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오마이뉴스 - 해외리포트</title><link>http://www.ohmynews.com/</link><language /><description /><copyright>Copyright (c) OhmyNews.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lastBuildDate>2011-09-07T12:56:12+09:00</lastBuildDate><item><author>고은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1년 전 죽은 19세 강군, 신주쿠에서 무슨 일이?]]></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8614</link><pubDate>2011-09-01T16:23:4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609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09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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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광복절이던 지난 8월 15일, 미국 회사에서 한국어 수업을 끝내고 나오던 길에 애틀랜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내가 들렀던 건물 건너편에는 애틀랜타 일본총영사관이 입주해 있었고, 두 빌딩에서 큰 도로로 나가는 길목에 열댓 명쯤 되어 보이는 아시아인들이 일본어와 영어로 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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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일본은 정직해져라(Japan Be Honest)."</FONT></P>
<P><FONT color=#996633>"스캇 강을 위한 정의(Justice for Scott Kang)."</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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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문구들을 보는 순간 1년 전 애틀랜타 대표신문인 AJC에서 본 기사가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사고나 사건에 연루돼 사망한 한국인에 대한 기사가 흔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재미교포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슬픈 사건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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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일어난 의문사</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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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국에서 태어나 애틀랜타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훈 스캇 강'(한국명 강훈). 미국 최고 경영학부 중의 하나인 뉴욕대학교 스턴 비즈니스스쿨을 학비 면제로 입학한 수재였다. 19세의 청년 강훈군은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 학비도 벌고 한국에 대해서도 배울 목적으로 한국 정부의 원어민 영어교사 장학 프로그램(TALK Program, Teach and Learn in Korea)에 합류했다. 2학년은 영국에서, 3학년은 중국에서 보내야 하는 학사 일정 때문에, 생활비를 제공받던 ROTC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강훈군은 충북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중, 방학을 이용해 일본에 놀러 갔다가 의문사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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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left><IMG id=IIE001342612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12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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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건이 발생한 때는 작년 8월 24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로부터 두어 시간이 흐른 25일 오전 1시 반 무렵, 강훈군은 향락업소가 즐비한 일본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한 건물(Collins Building) 비상계단 6층과 7층 사이 계단통에서 '외부 충격에 의한 뇌 손상과 과다출혈'로 의식불명인 채 발견됐다. 왼쪽 머리 아래쪽에 0.5~1cm가량의 구멍이 생겼는데 얼마나 세게 충격을 받았는지 머리에 두세 갈래로 8.5cm나 되는 균열이 생겼고 머리 오른쪽 윗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병원에서는 젊기 때문에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바로 뇌 절개 수술을 진행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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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애틀랜타에 사는 부모가 연락을 받고 한국을 거쳐 일본에 도착한 때는 8월 29일 오후 4시 반. 강군의 부모는 통상적인 면회 가능 시간을 넘겨 그날 밤 9시까지 아들을 면회했다. 다음날인 8월 30일 아버지 강성원씨가 신주쿠 경찰서를 방문하고 있던 시간에 강훈군은 수많은 의문점들을 남겨둔 채 어머니 품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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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병원에 도착해서 보니까 아이 눈이 자꾸 건조해진다고 눈에 테이프를 붙여놨더군요. 그런데 저희가 도착하고 1시간쯤 아이에게 얘기하고 있는데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날 엄마가 얘기를 할 때도 눈물이 흘렀다고 해요."</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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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뇌사 상태에서도 눈물로 이별을 고한 아들이 하늘나라로 간 지 어느새 1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믿기에 아들의 영원한 안식 또한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무치는 육신의 그리움만은 어쩔 수가 없는 아버지는 오늘도 남몰래 눈물을 삼킨다. 집에서는 훈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슬픔에 잠길 아내를 생각해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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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러나 강성원씨는 그리움과 슬픔에 앞서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지 않고는 편히 지낼 수가 없다. 또한 낯선 땅 일본에서, 미국 시민권자지만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이 일을 겪으면서 눈을 뜨게 된 갖가지 부조리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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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일본 경찰은 사망 이틀 만에 이 사건을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생긴 '사고사'로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여러 정황 증거들이 '폭행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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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614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14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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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일본 경찰의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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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강성원씨는 재수사를 신청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도쿄의 미국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알아는 보겠다"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미국으로 전화해 오랫동안 강훈군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레이몬드 워즈니악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그때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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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워즈니악씨는 34년 경력의 은퇴한 교도관으로 신학과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에 배치됐던 인연으로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에서 입양돼 장성한 자녀 둘이 있는 그는 그동안 애틀랜타 지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서 수많은 한인들에게 도움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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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강훈군이 중학생이던 때부터 성경공부를 같이하며 부모에게 못하는 말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사제 간의 두터운 정을 쌓아온 그는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조니 아이잭슨 및 도쿄 주재 미국대사관과 직접 통화를 했다. 