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민족·국제</title><link>http://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12-05-16T14:56:03+09:00</lastBuildDate><item><author>박용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조국은 항일 선열 이중화를 기억하지 않았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19</link><pubDate>2012-05-16T14:53:52+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left>"말을 바르고 옳게 하고, 글을 바르고 옳게 써서 우리의 정신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를 튼튼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빛이 널리 퍼지면 우리는 다 같이 그 때에 우리가 우리의 할 바를 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nbsp; - 이윤재, &lt;표준 한글사전&gt;의 머리말 중.</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이중화의 말이다.&nbsp;우리 민족의 분발을 촉구하였던 항일 선열 이중화는 조국을 온 몸으로 사랑하였으나, 조국은 그를 기억해 주지 않았다. 여기서 소개하는 이중화(李重華, 1881-1950? 호는 동운)는 일제시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정국시기에도 우리나라를 반듯하게 세운 활동을 한 애국지사였다. </P>
<P align=left><BR><IMG id=IIE001439499 hspace=15 align=lef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499_STD.jpg"></P>
<P align=left>그러나 6·25전쟁 도중인 1950년 7월 24일 서울 종로에서 인민군에 납치되어 납북된 뒤, 이후 그의 업적은 매몰되었다.(인터넷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납북자 명단에 나옴.)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납북될 당시의 나이가 70세였다. 그의 후손들도 빈곤에 허덕이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그런 관계로 지금까지 선열을 제대로 예우할 수 없었다.</P>
<P align=left><BR>필자는 최근에 조선어학회의 항일 선열을 정리하는 도중 항일투쟁을 활발히 하였음에도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한 이중화 선생을 발견하였다.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이중화는 1881년 한성시 징청방 두석동(현재 종로1가)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에 10년간 한문을 배웠다. 1899년 9월 민영환이 설립한 흥화학교에 입학한 뒤에 영어와 지리와 역사 과목을 수학하였다. 특히 남궁억 교사에게 영어를 배웠다. 1903년 6월 흥화학교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흥화학교가 폐교되자, 그 해 11월 배재학당에 조선어와 역사지리 교사로 부임하였다.(&lt;배재학보&gt;제일호, 1918, 33쪽) 주시경과 함께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P>
<P align=left><BR>배재학교에서 3·1운동 때 독립선포문을 작성하여 배포한 혐의로 그는 교사 강매, 김진호, 김성호와 학생대표 김병호 등 18명과 함께 일제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nbsp;아울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출신 이일선과 독립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인쇄하여 외국인의 집에 배포하기도 하였다.(&lt;배재80년사&gt;, 1965, 448쪽.) 이후 1935년까지 배재학교에서 근속한 뒤, 같은 해 경성 여자 미술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P>
<P align=left><BR>그는 1910년 일제 강점시기부터 그들의 강압통치에 불만을 품고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였다. 조선어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1936년 4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조선어사전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8월에는 조선어 표준말 사정위원회의 제3회 독회에 참여하였고, 표준어 제정의 수정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에도 참여하였다.</P>
<P align=left><BR>일제가 일으킨 조선어학회 사건에 그도 연루되었다. 1942년 10월 1일 서울에서 체포되어 함남 홍원경찰서와 함흥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때 나이가 62세였다. 일제는 환갑이 넘은 연로한 인사도 구속하여 구타하고 고문을 자행하였다. 아들 이순호와 며느리 지명식(현재 92세)씨가 함흥감옥에 면회를 갔을 때, 그는 감옥 생활의 고통을 얘기하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이는 지명식씨가 자식인 이봉수(이중화의 직계손자, 현재 56세)에게 전한 이야기다.&nbsp; </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0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05_STD.jpg"></DIV>
<P></P>
<P></P>
<P align=left>1945년 1월 16일에 이중화는 일제로부터 1심 판결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일제는 예심종결결정문에서 이중화가 "조선어학회가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인 줄을 알면서도 사무원이 되어 조선독립의 목적을 위해 수행한 점과,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는 조선어사전 편찬에 종사한 점이 일제의 치안유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기술하였다. 형기를 모두 마친 뒤 1945년 1월에야 석방되었다. 나이 65세에 풀려났다.</P>
<P align=left><BR>한편 일제시기에 그는 3권의 책을 저술하여 우리 민족에 기여하였다. &lt;경성기략(京城記略)&gt;(1918)은 그가 일제시대 조선의 서울인 경성의 역사를 방대한 문헌에 의거하여 기술한 책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에 조선으로,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 대신에 경성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하였다. </P>
<P align=left>&nbsp;</P>
<P align=left>그는 책 저술의 배경으로 서울의 명승고적이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훼손됨을 안타까워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적이 보존되기를 염원하여 이를 기술하였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그는 백제 온조왕 때부터 도읍지 역할을 한 서울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전부 서술하였다.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점령과 고려조 남경의 역사, 조선조 한성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기술하였다. 아울러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다만 이 책의 한계는 일제의 총독정치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는 그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면서 극복해 나갔다.<BR></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6_STD.jpg"></DIV>
<P></P>
<P></P>
<P align=left>두 번째 저술인 &lt;경주기행&gt;(1922)은 저자가 배재고보 교원시절인 1918년과 1920년에 걸처 경주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방대한 역사문헌에 의거해 서술한 것이다. 아울러 신라인의 종교, 미술, 무용(武勇)까지 기술한 점에서 미루어 보면 신라문화유산답사기로 볼 수 있다. </P>
<P align=left><BR>그는 머리말에서 "'기번'에 비기지 못할지로대 김부식의 저서를 읽는 선비여, 조선의 로마라 일컬을 경주에 유람하는 사람들이여, 기왕에 찬란한 우리 미술의 장관이 다시 재현케 함을 도모하기 원하노라"라고 썼다. 아울러 그는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무열왕과 문무왕의 공훈과 김유신의 업적만을 드러내서는 아니된다고 일침을 가하였다. 신라인들이 진취주의의 기상을 유지하는 높은 품성을 가졌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한 마음을 유지하여 나라를 위하였기에 통일의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점은 일제시대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P>
<P align=left><BR>&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7_STD.jpg?81"></DIV>
<P></P>
<P></P>
<P align=left><BR>세 번째 저술인 &lt;조선의 궁술&gt;(1929)은 조선궁술연구회가 조선역사학계의 권위자였던 이중화에게 편찬을 부탁하여, 그가 저술한 명저이다. 조선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활과 화살에 대해, 활쏘기에 대한 일을 방대한 역사문헌에 의거하여 서술하였다. 아울러 1백여 명에 달하는 활쏘기의 달인들의 일화까지 수록하였다. 더욱 빛나는 부분은 활과 화살에 관련된 수많은 어휘를 수집하여 우리말로 뜻풀이를 한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조선민족의 꺾이지 않는 기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책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lt;새롭게 읽는 조선의 궁술&gt;(이성곤 옮긴이, 국립민속박물관, 2008)로 쉽게 풀이되어 나왔다. </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8_STD.jpg"></DIV>
<P></P>
<P></P>
<P align=left><BR>해방 뒤 그는 다시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lt;조선말 큰사전&gt; 편찬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큰 사전에 실린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제도와 음식에 대한 용어를 그가 풀이하였다. 1948년 한글학회가 재단법인으로 설립될 때, 학회를 위해 경기도 부천에 있는 9962평에 달하는 토지를 기증하였다.(&lt;한글&gt;107, 1949, 71쪽) 1949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은 인사들이 조직한 십일회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P>
<P align=lef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1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519_STD.jpg?38"></DIV>
<P></P>
<P>아울러 그는 한글학회의 후원재단인 '한글집'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48년부터 국학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였다.(이상의 이중화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서술은 이강로의 ｢동운 이중화 스승｣(&lt;조선어학회수난 50돌 기념 글모이&gt;, 한글학회, 1993.)을 참조하여 작성함) 학장으로 재임 도중에 6·25전쟁 때 인민군에 납치되었다. </P>
<P>&nbsp;</P>
<P>아들 이순호는 아버지 이중화가 '학교에 나가신 뒤에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말을 최호연(당시 조선어학회에서 이중화와 함께 근무함)에게 하였다고 한다.(최호연, &lt;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gt;하, 진명문화사) 아직까지 생사확인도 알지 못한 상태에 있고,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포상하나 받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정부 기관은 그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길 바란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윤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오바마 동성결혼 지지, 소신 아닌 선거용?]]></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62</link><pubDate>2012-05-16T11:12:4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justify>미국 유권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 선언을 대선을 위한 정치적 계산으로 보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DIV>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lt;뉴욕타임스&gt;와 CBS 방송이 지난 5월&nbsp;11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성인 615명을 대상으로 해 15일(한국시각)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7%가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 선언은 정치적 이유(political reasons)로 본다'고 답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반면,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에 의해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했다고 보는 응답자는 불과 24%에 그쳤다.&nbsp;정치적 이유와 소신 두 가지 모두에 의한 것이라는 응답자는 2%였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는 11월 대선에서 맞붙게 될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는 최근 동성결혼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입장을 내놓아 대립하고 있다.&nbsp;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롬니는 동성결혼 반대 의사를 밝혔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지지가 대선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응답은&nbsp;16%에 그친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이 26%로 더 많았다.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라는 응답도 57%에 달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자신을 무당파라고 밝힌 유권자 홀리 라이트(Holly Wright) &lt;뉴욕타임스&gt;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nbsp;대통령은 보다 많은 사람이 동성결혼을 인정한다고 믿고 대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며 동성결혼 지지 선언을 평가절하했다.&nbsp; </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동성결혼 합법화 지지율 증가</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동성결혼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도 변화했다.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38%를 기록하며 2004년 22%보다 크게 늘었다. 반면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응답은 8년 전 40%에서 33%로 감소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아니더라도 '시민적 결합(civil union)'으로 불리는 준 결혼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24%를 기록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동성결혼을 주요 관심사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동성결혼 지지 여부를 대선의 주요 이슈로 본다는 응답자는 단 7%에 그치고 말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반면 경제와 일자리 창출이 가장 많은 62%를 기록하며 역시 최대 이슈로 확인됐고 재정적자 해소(11%), 건강보험(9%) 등이 그 뒤를 이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원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미 국무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 일축]]></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652</link><pubDate>2012-05-16T10:59:44+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953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6/IE001439535_STD.jpg"></DIV>
<P></P>
<P>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추진 논란과 관련하여 미 국무부는 이 같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P>
<P>&nbsp;</P>
<P>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4일(미국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미 하원 군사위의 논의에 따라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할 가능성이 있느냐의 기자 질문에 "우리의 정책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지지이다"고 잘라 말했다.</P>
<P>&nbsp;</P>
<P>그녀는 "우리 입장에서는 남한의 방위를 위한 전술 핵무기의 필요성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배치할 어떤 의도나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일축했다.</P>
<P>&nbsp;</P>
<P>지난 9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행정부의 보고서 제출을 골자로 하는 '2013 미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527" target=_blank>관련기사</A>). 이와 관련하여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이를 조기에 차단할 목적으로 재배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P>
<P>&nbsp;</P>
<P>한편, 최근 북한이 (위장)광산회사를 이용하여 시리아와 이란에 대량 살상무기를 팔고 있다는 영국 &lt;데일리 미러&gt;지의 보도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신문 보도에 대해 직접 언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가 이러한 재래식 무기는 물론 탄도미사일 등을 수출하기 위한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P>
<P>&nbsp;</P>
<P>이어 눌런드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군비 확산 행동에 심각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의 지역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관련 우방과 협의하여 중단시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밝혀 전술핵 재배치 논란에 이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의 무기 수출 의혹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고 있음을 나타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최경준</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백악관 앞 '강정댄스', 뉴욕에선 '보이콧 삼성']]></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476</link><pubDate>2012-05-15T16:20:40+09:00</pubDate><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SPAN></P>
