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41</link><pubDate>2012-05-16T16:10:3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4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48_STD.jpg"></DIV>
<P></P>
<P></P>
<P>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숫자놀음을 하듯이 어림하면 '한 번 해보는 것이 만 번을 듣는 것보다 낫다'라고 옮겨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P>
<P>&nbsp;</P>
<P>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부동의 1위는 '암'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남의 이야기만 될 수 없을 정도로 흔한 것이 되었으니 참으로 암울(癌鬱)한 시대, 암이 빼곡한 시대입니다. 암이 빼곡한 시대, 아직은 난치병이라고 하는 시대이지만 암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암을 극복하면서 걸었거나 걷고 있는 길이 있습니다. </P>
<P>&nbsp;</P>
<P>이들이 걸었던 길은 '자연치유'의 길, 만 번을 듣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은 '자연치유'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치유'를 행(경험)해본 사람들, 암에 걸린 사람들을 자연치유로 호전시키거나 완치시키고 있는 현직 의사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P>
<P>&nbsp;</P>
<P><STRONG>암·난치병의 자연치유 그 두 번째 열쇠,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STRONG></P>
<P>&nbsp;</P>
<P>조병식, 임부돌 지음, 왕의서재 출판의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은 현직 의사인 저자가 2010년에 출간한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640 hspace=15 align=lef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40_STD.jpg"></DIV>
<P></P>
<P></P>
<P>2010년에 출간한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가 '자연치유는 이런 것이다'라는 정도의 소개와 몇몇 사례를 모은 내용이라면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는 먼저 책에서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부분, 자연치유에 대한 과학적 비결과 근거들을 의학적 데이터로 정량화해 설명하고 있습니다.&nbsp; </P>
<P>&nbsp;</P>
<P>저자 조병식은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10여 년간 개원의의 길을 걷다 서양의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2005년 9월에 병원을 정리하고 산으로 들어가 자연의원을 개원합니다. 그 후 7년 동안 자연의원에서 암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며 현대의학과 서양의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치유법을 찾아갑니다. </P>
<P>&nbsp;</P>
<P>그렇게 찾아낸 치유법이 '자연치유'이며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는 이러한 자연치유 결과를 과학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7년 동안의 임상보고서입니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자연치유는 더 이상 대체의학이 아닌 맞춤형 미래의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nbsp; </P>
<P>&nbsp;</P>
<P><STRONG>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암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어</STRONG></P>
<P>&nbsp;</P>
<P>암울(癌鬱)한 시대, 암을 발병시키는 인자들이 복병처럼 빼곡하게 널린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암의 실체는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하게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불치병이나 난치병 정도로만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P>
<P>&nbsp;</P>
<P>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에서는 암의 실체, 암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의학전문용어들로 주절주절 설명하는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평소에 우리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눈높이의 설명이지만 논리적이라서 체계적으로 알게 됩니다.&nbsp; </P>
<P>&nbsp;</P>
<DIV align=left><FONT color=#333399><IMG id=IIE001439644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44_STD.jpg"></FONT></DIV>
<P><FONT color=#333399></FONT></P>
<P><FONT color=#333399></FONT></P>
<P><FONT color=#333399>암세포는 99.9%가 죽어도, 0.1%가</FONT> <FONT color=#333399>살아남아 다시 자란다. 암의 크기가 1g만 되더라도 암세포 수는 10억 개인데, 99.9%가 죽고 0.1%가 살아남는다면, 100만 개나 살아 있는 셈이다. '암근원 세포'는 독한 항암제를 쓰더라도 잘 죽지 않는다. 내성이 생겨 죽지 않은 돌연변이 암세포는 또 다시 세포 복제를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항암제로는 결코 암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 22쪽</FONT></P>
<P>&nbsp;</P>
<P><FONT color=#333399>우리 인체는 놀라운 치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손가락이 베었을 때 통증을 느끼고 지혈을 시킨다. 그러면 몇 분 내로 혈소판의 자용으로 지혈이 되고 더 이상 피가 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24시간 이내에 염증반응이 생긴다. 백혈구가 상처 부위에서 침입을 막고 이미 있거나 죽어가는 세포를 정리하기 위해 생긴 면역 반응이다. 그 다음에는 육아 조직이 차고 새로운 혈관이 생긴다. -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 36쪽</FONT></P>
<P>&nbsp;</P>
<P><FONT color=#333399>암은 기원전부터 '암(癌)'이라는 단어로 사용돼 왔다. 이 한자를 들여다보면 '입에 산처럼 쌓여서 생긴 병' 즉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이라는 거다. 지금도 암의 원인 중 35%를 잘못된 식생활로 보고 있으니, 이전부터 암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암세포는 DNA 변이로 생긴 것이다. 정상적인 세포가 발암물질이나 발암 바이러스, 방사선에 의해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괴상망측한 세포로 변한 것이다. 일종의 변이세포다. -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 45쪽</FONT></P>
<P>&nbsp;</P>
<P>읽다보면 암의 실체를 알게 되고 자연치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됩니다. 앞에서 끌어주듯이 암의 실체를 알려주고, 뒤에서 밀어주듯이 자연치유에 대한 개념, 방법, 효과, 사례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P>
<P>&nbsp;</P>
<P></P>
<P></P>
<P>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막막하기만 했던 암의 실체를 알게 되니 암 역시 난공불락의 불치병만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암을 극복하거나 치유해 나가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여정에 동행을 하다 보면 그들이 터득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3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38_STD.jpg"></DIV>
<P></P>
<P></P>
<P><FONT color=#333399>명심할 부분은 4기라고 해서 다 말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병기가 4기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4기를 말기라고 하지만 임상적으로 말하는 말기(Termanal)는 악액질 상태가 완연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그래서 4기라고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암은 기본으로 전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른 장기로 옮겨갈 수 있다. 2기, 3기, 4기의 차이는 전이된 암세포가 성장해 눈에 보이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의 차이에 불과하다. -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 49쪽</FONT></P>
<P>&nbsp;</P>
<P>2010년에 출간한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가 이렇듯 '자연치유는 이런 것이다'라는 정도의 소개와 사례를 모은 내용이라면 신간으로 나온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는 자연치유가 주먹구구식, 재수 좋으면 얻는 주술적 결과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맞춤형 의학이라는 것을 정량적 데이터와 임상 결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nbsp; </P>
<P>&nbsp;</P>
<P><FONT color=#333399>이들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필자가 20년 동안 배우고 임상을 해온 서양의학은 급성질환이나 국소치료에는 뛰어나지만, 만성적인 전신질환과 정신적인 치료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반대로 동양의학은 모든 장기와 조직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정체관념(整體觀念)으로 접근함으로써 만성적인 전신질환에는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반면, 국소적인 치료와 정신적인 치료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또한 단전호흡과 기수련은 호흡이나 일념력(一念力)으로 기를 순환시켜 건장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 143쪽</FONT></P>
<P>&nbsp;</P>
<P><STRONG>자연치유, 지푸라기가 아닌 치유의 강을 건너게 해주는 나룻배</STRONG></P>
<P>&nbsp;</P>
<P>자연치유는 서양의학처럼 수술하고, 방사선을 쬐고, 화학(약물)치료만이 전부인 지극히 인위적인 치료가 아니라 천혜의 종합병원인 땅과 숲에서 암을 치료하는 좋은 산소를 마시고, 최고의 해독제인 좋은 물을 마시며 햇빛 비타민을 쐬며 자연과 더불어 하는 치유입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4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47_STD.jpg?47"></DIV>
<P></P>
<P></P>
<P>자연치유는 더 이상 암 환자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택하는 최후의 선택이 아니라 환자의 몸을 해독시키고, 면역력을 키우고, 체력을 증진시키며 치유의 강을 건너게 해줄 나룻배가 될 것입니다.&nbsp; </P>
<P>&nbsp;</P>
<P>치유된 사람들이 들려주는 고백 같은 수기, 매뉴얼처럼 상세한 프로그램, 부록으로 들어가 있는 '제철 밥상'과 '약선 요리'는 나룻배를 노 젖는 사공의 이마에 맻힌 땀방울만큼이나 감동적이고도 생생합니다.&nbsp; </P>
<P>&nbsp;</P>
<P><FONT color=#333399>끝으로 환우들에게는 치유에 대한 입장을 바로 세워 몸과 마음에 만들어진 병을 극복하기를 바라고, 의료인들에게는 의료인으로서의 입장을 바로 세우고, 그 도리를 다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 287쪽, 에필로그 중에서</FONT></P>
<P>&nbsp;</P>
<P>도리를 다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 현직 의사 조병식 지음, 왕의서재 출판의 &lt;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gt;와 &lt;조병식의 자연치유 2&gt;는 건강한 사람들에겐 암과 자연치유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고, 암에 걸려 있거나 치유 중인 환우들에겐 난치를 완치로 안내해주는 희망의 등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임현철</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여수엑스포, 이것 보면 '본전' 생각 안 난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57</link><pubDate>2012-05-16T14:10:0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4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40_STD.jpg?12"></DIV>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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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일, 국제 미디어센터 앞에서 처음 대면한 2012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손혁기 홍보기획과장은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이었다. 게다가 턱 수염까지 더부룩하게 자라 있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묵묵히 일하는 조직위 사람을 알고 싶은 탓이었다. 그와 함께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갔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수염, 시간이 없어 못 자른 건가요? 취향인가요?"</FONT></P>
<P><FONT color=#996633>"집에 보내달라는 무언의 시위입니다. 하하~"</FONT></P>
<P>&nbsp;</P>
<P>그는 걸으면서 쉼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바다 위에 들어선 주제관을 보며 의자에 앉았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저 바다 보세요. 깨끗하죠? 박람회 전에는 얼마나 더러웠다고요. 지금은 깨끗이 정화돼 이렇게 된 겁니다."</FONT></P>
<P>&nbsp;</P>
<P>그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손혁기 과장과의 인터뷰는 여수 엑스포의 주제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임을 알리듯 바다를 바라보며 시작됐다. </P>
<P>&nbsp;</P>
<P><STRONG>"박람회, 아이들이 꿈 키워갈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4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41_STD.jpg?13"></DIV>
<P></P>
<P></P>
<P><FONT color=#333399>- 박람회가 개막되기까지 조직위 당사자로 있었던 마음 부담은?</FONT></P>
<P>"2008년 처음 조직위 홍보담당으로 왔을 때 '관람객이 보러 올까?', '얼마나 올까?' 싶었다. 차츰 스카이타워, 빅오, 전시관 등이 하나하나 완성되는 걸 보고 박람회 관람을 놓치면 안 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런 만큼 여수 엑스포는 꿈꾸는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곳이다.</P>
<P>왜냐하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여행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람회는 자녀를 여행시키는 목적 몇 개가 합쳐진 콘텐츠이다. 박람회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한 곳에서 접하고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여수 엑스포를 준비하며 아쉬웠던 점은?</FONT> </P>
<P>"박람회가 실전이라 그런 생각할 새가 없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느라 여념이 없다. 엑스포 시작 전 강동석 위원장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세계적인 국제행사가 시작되면 하루가 한 달 같을 것이다. 그 전에 열심히 준비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라고 했다. 막상 엑스포가 시작되니 정말 하루가 한 달 같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박람회 개막 3일째인 14일 비가 왔다. 이때 심정은?</FONT></P>
<P>"4월 28일, 5월 2일, 5월 5일 3차에 걸친 예행연습 때 미진했던 부분들을 많이 보완했다. 천운인지 관람객이 적게 온 14일 비가 왔다. 인파가 몰렸을 때 비가 왔다면 보완에 헤맸을 것이다. 이때 보완했던 게 국제관 앞길의 미끄러움이다. 무척 다행이었다." </P>
<P>&nbsp;</P>
<P><STRONG>"엑스포 관람, 해외여행처럼 준비해야... 빅오 꼭 봐라"</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4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42_STD.jpg?14"></DIV>
<P></P>
<P></P>
<P><FONT color=#333399>- 여수 엑스포를 즐기려는 관람객의 자세는?</FONT></P>