곧이어 재수사가 결정됐다. 사체 부검도 진행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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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건은 신주쿠 경찰서에서 도쿄 경시청으로 넘어가 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CCTV 장면 해석을 놓고 이견이 생겼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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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건이 일어난 날, 강훈군은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TALK 프로그램 동료교사 두 명(21세, 29세)과 함께 문제의 빌딩에서 저녁을 겸해 술을 약간 마시고 있었다. 각종 게이바와 파친코, 클럽들이 즐비한 가부키초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업소가 야쿠자 소유이거나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경찰의 감시 카메라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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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밤 10시 반 무렵, 강훈군은 술을 더 마시려는 두 사람에게 '30분쯤 산책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약 30분 뒤인 11시 4분 무렵에 찍힌 엘리베이터의 CCTV에 다시 빌딩 안으로 들어오는 강훈군의 모습이 잡혔다. 뒤이어 두 남자가 더 엘리베이터로 들어오고, 엘리베이터 버튼은 둘 중 체격이 큰 남자가 눌렀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이 둘은 그 건물 지하 게이바에서 일하는 필리핀계 호객꾼과 일본인 보조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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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일본인이 6층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남은 두 사람. 강훈군은 양손을 위로 올리는 제스처를 했다. 그때 필리핀계 호객꾼이 강훈군의 멱살을 잡고 뒤이어 복부를 가격하는 듯한 장면이 잡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앞으로 숙인 몸. 그리고 마지막 층인 8층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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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처음 신주쿠 경찰서에서 비디오를 볼 때 함께 있던 경찰들도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강성원씨는 말했다. 한국에서 온 TALK 프로그램 장학사 두 사람과 일본 현지 통역을 맡아준 이민숙씨도 이 비디오를 함께 보았다. 이민숙씨는 동료교사 중 21세 청년의 일본 현지 보호자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데, 이 일이 터지자 생업을 제쳐두고 강성원씨를 도왔다.&nbs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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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런데 재수사 과정에서 일본 경찰은 이 장면을 구타가 아니라 동성 간의 애정 행위로 간주하려 했다. 동성애자인 필리핀계 호객꾼이 강군의 멱살을 잡는 듯한 장면을 애정 행각으로, 강군이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를 키스를 하려는 제스처로 해석해 강성원씨에게 '아들이 혹시 동성애자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강성원씨는 증거 조작 및 인멸을 의심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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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재수사 때 보여준 비디오는 처음에 봤던 그 아날로그 테이프가 아니었어요. 랩톱 컴퓨터를 들고 와서 보여주는데 CCTV의 화질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비디오에서는 복부를 가격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화질이 떨어지니까 그 느낌도 생생하지가 않았어요. 오리지널을 달라고 요구하자 다른 테이프를 갖고 왔지만, 제가 처음에 봤던 것과는 테이프의 색깔이 달랐고 선명하지도 않았어요. 그뿐 아니라 처음에 봤던 현장 사진 중에는 좀 끔찍한 장면들이 제법 있었는데 재수사 때는 그런 사진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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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일본 경찰은 필리핀계 호객꾼과 일본인 보조를 구속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이 경찰 조사에서 얘기한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술에 취한 강군이 8층 옥상으로 나가 뛰어내리려고 하는 것을 붙잡아 말린 뒤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8층 현장에는 강훈군을 포함해 세 명이 있었다는 얘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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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 달 뒤 강성원씨가 워즈니악씨와 함께 일본을 다시 방문했을 때도 경찰은 똑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워즈니악씨는 멱살을 잡은 자세를 보면 공격적인 자세임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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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체 부검 후 밝혀진 혈중 알코올 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2.73%. 전문가들은 3%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4%면 알코올로 인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동료 교사들과 헤어질 당시 청주 한두 잔을 마신 정도였다던 강군이 30분 만에 만취 상태가 된 것도 석연치 않거니와,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 상태로 8층까지 가고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 대해서도 유가족 측은 의문을 제기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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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에 더해 강성원씨는 일본의 비좁은 건물 구조상 계단에서 굴러도 두 개 층이나 떨어질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고 직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 처음 봤던 현장 사진들에서 8층 벽면 제법 높은 위치에 사선으로 칠해진 핏자국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냐고 따졌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일본 경찰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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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615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15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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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애타는 가족, 바뀌지 않는 결론</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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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장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던 강성원씨는 한 달 뒤인 작년 10월 워즈니악씨와 함께 일본을 다시 방문했다. 일본 경찰을 상대로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유명한 범죄 추적 TV 프로그램인 &lt;아메리카 모스트 원티드&gt;의 진행자 존 월쉬도 지난해 11월 6일 방영분을 강군 스토리로 다루며 도쿄에 다녀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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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은 비디오 원본, 사라진 사진들, 사체 부검 결과 등 요구하는 자료들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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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워즈니악씨는 작년 12월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장문의 탄원서를 작성해 주미 일본대사관에 발송했다. 