<DIV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center><IMG id=IIE00143924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49_STD.jpg" align=center></DIV>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align=justify><FONT color=#333333><SPAN style="FONT-SIZE: 15px;LINE-HEIGHT:140%">구럼비 바위는 제주 강정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SPAN></FONT></P>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justify></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P><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BR></P></SPAN>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경찰이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원천 봉쇄한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를 막기 위한 경찰의 강경책이 오히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바다 건너 국제 이슈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애틀랜타에서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국제 연대 시위'가 프랑스와 일본, 영국과 독일 등을 거쳐 다시 지난 12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됐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P><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BR></P></SPAN>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FONT face=굴림><B>한국에서 추방당한 평화운동가, 영국 한국대사관 시위 조직</B></FON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P><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BR></P></SPAN>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지난달부터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할 수가 없다. 4·11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틀 뒤, 경찰이 강정마을 주요 지점에서의 집회를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서귀포경찰서장을 상대로 법원에 효력정지 소송을 냈지만 이 또한 지난 11일 기각됐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P><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BR></P></SPAN>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경찰은 집회 금지 조치와 함께 주민과 시위대를 무더기 연행했다. 종교행사 정도가 허용되고 있지만, 사제들 역시 경찰과 건설사에서 고용한 용역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6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가 강정마을 서방파제에 있는 7m 높이의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기도 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center><IMG id=IIE00140707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226/IE001407078_STD.jpg" align=center></DIV>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FONT color=#333333><SPAN style="FONT-SIZE: 15px;LINE-HEIGHT:140%">앞서 경찰은 지난 3월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영국의 노벨평화상 후보자 앤지 젤터(Angie Zelter·61·여)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강제 추방 절차를 밟기도 했다. 젤터씨는 또 다른 평화운동가 벤쟈민 모네와 함께 강제출국(출국명령) 당한 이후 모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 강정을 위한 연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SPAN></FONT>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젤터씨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강정마을에 보낸 편지에서 지난 5년간 강정주민이 벌여온 비폭력적이면서도 헌신적인 투쟁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제는 지친 강정주민을 위해 밖에서 연대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FONT color=#996633>"여러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온 세계의 평화와 사랑의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다. 저희들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의 준비들을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평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 지구적 운동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한국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거나, 항의 편지를 쓸 것이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center><IMG id=IIE00143925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53_STD.jpg?43" align=center></DIV>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FONT color=#333333><SPAN style="FONT-SIZE: 15px;LINE-HEIGHT:140%">실제 젤터씨는 지난 9일 영국 런던에 소재한 한국대사관 앞에서 60여 명의 평화·환경운동가들과 함께 강정마을을 위한 연대 시위를 개최했다. 앞서 젤터씨는 이 연대 시위를 조직하면서 온라인상에 올린 글에서 "(강정) 주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바라며 또한 해안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며 "강정 주민들에게는 국제 사회로부터의 든든하고 분명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SPAN></FONT>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젤터씨의 강정 연대 시위 계획이 알려지자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교포들도 강정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한 국제 평화 시위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미국 애틀랜타를 시작으로 같은 달 30일 미국 시애틀, 이달 5일 미국 워싱턴디시, 6일 프랑스 파리와 일본 후쿠오카, 9일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시위가 열렸으며, 12일 미국 뉴욕에서 마지막 연대 시위가 개최됐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영국 런던 한국대사관 앞에 모인 평화·환경운동가들은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와 봄비를 맞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제주도를 전쟁의 섬으로 만들지 말아요", "제주에 해군은 안 된다. 지구를 지키자", "상처 난 구럼비" 등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또한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연대 시위는 평화를 위한 종이배 접기 퍼포먼스와 풍물놀이로 진행됐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center><IMG id=IIE00143925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54_STD.jpg?78" align=center></DIV>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FONT face=굴림 color=#333333><SPAN style="FONT-SIZE: 15px;LINE-HEIGHT:21px"><B>강정에서 시위 금지? '우린 해외에서 한다'</B></SPAN></FON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특히 지난 5일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진행된 연대 시위는 딱딱한 집회 형식을 탈피해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온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린이날이라는 점에 착안,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어린이 창작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무 밑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했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또한 이날 시위를 위해 참가자들이 사전에 연습했던 '강정댄스'는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자제 제작한 'I♥JEJU' 티셔츠를 맞춰 입은 이들이 신나게 율동을 선보이자, 관광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지난 12일 오후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열린 강정 연대 시위에서는 '보이콧 삼성' 피켓이 등장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시공사 중 한 곳이 삼성물산이기 때문이다. 피켓에 적힌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구럼비 바위' 등은 모두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보이콧 삼성'이 선명하게 새겨진 피켓을 본 상당수 외국인들은 발길을 멈추고 시위대에 관심을 보였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이날 시위 기획자 중 한 명인 김요세피나(38, 패션보석 디자이너)씨는 "'보이콧 삼성'이 목적이 아니라 삼성과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목적"이라며 "제주도나 강정 해군기지는 몰라도 삼성을 모르는 외국인은 없기 때문에 삼성 얘기를 통해서 강정 해군기지 이슈를 끄집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니온스퀘어를 찾은 외국인들을 붙잡고 "삼성과 한국 정부에 의해서 아름다운 제주도가 파괴되고 있다"며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김씨의 설명을 들은 미쉘 무어(60)씨는 "당신들이 오늘 시위를 통해 삼성의 부도덕성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삼성의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는 또 "미국이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짓는 것을 중단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미국은 패권주의를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고,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align=center><IMG id=IIE001439250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5/IE001439250_STD.jpg" align=center></DIV>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FONT color=#333333><SPAN style="FONT-SIZE: 15px;LINE-HEIGHT:140%">반면 일부 외국인들은 '보이콧 삼성' 캠페인에 대해 의아해 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효정(31, 유학생)씨는 "미국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은 '왜 삼성을 보이콧해야 하느냐'며 놀라워하다가도 강정 해군기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대체로 이해하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어떤 시민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삼성을 한국에서 온 너희들이 보이콧하면 너희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SPAN></FONT>
<P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뉴욕을 끝으로 젤터씨가 제안한 강정마을과의 국제 연대 릴레이 시위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해외 연대 시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젤터씨는 강정마을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FONT color=#996633>"제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저는 제 자신의 이름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구럼비를 지키자'라고 했고, 두 번째에는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구럼비를 지키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경찰이 나의 국적과 신분증을 요구할 때에도 저는 '현재 강정에서 살고 있는 세계시민'이라고 대답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15px;COLOR: rgb(51,51,51); 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젤터씨는 물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이 제2, 제3의 국제 연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정마을에서 집회의 자유를 봉쇄한 경찰의 강경책이 오히려 세계의 시선을 강정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SPAN></P>]]></description></item><item><author>윤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미니 총선' 참패한 독일 메르켈, "쓰라린 패배"]]></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361</link><pubDate>2012-05-15T12:03:42+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25423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111/IE001254234_STD.jpg"></DIV>
<P></P>
<P align=justify>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이 지방선거에서 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렸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기민당은 지난 14일(한국시각) 치러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저 수준인 26.3%의 득표율을 기록하는데 그치며 39.1%를 득표한 사회민주당(사민당)에 완패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기민당은 지난 6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지방선거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다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부진하면서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정에 패하고 말았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더구나 1320만 명의 유권자가 있는 독일 최대 선거구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열린 이번 지방선거는 내년 총선의 표심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예비 총선'으로 불렸기에&nbsp;패배의 충격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로써 내년 총선 3선 도전에 '빨간불'이 켜진 메르켈 총리는 15일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쓰라리고 고통스러운(bitter, painful) 패배"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번 선거는 나에 대한 투표가 아니었다"고&nbsp;의미를 축소했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언론의 분석은 다르다. 메르켈 총리의 긴축정책이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BBC는 "독일 유권자들이 메르켈 총리의 긴축 정책에 명확한(clear)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고 이번 선거 결과를 평가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메르켈 총리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 극복을 주도하며 정책 연대를 펼쳐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데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연달아 패하면서 독일에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nbsp;커지고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긴축정책에 피로... 독일 유권자의 표심은?</STRONG></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반면, 사민당은 지난번 선거보다 4.6%가 오른 39.1%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도 11.3%를 득표하며 승리를 거뒀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사민당의 승리에는 한네로레 크라프트 주 총리의 활약이 가장 컸다. 연방정부의 긴축정책과 대립하며 주 정부 지출을 확대해 고용과 복지에 힘쓴 덕분에 비록 재정적자는 늘었지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번 선거를 계기로 사민당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떠오른 크라프트 주 총리는&nbsp;같은 여성인 메르켈 총리와의&nbsp;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 역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크라프트 주 총리의 승리"라고 평가할 정도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한편, 해적당도 7.8%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원내 입성에 성공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스웨덴 해적당'을 본보기로 삼아&nbsp;지난 2006년 창당된 신생 군소정당인 해적당은 전 국민 기본소득제, 인터넷 자유, 정치 투명성 등을 강조하며 기존 정당들의 예상을 깨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리스에서도 해적당이 만들어졌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러나 일각에서는 해적당의 돌풍이 사민당과 녹생당 연정의 진보층 표심을 분산시켜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에게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동근</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윤봉길 의사와 친일경찰이 나란히..."통곡할 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893</link><pubDate>2012-05-14T14:59:1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65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4/IE001438658_STD.jpg?47"></DIV>
<P></P>
<P></P></DIV>
<P align=justify>4월 28~29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 일원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4·29상해의거 제80주년 기념 '제39회 윤봉길 문화축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항일독립운동의 대명사인 윤 의사의 고장 예산군 덕산면의 향토지에 친일경찰 '윤정희(尹廷熙, 1904~?)'가 떡하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 것.</P>
<P>&nbsp;</P>
<P>특히 일제 고등경찰을 지내고 창씨개명(창씨명 大平廷熙)까지 한 윤정희를 윤 의사와 함께 등재한 &lt;덕산향토지&gt;를 1996년 간행할 당시, 덕산향토지발간추진위원장이 윤 의사의 친동생인 고(故) 윤아무개씨로 알려져 앞으로 논란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P>
<P>&nbsp;</P>
<P>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lt;친일인명사전&gt;은 문제의 인물 윤정희를 "1934년 경기도 경찰부 순사교습소 교습생을 지냈다. 이후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경성 본정경찰서 순사로서 고등계 형사로 활동했다. 재직 당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수송 경계, 첩보 수집, 국방사상 보급 선전 등과 같은 전시업무를 적극 수행해 &lt;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gt;에 이름이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P>
<P>&nbsp;</P>
<P>주목할 부분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가담해 공을 쌓은 조선인 등을 수록해 반민족친일행위 진상규명에 결정적인 증거자료로서 큰 의미를 갖는 &lt;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gt;에 윤정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윤정희와 같은 친일경찰은 윤 의사와 같은 항일독립지사를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 친일파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P>
<P>&nbsp;</P>
<P><STRONG>지역의 '인물'에 애국지사와 친일파를 함께... 삭제 여론 높아</STRONG></P>
<P>&nbsp;</P>
<P>하지만 덕산 출신 고위 공무원 등을 다룬 &lt;덕산향토지&gt; 제6편(성씨·인물) 제4장(인물개요) 제10절(공복)에서 윤정희는 배재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경찰공무원으로서 온양, 홍성, 대전경찰서장을 역임한 덕산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P>
<P>&nbsp;</P>
<P>아이러니하게도 제1절(순국·애국운동) 첫머리에는 윤 의사의 항일독립운동이 직계가족과 함께 상세히 기술돼 있다. 덕산을 빛낸 별다른 공적도 없고, 일제의 경찰공무원을 지낸 전력까지 소유한 윤정희가 어떻게 덕산향토지에 이름을 올렸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P>
<P>&nbsp;</P>
<P>덕산향토지발간추진위가 철저한 검증이나 충분한 연구도 없이 단지 공직을 지냈다는 경력만으로 윤정희를 덕산의 인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회에서는 윤 의사의 항일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하루빨리 윤정희를 덕산향토지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P>
<P>&nbsp;</P>