<P>"해외여행 떠날 때 누구나 '어느 나라를 갈까?', '어느 지역을 볼까?' 코스를 짜고 환전에서부터 준비물까지 꼼꼼히 챙긴다. 박람회도 외국 여행 준비 때와 같다. 국제관을 선택할 땐 자신이 가고 싶은 국가 몇 개를 선택해 보면 좋다. 또 자신이 선택한 국가관에서 무엇을 봐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전시관 중 꼭 보고 싶은 곳 2개를 선택해 예약한 후 틈틈이 공연 등을 챙겨보면 효율적이 될 것이다. </P>
<P>&nbsp;</P>
<P>특히 빅오(Big O)는 꼭 봐야 한다. 빅오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의 얼굴 표정은 차이가 크다. 빅오를 안 본 사람은 '내가 다시 오나 봐라' 말하지만, 본 사람은 '10만 원도 아깝지 않다'며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게 빅오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여수 엑스포에서의 추억을 효과적으로 남기는 방안은?</FONT></P>
<P>"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다. 경관이 멋진 곳이라면 자연을 배경으로 혼자 사진을 찍어도 좋지만 엑스포는 자연보다 이벤트 중심이다. 사람과 전시관을 중심으로 한 사진을 남겨야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 의상을 입은 분이나 복장이 특이한 분들과 함께 사진 찍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관람객들은 영상 일색 전시관이라며 흥미 없어 하기도 한다. 흥미를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는 관람 방법은 없을까?</FONT></P>
<P>"전시관이 영상 위주로 구성되지 않았다. 다만, 사전 지식이 없어 무조건 들렀던 곳들이 영상으로 구성되었을 뿐이다. 박람회 홈페이지나 다녀간 블로그의 글 등을 참고해서 영상 전시관과 체험 전시관을 반반씩 적절하게 섞어 관람하면 '그게 그거', '볼 게 없다'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공부가 필요하다."</P>
<P>&nbsp;</P>
<P><FONT color=#333333><STRONG>박람회 관람, 편한 복장과 틈틈이 체력 안배 필요</STRONG></FONT></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543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43_STD.jpg?93"></DIV>
<P></P>
<P></P>
<P><FONT color=#333399>- 아이들이 박람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꿈은?</FONT></P>
<P>"1970년 열린 오사카 박람회는 만박(만국박람회)이라고 한다. 당시 만박은 6400여 만 명이 관람했는데, 이를 보고 자란 세대를 만박세대라 부른다. 이 세대 중 한 명인 '다나카 고이치'는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또 만박은 일본 만화 &lt;20세기 소년&gt;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으며, 만박을 본 아이와 못 본 아이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여수 엑스포를 통해 꿈을 키우고 해양과 바다가 우리의 미래라는 소중한 생각을 갖길 바란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박람회장에 들어서면 미숙한 느낌이다. 어느 정도 안정 되었나?</FONT> </P>
<P>"상해 박람회가 체계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 여수 엑스포는 이제 4일이 지난 상태다. 참고로 세계 각국에서 열린 박람회 사례로 볼 때 여수 엑스포도 아직 멀었다. 앞으로도 장마와 태풍 대비, 관람객 폭주 등이 고민이긴 하지만 2주 정도 지나야 체계가 안정될 것 같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여수 박람회를 효과적으로 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FONT></P>
<P>"선크림, 모자, 선글라스, 편한 신발, 편한 옷 등의 복장은 기본이다. 그리고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랫동안 관람하는 관계로 틈틈이 쉬는 체력안배가 필요하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하고 싶은 말은?</FONT></P>
<P>"흥행 여부 등 우려가 있다. 이 모든 건 관람객이 많으면 다 풀릴 것이다. 그렇지만 흥행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부유한 아이들은 걱정 없다. 하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은 엑스포 관람이 힘들다. 지자체와 정부, 기업 등이 펼치는 '엑스포 표 예매 캠페인'도 좋다. 이 보다 먼저 박람회를 볼 수 없는 아이들을 향한 '엑스포 보내주기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4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44_STD.jpg?33"></DIV>]]></description></item><item><author>이돈삼</author><category>여행</category><title><![CDATA[가마솥에서 덖고 비비고 말린 '야생본색']]></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01</link><pubDate>2012-05-16T11:34:2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0_STD.jpg"></DIV>
<P></P>
<P></P>
<P>깜짝 놀랐다. 차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차나무는 파릇파릇 새순을 틔우며 하얗고 소담스런 차꽃까지 붙들고 있었다.</P>
<P>&nbsp;</P>
<P>그뿐 아니었다. 사방에 차나무가 자라고 차밭이 펼쳐졌다. 요사채 앞도, 산비탈도, 계곡 주변도 온통 차밭이었다. 가지런히 정렬도 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편안하게 뿌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잡풀을 뽑아준 것 외에 부러 가꾸거나 꾸민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P>
<P>&nbsp;</P>
<P>약수터 옆 비탈을 붙들고 있는 차나무의 뿌리는 감탄사를 연발케 만들었다. 뿌리가 무지 굵었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모양새였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1_STD.jpg"></DIV>
<P></P>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2_STD.jpg"></DIV>
<P></P>
<P></P>
<P>그 사이 주지스님이 차 한 잔을 권했다. 절집 주변에서 맘대로 자란 찻잎을 채취해 덖은 차라고 했다. 비료 한 줌, 농약 한 방울은 차치하고 제대로 된 관리 한 번 받지 않은 야생이 키운 것이라 했다. 그 말에 믿음이 묻어났다. 전기도, 전화도 부러 들이지 않은 절집이었으니까.</P>
<P>&nbsp;</P>
<P>차 한 모금 입에 물고 혀를 굴리니 담백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으레 첫맛은 떫고 쌉사레할 줄 알았는데, 그 느낌도 없었다. 차의 은은한 향과 맛이 깊었다.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맛 그 자체였다.</P>
<P>&nbsp;</P>
<P>스님은 "연동사가 깊은 산중인데다 계곡을 끼고 있고, 그래서 일교차가 큰 지역의 특성이 차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이라고 했다. 찻잎을 따고 차를 덖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였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3_STD.jpg"></DIV>
<P></P>
<P></P>
<P><FONT color=#333333>며칠 전,</FONT>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찻잎을 덖어 수제차를 만들 것이라고. 모든 일 미루고 12일&nbsp;절집으로 달려갔다. </P>
<P>&nbsp;</P>
<P>절집 산비탈에서 찻잎 채취가 시작됐다. 그 일이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 짝발을 딛고 서야 하고, 한 잎 한 잎 따는 게 <FONT color=#333333>'뉘 나는(싫증나는)'</FONT> 일처럼 보였다. 한참을 땄지만 큰 바구니의 밑바닥을 겨우 가릴 뿐이었다.</P>
<P>&nbsp;</P>
<P>찻잎 채취는 찻잎을 씻어 비벼먹은 점심공양 이후에도 한참동안 계속됐다. 오후 3시쯤 됐을까. 그때까지 딴 찻잎을 모아 차 만들기에 들어갔다. 찻잎 따는 일에 세 사람이 매달렸지만 겨우 큰 바구니 두 개밖에 안 됐다. 한나절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날마다 찻잎을 따는 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4_STD.JPG"></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5_STD.jpg"></DIV>
<P></P>
<P></P>
<P>찻잎 덖기는 연동사 한켠에 자리한 가마솥에서 시작됐다. 먼저&nbsp;가마솥의 온도를 430℃까지 끌어올렸다. 달궈진 가마솥에 찻잎을 넣고 몇 차례 저어 건져내 비볐다. 이번엔 가마솥 온도를 400℃로 낮춰 덖고 또 비볐다. </P>
<P>&nbsp;</P>
<P>덖고 비비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마솥의 온도도 조금씩 낮춰졌다. 380℃, 350℃…. 찻잎을 넣어 덖고 비빌수록 찻잎의 수분이 줄어들면서 색깔도 점점 변색됐다. 차의 형태로 짙어갔다.</P>
<P>&nbsp;</P>
<P>찻잎이 타지 않도록 제때 넣었다 빼는 작업이 중요했다. 가열과 건조도 골고루 이뤄졌다. 모든 과정에서 차의 색과 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쳇말로 화장실 갈 새도 없었다. </P>
<P>&nbsp;</P>
<P>자칫 찻잎의 일부라도 탄다면 그 냄새가 모든 찻잎으로 퍼져 몽땅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과정이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6_STD.jpg"></DIV>
<P></P>
<P></P>
<P>덖는 일뿐 아니라 비비는 과정도 심혈을 기울였다. 찻물이 잘 우러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가 이 과정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밀 때는 직선으로 쭈욱 밀어주고, 당길 때는 살짝 돌리듯이 동그랗게 말아주었다. </P>
<P>&nbsp;</P>
<P>파릇파릇하던 찻잎의 수분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서 색상이 짙어지자 찻잎을 털어주는 일이 더해졌다. 찻잎을 따던 일이 고달프다 여겼는데, 덖고 비비고 털어내는 과정을 보니 차라리 찻잎 따는 일이 한결 수월해 보였다. 찻잎 하나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P>
<P>&nbsp;</P>
<P>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덖고 비비는 과정을 거쳤다. 그 사이 처음의 찻잎 모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전통의 수제차가 완성된 것이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7_STD.jpg"></DIV>
<P></P>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8_STD.jpg"></DIV>
<P></P>
<P></P>
<P>이젠 직접 따서 덖은 수제차의 맛을 볼 차례. 찻물을 끓여 뜨거운 물에 바로 찻잎을 넣고 우려낸다. 쓴 맛이 없다. 고유의 차맛 그대로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연동사 수제차는 높은 온도로 덖어서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끓는 물을 식혀서 마실 필요가 없어요. 높은 온도에도 잘 견뎌 맛이 중화됐으니까요. 떫은 맛도 없고, 뒷맛은 달고, 맑은 여운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건 이 때문이죠."</FONT></P>
<P>&nbsp;</P>
<P>수제차를 만든 김태경씨의 얘기다. 연동사 수제차가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이 때문인 듯 했다. 야생에서 자란 찻잎을 하나하나 따서 사람의 손으로 정성껏 덖고 비볐다는 것. 자연 그대로의 야생에다 사람의 정성이 더해진 야생차의 맛을 실감할 수 있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9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99_STD.jpg"></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60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600_STD.jpg"></DIV>]]></description></item><item><author>서경훈</author><category>스포츠</category><title><![CDATA[함부르크의 '삼고초려'...구자철의 선택은?]]></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42</link><pubDate>2012-05-16T13:44:17+09:00</pubDate><description><![CDATA[<P>유럽 축구 여름 이적 시장에서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6개월&nbsp;임대된 이후 5골을 터뜨려&nbsp;사상 최고 성적인 분데스리가 잔류(리그 14위)를 이끌어냈고, 레버쿠젠, 바이에른 뮌헨 등 강팀들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활약상으로&nbsp;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아우크스부르크 중원의 중심을 잡은 존재감을 발휘했기 때문이다.</P>
<P>&nbsp;</P>
<P>현재 구자철은 많은 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삼고초려를 할 정도로 강력한 영입 의지를 보이고 있는 함부르크와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nbsp;바이엘 레버쿠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함부르크는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어 구자철이 이적할 경우 두 명의 한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되어 한국 팬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P>
<P>&nbsp;</P>
<P>원 소속팀인 볼프스부르크 또한 구자철의 활약에 고무되어 잔류 의사를 보이고 있는데,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구자철의&nbsp;런던올림픽 출전을 반대하고 있고 구자철을 활용하는 데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적 가능성이 높다. 아우크스부르크도 구자철의 활약으로 분데스리가 잔류를 해낸 만큼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구자철의 완전 이적을 원하고 있다.</P>
<P>&nbsp;</P>
<P>구자철로서는 이적과 잔류를 놓고&nbsp;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nbsp;각각의 팀이 나름대로 도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러한 점들을 잘 생각해야 하고 선수 본인이 어떤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고려한 후 잔류와 이적을 놓고 결정해야 한다.</P>
<P>&nbsp;</P>
<P>원 소속팀인 볼프스부르크와는 2014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인데 자신을 전술적으로 잘 활용하지 못했고 독선적인 성향을 보이는&nbsp;마가트 감독으로 인해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마가트 감독은 구자철이 간절히 소망해온 런던 올림픽 출전도 반대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는 이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P>
<P>&nbsp;</P>
<P>다른 팀들의 경우에도 구자철에게는 각각의 매력이 있다.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한 클럽이지만 팀을 떠날 것이 유력한 카가와 신지의 활약상과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자철로서는 카가와 이상의 활약상을 보여야 하는 부담감이 존재하지만 도전을 위해, 우승 가능성, 챔피언스리그 출전이라는 것을 놓고 본다면 도르트문트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P>
<P>&nbsp;</P>
<P>레버쿠젠의 경우 분데스리가 5위를 마크하여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실패했지만, 한국인 선수로서 '차붐' 신화를 이룬 차범근(현 SBS&nbsp;해설위원)의 향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베테랑 미드필더인 미하엘 발라크가 팀을 떠나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잘 메우고 레버쿠젠의 새로운 한국인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이다.</P>
<P>&nbsp;</P>
<P><STRONG>이적 대상팀 각각의 매력 존재... 마가트 감독 '반대' 넘어서야</STRONG></P>
<P>&nbsp;</P>
<P>함부르크는 구자철 영입에 있어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여름 이적 시장과 올 겨울 이적 시장에서 모두 구자철의 영입을 시도했지만 여름에는 마가트 감독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겨울에는 아욱스부르크 임대로 무산되었다. 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 번째로 영입을 시도하는 함부르크는 손흥민과 구자철이 함께 뛰게 되고, 2012 피스컵 수원에 출전하면서&nbsp;한국에서의 인지도 상승을 노리고 있다.</P>
<P>&nbsp;</P>
<P>또한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시즌 최종전에서 구자철은 함부르크를 상대로 헤딩 결승골을 뽑아내며 1-0 승리를 거두고 아욱스부르크와 함부르크의 순위를 바꾸었다. 구자철의 활약상을 직접 본 만큼 함부르크는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3번째 영입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P>