탄원서에는 일본 경찰에 반박했던 수사의 5가지 허점, 도쿄 미국대사관 담당자에게 설명했던 '미국이나 조지아 주라면 당연히 용의자 신병을 확보했어야만 하는 이유' 6가지, 일본 경찰이 고려해 주기를 바라는 30가지 의문점이 빽빽하게 기록돼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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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여기에는 8층 계단참 벽에 있는, 모서리가 뾰족한 어깨 높이의 철제 열쇠통을 중심으로 한 추리도 포함돼 있다. 폭력이 있었을 경우 왼쪽 머리 아래쪽에 난 구멍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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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후 여러 달이 흘렀지만 일본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초, 도쿄 미국대사관에서 2월에 수사가 '사고사'로 종결됐다고 연락했는데 이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이 왔다. 2월말에 작성했다는 편지를 첨부해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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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기가 막혔지만 강성원씨는 이제 다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워즈니악씨가 용기를 북돋웠다. 두 사람이 다니는 애틀랜타 염광장로교회에서는 워즈니악씨를 사무총장으로 하고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상대는 일본이라는 철옹성. 끝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알 수는 없지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싸워 보려고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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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616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16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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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싸움은 이제 시작이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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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지아 주 케네소주립대학교 형사사법학과의 장현석 교수는 일본을 "전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범죄율은 나라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자료로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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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명백히 폭행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을 '사고사'로 처리한 것을 보면 조직적인 은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 관광산업에 지장을 줄 만한 사건인데다, 미국과 한국이 연관돼 있어서 가급적 조용히 끝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정경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합당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선진 경찰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겠지요."</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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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장 교수는 일본의 관련법을 알아봐야겠지만 "공신력 있는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것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조언하면서, 그에 앞서 "뇌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강군의 부상에 대해 밝힌 소견서, 사체 부검 결과 보고서를 확보하고, CCTV 영상 확보 및 복원이 이뤄지고 다른 목격자를 찾을 수 있다면 일본 경찰과 정부를 압박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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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하지만 강군이 사망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미국 정부가 나서기 전에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으리라는 게 장 교수의 분석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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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610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9/IE001342610_STD.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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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강성원씨나 워즈니악씨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시위할 때 애틀랜타 지역의 주요 매체들에 다 알렸다. 일부는 취재를 해 가기도 했으나 기사화되지 않았다.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 다투어 소개한 것과 대조적이다. 교민 수는 250만이나 되지만 한인을 대표할 연방의원 하나 없는 소수민족 신세가 서글퍼지기도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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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하지만 강훈군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사망 1주기인 8월 30일 강성원씨와 워즈니악씨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 경찰의 얘기를 다시 한 번 듣고 필요한 법적 대응 조치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전에 일본에서 외국인 사망 사건이 '사고사'로 처리됐다가 '살인'으로 번복됐던 사례들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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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미국인들까지 포함해 진행되고 있는 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4600여 명이 동참했다. 서명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일본 쪽에서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이 관심을 표명했고, 영자 신문인 &lt;저팬 타임즈&gt;, 해외특파원 클럽 등에서 기사로 다루는 등 도움을 주고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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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진상규명위원회 측에서는 조만간 소셜 네트워킹이 가능한 전용 웹사이트(<A href="http://www.scottkang.com/">www.scottkang.com</A>)를 띄워 사건을 널리 알리고 온라인 서명 릴레이도 펼칠 예정이다. 오는 10월 10일 아이잭슨 연방 상원위원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고, 12월 12일에는 CNN 앞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다. 장래가 촉망됐던 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이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잊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윤여문</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시드니 '희망버스'에 호주 진보 단체들 뭉쳤다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8254</link><pubDate>2011-08-28T15:11:28+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1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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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호주에서 희망버스를 함께 타고 있는 우리는 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해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을 적극 지지합니다."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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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호주 시드니 희망버스'에 탑승한 승객 일동이 전하는 지지 메시지의 시작 문장이다. 서울에서 열린 4차 희망버스와 때를 맞춘 8월 27일&nbsp;오후 7시, 시드니 희망버스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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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토론회와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시드니 희망버스에 탑승한 승객은 노동자·학자·정치인·목사·변호사·시인·영상문화운동가·노조활동가·사업가·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 등이 망라됐다. </P>