<P>한 덕산면 주민은 "지하에 계신 윤봉길 의사가 통곡할 일이다. 누가 감히 &lt;덕산향토지&gt;에 윤정희를 올렸느냐. 친일경찰 윤정희를 &lt;덕산향토지&gt;에서 삭제하라"며 "우리 근현대사에서 친일잔재를 정리하지 못해 나타난 모순은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윤 의사가 나고 자란 고향의 역사를 적은 &lt;덕산향토지&gt; 인물편에 친일경찰 윤정희를 기록한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윤 의사의 정신을 모독하고 윤 의사를 두 번 죽이는 행위다"라고 개탄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원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학력위조 의혹, 야후 톰슨 CEO 결국 사임]]></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842</link><pubDate>2012-05-14T11:52:22+09:00</pubDate><description><![CDATA[<P>그동안 학력위조 의혹을 일으켰던 스콧 톰슨 야후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결국 사임했다고 야후가 공식 확인했다고 13일(미국시각)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P>
<P>&nbsp;</P>
<P>이번 톰슨 최고경영자의 학력위조 의혹은 야후의 지분 6%를 가진 '서드포인트(ThirdPoint)'의 댄 러브 최고경영자가 지난 3일 톰슨이 야후에 제출한 공식 프로필에 스토내힐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학위를 받은 것처럼 허위로 기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실은 그는 회계학 학위밖에 받은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P>
<P><BR>이에 대해 톰슨은 사과 메일을 발송하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거듭되는 사퇴 압력에 결국 취임 4개월 만에 CEO직에서 물러나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되었다. 톰슨의 즉각적인 사임에 따라 임시로 야후의 미디어 책임자인 로스 레빈손이 임시 최고경영자(CEO)의 자리를 맡는다고 야후는 확인했다.</P>
<P><BR>작년에 20% 이상의 수익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야후는 캐럴 바츠 전 CEO를 해고한 뒤 금년 1월 톰슨을 CEO로 전격 발탁했다. 하지만 톰슨 CEO도 학력위조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임하게 되어 더욱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P>
<P><BR>이번 학력위조 파동에서도 톰슨 CEO의 초기 사퇴 거부로 헤지 펀드를 비롯한 각 주주의 집안싸움이 계속되는 등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어 야후의 앞날이 더욱 어두워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P>
<P>&nbsp;</P>
<P>이에 앞서 스콧 톰슨은 미국시각 14일 공식 사임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lt;뉴욕타임스&gt; 등 언론의 잇따른 사임 예상 보도에 따라 13일 야후 측이 공식 사임을 확인하고 임시 최고경영자의 지명도 확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최경준</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한명숙 "전체 의원 사표 쓰고 대선 치러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507</link><pubDate>2012-05-13T21:34:19+09:00</pubDate><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 left" class=바탕글><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FONT color=#996633></FONT></SPAN></P>
<DIV align=center><FONT color=#996633><IMG id=IIE00143830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00_STD.jpg"></FONT></DIV>
<P></P><FONT color=#996633>"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 대표에 선출됐지만 제1당을 만들지 못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대선주자로서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FONT>
<P></P>
<P style="TEXT-ALIGN: left" class=바탕글><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FONT color=#996633><BR></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한명숙 민주통합당 전 대표가 4.11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11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소재한 미주 한인 진보단체 '사람사는세상워싱턴(대표 서혁교)' 초청 강연에서다. 그러면서도 한 전 대표는 "패배 의식에 젖어서 그 자리에서 좌절해버리는 것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라고 말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한 전 대표는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경제 성장에 적신호가 켜진 것, 서민 경제가 무너진 것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절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한 전 대표는 또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의 사직서를 받아놓고 하자고 했는데, 국회의원들이 안 내놓았다"며 "(이번 대선에서도) 정권교체에 임하는 의원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결연하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FONT face=굴림><BR></FONT></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B></SPAN></P>
<P></P><B>"총선 유탄 맞은 &lt;나꼼수&gt;도 엎드려서 꼼짝도 안 하고 있는데..."</B>
<P></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SPAN></P>
<DIV align=left><IMG id=IIE001438304 hspace=15 align=lef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04_STD.jpg"></DIV>
<P></P>당<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초 이날 행사는 '시민학교'라는 형식의 강연회였다. 그러나 한명숙 전 대표는 총선 패배에 따른 자숙 기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짧은 인사말 뒤 참석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는 "(총선 패배로 인해) 저도 상당히 상처가 크고 여러분도 가슴이 아파서 어떤 사람은 멍한 기분이었다고 하더라"며 "예상치 못한 패배로 가슴이 뚫리고 기운을 잃었으니, 피차 힘을 얻어가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SPAN>
<P></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요즘은 토크쇼가 유행이다. 혼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강연하고 가는 것은 옛날식이다. 서울은 그런 것 없어지고, 북콘서트, 토크쇼…, 대표적인 게 &lt;나꼼수&gt;인데, &lt;나꼼수&gt;도 이번에 (총선 패배의) 유탄을 맞았다. 그래서 엎드려서 한 달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있으신데…."</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한 전 대표의 인사말은 지난 총선 패배 의미를 곱씹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국민들이 '아, 우리가 졌구나, 이제는 대선도 지겠구나' 이런 패배 의식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총선 패배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바로 국민들이 패배의식을 갖는 것이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의 정책이나 법안을 국회에서 실현해야 하는데 (의석수가 부족해)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는 것도 이번 패배가 가져온 하나의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말했다.</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그<SPAN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굴림">러면서 한 전 대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을 싸잡아서 비판했다.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차별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이 대통령이 당선될 때 공약은 '줄푸세를 타고 747 국민성공 시대'였다. '747'은 '7% 경제성장, 4만 불 시대, 세계 경제대국 7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2.8% 경제 성장했다. 7%는 어림도 없다. 허구의 공약을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747'은 허구였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줄푸세'는 실천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는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를 세우자'는 이른바 '줄푸세' 공약을 발표했다. 한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이 '줄푸세' 공약을 채택하면서 5년 동안 96조의 부자감세를 하게 됐고, 규제를 풀기 위해 대기업에게 특혜를 줬기 때문에 중소기업, 자영업자, 골목상권, 재래상권이 전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다른 어느 정권 때보다도 잘 사는 1%만 잘 살고 99%는 너무 신음하고 있다. 경제 성장에 적신호가 켜진 것, 서민 경제가 무너진 것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한 사람은 (경선에서) 떨어졌지만 그 정책은 (두 사람에게서) 함께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가장 높은 국민 지지를 받으면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다."</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0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01_STD.jpg"></DIV>
<P></P>한 전 대표는 이어 "사실은 이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놓친 것에 대한 자성과 반성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대선까지 가는 데 상당히 어렵다"며 "그러나 그늘이 있으면 밝음이 있듯이 우리가 국민들로부터 큰 매를 맞고,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P></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반성하고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국민 곁에 다가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과반을 했다면 잔치하듯이 자만하고 전혀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는 당이 될 수도 있고, 국민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면 해이해지고, 긴장감도 풀어지고, 자기를 반성할 기회도 놓치게 된다. 긍정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런 기회가 왔으니 뼈아픈 반성을 하고 그 반성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정신 차림을 해야 한다."</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비록 총선은 패배했지만 올해 대선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바람도 내비쳤다. 그는 "(총선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투표율이 낮았다. 대체적으로 40대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투표 안 한 사람들이 우리의 패배를 보고 (올해 대선에서) 투표에 참여한다면 기권층에 대한 결집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대선이 앞으로 8개월쯤 남았다.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이렇게 140이라는 의석수는 대권을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 틀은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수도권에서 압승한 것, 뿐만 아니라 총득표율에서는 저희가 앞섰다. 지난 총선이 대선이었다면 저희가 이긴 것이다."</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0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02_STD.jpg"></DIV>
<P></P>한 전 대표는 강연회에 참석한 미주 한인들에게 재외국민투표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39만 표 차로 이겼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57만여 표 차로 이겼다"며 "재외유권자 230만 명 중 절반만 투표를 해도 대선 승패를 가늠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선에서는 재외국민 투표율이 낮았지만 대선에서는 높아질 것"이라며 "수집조 원을 강바닥을 갈아엎는 데 쓰는 토호세력과, 토목공사에 돈을 쏟아 붇는 과거지향적인 세력에게 우리의 조국을 맡길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P></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통합진보당 일 참으로 실망... 새롭게 태어난다면 전화위복 될 것"</B></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이날 강연회에는 사람사는세상워싱턴 회원, 민주통합당 워싱턴민주연합, 교민, 학생 등 60여 명이 참석해 한 전 대표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등 열띤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부 회원들은 한 전 대표와 행사 참석자들을 위해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행사가 열린 사람사는세상워싱턴 페어팩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지난 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 맞춰 제작한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어 총선 패배 이후 수척해진 한 전 대표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고대현씨는 "재외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며 우편투표나 이메일 투표 도입을 주문했다. 오일환씨는 "&lt;나꼼수&gt; 문제도 그렇고,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문제도 그렇고, 국회에서 제일 중요한 1순위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광위)라고</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 생각한다"며 "국회가 개원하면 문광위 상임위원장을 꼭 민주통합당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이에 대해 한명숙 전 대표는 "문광위 상임위원장을 우리 당에서 맡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왜냐면 제가 한이 맺힐 정도로 이번 총선은 역사상 최악의 언론 환경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996633>"이번 선거는 국민이 아니라 '조중동'에게 졌다는 측면도 있다. 여기에 방송 3사가 모두 파업을 했다. 공정보도와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방송사 노조원들이 모두 (보도) 현장에서 나온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후보)이 말하는 것은 (티비에) 선명하게 잘 나오고, 어떤 사람(후보)이 말하는 것은 희미하게 잘 나오지도 않았다. 특히 방송 앵글에 따라서도 차별이나 불이익을 많이 당했다. 저쪽(새누리당)에서 내놓으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문광위 상임위원장을 꼭 가져와야 한다고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말씀드리겠다."</FONT></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PAN></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0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03_STD.jpg"></DIV>
<P></P>김순영씨는 "저는 경상도 출신이어서 시댁에서든 친정에서든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면서 "주변에서 하는 말이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제발 싸우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비대위원장보다 더 나은 정책을 개발해서 제시해야만 중간층의 유권자들을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P></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이와 관련 한 전 대표는 "국회에서는 자당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며 "특히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을 통해 100여 건에 걸쳐 직권상정을 했고, 4번의 예산안 중 3번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고, 사실상 국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그레이스 김씨는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례대표 부정선거 시비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김씨는 "저도 통합진보당을 사랑했지만 국민이 아닌 당원들만 생각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싫증을 내는 것 같다"며 "통합진보당에게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데, 과연 민주통합당이 그들을 안고 가야 하느냐, 아니면 떨쳐버려야 하느냐"고 물었다.</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이에 대해 한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일은 참으로 실망스럽고 참담한 일"이라며 "진보가 갖는 생명이 정책적인 것도 있지만 도덕성인데, 그런 것에 상처가 난 것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기 때문에 바르게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nbsp;</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
<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Gulim; COLOR: rgb(51,51,51)"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그는 이어 "통합진보당에서 발생한 일은 국민에게 좌절을 줬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며 "만약 불행하게도 통합진보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보세력이 어떻게 될지, 야권연대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부연했다.</SPAN></P>]]></description></item><item><author>오문수</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김일성 부자도 인정한 절창... 여수에 울려퍼져]]></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645</link><pubDate>2012-05-14T11:47:4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41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415_STD.jpg"></DIV>
<P></P>
<P></P>
<P><FONT color=#996633>"김일성 주석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셨고, 김정일은 '소프라노 제일이야'라며 와인을 함께 마시며 4시간 반 동안&nbsp;같이 얘기했어요."</FONT></P>
<P><FONT color=#ff3333></FONT>&nbsp;</P>
<P>12일 여수박람회 개막에 맞춰 박람회장을 찾은 재일교포 모국방문단으로 참석한 임옥순(45세)씨의 얘기다. 임씨의 할아버지 고향은 전남 무안이다. 하지만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P>
<P>&nbsp;</P>
<P>그녀는 일본 사이타마현 오미야에서&nbsp;조총련계 초중고교를 다니던 중 우연히 조총련에서 운영하는 '금강산가극단'에 뽑혔다. 그녀가 중학교 때부터 '전국조총련학생예술경연대회'에서 연속으로 성악부문 1등을 했기 때문이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42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420_STD.jpg"></DIV>
<P></P>
<P></P></DIV>
<P></P>
<P></P>
<P>17세 때부터 일본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고 북한에도 초대를 받아 27번이나 방문했다. 남한에는 10번 정도 방문했고 주로 통일교 문선명 총재 앞에서 공연을&nbsp;했다. 그녀에게 여수박람회를 본 소감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말했다.</P>
<P><FONT color=#ff3333></FONT>&nbsp;</P>
<P><FONT color=#996633>"여수박람회요?&nbsp;정말 훌륭해요.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특히 저는 전라도 출신이라 더 자랑스럽죠."</FONT></P>
<P>&nbsp;</P>
<P>주위에서는 노래 실력이 프로 이상이라며 노래 한 번 시켜보라고 하지만 장소가 식당인지라 나중에 듣기로 하고 남북을 오가며 남북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41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416_STD.jpg"></DIV>
<P></P>
<P></P>