<P>&nbsp;</P>
<P>그러나 함부르크 이적은 가장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도 2부리그로&nbsp;강등당하지 않은 클럽이지만 2011~2012시즌에는 공격수들의 부진과 수비라인의 문제점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성적인 15위로 시즌을 마쳤다.&nbsp;구자철의 이적 결정에는 함부르크 수비라인의 보강과 공격수 영입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P>
<P>&nbsp;</P>
<P>아우크스부르크의 경우에도 구자철의 완전 이적을 바라고 있지만 재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고 그를 중용했던 요스 루후카이 감독이 팀을 떠났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도 구자철이 새로운 감독의 지도하에 좋은 모습을 보일 지는 미지수라 할 수 있다.</P>
<P>&nbsp;</P>
<P>이적 결정은 구자철이 하게 될 것이지만, 만약 이적을 하게 된다면 마가트 감독의 반대를 넘어서야 한다. 관심을 보이고 있는 팀들 모두 각각의 매력이 존재한다. 도르트문트에서의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카가와 신지 이상의 활약, 레버쿠젠에서의 신화 재연, 함부르크에서 구자철이 팀의 핵심 미드필더가 되고 유스 출신인 손흥민이 핵심 공격수가 되어 두 명의 한국인 선수가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훌륭한 시나리오이다.</P>
<P>&nbsp;</P>
<P>구자철은 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인성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여러 가지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것이라 예상한다. 런던올림픽 출전과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 구자철의&nbsp;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윤성효</author><category>스포츠</category><title><![CDATA[사직야구장 입장료, 이건 너무 심하잖아!]]></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97</link><pubDate>2012-05-16T11:06:02+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롯데자이언츠 홈구장인 부산 사직야구장이 입장료를 지난 4년 동안 물가상승률의 3.9배나 넘게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김대래·범산·신용헌)은 16일 낸 자료를 통해 "4년 동안 사직구장 평균금액 인상률은 60%로, 이는 물가상승률의 3.9배"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사직야구장은 올해 입장료가 대폭 인상됐다. 평균금액은 작년 9615원이었는데, 올해는 21.2%가 오른 1만1218원이다. 일반석과 A석은 변화가 없는데, 나머지 좌석은 적게 20%, 많게 66% 정도 올랐다. 중앙가족석은 올해 2만5000원인데, 작년 1만5000원보다&nbsp; 66%나 인상된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사직구장의 평균금액은 입장료가 인상될 때마다 물가상승률의 3배가 넘는 인상률을 보였다는 것. 사직구장의 평균금액은 2008년 7285원이었고, 올해는 1만1218원이다. 4년 동안 평균금액은 54%나 인상됐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매진되었을 때 구단의 입장수입은 2008년 2억1855만원에서 2012년 3억1411만원으로, 이는 4년 동안 입장수입은 43.7% 증가하는 것이다. 불과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평균금액은 물가상승률(15.3%)의 3.5배, 입장수입은 2.9배나 되는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사직구장, 다른 야구장과 비교하면?</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사직구장은 다른 구장과 비교해도 인상률이 높다. 주중 평균요금은 목동야구장이 1만1853원으로 가장 높고, 사직구장은 두 번째로 1만1218원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에 대해 부산경실련은 "목동구장이 대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넥센히어로즈 구단의 자금사정상 높은 입장권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직구장의 평균금액은 다른 야구장과 비교해서 가장 높은 금액"이라며 "사직야구장은 전년 대비 16.7%의 인상률을 보여 전체 구장의 평균금액인상률인 8.3%보다 2배 이상 높은 인상률을 기록하였다"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주말 평균금액을 비교해보면, 목동구장이 1만9871원으로 가장 비쌌으며, 대구구장이 9671원으로 가장 입장료가 저렴하였다. 사직구장의 주말 평균금액은 네 번째로 높은 1만1218원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한 경기가 매진이 되었을 경우 작년에 비해 가장 많은 입장수입을 얻게 되는 야구장은 한밭야구장으로 전년 대비 16.7%의 입장수입 증가율을 기록하였고, 사직야구장은 두 번째로 높은 전년대비 14.6%의 입장수입 증가율을 기록하였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야구를 관람하는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응원석을 중심으로 비교를 해보면, 사직구장 1루 A석이 작년대비 20%의 인상률로 가장 높았고, 이는 평균인 7.1%의 3배 가까운 인상률이었다. 사직구장의 1루 응원석은 4년 전에 비해 71.4%나 입장료가 상승하였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과도한 요금 인상의 자제 필요' 등 대안 제시</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부산경실련은 "프로야구의 인기가 언제까지 계속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야구 입장권 가격의 과도한 인상폭과 높은 가격은 장기적으로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해서도 자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단체는 ▲과도한 요금 인상의 자제 필요, ▲다양한 가격대의 좌석 필요, ▲야구장에 관한 보다 세밀한 자료 관리 필요, ▲부산시와 롯데구단의 협력을 통한 저렴한 입장요금 책정과 관람편의시설 개선 필요 등을 제시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부산경실련은 "프로야구와 관련하여 식음료, 야구 관련 상품, 중계권과 광고비 등 다양한 수익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하고, 프로야구 인기의 근간인 팬들의 주머니만을 노린 과도한 요금 인상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단체는 "야구의 인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초저가의 좌석부터 편안한 응원공간까지 마련하여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야구장을 찾을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며 "부산시는 시민들이 야구장을 찾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구단이 입장료를 과도하게 올리지 않게 제어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양형석</author><category>스포츠</category><title><![CDATA['2호 홈런 작렬' 추신수, 1번이 체질에 맞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85</link><pubDate>2012-05-16T08:36:31+09:00</pubDate><description><![CDATA[<P>추신수가 1번 타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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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추신수는 16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미네아폴리스 타깃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 1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해 홈런과 2루타 포함, 4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P>
<P>&nbsp;</P>
<P>팀의 5-0 완승을 견인한 추신수는 시즌 성적도 타율 .245 14타점 15득점으로 상승했다, 1번 타자가 체질에 맞는 것인지 진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P>
<P>&nbsp;</P>
<P><STRONG>1번 타자 변신 후 대활약을 이어가는 추신수</STRONG></P>
<P>&nbsp;</P>
<P>추신수는 지난 15일 미네소타와의 원정경기부터 2경기째 1번 타자로 출전하고 있다. 작년까지&nbsp;3번을 쳤던 추신수는 올 시즌 주로 6번 타자로 활약한 바 있다.</P>
<P>&nbsp;</P>
<P>하지만 그래디 사이즈모어의 부상 장기화와 시즌 개막 후 영입한 조니 데이먼의 부진으로 클리블랜드는 1번 타자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에&nbsp;매니 악타 감독은 빠른 발과 좋은 출루 능력을 가진 추신수를 1번에 기용하기 시작했다.</P>
<P>&nbsp;</P>
<P>사실 지난 몇 년 간 중심타선에 있던 추신수가 1번을 맡는다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다. 1번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칫 어렵게 찾은 타격감을 다시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P>
<P>&nbsp;</P>
<P>하지만 지난 2경기에서 보여준 '1번 타자 추신수'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다. 1번 타자로 첫 출장한 15일 경기에서는 9회 미네소타의 마무리 맷 캡스를 상대로 결승 적시타를 때려냈다. </P>
<P>&nbsp;</P>
<P>그리고 16일 경기에서는 홈런과 2루타, 그리고 볼넷까지 골라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5회초에 터진 시즌 2호 홈런은 추신수의 타격감이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한 방이었다.</P>
<P>&nbsp;</P>
<P>한편 클리블랜드가 올 시즌 영입한 노장 투수 데릭 로우는 6피안타 4볼넷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따냈다. 만 39세의 로우는 시즌 6승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진오</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한국교회, '부패' 딱지 떼려면 작아져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65</link><pubDate>2012-05-16T18:39:07+09:00</pubDate><description><![CDATA[<P>'교회'는 무엇일까? 교회에 대한 전통적 이해는 2가지다. 하나는 건물이나 제도로 이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건물이나 제도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어 'kyuiake'(주께 속한 것)과 'kyriakos'(주님의 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히브리어 '에다'에서 기인한다.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은 '에클레시아'(밖으로 불러내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히브리어 '카할'의 전통을 따른다.</P>
<P>&nbsp;</P>
<P>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에서는 '敎會'를 사용한다. 가르칠 '교'에 모일 '회'이다. 유교 등 동양사상이 전문적인 지도자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던 전통이 반영된 것이다. 기독교 문화 가운데 있던 서양과 달리 완전히 다른 종교적 문화 속에서 기독교가 수용되면서, 올바른 성경적, 신학적 이해를 가르치고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에서 볼 때 가르치고 배우는 곳으로서의 의미도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P>
<P>&nbsp;</P>
<P>예수원 설립자이신 고 대천덕 신부님은 한국교회가 너무 가르치고 배우는 데 집중해 지적으로만 성장했다는 것을 지적하면 가르칠 '교'를 교제할 '교'로 바꾸어 '交會'라고 사용하자고 했다. 상호 소통하는 '코이노니아'의 부족을 생각할 때 유익한 지적이라 생각된다.</P>
<P>&nbsp;</P>
<P>이렇게 보면 교회는 2가지 전통적인 이해와 동양적인 필요를 덧붙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께 속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배우며 교제하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P>
<P>&nbsp;</P>
<P><STRONG>'교회됨'은 인격적으로 '교제함'이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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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left><IMG id=IIE001388671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110/IE001388671_STD.jpg" align=right></DIV>
<P></P>
<P>'교회'가 무엇인가? 에 대해 개념적으로 설명한 것은 이렇게 정의한 '교회'에 현재 한국교회가 부합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또 교회에 대한 정의에 따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교회는 적절한 크기의 제한을 두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P>
<P>&nbsp;</P>
<P>먼저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주님께 속한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것이야 말로 궁극적인 '그리스도인 됨'의 목적일 텐데 이를 위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며 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P>
<P>&nbsp;</P>
<P>물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과 배움은 탁월한 설교자나 교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 서로 안에 '교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교제'는 '코이노니아'이다.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 있는 성도들 안에 소통, 사귐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가장 궁극적인 '교회됨'은 성령 안에서 소통하고 사귐이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배와 모임 하는 장소도 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교회의 직분과 제도도 결국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P>
<P>&nbsp;</P>
<P>우리는 교회 인원을 말할 때 행정적으로 등록한 숫자를 교인의 수로 말한다. 또 주일예배를 함께 드린 숫자를 교인의 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수가 교회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수는 그저 제도적인 숫자일 뿐이다. 실제 교회의 정의에서 규정한 '교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우리들 교회에 속한 사람들과 진정으로 '코이노니아' 즉, 소통하고 사귀고 있는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이고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가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아니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알고 있는가?</P>
<P>&nbsp;</P>
<P>결국 교회는 인격적으로 교제함이라 할 수 있다. 신앙과 삶의 진실 된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성경이 가르쳐주는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으로 받아,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모퉁이 돌 되신 예수님을 반석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엡2:22)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P>
<P>&nbsp;</P>
<P><STRONG>'큰 교회' &amp; '크지 못한 교회'의 딜레마</STRONG></P>
<P>&nbsp;</P>
<P>나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교제는 적정 수를 넘어가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교회에 있지만 사실은 다른 교회이고, 한 교회에 있지만 사실은 전혀 관계(교제와 사귐)가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께 속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배우며 교제하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상호 가르치고 배우며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정도의 수를 넘어가는 곳은 교회됨을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P>
<P>&nbsp;</P>