<P>&nbsp;</P>
<P><STRONG>시드니 항구에서 부산 항구로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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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2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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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부산과 시드니는 아름다운 물항(港)이다. 평화로운 바다 태평양이 두 항구를 이어준다. 8월 27일 밤, 그 바다를 건너간 버스가 있다. 시드니 희망버스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버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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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시드니 희망버스의 목적지는 부산항에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이다. 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35m 상공에서 234일째 농성 중인 김진숙 위원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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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승객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소수'였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진보를 표방하는 게 여의치 않은 해외동포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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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인동포 진보단체 '시드니민족교육문화원'(윤종인 이사장) '호주한인포럼'(김학재 대표) '시나브로 독서포럼'(정창기 회장) 소속 회원들이 많이 참석했다. 특히 용접노동자들 다수가 한국 최초의 여성용접사인 김진숙 위원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P>
<P>&nbsp;</P>
<P><STRONG>진보단체들이 연대한 시드니 희망버스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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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3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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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시작노래로 '함께 가자, 이 길을'을 뜨겁게 부른 후에, 호주노동당(ALP) 소속 권기범 전 시장의 인사말로 행사가 열렸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그의 연설은 항상 짧고 강렬하다.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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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먼저, 우리가 호주에 살 수 있도록 해준 원주민(애버리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호주동포사회의 진보단체들이 희망버스를 계기로 다시 뭉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김진숙 위원님, 감사합니다."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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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어서 영상문화운동가 한성주씨가 마련한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영상이 상영됐다. 김주익, 박창수, 곽재규 열사들의 목숨 건 투쟁의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 특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85호 크레인을 지켜보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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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마지막 영상으로 한진중공업 사태 경과보고를 곁들인 김진숙 위원의 영상메시지가 상영됐다. 행사장에 다시 불이 켜진 다음, 사회자 김승일씨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꼭 살아서 내려오시라"고 말해 장내가 숙연해졌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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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비정규직 양산한다"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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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4_STD.jpg" align=center></DIV>
<P></P>
<P>토론 발제자로 나선 신준식 박사(UTS대학교 연구원)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분석한 한진중공업 사태'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가 2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노동시장의 붕괴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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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는 이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빌미로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이 만연하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가는 아웃소싱과 공장이주 등이 노동자의 터전을 앗아갔다"면서 "한국보다는 훨씬 낫지만 호주도 상황이 많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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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신준식 박사는 노동시장 유연화 하부정책으로 ▲ 수량적 유연화 정책 ▲&nbsp; 재정적(또는 임금) 유연화 정책 ▲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등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익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경영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고 말했다. </P>
<P>&nbsp;</P>
<P>그는 호주한인동포 노동자의 실태를 타일업종과 용접업종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노동단가 낮추기 식의 무한경쟁과 건설노조의 무능으로 몰락한 타일업종과 금속노조의 꾸준한 노력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용접업종을 비교한 것.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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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시드니 희망버스가 막차이기를...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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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5_STD.jpg" align=center></DIV>
<P></P>
<P>신 박사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경영전략으로 삼은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주면서 부산 영도조선소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서 노동자들을 무차별 정리해고 한다"고 분석하면서 "그래서 혁명가 김진숙의 싸움이 위대하다"고 결론지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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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신준식 박사의 발제에 이어서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시드니 운동권 노래패' 전천수, 권태원씨가 등장해서 노래공연을 펼쳤다. 두 사람은 '김진숙에게 보내는 응원가'를 열창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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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김진숙 위원에게 보내는 지지 메시지'와 '한국정부에 보내는 항의 메시지' 카드쓰기가 진행됐다. 그중에는 "시드니 희망버스가 부디 막차이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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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역사는 뒤풀이에서 일어난다'... 1박2일 된 시드니 희망버스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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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4235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8/IE001342356_STD.jpg" align=center></DIV>