<P>정색을 한 그녀는 "반드시 통일해야지요"하며 자신이 민단과 조총련 앞에서 꼭 부른다는 노래 가사를 보여줬다. 싱글벙글 웃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며 꽉 다문 입에서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노래는 저녁 만찬에서 듣기로 하고 그녀가 보여준 노랫말을 봤다. 그녀의 노래 제목은 &lt;임진강&gt;이다.</P>
<P>&nbsp;</P>
<P><FONT color=#333399>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FONT></P>
<P><FONT color=#333399>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FONT></P>
<P><FONT color=#333399>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네</FONT></P>
<P><FONT color=#333399>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강 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울고</FONT></P>
<P><FONT color=#333399>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FONT></P>
<P><FONT color=#333399>협동벌 이삭마다 물결우에 춤추니</FONT></P>
<P><FONT color=#333399>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FONT></P>
<P>&nbsp;</P>
<P>"한 장 복사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자 "그냥 가지라"고 허락하던 그녀는 조총련 대학생이 작사했다는 노래 가사를 한 장 더 전해주며 "이 노래는 지금도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한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41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414_STD.jpg"></DIV>
<P></P>
<P></P>
<P><FONT color=#333399>내가 태어난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였네</FONT></P>
<P><FONT color=#333399>슬픈 역사가 이 땅을 갈라도 마음은 서로 찾았네 불렀네</FONT></P>
<P><FONT color=#333399>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꿈결에 설레만 가는 우리</FONT></P>
<P><FONT color=#333399>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가슴에 맺힌&nbsp;이 아픔 다 녹이자</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어린 꿈속에 그려본&nbsp;사랑하는 조국은 하나였네</FONT></P>
<P><FONT color=#333399>오랜 세월에 목이 다 말라도 우리는 서로 눈물로 적셨네</FONT></P>
<P><FONT color=#333399>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반가와 이야기 나눈 우리</FONT></P>
<P><FONT color=#333399>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이 땅에 스민 이 눈물 다 말리자</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후렴)</FONT></P>
<P><FONT color=#333399>함께 춤추자. 함께 춤추자</FONT></P>
<P><FONT color=#333399>이 기쁨을 누구에게 보일가</FONT></P>
<P><FONT color=#333399>이 노래를&nbsp; 이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FONT></P>
<P><FONT color=#333399></FONT>&nbsp;</P>
<P><FONT color=#333399>하나로 되자 하나로 되자</FONT></P>
<P><FONT color=#333399>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FONT></P>
<P><FONT color=#333399>이 노래를 이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FONT></P>
<P>&nbsp;</P>
<P><FONT color=#996633>"할아버지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조선 사람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모욕을 당하며 살았어요. 저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노래를 하며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상관 않고 꼭 남북통일 하자고 애기한 후 이 노래를 부릅니다."</FONT></P>
<P>&nbsp;</P>
<P>아들은 단소 부문에서 금강산가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하고 딸도 음향을 전공하며 가극단에 들어갔다는 그녀. 정말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알고 싶어 저녁 만찬에 참석했다. 그녀 차례가 되자 예의 &lt;임진강&gt; 얘기를 꺼낸 그녀는 미닫이문을 열어 두 방을 합친 중간에 서서 "여기가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있는 임진강"이란 얘기를 꺼내며 노래를 시작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41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419_STD.jpg"></DIV>
<P></P>
<P></P>
<P>노래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던 사람들이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nbsp;'앙코르'를 외쳤다. 얼마나 크게 불렀을까. 옆방에서 밥 먹던 사람들이 고개를 내민다. 감동했을까? 시끄러웠을까?</P>
<P>&nbsp;</P>
<P>그녀의 노래에는 통일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났다. 통일된 조국이, 힘 있는 조국이 있다면 그들도 어깨에 힘주고 살았을 텐데…. 노래를 끝낸 그녀가 '임진강'으로 지목했던 문지방을 넘는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오문수</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여수 찾은 특별한 손님들, "천지가 개벽한 것 같아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594</link><pubDate>2012-05-13T16:31:5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8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81_STD.jpg"></DIV>
<P></P>
<P></P>
<P>12일,&nbsp;여수박람회 개막 첫날에 특별한 손님들이 왔다. 전남 출신 재일교포와 도쿄의 신주쿠 거주 재일교포들 30명이 여수박람회장을 찾았다. 이들은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여수가 첫 방문지다. </P>
<P>&nbsp;</P>
<P>일본관에서 점심을 먹는 이들의 얼굴을 보니 거의 대부분이 예순을 넘은 듯하다.&nbsp;이들을 인솔하고 온 이는 구말모 회장. 구씨는 1935년에 일본 사가현에서 출생한 재일교포 2세로 여수가 아버지의 고향이다. 일본와세다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주일한국대사관에 근무한 적도 있는 그는 한국말이 능통하다. </P>
<P>&nbsp;</P>
<P>구 회장은 국민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목포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하며 &lt;일본학입문&gt; &lt;한일관계론&gt; &lt;일본문화사&gt;를 저술하고 몇 권의 일본책을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재일교포 법적 지위 향상에 애를 쓰던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분단된 조국을 가슴 아파했다. 하여 평화통일을 위해 맡은 역할이 민단에서 평화통일추진위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에서는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을 맡았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7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76_STD.jpg"></DIV>
<P></P>
<P></P>
<P>몇 차례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풍채 좋은 한 노인이 내게로 왔다. 여수 신월리가 고향이라는 공안식(82세)씨가 자기소개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여수시 신월동(당시 신월리) 출신으로 일본군이 마을을 없애고 군부대를 창설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1941년에 일본군이 우리 마을을 없애고 군부대를 창설했어요. 당시 주민이 2000명이나 살고 있었고 우리 집이 제일 잘살았죠. 집이 뜯겨 오갈 데가&nbsp;없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내가&nbsp;살 때는 여수가 여수군 여수읍이었어요. 그런데 돌산대교와 도로, 아파트를 보면 천지개벽한 것 같아요. </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여수박람회요?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롯데를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데 롯데관을 보고 아들과 손자까지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말로 잘 해놨더라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꼭 가보라고 권할 겁니다."</FONT></P>
<P><FONT color=#ff3333></FONT>&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7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77_STD.jpg"></DIV>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7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78_STD.jpg"></DIV>
<P></P>
<P></P></DIV>
<P></P>
<P></P>
<P>점심시간이 되어 손님으로 가득 차 왁자지껄한 가운데 예쁘장한 중년 여인이 재일교포를 찾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인사를 하며 반긴다. 어리둥절한 내게 유창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는 구로다 후쿠미씨. 알고 보니 여수박람회 홍보대사다. </P>
<P>&nbsp;</P>
<P>그녀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이자 MC다. "한국에 유학하기도 했고 영화와 TV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며 일본 배우 중에서는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배우 중 하나"라는 게 구말모 회장의 설명이다. 구 회장에게 여수를 방문한 일행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8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84_STD.jpg"></DIV>
<P></P>
<P></P>
<P><FONT color=#996633>"이번에 조국을 찾은 방문단은 국적이나 사상을 초월해 모였어요. 앞으로도 일본 전국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를 모아 조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nbsp;몇 차례가 될지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을 기화로 십여 차례 이상은 확실합니다. 방문단 중에는 여수를 처음 방문한 사람도 있고 여수가 고향인 사람도 있어요.</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하지만 여수가 이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다고 해요. 그들은 조국의 발전이라는 희망적인 미래상과 자랑스런 이벤트를 보고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합니다. 아쉬운 것은 호텔이 작았다는 거에요. 고국의 푸짐한 음식을 먹고 살이 너무 많이 찔 것 같아 걱정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무튼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FONT></P>
<P>&nbsp;</P>
<P>저녁 식사를 하는 그들은 술이 한 순배 돌자 노래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울며 떠났던 조국의 발전상에 흡족해 하는 이들을 보며 더욱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원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미 의회,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과장보도' 논란]]></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527</link><pubDate>2012-05-13T16:01:1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32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3/IE001438320_STD.jpg"></DIV>
<P></P>
<P>&lt;연합뉴스&gt;를 비롯한 한국 언론들이 미 의회가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해 논란과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P>
<P>&nbsp;</P>
<P>&lt;연합뉴스&gt;는 한국시각 12일 "미국 의회가 최근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강행과 3차 핵실험 가능성 등에 대응해 한국내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11일(현지시간) 미 외교전문 매체 &lt;포린폴리시&gt;에 따르면 하원 군사위는 지난 9일 전체회의에서 서태평양 지역에 미군의 재래식 전력을 확대하고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3 국방수권법수정안'을 가결 처리했다"고 덧붙였다.</P>
<P>&nbsp;</P>
<P>하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다소 과장한 보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nbsp;이 수정안은 전술핵의 재배치 추진을 권고한 것이 아니고 그 재배치 추진(가능성)에 관한 보고서를 법 발효 90일 안에 미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라는 것이 핵심사항이다.</P>
<P>&nbsp;</P>
<P>물론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이러한 법안 수정안의 하원 군사위 통과가 오바마 행정부에 압박카드는 될 수 있으나 이 보고서 제출 의무 수정안도 현실적으로는 법률 개정안으로 확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현지&nbsp;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P>
<P>&nbsp;</P>
<P>미 상원은 현재 이러한 전술핵 재배치 관련 내용이 없는 수정안을 논의 중이며 이 '2013 국방수권법'은 현실적으로 미 대선 이후에 관련 논의를 거쳐 확정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P>
<P>&nbsp;</P>
<P>이와 관련하여 &lt;한국일보&gt;는 12일(한국시각)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배치 논의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오바마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안보카드이자 정치적 제스처"라고 보도했다.</P>
<P>&nbsp;</P>
<P>신문은 "2010년 공개된 오바마 정부의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는 핵무기의 사용제한을 기술하고 있으며 백악관도 지난해 3월 한반도에 전술핵무기 배치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전하면서 "한 군사 전문가는 "미 정부가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통해 글로벌 안보 전략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치권 논의 자체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박지호</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보수 세력 필살기 '동성애' 카드, 오바마 왜 꺼냈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324</link><pubDate>2012-05-12T18:55:0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1793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326/IE001417932_STD.jpg?12"></DIV>
<P align=justify></P>
<P>&nbsp;</P>
<DIV align=justify>오바마 미국 대통령이&nbsp;동성 결혼 지지선언을 하자, 돌연 동성애가 정국의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nbsp;선언으로 오바마는 동성 결혼을 지지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됐다. 미국 사회에서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감자인 동성애란 화두가&nbsp;다시 미국 사회를 장식하고 있다. 오바마의 발언으로&nbsp;정치권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nbsp;'역풍의 위험을 무릅쓴&nbsp;소신 발언' 등의&nbsp;해석이&nbsp;쏟아져나오고 있다. </DIV>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의 선언이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공학적 분석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그간 오바마의 국정운영에 실망해 등 돌렸던 진보적 지지층의 눈길을 다시 잡아챌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진영을 달궜던 "변화와 희망"의 열망을 재현하기 위한 오바마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해석이다. 경제 문제로 궁지에 몰린&nbsp;오바마가 동성애라는 뜨거운 이슈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바마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도 무성하다.&nbsp;오바마가 동성 결혼 지지 선언하기 불과 한 시간 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대규모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nbsp;이달에 헌법 개정을 거쳐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연합"이라고 명명했다.&nbsp;</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동성 커플을 전면 부정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 보수 복음주의권의 대부격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수 기독교인들의 결집도 점쳐지고 있다. 오바마의 이번 선언이 비교적 보수적인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반오바마 정서'를 피어오를 수&nbsp;있다는 관측도&nbsp;제기되고 있다.&nbsp;&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오바마의 발언이 미국 정치권에서 아주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자, 강경 보수의 상징인 체니 전 부통령은 이미 2004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아내와 나는 동성애자 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동성애 이슈에 친숙하다.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물론 체니 전 부통령은 당시 발언으로 지지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정작&nbsp;주목하는 점은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발언의 파격성이나 정치적 여파가 아니다. 그 말을 오바마, 즉 민주당이 했다는 점이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동안 동성애는 공화당의 전유물이었다. 이는 보수 기독교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라는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발끈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덕을 선거철마다 적절히 이용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투표 참여율이 높고 선거 패턴이 단순한 보수 기독교 유권자들 덕을 톡톡히 봤다. 실제로 공화당은 2004년 대선에서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라는 모토로 보수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며 민주당 텃밭에서까지 표를 긁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낙태와 동성애를 두고 하는 말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오바마 대선 행보에 독?...가능성 '적다'</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07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8074_STD.jpg"></DIV>
<P></P>
<P align=justify>하지만 지난번 대선에서는 더 이상 공화당의 동성애 약발이 먹히질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진보적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짐 월리스 목사(&lt;소저너스&gt; 대표)는 동성애나 낙태 등의 자극적인 이슈로 표를 쓸어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의 당선이) 최초의 흑인(African American) 대통령이 나왔다는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단일한 이슈 몇 가지만으로 대통령을 선택하는 'single issue voting'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난 대선을 평가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동성 결혼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5일 발표된 퓨포럼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 결과, 동성 결혼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nbsp;종교 전문 설문조사 기관인 &lt;퓨포럼&gt;(the Pew Forum on Religion &amp; Public Life)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2004년에는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60%로 찬성한다는 의견의 31%를 두 배 가까이 앞섰다. 하지만 2012년에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비율이 47%로 반대한다는 의견을(43%) 앞섰다.&nbsp;8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P>