<P>사실 성경에서의 교회는 '큰 교회'와 '크지 못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건강한 교회'(성경적인 교회)와 '건강하지 않은 교회'(세속적인 교회)가 존재한다. 세속적인 교회는 세속적 가치를 따라 성경적 가르침을 좇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왜곡하고 배반한다. </P>
<P>&nbsp;</P>
<P>그럼에도 성경에서의 교회 중 현재처럼 수백에서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는 없다. 대교회를 주장하는 분들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했다는 것을 예를 든다. 그러나 그들이 한 교회에 모여 예배하고 모임을 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바울이 개척한 모든 교회들은 대부분 가정교회 형태로 아주 작은 단위로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교회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합해 나간 것이다.</P>
<P>&nbsp;</P>
<P>우리는 너무나 쉽게 큰 교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자신의 욕망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 욕망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거룩함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개인의 안락, 개인의 성공, 개인의 야망, 개인의 권력 등이 담겨져 있다.</P>
<P>&nbsp;</P>
<P>세속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공과 번영을 절대시 하는 것이다. '맘몬'으로 대표되는 돈, 명예, 권력이다. 육신의 정욕이며, 안목의 정욕이고, 이생의 자랑이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들이다. 예수님은 이것들을 물리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따라야할 가치를 가르쳐 주셨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신학적·신앙적 부패는 이런 세속적 가치를 따른 것이다. 그것이 개인에게는 성공, 번영 등의 기복으로 나타났고, 교회에는 숫자적 성장추구로 나타난 것이다.</P>
<P>&nbsp;</P>
<P>성경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려놓음, 비움, 낮아짐, 작음 등이다. 개혁가들이 중세 가톨릭의 성공과 번영의 신학·신앙에 맞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추구한 것으로 바로 '십자가의 정신'이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개인에게는 정직, 검소, 절제, 나눔, 공평, 정의 등으로 나타나고, 교회는 본질을 추구하는 단순함과 작음, 더불어 함께로 나타난다.</P>
<P>&nbsp;</P>
<P>교회가 지나치게 커지면 성경적 가치보다 세속적 가치를 지향할 가능성도 커진다. 왜냐하면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조직으로 사람들을 관리하거나,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등 다양한 경영적 방식이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단절된다. 소수로 나눈 구역이나 소그룹이 작동하지만, 목사는 연예인이 되고, 교황이나 무당이나 잘해야 CEO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목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영성이 뛰어나고 탁월해도, 어떤 성도가 개인적으로 사회적 지식인이고 인격적이어도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크기의 한계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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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불행히도 한국교회에는 무조건 큰 것이 좋다는 심지어는 선하거나 옳다는 편견이 가득한다. 그래서 큰 교회를 위한, 큰 교회를 향한, 큰 교회에 의한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신학교는 어떻게 하면 큰 교회를 이루고 큰 교회를 목회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출판사는 큰 교회 목사의 설교와 큰 교회를 이루는 방법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책들을 내고, 언론사도 큰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교단의 총회와 노회는 큰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모든 임원을 맡아 좌지우지 하고, 각종 연합기구는 큰 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큰 교회의 이익을 대변한다.</P>
<P>&nbsp;</P>
<P>그래서 '크지 못한 교회'는 끊임없이 '큰 교회'를 지향한다. 큰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이니 우리도 큰 교회를 목표로 나가자고 외친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함정에 자신들이 빠지고 만다. 예를 들어 2백명 모이는 교회는 1천명, 1천명 교회는 3천명, 5천명은 1만명, 4만명은 10만명. 이런 식이다. </P>
<P>&nbsp;</P>
<P>초창기 교인들은 자신들의 돈과 젊음을 바치며 교회 성장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이 되었음에도 계속 성장을 목표로 나아갈 때 어느 순간 교인들은 이 고생을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줘야하는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냥 더 큰 교회로 옮기면 그만이라는 것을. 자신이 못 옮기면 자식들이라도 옮기게 한다. 그래서 대형교회는 초대형교회가 되고, 중형교회들은 급속히 몰락해 간다. '크지 못한 교회'가 '큰 교회'를 모델로 삼는 한 큰 교회를 찾아 수평 이동하는 교인들을 막을 논리도 이유도 없다.</P>
<P>&nbsp;</P>
<P>목회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몇 가지 현실을 깨닫고 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지 130여 년이 지난 현재 전국적으로 교회는 적절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기독교 인구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탁 까놓고 말해 이제 개척해서 대형교회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또 대형교회 담임목사 자리는 아들이나 사위 등에게 세습되고 있고,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도 빽 없고 줄 없이 청빙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외국 유학에 박사 학위를 갖추는 등 웬만한 스펙은 기본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도 작은 교회를 지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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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 교회'여야 한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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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럼 '작은 교회'는 무조건 건강하고 좋은 교회인가? 물론, 작은 교회라고 무조건 건강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큰 교회' 의식과 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냥 '크지 못한 교회'로 사실 이런 교회에 가는 것보다 '큰 교회'에 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나는 '작은 교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작은 교회'를 추구하고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작은 교회'에 대해 설명하려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고, '작은 교회의 기준은 몇 명일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P>
<P>&nbsp;</P>
<P>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교회는 첫째, 성경적 영성을 겸비한 교회다. 이런 교회는 이원론적이고 혼합적인 성경해석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담은 성경 해석과 실천에 힘쓰는 교회이다. 이런 교회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5대 기능으로 이해하는 '예배, 교육, 증거, 교제, 봉사'와 함께 '사회적 책임'(혹은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한다. </P>
<P>&nbsp;</P>
<P>둘째,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다. 특정인이나 소수 그룹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우되지 않고 교인들 모두가 참여, 소통, 협업,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주체는 성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모든 성도가 양심의 자유를 갖고 성경 해석의 최종적 책임을 지며, 복음적으로 분업을 이루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성경적 가치를 바탕으로 민주적 참여를 통해 정관·규약을 제정한다.</P>
<P>&nbsp;</P>
<P>셋째, 재정을 포함한 행정이 바르고 투명한 교회이다. 교회 행정은 세상적 기준에서 볼 때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바르고 투명해야 한다. 특히 재정은 교회 목적(비전)에 따른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성경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자발적으로 헌금·연보 하도록 하며, 목회자 사례비를 포함해 불투명한 지출이 없도록 하며, 투명한 재정을 위해 홈페이지, 주보, 제직회, 총회 등을 통해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nbsp; </P>
<P>&nbsp;</P>
<P>넷째,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이다. 모든 교회는 우주적 교회이지만 동시에 지역적 교회이다. '우주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들이 시대와 지역과 연합하며 교회개혁이든, 세계선교이든 큰 비전과 목적을 향해 사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활동은 부르심을 받은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사역할 때 효율성이 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들과 연대하는 것으로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통치하심에 동참하게 된다.</P>
<P>&nbsp;</P>
<P><STRONG>최소 50명, 최대 200명</STRONG></P>
<P>&nbsp;</P>
<P>그럼 어느 정도 인원이 작은 교회일까? 가장 원론적인 답변은 구성원들 간에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한 숫자이다. 그럼 그 수는 얼마일까?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는데 이를 획일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학자들은 보통 한 사람이 기억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1500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수는 피상적으로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지 인격적 즉, 관계적일 수 있는 수는 아니다. 나는 청장년 인원이 최소 50명에서 최대 200명까지를 제안하고 싶다.</P>
<P>&nbsp;</P>
<P>물론 교회는 가정에서 모여도 교회이고, 뜻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도 교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지역교회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유의미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모가 필요하다. 나는 그 최소한을 개별 교회가 전임사역자 1명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기본적으로 예배와 모임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이용하고, 내부적 교제와 교육을 시행하며, 외부적으로 뜻있는 곳에 일정한 지원도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목회자가 생활비를 받지 않거나, 가정교회 등으로 모임 공간이 별도로 필요 없는 경우도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보편적인 교회 형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P>
<P>&nbsp;</P>
<P>50명을 선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1980년대 중반 통계로 평균적으로 대학생 이상 교인들의 1년 평균 헌금 액수는 100만 원이었다. 현재는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 150~200만 원까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50명인 교회의 1년 예산은 5000~6500만원 가량이 될 것이다. 이 중 1000만 원 가량이 장소 사용료 및 운영비용으로 사용되고, 전임사역자 1명의 연봉을 2000만 원 정도로 보고, 내부적 교제와 교육을 위해 1500만 원 정도가 사용된다고 보면 000만 원 정도를 외부적으로 뜻있는 곳에 기부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청장년 50명 정도면 충분히 건강성을 유지하며 보람 있고 의미 있게 교회를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P>
<P>&nbsp;</P>
<P>그럼 최대 숫자는 왜 200명인가? 나는 이 정도 인원이 모든 구성원 간에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최대 인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근거는 정확히 없고, 공동체마다 또 개인마다 편차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우리가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미국 뉴욕의 '세이비어 교회'나 &lt;작은 교회가 아름답다&gt;(데이비드 브라이닝, 옥당)에서 소개된 'CTK' 교회 등이 150~2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교회들의 연합으로 사역하고 있다. </P>
<P>&nbsp;</P>
<P>또 다른 근거 중 하나는 'Gore'라는 회사의 사례다. 고어사는 등산복 재질인 '고어텍스'를 만드는 회사이다. 1958년에 설립된 고어사는 현재 섬유, 의료, 전자, 산업재 4개 분야 사업부를 운영하며 1천 종이 넘는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고어사는 포천지 선정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12년 연속 선정되었는데,&nbsp; 2010년 기준 매출액 26억 달러, 직원 수 9천여 명에 전 세계 30여 개국에 50여 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P>
<P>&nbsp;</P>
<P>고어사의 경영철학은 다양한 면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특히 주목 받는 것은 한 공장이나 한 조직이 200명을 넘어서지 않도록 작은 단위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늘면 공장 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라 새로 공장이나 조직을 만들어 분사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200명이 넘어가면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게 되고, 인격적 관계가 단절되고, 창의력이 상실되며,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데 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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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런 경영철학은 적중했다. 고어사는 단지 조직과 공장만 나눈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도 완전히 분리해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만 완전히 다른 조직, 다른 회사로서 독립적으로 운영한 것이다. 고어사의 경열철학은 4가지로 '인간에 대해 믿음을 갖고</P>
<P>(Belief in the individual), '작은 조직에서 오히려 강한 힘이 나온다고 확신하며</P>
<P>(Power of small teams)', '모두 함께 라는 정신으로'(All in the same boat), '장기적 시각으로(Long-term view)' 경영한다는 것이다.</P>
<P>&nbsp;</P>
<P>이런 경영 방식은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GM 등 대기업에서도 가져가 소위 '브랜드' 방식으로 브랜드별로 독립된 의사결정과 마케팅 등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대기업들로 내부적으로는 작은 단위로 분사해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P>
<P>&nbsp;</P>