<P></P>
<P>2시간 넘게 진행된 시드니 희망버스는 한성주씨의 카메라 앞을 지나면서 김진숙 위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화하는 순서로 갈무리됐다. 더러는 코믹하게, 더러는 진지하게, 더러는 애절하게, 더러는 침묵으로. </P>
<P>&nbsp;</P>
<P>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근처 생맥주 클럽으로 몰려가서 뒤풀이를 했다. 늦은 저녁식사를 먹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호주 진보단체들의 과거사를 회상했다. 그런 가운데 '연대를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자주 나왔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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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특히 호주한인포럼 유승도씨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추도식과 1, 2주기 추모식에서 연대했던 한인동포사회 진보단체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박은덕 변호사와 강병조 그린카드 강사의 강력한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P>
<P>&nbsp;</P>
<P>뒤풀이의 분위기가 '연대'라는 주제로 모이자 윤종인 이사장은 "대개 역사는 뒤풀이에서 일어난다. 기왕 시작했으니 1박2일로 가자"고 호기 있게 발언했다. 그런 다음 '호주동포사회 진보단체의 연합'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자정을 넘기며 이어졌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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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해외동포 투표 제대로 감시하자"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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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진보단체 연대를 위한 건배가 한두 번 더 이어진 다음 구체적인 사안들이 논의됐다. 먼저 2011년이 가기 전에 연대 바비큐 모임을 갖자고 합의했다. 이어서 "2012년에 실시되는 해외동포 투표를 제대로 감시하자"는 의견이 개진됐다. </P>
<P>&nbsp;</P>
<P>이와 관련하여 &lt;호주한인포럼&gt; 김학재 대표는 "첫 투표라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총선(지역구 제외)과 대선 모두 박빙의 승부라고 예상하면 해외동포의 표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P>
<P>&nbsp;</P>
<P>참석자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권기범 변호사가 갈무리 발언을 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이런 계기를 마련해준 김진숙 위원이 열사가 되면 절대로 안 된다. 호주동포사회 진보단체들의 연대로 우리 조국에 더 이상 열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 </FONT></P>
<P>&nbsp;</P>
<P>누구였을까.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으로 향하는 버스의 이름을 '희망버스'로 지은 사람은. 사회자 김승일씨가 화답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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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꼭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김진숙 위원은 꼭 살아서 내려올 것이다."</FONT></P>]]></description></item><item><author>박성우</author><category>스포츠</category><title><![CDATA[메시는 좌파 축구, 호날두는 우파 축구?]]></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6815</link><pubDate>2011-08-26T17:22:40+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37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37_STD.jpg" align=center></DIV>
<P></P>
<P>&nbsp;</P>
<P>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선 어느덧 새 시즌이 속속 시작되고 있다. 축구팬들은 한국 선수들이 속한 유럽 클럽팀들을 우리의 홈팀 삼아 응원하며 또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할 참이다. </P>
<P>&nbsp;</P>
<P>박지성이 속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이청용(비록 크게 다쳤지만)의 팀 볼튼, 지동원이 새롭게 옮겨간 선덜랜드, 기성용과 차두리로 친숙해진 스코틀랜드 클럽 셀틱, 그리고 독일의 함부르크 SV, 볼프스부르크까지 챙겨야 할 팀도 많아졌다. </P>
<P>&nbsp;</P>
<P>1980년대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절, MBC에서 주말 아침에 녹화로 틀어주던 서독 프로축구 경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익숙해진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은 바둑판 모양의 멋진 잔디 위에서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경기를 보여주었다. </P>
<P>&nbsp;</P>
<P>이런 어린 시절의 강렬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유럽 축구는 오래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유럽, 그중에서도 현재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는 프리미어리그의 나라 영국에서 꽤 긴 기간 거주하게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축구에 대해 품었던 기대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었다. 마치 필자가 한국에서 롯데자이언츠의 열성팬으로서 틈만 나면 잠실이며 목동, 그리고 사직야구장을 드나들던 것 이상이었음은 분명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43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43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한국보다 영국에서 훨씬 보기 힘든 프리미어리그</STRONG></P>
<P>&nbsp;</P>
<P>하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은 냉혹할 정도로 어렵다. 첫째, 맨유, 첼시, 아스널 같은 빅 클럽들의 경기 티켓 가격이 지나치게 비쌀 뿐 아니라, 표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다. </P>
<P>&nbsp;</P>
<P>북런던을 연고로 하는 아스널의 경우 올 시즌 리그 홈경기에서 가장 많은 수의 1등석 가격이 18만 원 정도(100파운드)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선 토너먼트 같은 인기 경기의 입장권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더해 대부분의 인기 시합 입장권은 연간 회원, 멤버십 회원에게 우선 배정된다. </P>
<P>&nbsp;</P>
<P>그러므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시즌 티켓을 사지 못한 일반인들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는 경우란 스케줄이 바뀌거나 상대가 무명 팀이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하는 리그컵 시합이거나 사람들이 관람하기 힘든 주중 경기가 대부분이다. </P>
<P>&nbsp;</P>
<P>축구의 기원과 역사를 굳이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원래 영국에서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생활이자 여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서 잘 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축구의 산업화 이후 이젠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나 첼시의 스탬포드브릿지에서 노동계급 혹은 저소득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P>
<P>&nbsp;</P>
<P><STRONG>경기장에서 사라진 가난한 팬들은 어디에?</STRONG></P>
<P>&nbsp;</P>
<P>지난 200년간 리버풀, 맨체스터, 글래스고 등 대규모 공장 지대, 노동자 중심 도시 팀들이 강력한 팬 층과 함께 영국 축구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1990년대 초까지 이 지역 팀들은 상대적으로 중산층을 기반(middle class base)으로 했던 아스널, 첼시, 풀럼, QPR 등 런던 소재 팀들을 압도하며 강자로 군림했다. </P>
<P>&nbsp;</P>
<P>하지만,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서민과 노동자 팬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경기장)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1990년 이전엔 단돈 3600원 정도(2파운드, 발코니석)만 내면 자기 팀 경기를 볼 수 있었다. </P>
<P>&nbsp;</P>
<P>그러나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에 서민과 노동자 팬들은 자기 팀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보기 힘들어졌다. 이들은 이젠 TV로 자기 팀 경기를 시청하는 것마저 편하게 즐기기 어려운 처지다. TV로 보려면 연평균 70만 원 이상(400파운드, 수신료 포함, 스카이 방송 기준)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P>