<DIV align=center>&nbsp;</DIV>
<P></P>
<P></P>
<P align=justify>최근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상징적인 존재인 빌리 그래함 목사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nbsp;오바마의 이번 선언이 향후 대선 행보에 독이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nbsp;지난 대선부터 막강한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가진 보수 우파 기독교조차 이런 변화를 거스르기 힘들 만큼 변화의 폭이 빠르고 거세다는 것이 감지됐다.&nbsp;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인 흑인 교회의 분열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미국내 첫번째 흑인 교단인 African Methodist-Episcopal Church의 자말 브라이언트 목사는 "우리&nbsp;교단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지만 모두의 인권을 중요시한다"고 발언했다. 동성 결혼을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흑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할 것이라고 관측한&nbsp;것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반전을 노리는 꼼수로 격하시킬 것도, 위기에도 소신을 밝히는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격상시킬 것도 없다. 오바마의 발언은 그 사회적 변화의 결과물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발언의 배경인 셈이다. 이런 대중의 변화가 공화당의 전유물이었던 동성애라는 이슈를 민주당 대선 후보가 꺼내들게 만든 것이다.&nbsp; </P>]]></description></item><item><author>박현국</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일본에 한반도 전용 미술관 있는 거 아세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267</link><pubDate>2012-05-12T18:09:2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8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88_STD.jpg?44"></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지난 11일 금요일 오전 교토시 북쪽 기타구에 있는 고려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원인은 화요일 &lt;한겨레&gt;에 난 기사 때문입니다. 지난 8일 &lt;한겨레&gt; 인터넷판에는 고려 미술관에서 한반도 81년 전 모습이 동영상으로 상영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 기사를 본 아는 사람이 직접 가서 확인해보고 알려달라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동안 고려미술관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고, 가까운 미술관에서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화각장을 빌려서 전시한 것을 본적이 있어서&nbsp;'언젠가 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nbsp;미뤄&nbsp;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부탁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nbsp;고려미술관에서는 4월 1일부터 6월 3일까지 아리미츠 교이치 교수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고려미술관을 세운 분은 정조문 선생님</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1_STD.jpg?72"></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고려미술관은 1988년 10월 25일 문을 열었습니다. 고려미술관을 세우신 분은 정조문(1918~1989) 선생님입니다. 정 선생님은 1918년 경북 예천군 풍양면 낙동강 강가 마을에서 태어나&nbsp;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건너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국에도 돌아갈 수 없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학교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까지 3년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빠징코 사업과 식당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후세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2_STD.jpg?88"></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정 선생님이 37세 되던 어느 날,&nbsp;고물상에서 우연히 조선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처음 백자 항아리를 본 순간, 이것은&nbsp;조선 것이라는 영감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국이 하나가 되면 이것을 들고 한반도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백자를 샀다고 합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후 정 선생님은 한반도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반도 관련 골동품을 수집했습니다.&nbsp;정 선생님은 일본에서 자라 우리 문화를 알지 못하는 후세들에게 우리 문화를 느끼게 하고 알려주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nbsp;그리고 일본인 가운데 한반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친교를 하면서 지식을 키웠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3_STD.jpg?86"></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정조문 선생님이&nbsp;수집한 서화, 가구, 도자기, 석물 등이 1700점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nbsp;자신이 살던 집을 헐고 고려미술관을 세웠습니다. 더 많은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를 느끼게 하고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nbsp;정조문 선생님은 끝내 평생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미술관이 문을 연 다음 해인 1989년, 생을 마감했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정조문 선생님의 노력으로 세워진 고려미술관은 한반도 밖에 있는 유일한 한반도 전용미술관으로 소장품 역시 국보급 미술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미술품들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유명 미술관에 대여·전시되기도 합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일본 패망 후에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4_STD.jpg?55"></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정조문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면서 고려미술관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셨던 아리미츠(有光 敎一) 교수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은 1931년 교토대학 대학원생 신분으로 조선총독부 박물관 주임으로 경주에 부임해&nbsp;한반도의 여러 유적 발굴에 참여하게 됩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1945년 8월 해방과 더불어 모든 일본인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단 한 분 일본으로 가지 않고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신 김재원 선생님과 더불어 경주 호우총 고분을 발굴조사 했던 분입니다.&nbsp;&nbsp;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5_STD.jpg?67"></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아리미츠 교수님은 1946년 일본으로 돌아와 교토대학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후 아리미츠 선생님이 한반도 발굴 과정에서 수집한 고고유물은 대부분 교토대학 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리미츠 교수님이 소장하고 있던 일 만 권이 넘는 장서와 일부 유물을 고려미술관에 기증하셨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식민사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수 밖에&nbsp;없었다는 왜곡된 역사 인식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역사학자들이 벌인 치졸한 짓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역사·민속·지리들을 현지 조사해 기초자료로 사용했습니다.&nbsp;따라서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었거나 그때 일본 사람들이 쓴 기록은 섣불리 인용하기가 망설여집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8_STD.jpg?39"></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이러한 일은 일본뿐만 아니고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있던 영국 등에서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영국 선교사들이 자신이 현지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적어서 영국에 보내고 그것을 편집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프레이저가 쓴 &lt;황금의 가지&gt;입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아리미츠 교수님은 조선총독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도 식민사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반도의 고대사를 내 손으로 정리해보겠다는 학자의 양심으로 고고학 발굴조사를 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의 이러한 노력은 지금 그대로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80여 년 전 조선이 눈앞에 펼쳐지네</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9_STD.jpg?30"></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지난해,&nbsp;103세의 나이로&nbsp;운명하신 아리미츠 교수님을 추모하는 특별전이 지금 고려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이 한반도에 처음 부임한 때가 1931년입니다. 그런데 마침 1931년 찍은 영상자료가 교토에 있어서 그것도 같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영상물은 1931년 교토후리츠(京都府立)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한반도와 만주 등을 둘러보는 수학여행 과정을 찍은 것입니다. 이 영상물은 교토를 출발해서 부산, 경주, 서울, 평양, 만주 등 여행 전 과정을 찍은 40분 짜리 기록입니다. 이번에 상영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편집된 15분 짜리 동영상입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6_STD.jpg?67"></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는 1872년 4월 일본에 처음 생긴 여자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신영학급급여홍장(新英學級及女紅場)이었으나 1904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로 학교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1948년에는 교토오키(京都鴨沂)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뒤 남녀공학이 됐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1931년 찍은 영상물은 수학여행을 하는 학생들이 방문하는 여러 곳을 찍은 흑백 동영상입니다. 이번에 보여주는 부분은 서울과 평양의 여러 명승지와 유적 그리고 경주의 포석정, 석굴암, 첨성대, 분황사, 김유신 무덤 등 명승지와 시장 풍경, 이동하면서 본 소 쟁기질하는 모습, 시장풍경 등입니다.&nbsp;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민족의&nbsp;얼을 되새기는 마당, 고려미술관</STRONG></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99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97_STD.jpg?76"></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재일 조선인 정조문 선생님의 불우한 환경, 고난 극복의 일생, 민족과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늘 고려미술관을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nbsp;처음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기를 심어주고 알리기 위해서 만든 고려미술관은 우리 민족보다도 일본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최근 나라 밖에 우리문화를 알리고, 선전하기 위해서 정부나 기업들이 외국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우리 문화 방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과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조문 선생님은 이미 60여 년 전 우리 도자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얼을 발견하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습니다. 앞으로 고려미술관이 더욱 발전하고 나라 안팎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의 얼을 되새기는 좋은 마당이 되면 좋겠습니다.</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800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8000_STD.jpg?85"></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center><IMG id=IIE00143800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8001_STD.jpg?11"></P>]]></description></item><item><author>서진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소녀시대 압도하는 러시아 '할머니시대']]></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0625</link><pubDate>2012-05-12T13:48:4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35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359_STD.jpg?41"></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2차 대전 후 전쟁으로 피폐해전 유럽의 정신적 재건을 위해 지난 1955년 최초로 시작된 유로비전 가요제가 올해로 57년 째에 접어들었다. 이전에 비해 한국에서의 관심은 많이 사그라든 것 같지만, 아바, 셀린 디옹 같은 세계 팝음악의 판도를 주름 잡는 가수들을 배출한 유로비전 가요제의 인기는 현지에서 여전히 대단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동안에도 유로비전은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같은 유럽문화의 변방과도 같은 국가에서도 개최되는 등 정치 경제 종교와 무관하게 음악과 문화로 유럽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실제 유로비전의 본선이 열리는 날은 거리가 텅텅 비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바나 맥주집은 자국 가수를 응원하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마치 우리나라에서의 월드컵 열기를 방불케 한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5월 22일부터 열리게 될 유로비전도 여느 때와는 다른 면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유로비전 사상 최초로 그동안 유럽의 또 다른 변방이었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다는 것과, 참가자들의 평균연령이 대폭 높아졌다는 것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할머니들, 유로비전 참가자 평균 연령을 높이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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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그 평균연령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지난 3월 7일 러시아 대표로 선발된 할머니들이다. '부라놉스키에 바부슈키'라는 이름의 할머니 그룹이 바쿠에서 열리는 유로비전 가요제에서 러시아를 대표할 그룹으로 선발된 것이다. 이들은 6명으로 구성돼있는데, 예술감독이자 '팀리더'인 43세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모두 56-76세의 할머니들이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들은 러시아인들이 아닌, 서부 우랄산맥 인근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인 우드무르티야(Udmurtia) 공화국 출신이라는 점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총면적 4만2천㎢로 남한 면적의 반에 조금 못미치는 이 아담한 공화국은, 러시아 전체를 대표하기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지역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단체의 이름도 러시아어로는 브라놉스키에 바부슈키(Бурановские бабушки), 현지어인 우드무르트어로는 브란구르트 페샤나이요스(Брангурт песянайёс). 그렇게 각기 전혀 다르게 불릴 정도로 러시아어와는 상당히 차별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우드무르티야에서는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에스토니아, 헝가리, 핀란드의 언어와 연관이 깊은 우드무르트 언어를 사용하여 주변 민족들과는 상당히 차별되는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왔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공화국의 수도는 이젭스크(우드무르트어로 '이즈카르')로, 13세기 무렵 우드무르트인들이 이 지역에 모여 살기 시작했으나 16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어 세계적으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럼에도 러시아 연방공화국 내에 섬처럼 자리잡은 독특한 문화와 언어로 인해 그동안 인류학자,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연구 대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던 지역이었다. 그렇게 이름만 겨우 알려져 있던 이 지역의 할머니들이 러시아 연방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center><IFRAME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h0vQ9_BhU1M" frameBorder=0 width=420 allowfullscreen></IFRAM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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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STRONG>최고령은 76세... 평소엔 가축 돌보거나 밭일</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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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이 단체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부라노보(우드무르트어 '브란구르트') 마을의 할머니들'이란 의미이다. 수도에서 30km 떨어진 부라노보 마을에 사는 40세에서 82세에 이르는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11명의 여성과 1명의 남자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참가 단원수가 6명을 넘지 못하는 유로비전 가요제의 규정 때문에 그중 여섯 명만 참가의 영예를 얻게 되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 중 최연소 단원은 부라노보 마을 문화센터장이자 공연단의 행정, 음악지도, 안무 등을 총담당하는 올가 투크타메라로 올해 43세. 할머니들 중 최고의 '귀요미'인 나탈리아 푸가체바씨는 76세로, 여섯 살이었을 때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던 당시의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아직 정정하다. 푸가체바 할머니는 역대 유로비전 사상 최고령 참가자이기도 하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1969년에 결성된 이 공연단은 우드무르트 전통민요와 춤 등을 주로 무대에 올렸고, 같은 핀위구르어권 국가인 에스토니아, 핀란드, 헝가리 등에서 우드무르트인들의 문화와 언어를 알리는 행사에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씩 유럽 전체에 명성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단지 우드무르트어만을 사용해서 노래하는 전통만 고집하지 않고 '렛잇비', '호텔 캘리포니아' 등의 고전 팝음악과 러시아 대중가요를 우드무르트어로 번안하여 소개하는 등의 다채로운 활동으로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할머니들은 어디서 무슨 노래를 부르든 우드무르트어와 우드무르티야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입는 민속의상을 고집한다.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입고 작업하던 옷들도 공연복으로 사용한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단원들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우드무르트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젊은 시절 낙농업, 유치원 교사, 회계사, 건설업, 농장, 공장 등 다양한 업종에서 종사했으나, 현재는 모두 은퇴하여 거위, 닭, 토끼, 고양이 등 가축을 돌보거나 밭일을 돌보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P>