<P>나는 200명 정도면 지역교회로서 모든 사역적 열매를 맺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교회가 더 크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한두 가지 선택하고 집중해 감당해야 할 것을 하고, 무엇보다 어떤 일보다 교회 구성원 안에 신앙과 삶의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역은 사람이 한다. 사람이 영성이 깊어지고, 은혜가 넘치면 사역도 하게 되고, 사역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P>
<P>&nbsp;</P>
<P><STRONG>더불어 함께하는 건강한 작은 교회의 꿈</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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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나는 '어떤 작은 교회인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냥 '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 교회'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고, 작은 교회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밝혔다. 손봉호 장로(고신대 석좌교수)께서는 교회사 교수들이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이후 가장 부패한 교회'라 평가하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신학적·신앙적 부패, 그 결과에 의한 도덕·윤리적 타락 등 나는 결국 부패한 신학적·신앙적 타락의 핵심에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P>
<P>&nbsp;</P>
<P>대형교회를 추구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고, 주님의 교회의 거룩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교회를 구성한 인간들의 돈과 권력, 명예 등에 대한 욕심을 발로다. 1만명 되는 교회 하나보다 100명이 만들어가는&nbsp;100개 교회가 훨씬 지역적으로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규모가 큰일은 연합해서 감당하면 된다. </P>
<P>&nbsp;</P>
<P>우리는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크지 못해서 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정신과 가치를 따라 작은 그 자체로 행복하고, 그 자체로 감사한 그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게으르거나 지지리 궁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는 한 교회를 '더 크게', '더 호화롭게' 성장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더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전도하고, 더 열심히 사역하는 것이다.</P>
<P>&nbsp;</P>
<P>이제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건강한 작은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성경적 가치를 지향하고, 더불어 하겠다는 건강한 실천을 다짐하는,&nbsp;100명~200명이 만들어가는&nbsp;교회들 100개가 세워지고 이런 교회들이 효율적으로 네트워크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건강한 작은 교회의 가치를 지지하는 신학교, 언론사, 출판사,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곳들을 지원하면, 우리는 10년 후에 새로운 한국교회의 흐름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더불어 함께하는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꾼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윤근혁</author><category>교육</category><title><![CDATA[학교가 이래서야...당직기사들 "노동착취 중단하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64</link><pubDate>2012-05-16T18:44:4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3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34_STD.jpg"></DIV>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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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서울 A중에 근무하는 이아무개씨(71)는 학교 감시단속 노동자다. 사람들은 그를 '당직기사'라고 부른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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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의 출근 시간은 오후 4시, 퇴근 시간은 오전 8시다. 그가 평일 16시간, 휴일 24시간 등 한 달 동안 일하는 시간은 690시간. 노동 시간은 일반 노동자보다 2∼3배 많은 데도 그가 받는 월급은 75만 원이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103만5080원인데 이를 한참 밑도는 액수인 것이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학교는 올해부터 주5일제가 되어 저는 주말이면 금요일에 출근해 월요일에 퇴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봉급은 지난해와 똑같은 75만 원입니다. 최저임금이 해마다 올라가는데 우리는 '노예계약'에 묶여 남의 나라 일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FONT></P>
<P>&nbsp;</P>
<P><STRONG>최저임금 한참 밑도는 돈, "노예계약이다"</STRONG></P>
<P>&nbsp;</P>
<P>이 같은 사정은 이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지역 1600여 명을 비롯하여 전국 1만여 명에 이르는 학교 당직기사 모두의 처지가&nbsp;비슷하다는 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설명이다. 학교에서 지출되는 예산도 쥐꼬리지만 이것마저 용역업체에서 떼어가니 당직 기사들은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노동조건"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P>
<P>&nbsp;</P>
<P>장시간 노동, 홀쭉한 봉급봉투, 휴무일 전무…. 이런 기가 막힌 노동환경에서도 당직 기사들은 이 제도가 도입된 12년 전부터 군소리 없이 일해왔다. 평균 나이 72세의 고령노동자인데다 다른 소리를 냈다가는 곧바로 해고장이 날아드는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P>
<P>&nbsp;</P>
<P>하지만 이런 '침묵의 시간'은 '스승의 날' 다음 날인 올해 5월 16일 오전 10시로 끝났다. 이날 서울지역 당직기사 70여 명은 처음으로 서울시교육청 앞에 모여 1970년대에나 어울릴 듯한 구호를 외쳤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노동착취 중단하라! 노예계약 파기하라!"</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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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P>
<P>하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고령 노동자들의 외침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P>
<P>&nbsp;</P>
<P>당직기사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노동자라면 누구나 적용받아야 할 최저임금도 용역회사가 임의로 휴게시간을 조정한 각서를 작성케하여 급여를 동결하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용역회사의 배만 불리고 감시직 노동자들은 임금을 착취당했다"고 호소했다. </P>
<P>&nbsp;</P>
<P><STRONG>"분명히 노동하는 시간인데 휴게시간이라니…"</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3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35_STD.jpg"></DIV>
<P></P>
<P>이들이 공개한 <FONT color=#333333>노동계약서를 보면 대부분의 용역업체들은 봉급을 줄이기 위해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를 휴게시간으로 정해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직 기사들은 이 시간에도 당연히 학교를 지키며 순찰을 도는 등 노동을 해야 한다.</FONT></P>
<P><FONT color=#333333></FONT>&nbsp;</P>
<P>이우웅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본부 감시분과위원장(당직기사)은 "전국의 당직 노동자들은 진보교육감이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반인륜적인 근로조건을 어떻게 개선할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용역업체 계약을 파기하고 교육청 차원의 계약 체결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우선 잘못된 계약서에 대한 관리감독이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P>
<P>&nbsp;</P>
<P>이&nbsp;위원장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석자&nbsp;대표들은 이날&nbsp;기자회견 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P>
<P>&nbsp;</P>
<P>이 자리에서 송병춘 시교육청 감사관은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 내용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점이 확인되면 서울시교육청이 감사할 수 있다"면서 "대책마련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갑봉</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골목상권 지키기' 농성장에 '방화사건' 발생]]></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955</link><pubDate>2012-05-16T18:54:4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2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25_STD.jpg"></DIV>
<P></P>
<P></P>
<P>사업조정 신청대상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중기청의 재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15일. 대상그룹 식자재사업 진출 저지를 위한 인천 삼산동 농성장(달인식자재마트 입구)에서 15일 새벽 업체 측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방화와 차량파손 사건이 발생했다. </P>
<P>&nbsp;</P>
<P>대책위 상인들은 방화와 차량파손은 같은 날 새벽시간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삼산경찰서는 달인식자재마트매장 좌우측 상단에 매달려 있는&nbsp;CCTV(폐쇄회로 TV)화면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P>
<P>&nbsp;</P>
<P>사건 현장을 제일 먼저 확인한 사람은 대책위 양범석 위원장이다. 그가 오전&nbsp;5시 무렵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이미 농성장은 불에 타 천막 뼈대만 남아 있었고, 대책위 상인의 승합차 유리창은 뭔가로 내리쳐 깨진 상태였다. </P>
<P>&nbsp;</P>
<P>양범석 위원장은 "농성장은 매장 입구에 있었는데 이를 대상그룹의 무상임대부지 입구로 옮겨 부순 뒤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농성장 주변에 걸려 있던 현수막까지 모두 떼어다가 함께 불살랐다. 5시 무렵 내가 왔을 때 이미 불에 다 타버리고 뼈대만 남았다"고 한 뒤 "그리고 무상임대부지 입구에 있던 승합차는 심하게 긁히고 뒷문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난 상태였다"고 말했다.</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439920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20_STD.jpg"></DIV>
<P></P>
<P></P>
<P>양 위원장이 도착했을 당시 달인식자재마트 입구에 대상 전 임원 차아무개씨(달인식자재마트 대표의 처남)가 있었다. 양 위원장은 "누가 했냐고 물었더니 술에 취한 그(차씨)가 '내가 했다'고 했다. 그래서 항의했더니 나한테 멱살잡이를 했다"고 한 뒤 "또 연락받고 온 신규철 집행위원장도 달인식자재마트 대표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둘 모두 경찰서에 고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P>
<P>&nbsp;</P>
<P>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삼산경찰서 지능수사팀은 "폐쇄회로 화면 판독을 끝냈다. 누구의 소행인지 파악했다. 수사진행중인 사건이라 (피의자를) 공개하기 어렵다"고 한 뒤 "대책위가 고소한 사람들에게 이달 25일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그전에라도 조사가 이뤄지면 (방화와 폭력 피의자)공개할 것이고, 방화죄 성립여부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P>
<P>&nbsp;</P>
<P>차씨는 이와 관련해 "개인사업장에 와서 영업방해를 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지 않냐?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가게세도 내야 하는데 매장 입구를 막고 있으니 내가 치운 것"이라고 한 뒤 "(영업방해로) 고발해도 경찰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구청도 중기청 운운하며 행정단속을 (무상임대부지 입구 주차단속) 미룬다. 여기는 개인사업자다. 그래서 치웠다. 내가 치운 건 문제고 상인들의 영업방해는 문제 없는 것이냐"고 말했다. </P>
<P>&nbsp;</P>
<P>이튿날인 16일&nbsp;오후 삼산동상인대책위와 인천시민사회단체는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업체 측을 규탄했다. </P>
<P>&nbsp;</P>
<P>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이동주 정책실장은 "<FONT color=#333333>일시정지도 무시하더니 이제는 폭력과 방화까지 일삼는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농성장 침탈이 아니라 60만 식자재 상인을 향한 테러다.</FONT> 이 만행에 가담한 자들을 밝히고 그 배후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여 법으로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고 비판한 뒤 "중기청은 이 같은 불상사를 하루속히 정리할 수 있도록 재조사 결과를 이른 시일 내에 발표해야 한다. 중소상인 잠식을 넘어 이젠 폭력과 방화까지 부르고 있다"며&nbsp;중기청의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nbsp;&nbsp;</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92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922_STD.jpg"></DIV>]]></description></item><item><author>곽승희</author><category>정치</category><title><![CDATA["국회의원도 사찰했는데 민간인은 오죽이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47</link><pubDate>2012-05-16T18:30:37+09:00</pubDate><description><![CDATA[<P><FONT color=#996633>"전화 감도가 떨어지고 통화가 울리는 현상이 있었다. 저와 친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전화할 때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로 하느라 고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잘한 것 같다. 여기 보니 '후원, 지원 그룹의 실체 드러나도록 보고하라'고 지침을 내린 걸로 나온다. 9월 16일, 10월 14일 한, 두 달간 했나 보다, 사찰을."</FONT></P>
<P>&nbsp;</P>
<P>'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은폐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청와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주통합당 이석현·백원우 의원, 새누리당 현기환·정두언 의원,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을 사찰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현 의원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lt;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gt; 96회에 출연해 사찰과 관련된 전반적인 상황과 검찰의 재수사에 대해서 평가했다. 이석현 의원은 현재 민주통합당 내 '국기문란 조사특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P>
<P>&nbsp;</P>
<P><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itunes.apple.com/kr/podcast/id491952608" target=_blank><FONT color=#333399>☞ 아이튠즈에서 이털남듣기</FONT></A></P>
<P><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OhmyTV/etulnam_main.aspx" target=_blank><FONT color=#333399>☞ 오마이TV에서 이털남듣기</FONT></A></P>
<P><STRONG><FONT color=#333399></FONT></STRONG>&nbsp;</P>