<P>&nbsp;</P>
<P>결국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네 술집인 펍에서 맥주 한잔 값 내고 보거나, 공중파인 BBC의 &lt;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gt;라는 하이라이트 정도만 씁쓸히 접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지난 20년간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가 되었지만 그들의 오래된 핵심 팬들에게선 점점 더 멀리 도망갔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39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39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주식회사 프리미어리그와 스카이TV의 불안한 축구 비즈니스</STRONG></P>
<P>&nbsp;</P>
<P>프리미어리그에 낀 거품 경제의 문제점이 요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부터 안정환, 조재진, 이영표 등 많은 한국 선수들과도 이적설이 났던 포츠머스FC가 좋은 예다. 역사적으로 이 팀은 열정적인 노동자 계급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했다. 그런데 악질 경영진이 2008/2009년 시즌까지 단기 차익을 노리고 전 세계의 엘리트 선수들과 투기 자본들을 마구 끌어들였다. 그 과정에서 의심스런 돈과 구단 소유권 거래가 오가다 얼마 전 불어닥친 글로벌 재정 위기 때 결국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P>
<P>&nbsp;</P>
<P>이 같은 사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클럽들에서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 명문구단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 역시 마찬가지다. 리즈의 넓은 팬 층과 지역적 기반이 역사 속으로 이 팀이 사라지는 것을 간신히 막았을 뿐이었다. 프리미어리그는 결국 루퍼트 머독의 스카이 위성채널과 함께한 1992년 이래 세계 최고의 인기 브랜드가 되었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위험 자본에 마구 휘둘리고 있다. </P>
<P>&nbsp;</P>
<P>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인기 구단들은 경기력뿐 아니라 부채 규모에서도 연일 최고를 갱신하고 있다. 맨유와 첼시의 부채는 공식적으로 각각 1조2000억 원(7억 파운드)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아스널이 7300억 원(4억1000만 파운드)으로 3위, 리버풀이 5000억 원(2억8000만 파운드)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이 부분에서도 빅4를 형성한다. </P>
<P>&nbsp;</P>
<P>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이 부채 금액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구단 경영자들이 아니다. 아쉽게도 바로 우리를 포함한 글로벌 팬들이다. 실제로 리버풀, 맨유 등에선 재벌 경영진들이 원래 약속했던 것과 달리 직접 투자 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계속 빌려서 팀을 꾸려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P>
<P>&nbsp;</P>
<P>아주 먼 나라인 우리의 방송사들과 삼성, LG, 서울시, 금호타이어, 최근의 한화그룹 등은 이들 구단의 경영을 앞장서서 돕고 있다. 삼성의 경우 알려진 바와 같이 유니폼 스폰서로서 웬만한 한국 프로야구단 연간 운영비와 맞먹는 200억 원 이상을 첼시FC에 매년 지급하고 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40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40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축구는 사회주의 스포츠?</STRONG></P>
<P>&nbsp;</P>
<P>축구에는 랭킹이나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이는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을 빼곤 사실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런던의 보수적인 타블로이드 무가지인 &lt;이브닝 스탠더드&gt;(2010년 6월 29일자)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축구는 사회주의 스포츠다. 몇몇 선수들이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긴 하지만, 90분간 리오넬 메시든 누구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뛰어야 한다." </FONT></P>
<P><FONT color=#996633>"슈퍼스타가 있는 팀보다는 사회주의적·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강한 팀이 성공적이다. 국가 대항전에서 독일이 그 본보기다. 아니면 과거 공장이나 소외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클럽 팀들이 그 예다. 그래서 앞으로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에서 잉글랜드가 우승하기란 불가능하다." </FONT></P>
<P>&nbsp;</P>
<P>사실 축구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표현들에서도 축구라는 스포츠의 '근원적 불순함'이 은근히 묻어난다. '단결, 연대, 목표' 등을 뜻하는 'Solidarity, united, goal, come together' 같은 구호가 그 대표적 예들이다. 현재 유럽 챔피언인 FC 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심지어 "우리는 좌파 축구(leftist football)를 한다"고까지 말한다. </P>
<P>&nbsp;</P>
<P>독일의 시사 주간지 &lt;슈피겔&gt;(8월 12일자)에 따르면 펩 과르디올라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가 '시장 경제 중심 클럽(market economy-centric club)'이라면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한 FC 바로셀로나는 '계획 경제 중심 클럽(planned-economy tack)'으로 운영한다고 강조한다.</P>
<P>&nbsp;</P>
<P>프리미어리그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판단된다. 누군가 구단에 투자를 하면 팀은 그 즉시 성공해야만 한다. 램퍼드, 제라드, 루니 같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가장 잘 안다. 주급과 이적료를 통해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조국 잉글랜드를 위한 플레이를 첼시, 맨유 등 자신들의 클럽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아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 이젠 그들의 상당수가 당당히 아니라고 밝힌다. </P>
<P>&nbsp;</P>
<P>박지성의 팀 동료였고 잉글랜드 대표팀을 위해 10년 가까이 뛴 게리 네빌이 8월 중순 &lt;메일&gt;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예 자신이 대표팀에서 보낸 기간은 '개인적으로 볼 땐 시간 낭비였다'고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할 정도이다. 재정적 보상을 중심에 놓고 보면 그들에겐 팀 활동과 국가를 위한 활동이 앞으론 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45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45_STD.jpg" align=center></DIV>
<P></P>
<P>세계 최고의 리그, 최고의 명성. 그 속에도 역시 자본주의에 의한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모순이 내재한 듯하다. 투기 자본에 휩쓸려 더 많은 클럽은 더 큰 부채에 시달리고, 지역 출신 선수들은 점점 성장이 느려지고, 더 많은 열성 팬들이 배척되고, 결국엔 자국 대표팀의 숭고한 명예조차 명예롭게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영국 축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P>
<P>&nbsp;</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영국이 국제 대회 우승과 거리가 먼 것과 최근 들어 우리가 일본을 이기지 못하는 것 사이엔 아무 연관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캡틴 박지성의 대표팀 자진 은퇴나 클럽 소속 선수들에 대한 대표팀 소집의 어려움 역시 영국의 사례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길 진심으로 바란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1341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5/IE001341341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서진석</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인구 200명 초미니 민족, 부활을 꿈꾸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6249</link><pubDate>2011-08-25T17:30:4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4094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4_STD.jpg" align=center></DIV>
<P></P>
<P>260만 명의 인구에 남한의 반 정도 되는 면적의 라트비아. 그리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 나라는 상당히 복잡다단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P>
<P>&nbsp;</P>
<P>라트비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수백 년 동안 독일, 스웨덴, 러시아, 폴란드 등 그곳을 지배한 수많은 나라들이 수도 리가 한가운데 남겨놓은 침략의 흔적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구시가지를 기억할 것이다. 소련의 지배를 받던 때 대거 이주해온 러시아 유민들 문제는 여전히 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하는데, 이는 이 나라에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P>