<P align=justify>&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35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356_STD.jpg"></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STRONG>러시아 전체에 63만명 뿐인 우드무르트인들의 '경사'</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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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단원 중 한 명인 발렌티나 파첸코(74) 할머니 집에 보일러가 설치된 것은 불과 작년 9월, 그전까지는 근처 숲에 가서 일일히 나무를 해와서 난방을 해야했다. 여전히 수도는 없어서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쓴다. 노래를 지도해주는 아들과 함께 살면서 주로 닭 치며 연명을 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나 얼마 전 사고로 팔 하나마저 잃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 외 단원들 모두 평생 우드무르티야의 민속음악을 부르고 민속춤을 추었지만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이렇게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흔하디 흔한 할머니들이 결성해 만든 이 공연단이 유럽의 쟁쟁한 젊은 음악가들과 겨룰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nbsp;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 '할머니 시대'의 출현이 놀라운 것은 단지 그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우드무르티야라는 공화국이 가진 특별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우드무르티야는 우드무르트인들이 줄곧 살아온 곳이긴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러시아화로 인해 주민들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200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드무르티야 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 전체에 63만 명 정도의 우드무르트인들이 거주하며 그 중 73%인 46만4000명 만이 우르무르트어를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드무르트인들의 3분의 2가 이 지역에 살고 있으나, 그것도 러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우드무르트인들은 공화국 전체 인구 중 28%에 불과한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젭스크나 사라풀 같은 대도시는 러시아인들의 차지가 되어버린지 옛날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게다가 소련 시절 군수공장이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이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지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드무르트 문화의 세계화나 홍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다행스러운 것은 현지 학교에서는 여전히 우드무르트어로 교육을 하기도 하고, 하루에 두어 시간이긴 하지만 지역 방송에서는 뉴스시간에 현지어로 방송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던 우드무르티야의 할머니들이 우드무르트어로 부른 노래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곡으로 선정되었으니 현지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STRONG>"이 할머니들이 우승이라도 한다면...'</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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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그 대학교에서 우드무르트인들의 전통신앙과 관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타티야나 민니야크메토바 교수는 이 할머니들의 성공이 우드무르트인들을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역설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FONT color=#996633>"저는 이 할머니들이 전 세계에 우드무르트인들에 대한 눈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도 아무도 우드무르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이 유럽민족학연구소인데,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냐고요. 우드무르트인들도 엄연히 유럽에 살고 있거든요. 부라노보 할머니들의 성공 이후 제 친구들도 우드무르트인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유럽 내 여러 방송사들에서도 부라노보 할머니들에 대한 내용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FONT></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민니야크메토바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유로비전에 참가한다는 것은 돈과 지연이 있는 가수들만이 가능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왔다. 그런 장점이 전혀 없는 할머니들이 100% 자신들의 기량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반벌거숭이' 팝스타들에 질리고 뭔가 특별한 것을 찾던 사람들에게 자극이 된 것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민니야크메토바 교수는 기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만약 정말 이 할머니들이 바쿠에서 우승을 거두기라도 하면 푸틴 정부가 이끄는 러시아 내 소수민족 정책에도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비치기도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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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40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404_STD.jpg"></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STRONG>쟁쟁한 젊은 가수들 제치고 세 번째 도전에 본선 진출 성공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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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하지만 이 할머니들이 정말 혜성처럼 유럽 팝무대에 진출하게 된 것은 아니다. 2010년 처음으로 유로비전 가요제에 문을 두드린 후 올해가 벌써 세번째 도전이다. 현재 이들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크네니야 룹초바씨는 지난 2008년 이젭스크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 우드무르트어로 '예스터데이'를 부르고 있는 그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그 후 룹초바씨는 2009년에 사망한 러시아 최고 민요가수 류드밀라 지키나의 생일 기념 콘서트에 초대해 그들의 기량을 시험해 보았고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할머니들에게 유로비전에 나가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전부터 헝가리, 핀란드, 에스토니아, 프랑스 등 다른 핀우그르어 국가에서 공연을 한 바 있어 국제무대에서의 공연도 이미 친숙한 상태였다. 할머니들은 거침이 없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2010년 처음으로 러시아 예선에 도전했을 땐 고배를 마셔야했지만 그래도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고, 올해 세번째 시도에서는 25명의 쟁쟁한 가수 및 그룹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경쟁가수들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어층이 꽤 두터운 러시아 여성아이돌 타투의 멤버도 들어 있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심사결과는 러시아 음악계의 전문가들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전화투표를 합산해 계산됐고,&nbsp;전체 38.5%라는 높은 득표를 얻었다. 이 할머니들이 유로비전에서 선보일 '파티 포 에브리바디(Party for everybody)'는 손님을 맞기 위한 잔치를 준비하는 이들의 흥겨운 기분을 노래한 댄스곡으로 우드무르트어와 영어가사가 섞여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우드무르티야는 이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서 유럽과 전 세계에 우드무르트인들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유로비전의 우드무르티야식 버전인 '엘쿠노비데니에(El'kunovidenie)'를 준비 중이다. '엘쿤'은 우드무르트어로 '공화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우드무르티야 전역에 살고 있는 아마추어 가수들이 참가하여 기량을 선보이는 가요제다. 11월에 있을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창설일에 최초로 막을 올리게 되는 이 가요제에 이미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난데 없이 스타덤에 오른 부라노보 할머니들이 유로비전에서의 성공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은 부귀영화나 명예가 아니다. 1939년 전쟁으로 파손된 성 삼위일체 성당을 재건하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할머니들의 소원이 알려지고 유로비전 참가가 확정된 후부터 현재 대략 8백 만 루블(27만 3천 달러)이 모아져 할머니들은 평생 고대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난데없이 유로비전의 스타로 떠오른 할머님들은 여전히 감자를 키우며 가축을 돌보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참고로 이번 유로비전에는 푸가체바 할머니가 유일한 최고령 참가자는 아니다. 영국 대표로 참여하는 엥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는 1936년 생 76세로 할머니와 동갑이다. 젊고 예쁜 소녀들이나 꽃미남들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외에는 관심의 틈을 주지 않는 한국 가요시장에서는 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원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미 최대은행 JP모건 20억불 손실 발표, 금융시장 충격]]></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209</link><pubDate>2012-05-12T18:56:11+09:00</pubDate><description><![CDATA[<P class=MsoNormal><FONT face=굴림><SPAN style="LINE-HEIGHT:17px"></SPAN></FONT></P>
<DIV align=center><FONT face=굴림><IMG id=IIE001437964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2/IE001437964_STD.JPG?68"></FONT></DIV>
<P></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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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LINE-HEIGHT:115%; FONT-FAMILY: 굴림; FONT-SIZE: 11.5pt" lang=KO>미국 최대 은행인</SPAN><SPAN style="LINE-HEIGHT:115%; FONT-FAMILY: 굴림; FONT-SIZE: 11.5pt"> JP <SPAN lang=KO>모건 체이스가 지난</SPAN> 6<SPAN lang=KO>주 만에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실패로 약 </SPAN>20<SPAN lang=KO>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고 </SPAN><SPAN lang=KO>서방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SPAN>.<?xml:namespace prefix = o /><o:p></o:p></SPAN></P><SPAN style="LINE-HEIGHT:115%; FONT-FAMILY: 굴림; FONT-SIZE: 11.5pt">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LINE-HEIGHT:115%; FONT-FAMILY: 굴림; FONT-SIZE: 11.5pt">AP통신, &lt;<SPAN lang=KO>뉴욕타임스</SPAN>&gt; <SPAN lang=KO>등 언론에 따르면 제이미 다이먼&nbsp;</SPAN>JP <SPAN lang=KO>모건 </SPAN>CEO<SPAN lang=KO>는 10일(미국시각) 이번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면서 투자 관련 부서에서 이 같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며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재빨리 긴급 컨퍼런스 콜을 소집해 주주들에 사과하고 진화에 나섰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o:p></o:p></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이번 손실은 금융가에서 이른바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SPAN lang=KO>런던고래</SPAN>'<SPAN lang=KO>로 알려진 런던 주재 </SPAN>JP <SPAN lang=KO>모건의 브루노 익실 트레이드가 투자에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위험회피용 상품에 이른바 </SPAN>'<SPAN lang=KO>몰빵</SPAN>' <SPAN lang=KO>투자한 것이 이러한 대규모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SPAN>.<o:p></o:p></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이 같은 사실이 발표되자마자</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JP&nbsp;<SPAN lang=KO>모건의 주식은</SPAN> 7% <SPAN lang=KO>이상 급락했으며</SPAN>, <SPAN lang=KO>씨티</SPAN>, <SPAN lang=KO>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다른 은행 관련주들도 동반 급락을 보이면서 증시가 출렁이고 있다</SPAN>. 11<SPAN lang=KO>일</SPAN>(<SPAN lang=KO>미 동부시각</SPAN>) <SPAN lang=KO>개장된 뉴욕증시도 다우존스 지수 등 관련 지수가 동반 하락세로 출발하는 등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고</SPAN> CNN<SPAN lang=KO>은 보도하고 있다</SPAN>.<o:p></o:p></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그동안 잇따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자산리스크 관리를 잘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던</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JP <SPAN lang=KO>모건은 이번 투자 손실을 계기로 이러한 자사 이미지에도 막대한 상처를 받았을 뿐 아니라 향후 여타 금융그룹들과 함께 신용 평가 강등이 예상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SPAN>.<o:p></o:p></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또한</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SPAN lang=KO>이러한</SPAN> JP <SPAN lang=KO>모건의 막대한 손실로 말미암아 당초 올</SPAN> 7<SPAN lang=KO>월에 시행될 예정이었으나</SPAN> 2<SPAN lang=KO>년간 연기된 이른바 </SPAN>'<SPAN lang=KO>볼커 룰</SPAN>'<SPAN lang=KO>의 시행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SPAN>. '<SPAN lang=KO>볼커 룰</SPAN>'<SPAN lang=KO>은 미 금융당국이 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과도하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다</SPAN>. <SPAN lang=KO>특히</SPAN>, <SPAN lang=KO>이번</SPAN> JP&nbsp;<SPAN lang=KO>모건의</SPAN> CEO <SPAN lang=KO>다이먼은 금융 자율성을 주장하며 이러한 법률 시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해온 인물이다</SPAN>.<o:p></o:p></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BR></P></SPAN>
<P style="LINE-HEIGHT:140%; FONT-FAMILY: Gulim" class=MsoNormal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ang=KO>이와 관련하여</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white"> &lt;<SPAN lang=KO>뉴욕타임스</SPAN>&gt;<SPAN lang=KO>는 이번 </SPAN>JP<SPAN lang=KO>모건의 충격이 금융시장 개혁을 위한 새로운 단초</SPAN>(fodder)<SPAN lang=KO>를 제공하였다고 분석했다</SPAN>. <SPAN lang=KO>또한, 미 금융당국은 이번</SPAN> JP&nbsp;<SPAN lang=KO>모건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하여 영국 금융당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SPAN>.<o:p></o:p></SPAN></P>]]></description></item><item><author>김희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나를 버린 엄마' 꼭 찾아야 하는 이유]]></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020</link><pubDate>2012-05-12T11:05:4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PAN></FONT>
<DIV align=left><FONT color=#333333><STRONG>엄마 찾아 한국 왔더니, 엄마는 아들 찾아 미국에...</STRONG></FONT></DIV></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
<DIV align=left><IMG id=IIE001437734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4_STD.jpg?22"></DIV>
<P></P>"7년 전 인카스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흔 살쯤 됐을까? 손에는 이만큼이나 되는 페이퍼를 들고…. 5년 동안 그렇게 혼자 가족을 찾아다녔대요. 수북이 쌓인 페이퍼를 받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그 사람의 애절함,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대로 느껴졌어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COLOR: rgb(51,51,51); FONT-SIZE: 15px">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인카스(InKAS)' 회장 정애리(53)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해외입양인과 해외입양가족의 복지와 권리를 위해 1999년 설립된 이 봉사회에는 그동안 수많은 입양인이 거쳐 갔다. 그중에서도 제레미(가명·남)의 사연은 정 회장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nbsp;</DIV>