<P>이 의원은 "국회의원도 사찰했는데 일반 민간인은 오죽이나 했겠냐"며 "피해자를 종합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이번에 철저히 조사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기문란 조사특위'의 소속인 '민간인 불법 사찰' 소위원회에서 국회 개원 후 청문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P>
<P>&nbsp;</P>
<P>이 의원은 검찰의 재수사와 관련해서 "(2010년 당시) 제보 받기를, 검찰이 수원 영통에 있는 업체와의 통화 기록을 조사하니 대포폰이 5대가 나왔다고 했다"면서 "검찰이 예전 (수사 때) 보다 나아진 것 같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검찰의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대포폰은 1대지만, 도청방지를 위해 쓰는 대포폰의 특성 상 홀수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P>
<P>&nbsp;</P>
<P>또한 이 의원은 이번에 검찰 발표로 드러난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의 사찰이 사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공권력 남용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포스코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박영준 전 차관이 포스코 인사들을 만나러 다닌 사실은 이미 이 의원이 2009년 4월 국회 정무위에서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회장 후보였던 정준양 사장의 측근 정동화 상무가 이동조 제이엔테크 사장과 막역한 사이였고 이 사장은 박영준 전 차관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이 인연을 통해서 박 전 차관이 개입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추광규</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임차상인 배려 없는 코엑스몰 리모델링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86</link><pubDate>2012-05-16T14:57:5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left><IMG id=IIE001439576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76_STD.jpg"></DIV>
<P></P>
<P>2000년 국내 최초의 도심형 복합 엔터테인먼트 상업시설로 개관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이 개장 12년 만에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하여, 한국무역협회는 15일 오전 코엑스 위즈윗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P>
<P>&nbsp;</P>
<P></P>
<P></P>
<P>이날 기자간담회에서&nbsp;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nbsp;코엑스몰 리모델링 완공 후 청사진은 장밋빛이다. 하지만 현재 코엑스몰을 임차해서 영업하고 있는 상인의 걱정은&nbsp;깊어가고 있다. </P>
<P>&nbsp;</P>
<P>상인들의 사정은 이렇다. 리모델링 공사 시작과 함께 가게를 비워줘야만 하는데, 공사를 마친 후 재입점과 관련하여 한국무역협회측이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nbsp; </P>
<P>&nbsp;</P>
<P>이 같은 이유로 기자간담회가 열린 회의실 장소 앞에는 임차 상인들 수십여 명이 몰려와 일방적인 계약기간 만료 및 갱신거절 통보에 대해 항의에 시위하기도 했다. </P>
<P>&nbsp;</P>
<P><STRONG>무역협회.. 코엑스몰 12년 만에 새단장 현대화 시설 도입</STRONG></P>
<P>&nbsp;</P>
<P>한국무역협회무역센터발전추진단(이하 추진단)이 밝힌 코엑스몰 공사대상과 규모는, 공항터미널과 영화관, 아쿠아리움 등을 제외한 총 15만2116㎡다. 리모델링이 끝나면 코엑스몰의 매장 면적은 축구장 24배 규모인 17만3025㎡로 늘어난다. 총 사업비는 1800억 원 규모로 오는 10월 착공해, 2014년 11월 완공 예정이다.</P>
<P>&nbsp;</P>
<P>추진단은 "코엑스몰은 전시컨벤션 지원시설로 개관한 지 12년이 지나 시설이 노후화돼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세계적인 위상에 걸맞는 현대화된 시설 도입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하철 9호선 개통과 GTX 통과로 연결 동선 및 새로운 MD 기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nbsp;</P>
<P>&nbsp;</P>
<P>리모델링 후 코엑스몰은 현재 부족한 갤러리, 문화 스쿨, 세미나 룸 등의 문화시설과 극장 등 공연시설도 대폭 확대한다. 이 밖에도 친환경 개념을 강조하면서 지열시스템을 활용한 냉난방시스템 적용, LED 조명 사용 등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절감한다. </P>
<P>&nbsp;</P>
<P>이왕규 추진단장은 "이번 리모델링은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등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코엑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상권의 활성화를 통해 입점 상인들의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공익적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P>
<P>&nbsp;</P>
<P>또,&nbsp;"코엑스를 찾는 주 연령층이 10~20대 층인데, 이들에게 코엑스가 단순한 쇼핑 장소에 머물지 않고 문화를 느낄 수 있게끔 접목할 예정"이며 "코엑스가 비즈니스의 장소를 넘어서 문화의 장소로 남게 하겠다"며 리모델링 완성 후의 장밋빛 청사진을 밝혔다. </P>
<P>&nbsp;</P>
<P><STRONG>리모델링 후 청사진은 장밋빛... 임차 상인들 반발 무마가 선결 과제</STRONG>&nbsp; </P>
<DIV align=center>&nbsp;</DIV>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7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77_STD.jpg"></DIV>
<P></P>
<P></P>
<P>이창선 추진단 실장은 동영상이 포함된 약 10분여 동안의&nbsp;설명을 마친 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nbsp;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임차 상인과의 갈등과 관련하여 상당한 시간을 갖고 토론에&nbsp;임했다. 다음은 이 실장과 기자들이 나눈 일문일답 내용 정리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리모델링 완공 후에는 '공개경쟁 제안입찰 방식'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FONT>&nbsp; </P>
<P>"기존의 '임대료 최고가 입찰 방식'은 금액을 많이 적어내는 사람에게 임차를 주는 방식인데, 완공 후 입찰 방식은 '공개경쟁 제안입찰방식'이다. 이는 가격으로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임차인이 얼마나 상권을 활성화를 했느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상인의 협조가 절실했던 핵안보정상회담이 끝나는 날에 맞춰, 기습적으로 3월 27일 계약종료 및 갱신거절 안내 통지문을 보냈다. 이에 임차 상인들이 더 격양된 것 같은데,&nbsp;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FONT>&nbsp; </P>
<P>"5월 30일 계약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2개월 전에는 법률 행위를 해야만 한다. 즉, 3월 말에 핵안보정삼회담이 끝나자마자 보낸 것은 법률적인 기한 때문이었다. 임차인들을 목 죄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임차 상인은 직원이 리모델링 후 재입점을 약속한 후 막상 공사 시기가 닥치자 말을 바꿔 일방적 계약해지를 통보해 왔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FONT></P>
<P>"저희 직원이 상인들에게 재입점을 보장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재입점 과정에서 입찰 참여 기회를 오픈하겠다고 설명했었다. 임차인이 오해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전체 매장을) 셧 다운을 해야&nbsp;한다. 설계가 끝나고, 공사가 시작되는 올해 10월 말까지 최대한 무리가 없도록 할 방침이다. 합의서를 작성하는 임차인의 경우, 단계가 늦어지는 곳은 최고 7~8개월까지 더 영업할 수 있는 곳이 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임차 상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FONT></P>
<P>"향후 리모델링 공사 완료 후 임차 상인이 재입점을 희망할 경우 10%의 가산점을 줄 예정이다. 또 재창업을 포기하고, 타 상권으로 이전을 희망할 경우에는 부동산 상권 분석 등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리모델링 후 대형화한 후 수수료 매장을 꾀하고 있다는 임차 상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FONT></P>
<P>"매장을 대형화 하고 수수료 매장화를 하는 것은&nbsp;연구 중이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몰을 연구하면서 코엑스를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몰로 만들 것인지를 놓고 검토하고 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리모델링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FONT></P>
<P>"코엑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몰이다. 통상적으로 쇼핑몰의 경우, 보통 10년 정도면 리모델링을 많이 한다. 지금한다고 해도 완공이 되는 2014년에는 15년이 된다. 코엑스몰은 이미 명소다.&nbsp;많은 외국인이 찾고 있어, 리모델링이 시급한 실정이다. </P>
<P>&nbsp;</P>
<P>또&nbsp;9호선 개통과&nbsp;기존의 지하철 동선을 생각했을 때, 시민이 편하게 갈 수 있게하고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가꾸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2000년 개장시에는 에너지-환경-안전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P>
<P>&nbsp;</P>
<P><STRONG>무역협회 기자 간담회 후,&nbsp;상인들 불안은 여전...</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7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78_STD.jpg"></DIV>
<P></P>
<P></P>
<P>15일, 기자간담회는 사실상 리모델링 공사가 확정된 후 이루어진 최초의 공개적인 설명회였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도 무역협회가 그리는 리모델링 공사 후 청사진과 임차 상인 간의 괴리는 여전해 보였다. 이는 임차 상인의 불안이 가시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 </P>
<P>&nbsp;</P>
<P>불안을 정리한다면 무역협회측은 리모델링 후 현재의 MD를 맡은 현대백화점 측에 공간 대부분을 맡기기로 내정한 후, 형식적으로 현재의 임차 상인에게 재입점을 희망할 때 가산점 10% 등을 운운하면서 사탕발림 식으로 유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P>
<P>&nbsp;</P>
<P>즉, 이 같은 계획을 숨긴 채 공사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임차 상인을 먼저 내보내야만 한다. 이에&nbsp;협회측에서는 상인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이자, 개별적으로&nbsp;설득해서 집단 반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열을 꾀하고 있다. </P>
<P>&nbsp;</P>
<P>이날 기자간담회와 관련, 한창규 코엑스몰 비상대책 위원회 위원장은 "무역협회측이 공사 완공 후 매장 배치 등과 관련해 밝히지 않은 것이 문제다"며 "기자간담회도 중요하겠지만,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인과 먼저 머리를 맞대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서 대책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떳떳한 입장을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P>
<P>&nbsp;</P>
<P>또 그는 "무역협회는 동반성장과 상생의 관계를 유지하라"면서, "무역협회와 코엑스의 위상을 높이고,&nbsp;상권 활성화를 시킨 임차인의 피와 땀을 인정하고, 리모델링공사 후 재입점을 보장하라"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P>
<P>&nbsp;</P>
<P>현재 코엑스몰에서 영업하고 있는 임차상인은 "무역협회의 자회사인 코엑스(주)가 오는 5월 31일자로 만료되는 시점에 맞추어, 지난&nbsp;29일 '임대차계약 종료 및 갱신거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기존입점자에 대한 재계약을 보장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임차 상인측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여,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새사연</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한국남성 가사노동 시간, OECD 국가 중 가장 적어]]></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60</link><pubDate>2012-05-16T15:26:57+09:00</pubDate><description><![CDATA[<STRONG>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83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834_STD.jpg" align=center></DIV>
<P></P>
<P></P>
<P></STRONG><STRONG><FONT color=#996633>[용어 해설]</FONT> </STRONG><STRONG>무급노동이란?</STRONG></P>
<P>&nbsp;</P>
<P>무급노동(Unpaid Work)은 가족 구성원이 시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요리, 빨래, 집안 청소 등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가사노동과 돌봄 활동이 대표적이다.&nbsp;즉, 무급노동은&nbsp;가사노동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nbsp;각 나라에서 가족의 사회경제적&nbsp;특성을&nbsp;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생활시간조사(time-use survey)를 통해 자료를 얻을 수 있다.</P>
<P>&nbsp;</P>
<P><STRONG><FONT color=#996633>[문제 현상 1]</FONT>&nbsp;유급노동 시간&nbsp;길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nbsp;짧은 한국</STRONG></P>
<P>&nbsp;</P>
<P>OECD 국가들의 유무급노동시간을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유급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48분으로 6시간 16분인 일본 다음으로 길다. 반면, 한국의 무급노동시간은 2시간 16분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짧다. 이처럼 한국의 경우 임금노동시간이 늘어난 만큼, 일상적인 가족 활동에 쏟을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가족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인 시간은 좀처럼 줄이기 힘든 부분으로, 아이나 노인이 있는 경우 가사활동이나 돌봄 활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nbsp;</P>
<P>&nbsp;</P>
<P><STRONG><FONT color=#996633>[문제 현상 2]</FONT>&nbsp;한국 남성, 가사노동 시간 OECD 국가 중&nbsp;가장 짧아</STRONG></P>
<P>&nbsp;</P>
<P>한국 남성의 경우 무급노동, 다시 말해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시간은 일 평균 45분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짧다. OECD 평균 남성의 무급노동 시간은 일 평균 131분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아직은&nbsp;남성 중심의&nbsp;경제활동이 우세하고, 여성의 경우 전업 주부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P>
<P>&nbsp;</P>
<P>그러나&nbsp;맞벌이 부부의 경우조차도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2009년 생활시간조사에 의하면 한국 맞벌이 가구의 여성은 일 평균 가사노동 시간이 227분이었지만, 남성은 45분에 그쳤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5배 이상 많은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nbsp;한국사회의 가족 내 성별분업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함을 알 수 있다. </P>
<P>&nbsp;</P>
<P><STRONG><FONT color=#996633>[진단 및 해법]</FONT> 장시간 임금노동 개선과 국가의 지원 필요</STRONG></P>
<P>&nbsp;</P>
<P>한국의 맞벌이 가구는 꾸준히 증가해서&nbsp;500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맞벌이 여성이 감당해야 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nbsp;이는&nbsp;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정체시키고,&nbsp;결혼과 육아기를 맞은 30대 젊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이탈률도 높게 만든다. 또한 젊은 여성들에게는 결혼과 육아를 선택하지 않도록 만들기도 한다.</P>