<P>&nbsp;</P>
<P>라트비아 동부 지역인 라트갈레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독립 이후 라트비아와 차별성 있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라트비아를 구성하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P>
<P>&nbsp;</P>
<P>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립을 하기 전까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독립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독일이 발트해 연안에 건설한 리보니아(Livonija)라는 나라의 일부분으로 존재했다. 리보니아는 그 후 제정 러시아, 스웨덴 등 여러 나라 사이에서 소유권이 왔다 갔다 하다가 끝내 쇠락했다. 지금은 역사책 속에만 남아 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리보니아는 별도의 기사단까지 갖추고 중세에 발트해의 무역과 정치를 좌지우지한 적도 있었다. </P>
<P>&nbsp;</P>
<P>리보니아라는 이름은 1201년 독일인들이 발트무역 거점을 건설하기 위해 리가 앞바다에 배를 댄 후 처음 조우한 민족인 리브(Liv)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리브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지금의 라트비아 일부 해안지대에 집중되어 있어 당시 인구 비율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던 민족이었으나, 리보니아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리브인들이 졸지에 이 영토의 주인처럼 되고 말았다. </P>
<P>&nbsp;</P>
<P>리브인들은 동방 진출을 꾀하던 독일기사단과 끊임없이 충돌했고, 끝내 독일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 복속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비운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P>
<P>&nbsp;</P>
<P>하지만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 같던 민족의 후예가 기지개를 켜며 역사에 다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놓여 있던 사람들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P>
<P>&nbsp;</P>
<P><STRONG>200명 정도에 불과한 리브인, 다시 기지개를 켜다</STRONG></P>
<P>&nbsp;</P>
<P>그들이 살고 있다는 마을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리브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라트비아 지도에서 서쪽으로 깔때기처럼 불쑥 튀어나온 부분의 꼭짓점격인 콜카(Kolka)다. 그곳에 가려면 내가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까지 버스로 약 4시간 30분 동안 가고, 그 후 리가에서 콜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거리는 150km에 불과해 한국 같으면 두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을 거리이지만, 모든 정류장에 들러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니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리는 여정이었다. </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340942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2_STD.jpg?68" align=left></DIV>
<P></P>
<P>어렵사리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라트비아 내 리브인들의 권익 보호와 문화 보전을 담당하는 리브인연합회의 대표인 다비스 스탈츠(리브어로 스탈테)를 만나 남쪽으로 13km 더 떨어진 마지르베라는 마을로 이동해야 했다. 전통적으로 마지르베 해안 지대에 리브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리브인연합회의 본부격인 리브문화센터도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사는 카우나스에서 마지르베까지 이동하는 데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P>
<P>&nbsp;</P>
<P>콜카와 마지르베는 라트비아 최대 국립공원 중 하나인 슬리테레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이곳의 국립공원은 관광보다 자연 보호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P>
<P>&nbsp;</P>
<P>스탈츠가 대표를 맡고 있는 리브인연합회는 1923년 그의 할아버지격인 카를리스 스탈츠가 설립한 최초의 리브인 연합 단체다. 설립자인 스탈츠는 현재 리브인들의 국가격인 노래에 가사를 붙이고 리브인 운동의 방향성을 설정한 중요한 인물이다. </P>
<P>&nbsp;</P>
<P>스탈츠의 식구들은 모두 라트비아에서 리브인의 문화를 홍보하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인 다이니스 스탈츠는 리가 시의회에서 일하며 라트비아 의회 진출을 노리고 있다. 리브인들에게 정치적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스탈츠의 두 누이 역시 리브인 민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P>
<P>&nbsp;</P>
<P>스탈츠의 말을 들어보면 리브인은 현재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민족 중 하나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라트비아 전체에서 자신들을 리브인의 후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중 고유어인 리브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20명에도 못 미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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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리브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인 라트비아어와는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동부의 라트갈레어는 한때 라트비아어의 사투리 정도로 치부되었을 정도로 어휘나 문법에 공통점이 많다. 이와 달리 리브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고 헝가리,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계통이 동일한 핀-위구르어에 속한다. 언어를 놓고 보면 리브어는 라트비아어보다 에스토니아어에 더 가깝다. </P>
<P>&nbsp;</P>
<P>하지만 현재 리브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리브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사람 중 생존하고 있는 이는 단 1명으로,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리브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얼마 안 되는 노인들로부터 혹은 구전 민요를 통해 언어를 배웠다. 이 때문에 리브인들은 문법책과 사전 편찬 등 리브어 관련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P>
<P>&nbsp;</P>
<P>스탈츠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콜카와 마지르베 지역에는 리브어를 구사하는 원주민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19세기 말 핀-위구르어족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면서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에서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찾아 민속 연구 및 수집 작업을 했다. 당시 수집된 자료에 의하면 라트비아 해안지대에 사는 리브인은 적어도 수백 명에 달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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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삶의 터전과 말을 빼앗겼던 시련의 세월</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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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랬던 이들이 어쩌다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종적을 감췄을까. 이렇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존속했던 라트비아 1차 공화국 시절 권위주의 정치를 한 카를리스 울마니스 대통령이었다. 그는 라트갈레, 리브인 등 소수민족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라트비아인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하여 '라트비아인이 이끄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라트갈레어와 리브어 등의 사용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340941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1_STD.jpg?66" align=right></DIV>
<P></P>
<P>소련 지배 때도 리브인들은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라트비아의 해안지대가 전부 군사지역으로 편입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리브인들은 생활 근거지였던 바다를 등지고 내륙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P>
<P>&nbsp;</P>
<P>리브어와는 완전히 다른 라트비아어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리브인들은 리브어의 존속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원래 내륙에 살았던 라트갈레인들보다 리브인들의 언어 보존 환경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P>