<P></P>제레미는 7살 무렵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이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의 어머니는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그의 옷 주머니에 꿰매 넣어줬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제레미 뿐이었다. 양부모를 만났지만, 그는 매일 밤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국에 돌아갈 날을 꿈꿨다. "이 사진만 있으면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어!"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된 양부모가 제레미 몰래 사진을 없앴고, 동시에 그는 삶의 목적을 잃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미국 땅에서 그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좋은 직장에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울증은 계속됐다. 뭔가 알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그를 옥죄었다. 결국, 정신과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게 된 그는 '한국에 두고 온 엄마'를 만나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제레미는 한국을 오가며 친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방송국, 청와대, 입양센터 등 사방에 수소문하고 편지를 보냈다.&nbsp;누구 하나 발 벗고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운명의 장난이었나, 제레미 어머니는 미국에 있었다. 정 회장은 그가 어린 시절 파주의 미군 부대 근처에 살았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곧바로 파주에 가 수소문 끝에 어린 시절 제레미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제레미는 KBS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나갔고, 우연히 프로그램을 본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 제레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미국에 보낸 뒤 괴로워하다가 그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는 거였다. 두 모자는 엉뚱한 곳에서 서로 헤매다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가 정 회장을 찾아온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TRONG>떠난 이도 보낸 이도 고통의 시간</STRONG></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73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6_STD.jpg?92"></DIV>
<P></P>정 회장은 "제레미처럼 많은 입양인이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없이 방황하고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입양 보낸 부모 역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제천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 적이 있어요. 두메산골이었어요. 한참 헤매다가 저녁때 도착했는데, 불도 안 켜지고 컴컴한 곳이었어요. 집에 들어가 보니, 어떤 여자가 앉아 있는데 여자 머리 뒤가 다 빠져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애를 입양 보내고, 정신이상이 된 거였어요. 늙은 할아버지랑 딸이랑 그렇게 불도 안 켜지는 곳에서 사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왜, 이런 상황밖에 안 됐을까 하고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결국, 정 회장은 입양인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일까지 도맡게 됐다. 그는 "아이를 입양 보내 놓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분이 너무 많다"며 떠난 이도 보낸 이도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입양 문제에 대해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입양과 관련한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다들 입양 자체를 자기의 수치로 생각하니, 문제가 있어도 덮어둘 수밖에 없어요. 사실 당사자가 나서서 개선해야 할 문제인데, 정작 당사자가 떠들 수 없는 문제인 거죠. 우리나라에서 입양 관련 가족은 말 그대로 '죄인'으로 사는 거예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TRONG>그들을 두 번 버리지 않기 위해 택한 일</STRONG></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737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7_STD.jpg?13"></DIV>
<P></P>고아원을 운영하던 외조부모에서&nbsp;자란 정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입양의 문제를 느껴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뒤, 5년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10년 동안 가정주부로 지냈지만, 매스컴에서 나오는 입양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해외입양인 복지에 뛰어든 것은 자신의 숙명이었다고 회상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어떻게 보면 입양 문제는 내 모든 삶의 연장선에 있었어요. 갑자기 내가&nbsp;여기 개입됐나? 이런 생각도 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누구보다도 입양인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입양인과 함께해 온 제가 한국사회와 입양인 사이에서 다리로서 적임자가 아니었을까요? 언젠가는 누가 저한테 혹시 입양인이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전 입양인은 아니지만, 거의 반은 그런 마음으로 일해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88올림픽 이후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90년대 초부터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들이 모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입양된 아이들 대부분이 성인으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당시 한국사회가 해외입양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우리나라 사람이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나라에 가니 좋겠다. 다 어렵고 힘든데, 뭔가 좋은 곳으로 선발돼서 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시 한국을 찾는 입양인을 보면서, 한국에는 왜 돌아온 거지? 부모를 찾아서 뭐하게? 자기 버린 부모도 지금은 새로운 가정 꾸려서 잘살고 있을 텐데…. 굳이 찾아서 왜 피해를 줄까? 이런 편견을 갖고 입양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입양인에게 몰아가고 있었던 거죠."</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입양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정 회장은 우리가 그들을 '두 번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입양된 아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편견 역시 우리의 환상일 뿐이고, 입양인이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일을 할수록 그들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본능이라는 걸 느껴요. 입양인이 왜 한국에 돌아 오는지 의문을 갖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우리가 특별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우리 생각이 참 미흡했구나. 이런 반성도 되고…. 많은 사람이 고국을 찾는 일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TRONG>잃어버린 뿌리를 찾아 잇는 과정</STRONG></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73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8_STD.jpg?76"></DIV>
<P></P>
<DIV>정 회장은 해외입양인이 입양으로 상실한 세 가지. 즉 뿌리, 문화, 언어를 회복하는 일이 입양 사후관리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해외입양인에게 한국어 학습 기회를 주고, 문화 교육을 지원하는 '인카스'의 모든 사업도 이에 바탕을 둔다. 친가족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도 그 중 하나다. </DIV>
<DIV>&nbsp;</DIV></SPAN></FONT>
<DIV><FONT color=#333333>매년 천 여 명 입양인이 '인카스'를 찾지만, 친부모를 만나는 사례는 10%도 안 된다. 부모와 만나 좋지 않게 끝나는 일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친부모와 만난 뒤에 관계가 어떻게 되든 일단 '만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사실, 결과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문화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부모는 의도해서 보낸 경우가 많고, 자녀 역시 나를 버린 책임감 없는 부모라는 생각이 들어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만나는 거예요. 그 상태가 좋을 리는 없겠죠. 그렇지만, 입양인이나 친부모가 서로를 확인하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또 못 찾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는 과정, 그 과정에서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이 모든 작업에는 "우리 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정 회장은 말했다. 직원 3명으로 이루어진 '인카스'가 매년 천여 명 해외입양인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시민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껏 '인카스'에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 수는 2만 명에 이른다. 정 회장은 "인카스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원봉사자들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 전체가 건강해야 그 사회 안에 있는 내 자식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TRONG>입양은 개인 아닌 국가의 책임</STRONG></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735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5_STD.jpg"></DIV>
<P></P>'인카스' 설립 후 처음 5년간 정 회장은 거의 사비를 털어 운영했다. 후원금으로 일부 충당하기도 하지만, 입양기관은 재정적인 후원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영어도 잘하는 입양인이 뭐가 불쌍하냐'라는 시각이 많아, 후원자 모집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등 15개국과 교류하다 보면 재정적 어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한번은 갈등하는 그를 입양인 한 명이 크게 꾸짖었다고 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고민하는 저를 보면서 입양인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면서 제게 무척 화를 내더라고요. 회장님이 그런 마음이라면 아예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우리 입양인들은 이미 인카스에 많은 의지를 하고 기대감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다가 못 하면 말지'는 식이라면 우리는 어떡하느냐고요.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FONT></SPAN>&nbsp;</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아예 이런 기관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나을뻔 했다면서. 그래서 저도 많이 배웠죠. 아, 이제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라 공공의 일이 됐구나. 인카스가 모든 입양인들의 희망이고 마음의 안식처였구나. 나만의 생각으로 내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입양인들은 정 회장이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가 어려워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라 합리화한다. 그러나 한 입양인 생각은 달랐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한국에서 해외 입양은 6·25 전쟁고아들을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OECD에 가입한 현재까지 해외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가가 무엇이고 정부가 무엇입니까? 개인이 책임지지 못하는 것을 책임지고 보호해주는 게 국가와 정부가 아닙니까? 저는 만 불에 팔려간 입양인입니다."</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그의 말을 들으며 정 회장은 "입양이 국가적 책임이라는 것을 새삼 배웠다"고 한다. 입양은 개인이 아닌 국가와 한국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PAN></FONT>&nbsp;</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정 회장은 "말은 함께 하자고 하지만 정작 힘든 부분은 도려내고 그 부담은 함께 지려 하지 않는다"며 "이미 해외에 입양된 22만 명의 권리를 어떻게 되찾아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입양뿐 아니라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STRONG>국내입양을 넘어 편견 없는 사회로</STRONG></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
<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739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739_STD.jpg?3"></DIV>
<P></P>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가정의 달' 5월에 한 가정(1)이 한 아동(1)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나자는 취지에서 2005년 제정됐다. 비밀입양이 성행하고, 입양 사실을 숨기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국내입양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해외입양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변화 중 하나라고 정 회장은 말했다.</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nbsp;<SPAN style="WHITE-SPACE: pre" class=Apple-tab-span> </SPAN>&nbsp;</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입양아들이 떠날 때, 우리는 그들을 '고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고아라고 생각하죠. 너무 많은 것이 변해서 돌아왔지만, 함부로 대한다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였죠. 그렇지만 입양인은 고아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성인이자 우리 사회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FONT></SPAN>&nbsp;</DIV>
<DIV><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FONT color=#996633>결혼 문제만 하더라도 한국인 부모는 입양인라고 하면 '고아원에 있던 애'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본 없는 자식'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죠. 국내 입양을 장려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입양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입양 가정을 평범하지 않게 생각하는 의식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FONT></SPAN></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BR></SPAN></FONT></DIV>
<DIV><FONT color=#333333><SPAN style="LINE-HEIGHT:21px;FONT-SIZE: 15px">정 회장은 "내가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도움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며 해외입양인을 희망있게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가 그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후에 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크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해외입양인들이야 말로 가장 세계화한 한국인이고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nbsp;</SPAN></FONT></DIV>]]></description></item><item><author>박형숙</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새 대통령, 박정희·김대중·노무현 뒤에 숨어선 안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0846</link><pubDate>2012-05-11T11:57:5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40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401_STD.jpg"></DIV>
<P></P>
<P><FONT color=#996633>"잠룡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비전을 제시하는 분이 없다. 인기투표만 하고 있다. 박근혜씨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기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고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FONT></P>
<P>&nbsp;</P>
<P>법륜 스님은 5월 10일 오후 2시30분 서울 정동 북 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lt;새로운 100년&gt;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금의 정치가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성장 리더십인 박정희 뒤에 숨어 있고 민주화 투쟁의 리더십인 김대중·노무현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P>
<P>&nbsp;</P>
<P>법륜 스님이 제시한 핵심 비전은 통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20년, 30년짜리 역사적 과제라면 통일은 "독립, 성장, 민주화를 완성해 주는 통합적인 우리 민족의 100년 과제"라고 말한다. 다들 먹고살기 어렵다는데, 그래서 대선주자들마다 경제, 경제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웬 통일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는 통일은 우리 생존을 위한 투자이며 모두가 꿀 수 있는 공공의 꿈이라고 말한다. </P>
<P>&nbsp;</P>