<P>&nbsp;</P>
<P>가족 안에서의 성역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 개혁과 국가의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장시간 임금노동 구조를 개선해 남성의 가족활동 시간을 보장하고, 동시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야 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인권연대</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두 나라의 '멸망사'에 담긴 대한민국의 미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94</link><pubDate>2012-05-16T16:12:5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301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01/IE001433019_STD.jpg"></DIV>
<P></P>
<P>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에 걸친 오스만 터키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 모든 것의 발단은 제국이 끝내 이긴 크림전쟁이었다. 크림전쟁으로 국채를 발행했는데, 그 국채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가 채권회수를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핑계는 제국의 조세제도도 못 믿겠고, 야만의 동양의 전제왕정국이라서 제국의 신용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P>
<P>&nbsp;</P>
<P>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도 이스탄불에 직접 '공채관리국(Public Debt Administration)'을 세워 5000명의 관리(직원?)를 고용하여 제국 전역에서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세가 부족하게 되고, 그 때문에 국가재정이 다시 어려워지자 제국은 국채를 더 발행했다. 다시 이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는 공채관리국을 통해 더 많은 제국의 세금을 빼앗아갔다. </P>
<P>&nbsp;</P>
<P>그런 악순환이 30년, 40년 지속되자 제국은 서서히 망해갔다. 더 이상, 제국의 근대적 발전을 위한 투자는커녕, 자신의 고유 영역조차 방비할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의 터키반도와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차례차례 영국과 프랑스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오스만 터키는 망했다.</P>
<P>&nbsp;</P>
<P><STRONG>국가재산 바치기</STRONG></P>
<P>&nbsp;</P>
<P>500년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이 있었다. 너무 길어서 아놀드 토인비 같은 서양학자는 비웃었지만 말이다. 그런 500년의 조선 왕이 어느 날 밤에 자신의 궁궐에서 일본 제국주의 용병과 그들의 앞잡이인 자신이 만든 최신식 군대에 의해 죽음에 내몰렸다. 그냥 공포가 아니라 그의 부인, 민자영은 그날 밤 침입자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날 이후, 죽음의 공포와 불신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P>
<P>&nbsp;</P>
<P>그런데 그의 침상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의 공사들과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이 있어야 편히 잠이 들었다. 급기야는 죽음의 공포를 피해 자신의 궁궐에서 도망쳐 외국 공관으로 도피하여 살았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명복, 즉 고종과 을미사변, 아관파천이란 역사적 사건이다.</P>
<P>&nbsp;</P>
<P>그런데, 자신의 잠자리를 지킨 대가를 외국인들에게 주어야 했다. 국가의 주요 광산과 전기 같은 국책사업, 철도 같은 기간 교통망, 산림, 토지를 다 내주어야 했다. 잠자리를 제공한 러시아에게는 통 크게 가장 많이 내주었다. 친절한 미국에게는 운산의 금광과 경인선을 내주었다. 잠자리의 안전을 지킨 대가치고는 너무 큰 것이다.</P>
<P>&nbsp;</P>
<P>널리 알려진 대로, '노다지'의 어원이 평안도 운산의 금광에서 노동하는 조선인 노동자에게 미국인 광산주가 "no touch(노 터치)!"라고 하는 야멸찬 멸시의 말이라고 한다. 심지어 광산주가 지역토지를 강탈하고 지역농민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한제국"이고, "광무황제"라고 한다. 그리고 "광무개혁"을 해서 근대화를 하겠다고 떠들어 댔다.</P>
<P>&nbsp;</P>
<P>물론, 당시에도 이 터무니없는 국가자산의 외국자본 침탈에 저항이 많았다. 조선 최초의 시민단체인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라는, 종로에서의 대중 집회를 열어 담당 대신들과 공개토론회를 여는 등 반대여론을 이끌었다. 하지만, 국가 자산을 헐값 또는 공짜로 외국 자본에게 퍼준 조선의 왕은 독립협회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그러고도 개혁을 한다고 꼴값을 떨었다. 하지만 국가 재산과 시민을 망가트리며 한 그 개혁은 필연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망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해서가 아니라 왕이 잘못해서 조선은 망했다.</P>
<P>&nbsp;</P>
<P><STRONG>맥쿼리와 민자사업 </STRONG></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302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01/IE001433021_STD.jpg"></DIV>
<P></P>
<P>이번 글의 시작을 두 나라의 망국으로 한 것은 요즘, 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건이 있어서이다. 맥쿼리와 소위 민자사업 문제이다. 지하철 9호선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50% 고율의 요금인상 문제로 시끄러워지며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더욱 가관인 것인 서울시가 만류함에도 막무가내로 강행하겠다고 나서니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 공공재인 지하철 그리고 그것을 운영하는 민간회사와의 부조화와 파열음에는 "맥쿼리"라는 호주의 투자은행, 투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P>
<P>&nbsp;</P>
<P>맥쿼리는 한국에 진출해, 2002년 12월에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Macquarie Korea Infrastructure Fund, MKIF) 또는 약칭 맥쿼리코리아를 설립했다. 아시아 최대 상장 인프라 펀드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투자법에서 허용하는 대한민국의 인프라 자산에 투자를 하는 회사다.</P>
<P>&nbsp;</P>
<P>문제는 이들의 수익구조에 있다. 맥쿼리는 서울메트로 9호선(주)에 투자해서 대주주가 된 뒤 그 회사에 고금리 대출을 했고, 수익구조가 악화돼도 정부 보조금으로 그 수익을 보전하게 되어 있다(최소운영수입보장제, MRG). 서울도시철도 9호선에 연간 영업손실이 26억 원에 불과하지만 맥쿼리 등 채권자에 물어주는 이자는 461억 원이나 된다. </P>
<P>&nbsp;</P>
<P>그뿐이 아니다. 국가 재정으로 수익을 내는 것에 만족을 못하는 맥쿼리나 서울도시철도 9호선을 운영하는 여타 자본들은 이용료를 시민들에게 직접 받고 있다. 그것이 이번 고율 요금 인상 문제로 불거졌다. 또, 같은 방식으로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고가의 유료도로마다 시민들 원성이 자자한 것이다. 맥쿼리는 전국 8도 주요 14개 교통망 사업에 1조7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작년에만 1628억 원의 이자수익을 올렸다.</P>
<P>&nbsp;</P>
<P>앞으로도 짧게는 24년에서 길게는 30년을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퍼주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고가의 이용 요금을 직접 걷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하는 시민들과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P>
<P>&nbsp;</P>
<P>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현재의 민자사업이 가지는 자체의 문제가 있고, 둘째, 투기자본으로서의 맥쿼리 자본의 문제, 셋째, 경제관료, '법무법인 김앤장'&nbsp;등 전문가 집단과 관련된 부패의 문제가 있다. 특히, 맥쿼리코리아의 이사인 김앤장 출신의 조대현, 세계은행 출신의 송경순, 임대형 민자사업 제도(BTL)를 도입한 경제관료 출신의 윤대희. 이 3인의 역할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P>
<P>&nbsp;</P>
<P><STRONG>인프라 건설은 세금으로</STRONG></P>
<P>&nbsp;</P>
<P>국가의 인프라 건설과 유지는 국가 스스로 세금으로 해야 옳다. 꼭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 지금같이 민간자본, 그것도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내맡긴다면, 재정낭비, 세금 퍼주기를 계속 하면, 그 폐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위에서 거론한 오스만 터키나 조선같이 망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피해는 다수 시민들이 짊어져야 하므로 부당한 것이다. </P>
<P>&nbsp;</P>
<P>따라서, 문제의 민자사업 방식에 대한 폐기 또는 전면적 개혁, 투기자본 맥쿼리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 또, 전관예우와 회전문인사로 연결된 전현직 경제관료들의 투기자본과의 결탁 의혹도 규명이 필요하며, 재발방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성낙선</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삼척시의회 원전 '주민투표실시안' 발의하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71</link><pubDate>2012-05-16T13:49:34+09:00</pubDate><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이하 백지화투쟁위)는 15일 삼척시 삼척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척시에 원전을 유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삼척시의회는 '주민투표실시안'을 즉각 발의하라"고 요구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삼척시의회는 15일부터 25일까지 제156회 삼척시의회 임시회를 진행한다. 백지화투쟁위는 현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지식경제부가 핵발전소 예정부지고시를 위한 법적 절차를 이행하고 있어 이번 임시회가 주민투표 실시안을 발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백지화투쟁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삼척시의회가 "2010년 12월 14일 핵발전소유치동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삼척시민에게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삼척시의회 시의원들 스스로가 삼척시민들에게 약속한 주민투표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삼척시민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압박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그리고 "삼척시의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으로서 즉각 주민투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백지화투쟁위는 "삼척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무너진 지역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길이며, 핵발전소유치를 반대하는 삼척시민들의 민의와 소통하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길임을 삼척시의원들은 명심하고 대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백지화투쟁위는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이재 제19대 동해삼척 선거구 국회의원 당선자에게도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 줄 것을 요구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백지화투쟁위는&nbsp;이 당선자가 4·11총선 당시 '원전 유치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서 빈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SPAN></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그리고&nbsp;"지역구의 국회의원은 지방선거에서 공천권과 같은 막강한 실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주민투표 발의를 위해 이 당선자가 시의원들을 설득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삼척시 시의원 8명 중에서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은 6명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그러나&nbsp;현재 삼척시의회가 백지화투쟁위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삼척시의회 김상찬 시의장은 "주민투표안을 발의하면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시의원들 사이에 찬반이 팽배해 부결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며 "오히려 분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원전 반대 측에서 계획하고 있는 대로 "주민소환운동제로 가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이이재 당선자 역시 당장 시의회에서 주민투표 실시안을 발의하는 데 회의적이다.&nbsp;이 당선자는 이 문제를 찬성과 반대 측이 서로&nbsp;대화해 풀어나갈 것을 주문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이 당선자는 "원전 반대 측은 주민투표를 촉구하고, 찬성 측은 이제 와서 무슨 투표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시의원들과 찬반 양측이 모두 참여한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대화를 함으로써 주민들이 어느 쪽이 일리가 있는지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선자는&nbsp;"(결국) 주민투표를 하고 안하고는 시의회가 결정할 사항으로 시의회 차원에서 그런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한편 백지화투쟁위는 이번 임시회에서 주민투표 실시안이 발의되는 것과 상관없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에게는 김대수 삼척시장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일만 남겨져 있다"며, 김대수 삼척시장을 대상으로 주민소환운동을 실시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SPAN></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주영</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세금 208억 들여 박정희 찬양한다고?"]]></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808</link><pubDate>2012-05-16T13:35:2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75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753_STD.jpg" align=center></DIV>
<P align=justify>박정희기념·도서관 대책시민회의와 역사정의실천연대는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6군사쿠데타를 미화·찬양하는 박정희기념·도서관을 규탄했다. 40여 명의 참가자들은 세금 208억 원으로 세운 기념관을 공공도서관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P>
<P>&nbsp;</P>
<P>참가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과 유신체제의 서막이 되었던 5·16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기념관을 향해 날선 비판을 던졌다.</P>
<P>&nbsp;</P>
<P><STRONG>"독일은 히틀러 기념관을 만들지 않는데 우리는..."</STRONG></P>
<P>&nbsp;</P>
<P>기자회견문을 통해 참가자들은 "초중고 역사교과서에서는 5·16을 '정변'으로 가르치고 있는데도 박정희기념관은 이를 혁명으로 포장하여 찬양·미화하고 있다"며 "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주려는 사회적 범죄"라고 힐난했다.</P>
<P>&nbsp;</P>
<P>정동익 역사정의실천연대 공동대표는 "독일은 전 세계적 비난을 우려해 히틀러기념관을 만들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도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시설을 세우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P>
<P>&nbsp;</P>
<P>이어 참가자들은 기념관이 국고로 세운 공공시설인 만큼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공공도서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P>
<P>&nbsp;</P>
<P>정 대표는 "국고를 들여 서울시 땅에 지었으면 지역 주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며 "서울시가 나서 현 명칭을 바꾸고 기념관을 주민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P>
<P>&nbsp;</P>
<P>기자회견 이후 활동과 관련해 이단아 시민회의 사무처장은 "11월에 열릴 도서관에 들어올 책들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을 찬양하는 도서였다"며 "앞으로 각 지역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민 발의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가겠다"고 말했다.</P>
<P>&nbsp;</P>
<P>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사와의 화해' 차원에서 제안했던&nbsp;박정희기념·도서관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자리한 3층 규모의 건물이다. 지난 2월 문을 연 기념관과 올 11월에 개관할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 사업에는 국비 208억 원이 지원됐고 서울시는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했다. </P>
<P>&nbsp;</P>
<P>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연고도 없는 지역에 박정희 정권을 찬양하는 시설을 둘 수 없다"며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정민</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자승 총무원장 스님,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487</link><pubDate>2012-05-16T09:50:20+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333399>
<DIV align=left>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28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80_STD.jpg"></DIV>
<P></P>"108배 참회로 지난날의 과오가 과연 치유될까요. 이미 뼛속 깊이 상처 입은 2천만 불자들의 불심은 그 누가 치유해 줄까요. 정답은 자승 총무원장 스님께서 권력을 내려놓고 입적할 때까지 선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일 겁니다."</FONT></DIV>
<P>&nbsp;</P>
<P>저는 지난 기사(<FONT color=#ff3333><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8430" target=_blank>&lt;"자승 총무원장 스님은 물러나시라"&gt;</A></FONT>)를 통해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조계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총무원장 스님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최근의 진보당 내부 정파 권력의 헤게모니 싸움과도 연상되겠지만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만연된 종파별 헤게모니 투쟁으로 인해 이미 불자들의 마음은 거죽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P>
<P>&nbsp;</P>
<P>지난 기사에도 이미 밝혔다시피 자승 스님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의혹은 이미 언론과 원로 스님들의 인터뷰 속에도 많이 공개가 되어왔습니다. </P>
<P>&nbsp;</P>
<P>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건 말고도 불교계에선 이미 스님들의 곡차(음주)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스님도 사람인지라 왜 술과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것도 중용의 도를 내세우며 조금씩 사부대중과 가까이 하기 위함이겠지요. </P>
<P>&nbsp;</P>
<P>하지만 최근 드러난 도박사건을 접하면서 그 행태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자로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도덕적 타락의 행태들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P>
<P>&nbsp;</P>
<P><STRONG>스님, 부처님의 법문을 잊으셨나요</STRONG></P>
<P><STRONG></STRONG>&nbsp;</P>
<P>역사 속 불교는 수많은 핍박과 압제의 굴레 속에서 산 속으로 쫓겨 다니면서도 민족문화유산으로서의&nbsp;가치를 지켜내기위해 정진해왔습니다. 허나 최근&nbsp;수 년 사이 불교도 기독교 교회처럼 도시 속에 많은 사찰이 들어서고 열 집 건너 목탁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부대중과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이는 불교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따뜻한 공동체 문화 창달을 위해 함께 정진하려는 숨은 가치 때문이겠지요.</P>
<P>&nbsp;</P>
<P>하지만 이런 본래 취지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최근 들어 스님들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 형국입니다. 성추행, 폭행, 음주사고, 각종 이권개입 등 스님으로서는 행해서는 안 될 초유의 작태들이 불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P>
<P>&nbsp;</P>
<P>이번 도박 사건은 특히 자승 총무원장 스님을 추대했던 종단의 집행부 스님들께서 저지른 중대한 치욕으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탓에 국민들은 불교에 등을 돌리며 갖은 루머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단순히 108배&nbsp;참회, 정진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풀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
<P>&nbsp;</P>
<P>적어도 지도자라면, 특히 종교계의 수장이라면 스스로 자성과 쇄신의 결사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입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2000만 불자와 타 종교인들에게 백배 참회하는 진정성이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P>
<P>&nbsp;</P>
<P>더욱이 최근 꾸려진 자승 스님의 새로운 집행부가 불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몰래카메라 동영상 배후를 캐겠다고 합니다. 또한 검증과 확인도&nbsp;되지 않은 일부 스님의&nbsp;발언을 그대로 언론에 내보내 무차별적인 흠집내기에 나선 언론들에게도 책임 여부를 묻겠다고 하니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P>
<P>&nbsp;</P>
<P><STRONG>진정성이 없으면 불교계 혁신은 없다</STRONG></P>
<P>&nbsp;</P>
<P>불교계는&nbsp;MB정권 들어 종교편향정책 등의 사태로 말미암아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단결과 화합의 의미가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 사태가 그동안 읍소했던 모든 종교평화의 메시지를 단박에 훼손시킬 수 있어 우려됩니다. 33대 조계종 총무원이 밝힌 4개년 계획처럼 이젠 스스로 불교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수장이 먼저&nbsp;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응당 옳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P>
<P>&nbsp;</P>
<P>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항상 불교계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이슈메이커를 자처했던 김영국 거사는 한 언론사의 칼럼을 통해 "진정성이 없으면 결코 불교쇄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렇듯 지금 필요한 건 자승 스님의 108배 참회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물러나는 개혁의 진정성인 것입니다.</P>
<P>&nbsp;</P>
<P>김광식 동국대 교수는 지난 2010년 불교정화운동 50주년 학술세미나를 통해 "조계종단이 세속에 물들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사정치 집단화 되고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일부 기득권 종파세력의 정치놀음으로 인해 1600년 불교역사의 정체성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 없는 의미이기도 합니다.</P>
<P>&nbsp;</P>
<P>종교인이었지만 항상 대중들의 마음속에 위대한 선각자로 존경을 마지않았던 법정 스님은 저서 &lt;무소유&gt;를 통해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또한 &lt;오두막 편지&gt;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항상 의심하라"고 법문을 남기셨습니다.</P>
<P>&nbsp;</P>
<P>2주가 지나면 부처님 오신 날의 봉축법요식이 봉행됩니다. 올해 조계종 법요식의 모토는 '마음에 평화를, 세상에 행복을'이라는 소박한 바람을 담았습니다. 진정 이 법구처럼 스님들 스스로가 사부대중들에게 마음에 평화를 주고 있는지, 세상에 행복을 보듬고 있는지 뼛속깊이 자문해봐야 할 때입니다. </P>
<P>&nbsp;</P>
<P>혹시나 부처가 전한 법문을 악용해 신도들의 불심을 유린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불상 위에서 내려오시길 바랍니다.&nbsp;그리고 아직도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nbsp;이제 그만 권력의 탈에서 벗어나시길 진심으로 기원해봅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FONT></P>]]></description></item><item><author>윤성효</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CDATA["'친일' 김백일 동상은 철거해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739</link><pubDate>2012-05-16T13:47:47+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법원이 문화재보호법을 어겨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에 세워진 김백일(金白一, 본명 김찬규, 창씨개명 金澤俊男, 1917~1951) 장군 동상을 그대로 두라고 판결했지만,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기에 마땅히 철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거제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김백일 동상 철거 범시민대책위원회'는 16일 오전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반민족 행위자 김백일 동상은 마땅히 철거되어야 할 것"과 "거제시는 재판과정에서 확인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하여 공식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창원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이일주)는 지난 10일 "거제시는 김백일 동상 철거 명령과 동상 건립 승인 취소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김백일 장군 동상을 그대로 두라고 한 것인데, 거제시가 패소한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STRONG>
<DIV align=center><IMG id=IIE00137129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1117/IE001371293_STD.jpg"></DIV>
<P></P>
<P align=justify>시민대책위 "참담한 심정으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판단"</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김백일 장군에 대해, 시민대책위는 "대통령 소속으로 구성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김백일은 항일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악명을 떨친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훈장까지 받은 악질적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하여 이명박 정부가 2009년에 발표한 인물"이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법원 판결에 대해, 시민대책위는 "거제 시민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김백일 동상 철거 운동에 나선 거제시민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참담한 심정으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시민대책위는 "즉각 항소할 것을 거제시에 촉구하며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본지를 떠난 자구해석으로 인해 무산되지 않도록, 역사정의에 부합하는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광복회를 비롯한 민족문제 연구소, 역사학계 등과 뜻을 모아 의견서를 상급 재판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거제시에 대해 무능·무책임이라며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시민대책위는 "친일파 김백일의 동상을 세우려다 속초시민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파주에서는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의 동상 건립 시도를 파주 시민들이 건립 반대 서명운동과 촛불 집회를 통해 막아낸 사실을 거제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 거제시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동상을 세웠던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동상 철거 주장․보도와 관련해 시민단체 대표와 거제시의원, 언론사 기자, 토론회 참석자에 대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경찰․검찰 수사 결과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에 대해, 시민대책위는 "기념사업회측은 무혐의로 처리된 고소사건에 대해 시민에게 정중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시민대책위는 "기념사업회는 김백일 동상 철거운동에 나선 거제 시민을 향하여 무지와 경솔 그리고 종북세력의 준동으로 몰아가는 반역사적 몰가치적 망언을 쏟아 냈다"며 "무차별 고소를 남발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 졌다"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들은 "기념사업회 측은 고소와 관련해 거제시민에게 사과하고, 김백일 동상을 자발적으로 이전해 갈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면서 "친일파 김백일 동상이 철거 되는 그 날까지 거제의 역사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힘찬 대열에 끝까지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법원 "동상 설치가 공익 해할 우려 있다고 보기 어려워"</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기념사업회는 김백일 장군이 6․25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벌였다며 2011년 5월 27일 세웠던 것이다. 거제포로수용소는 경남도 지정 문화재인데, 문화재 안에 동상 건립 등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형상변경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시 거제시는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동상 건립을 승인해 주어 말썽을 빚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동상 건립 뒤 시민단체와 거제시의회는 동상 철거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거제시가 동상 철거를 기념사업회에 요구하자, 기념사업회가 법원에 '거제포로수용소 김백일 장군 동상에 대한 철거명령·철거대집행계고 처분'(2011년 7월 26일)과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 승인 취소 처분'(2011년 11월 29일) 소송을 냈던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1심 재판부는 기념사업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거제시장가 기념사업회에 승인하고, 기념사업회에 어떠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동상을 설치하고 제막식까지 개최했다"며 "승인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신뢰한 기념사업회의 이익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뢰보호의원칙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또 재판부는 "거제시는 동상 설치로 인해 거제시민의 화합, 정서적 안정과 통합, 법치국가의 원리, 행정의 법률 적합성 등의 공익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나, 동상의 설치가 공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P>]]></description></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