<P>법륜 스님의 '통일 생각'은 오래되었다. 숨가쁘게 즉문즉설 강연장을 오가고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어도 늘 가슴 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lt;새로운 100년&gt;으로 20년 동안 끌어안고 왔던 마음의 체증을 풀어냈다.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라는 대담집 형식으로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새삼스럽거나 혹은 진절머리 나는 통일 이야기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일주일에 세 시간씩 꼬박 석달을 인터뷰 한 오연호 &lt;오마이뉴스&gt; 대표기자는 "스님을 만날 때마다 마치 20대 청년처럼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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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년 정권을 잡기위해 '2013년 체제'를 논하는 마당에 100년의 미래라니. 법륜 스님은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볼 때 두 가지 사항을 고려했다. 현재 내 주변의 관계와 내가 있기까지의 역사를 바탕으로 시대를 읽으라는 것.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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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우리 과거 100년은 수난의 역사였다. 하지만 수난의 가운데서도 독립을 위해, 분단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전쟁 이후에는 빈곤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을 쳤고 자유와 민주화를 외쳤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가. 막연히 노력하면 될까. 우리 주변 정세를 보자. 중국과 미국 속에 한반도가 있다. 우리의 운명이 분단고착화라면 결국 남한은 미국, 북한은 중국에 인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대국의 전쟁 속에 우리의 미래는 과거 100년과 마찬가지로 한계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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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공동체의 운명이 이러하다면 개인의 행복도 보장될 수 없지 않은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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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북한의 버르장머리 고친다는&nbsp;정책으론&nbsp;평화 보장도 어려워"</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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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433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433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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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결국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혜택을 입어야 할 사람들은 2천만 북한 동포들이다.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차적으로 남한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위협이 없어지고 재산과 인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2천만 주민의 민심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북한 정부와 경쟁해야 한다.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은가. 이런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북정책을 펴야지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는 감정적 수준의 정책으로는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를 보장하기도 어렵다. 인도적 지원은 투자다. 민심을 잡을 수 있으니 줘야 하고 그렇게 남북 간에 물꼬를 트는 게 우선이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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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년 동안 북한동포돕기 사업을 해오면서 누구보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법륜 스님은 "북한은 현재 사회·경제적으로 거의 붕괴되고 있다"며 "북한의 내부 모순이 극대화되는 시점을 4, 5년"으로 잡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이 미·중의 권력 교체기니 통일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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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법륜 스님이 제시하는 2012년 대선의 리더십은 '통합'이다. 산업화 시대를 이끈 성장의 리더십과 민주화 시대를 이끈 투쟁의 리더십을 포용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 반반 섞자는 회색의 중도가 아니라 내 것을 내세우되 상대편의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조율하는 불교의 화쟁사상에 바탕한 리더십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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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법륜 스님은 이 책에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통합 리더십에 대한 민심의 분출이자 시대적 요구라고 봤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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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안철수씨가 앞으로 정치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면 그를 중심으로 시대의 요구가 움직이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민심이 다른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만 갖고는 안 되니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쪽으로 민심이 돌아갈 수 있다."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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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날 간담회에서 '안철수씨가 통합 리더십에 걸맞은 인물이냐'는 질문도 나왔지만, 법륜 스님은 "아직 출마선언을 안 했고 (정책을) 내놓은 게 없다"며 평가를 유보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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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통일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는 아니지만 국가 지도자는 큰 안목 먼 안목을 내다보는 분이어야 한다. 남한의 지도자들이 말하는 국민 속에 북한 주민들이 포함되어야 하고 남한만의 사회가 아니라 한반도의 발전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시야가 필요하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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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333333><STRONG>어느 순간&nbsp;널 잊고 안주했다, 미안하다 통일!</STRONG></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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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39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0/IE001437396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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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간담회 말미 법륜 스님은 100년의 미래에서 나아가 1000년의 꿈을 얘기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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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고조선부터 우리는 동아시아의 중심국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신라 시대로 오면서 반도에 갇혔다. 주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해서 약소국으로 치달았다. 지금 통일국가를 이룬다면 프랑스와 영국 정도의 위상이 된다. 발해 멸망 이후 1000년 만에 동북아 중심 국가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젊은이들이 그런 꿈을 꿀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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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t;진보집권플랜&gt;에 이어 '오연호가 묻다'의 후속작인 &lt;새로운 100년&gt;을 내면서 오연호 대표기자는 "남한의 진보집권을 넘어, 진보와 보수를&nbsp;넘어 남북한 모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386세대로서 시대와 역사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통일을 잊어버리고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통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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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43761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2/0511/IE001437612_STD.jpg?74"></DIV>
<P></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원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오바마 미 대통령, 동성결혼 지지 전격선언]]></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0435</link><pubDate>2012-05-10T10:28:12+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그동안 유보적 입장을 표명해 왔던 '동성 결혼' 문제에 관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공식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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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9일(미국시각) 미 ABC 방송과 가진 단독 인터뷰를 통하여 "나는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나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전격적인 선언은 동성 결혼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미트 롬니 공화당 확정주자와의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분명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lt;뉴욕타임스(NYT)&gt;는 분석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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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미트 롬니 공화당 확정주자는 오바마의 인터뷰가 있기 몇 시간 전에 가진 지역 'FOX뉴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미 수정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동성 결혼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혀 향후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최근 중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 동성 결혼과 관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구세대들은 강력히 반대하는 등 그 차이가 확연하다고&nbsp;NYT는 보도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이미 동성 결혼이 허용된 바 있는 뉴욕시의 블룸버그 시장은 (오바마의 선언은) "미 시민권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다"며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보수조직인 "미국가치(American Values)"의 게리 바우어 의장은 오바마의 이러한 선언은 "경제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 폭등으로 차에 기름을 넣기도 어려운 시기에 왜 대통령이 이러한 급진적인 생각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재앙적 경제 정책을 무마하려는 좌파적(left-wing)인 정치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NYT는 보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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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조 바이든 미 부통령도 일주일 전 미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동성 결혼에 "분명히 받아 드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곧 견해를 밝힐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하지만, 전날 발표된 갤럽의 동성결혼 지지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찬성과 반대가 50%-48%로 나타나는 등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미 국민의 여론이 첨예한 대립을 보일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윤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아웅산 수치, 21년 만에 노벨평화상 받는다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0417</link><pubDate>2012-05-10T08:21:32+09:00</pubDate><description><![CDATA[<P align=justify>미얀마의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 여사가 21년 만에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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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영국 BBC는 9일(한국시각) "수치 여사가 미얀마 정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으면서 다음 달 노르웨이를 방문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치 여사는 영국, 미국 등도 방문할 계획이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수치 여사는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내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14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오랜 가택연금은 오히려 수치 여사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nbsp;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가택연금이 잠시 해제된 사이 외국 방문의 기회가 있었지만 돌아올 때 군부로부터 미얀마 입국이 거부될 것을 우려해 출국하지 않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수치 여사는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노르웨이를 방문하지 못해 아직까지 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가 여권을 발급하면서 21년 만에 직접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수치 여사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고 지난달 보궐 선거 승리를 이끌었으며 자신도 출마해 당선되면서 의회에 진출했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테인 세인 대통령의 주도로 경제개방과 정치개혁에 나선 미얀마 정부는 최근 24년 만에 수치 여사에게 여권을 발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수치 여사는 외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며 "이미 여권은 수치 여사의 손에 있다"고 밝혔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수치 여사는 우선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영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수치 여사는 옥스포드대학에서 공부했고 영국인 남편과 결혼했을 정도로 영국과 인연이 깊다. 또한 미국 뉴욕에 있는&nbsp;유엔 본부의 초청도 받아놓았다. </P>
<P align=justify>&nbsp;</P>
<P align=justify>민주주의민족동맹의 니얀 윈 대변인은 "수치 여사가 출국을 결심한 것은 세인 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P>]]></description></item><item><author>김경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김정은, 놀이공원 풀 뽑으며 "한심하다" 질타]]></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0218</link><pubDate>2012-05-09T15:12:49+09:00</pubDate><description><![CDATA[<P>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놀이공원을 방문해 관리실태에 실망하며 담당 관리들을 거세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P>
<P>&nbsp;</P>
<P>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관리들을 질타하는 모습이 보도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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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 시내에 위치한 '만경대 유희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방문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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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제1비서는 이날 2계단 유희장의 '배그네(바이킹)' 앞 구내도로가 심히 깨진 것을 보고 "도로포장을 마지막으로 한 것이 언제인가"라고 물으며 "도로관리를 잘하지 않아 한심하다"고 개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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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 제1비서는 '2중회전관성렬차(롤러코스터)' 앞에서는 측백나무와 향나무의 밑정리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지적하면서 "나무들의 주위에 조약돌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곱게 박아놓으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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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 제1비서는 "2중회전관성렬차의 출입구 마당이 너무 넓으니 마치 비행장에 온 것 같다, 타산 없이 크게 정했다"며 "유희시설들의 구획이 명백히 나타나도록 분리띠를 조성하면 보기에도 좋고 이용에도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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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는 또 유희장 구내의 보도블록 사이에 돋아난 잡풀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한 포기 한 포기 직접 풀을 뽑으며 다시 "이렇게 한심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말이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소리"라고 격한 어조로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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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는 물놀이장 미끄럼대 수조의 깊이가 얕은 것을 보고 "이런 데서 엎드려 내려오면 다칠 수 있다"며 "수조 깊이를 1m70cm 이상으로 보장하고 주변에 모래불(모래더미)도 잘 꾸려줘라"고 주문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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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 제1비서는 이날 유희기구의 도색 상태와 잔디, 나무, 분수터 등의 관리 상태도 차례로 지적하며 구체적인 대책을 추궁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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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 제1비서는 "만경대 유희장은 인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방심해 두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군, 인민들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일군들이 천만 명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무거운 어조로 말하고, 동행한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게 "유희장 운영을 중지하고 인민군대의 건설역량을 파견하여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변모시키라"고 주문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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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통일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북한 언론이 최고 지도자의 공개 질타 모습을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아마도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 제1비서의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각종 사회 불만을 최고지도자가 아닌 실무 책임자들의 잘못 때문으로 전가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견해를 밝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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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2년 4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기해 문을 연 만경대 유희장은 총 부지면적 70정보로, 갈매지벌에 꾸려진 1계단유희장과 송산벌에 확장되어 건설된 2계단유희장, 물놀이장 등으로 이뤄져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P>]]></description></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