<P>&nbsp;</P>
<P>게다가 소련 정부는 리브어 관련 활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리브어를 연구하거나 보존하려 하는 사람은 공공의 적으로 간주돼 시베리아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공용어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리브어는 의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정에서만 겨우 사용되는 언어로 전락했다.</P>
<P>&nbsp;</P>
<P>1991년 라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리브인들은 그동안 갈망해온 언어와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라트비아 정부의 지원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정부 지원 외에 재원을 조달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다.</P>
<P>&nbsp;</P>
<P><STRONG>"리브어를 배우는 이유? 내 몸에 리브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STRONG></P>
<P>&nbsp;</P>
<P>다행히 리가에 있는 라트비아 대학교와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교에 리브어를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이 생겼다. 리가와 벤츠필스 같은 대도시에서도 리브인들의 연합회와 문화 관련 단체들이 생겨났다. 리가에 있는 대표적인 리브 민요 단체인 리브리스트는 리브인의 춤과 민요를 소개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고, 마지르베가 속한 둔다가(Dundaga)군의 지역신문에서는 리브어로 기사를 낼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고 있다. </P>
<P>&nbsp;</P>
<P>리브어 보존에 노력하는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강습회다. 1994년부터 마지르베에서 열리고 있는 이 강습회에는 자신을 리브인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참여해 리브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한다. </P>
<P>&nbsp;</P>
<P>재정 문제 때문에 강습회를 매년 열기는 어려웠지만, 이들은 다음해로 연기하는 한이 있어도 행사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었다. 올해도 강습회가 열렸다. 올해 강습회에는 2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수준도 3단계까지 있을 정도로 질도 향상됐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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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left><IMG id=IIE001340943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3_STD.jpg" align=right></DIV>
<P></P>
<P>리브어 학습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생을 만났다. 17세의 마티스 펠드메니스는 리브인 사회에서 촉망 받는 학생으로 손꼽힌다. 어머니가 리브인인 마티스 펠드메니스는 현재 축구를 열심히 하고 있고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리브어 강습회에서 언어를 습득하는 것 이외에도 지인들과 리브 음악을 알리는 단체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P>
<P>&nbsp;</P>
<P>라트비아어와는 전혀 다른 리브어를 열심히 배우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티스 펠드메니스는 "내게 리브인의 피가 흐르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리브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리브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P>
<P>&nbsp;</P>
<P>하지만 그의 어머니 산타는 소련 시절에 리브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마티스 펠드메니스는 다비스 스탈츠 같은 리브 관련 단체 회원들이나 강습회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만 리브어를 사용한다. 리브어는 여전히 교재나 사전 등이 부족하여 배우기가 어렵다는 점 외에도 사용할 기회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P>
<P>&nbsp;</P>
<P>이와 함께 리브어는 대부분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등 그 이후에 퍼진 개념들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리브어를 보존하려는 사람들은 그럴 때 라트비아어 단어를 차용해서 리브어화하거나&nbsp;에스토니아어에서 힌트를 얻고는 한다. 그래서 리브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대부분 에스토니아어도 꽤 잘 구사한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0940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0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강습회에 민요 교육까지... 리브어 부활 노력에 포기는 없다</STRONG></P>
<P>&nbsp;</P>
<P>리브어 학습은 구전 민요 교육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리브 민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트라 타우니냐는 콜카에 있는 음악학교에서 리브어 노래를 지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P>
<P>&nbsp;</P>
<P>진트라 타우니냐가 활동하는 리브 민요 단체의 이름은 라울라. 리브어로 '노래하라'라는 뜻이다. 타우니냐는 노래 이외에도 라트비아의 전통 현악기인 코클레(리브어로는 칸틀라)도 강습한다. 타우니냐는 애석하게도 콜카 주변 지역에서 실업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경기가 좋지 않아 배우려는 아이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P>
<P>&nbsp;</P>
<P>그러나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리브 문화에 대한 관심을 도시에서도 더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콜카와 마지르베에 집중되어 있던 리브인들의 문화 활동을 대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된 데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P>
<P>&nbsp;</P>
<P>리브인들을 취재하기 위해 콜카와 마지르베를 방문한 1박 2일의 짧은 일정 동안 내가 만난 리브인들은 동아시아 출신의 기자를 극진하게 대하고,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은 콜카에서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안방까지 내주었다. 매년 이곳을 찾아오는 짧은 여름처럼 아쉬운 만남이었지만, 이방인이 아닌 발트해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리브인들의 노력이 계절 변화와 상관없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4094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4/IE001340946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박성우</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약탈? 우린 전 세계에 TV광고 대신 해줬을 뿐"]]></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9913</link><pubDate>2011-09-01T16:26:02+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718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11/IE001337181_STD.jpg"></DIV>
<P></P>
<P>지난 6일(토요일) 세계 금융의 중심지 런던 시내에서 발생하여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잉글랜드 전역으로 확대된 청년 폭동이 10일(현지시간) 밤을 계기로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국면이다. </P>
<P>&nbsp;</P>
<P>이번 사태는 런던 북부 토트넘 지역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한 지역 주민의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차량과 가게들에 대한 방화, 약탈이 이어지면서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전국적 청년 폭동으로 번졌다. </P>
<P>&nbsp;</P>
<P>발생 6일째인 10일 밤까지 현장에서 시민 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들이 1400명에 달했고 경찰 측 부상자 수도 백 명이 넘었다. </P>
<P>&nbsp;</P>
<P>10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대포와 시위 진압용 고무총탄 사용 등 강경대응 방침을 발표한 후,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의 긴장과 흥분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지만, 급속도로 어지러워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이후의 사태 해결과 전망을 둘러싸고 여전히 복잡한 불씨를 안고 있어 보인다.&nbsp; </P>
<P>&nbsp;</P>
<P><STRONG>정부와 경찰에 대한 총체적 불신</STRONG></P>
<P>&nbsp;</P>
<P><FONT color=#996633>"경찰과 좋은 모습으로 맞서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거짓말쟁이니까요."</FONT></P>
<P><FONT color=#996633>"얼마 전 휴대전화 도청사건도 말해주듯이 경찰, 정부, 언론은 항상 우리 시민들을 그들의 목적에 이용하고 곧 들통 날 거짓말만 합니다."&nbsp;&nbsp; </FONT></P>
<P><FONT color=#996633>"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특히 여유롭지 못한 우리들끼리 그러는 건 아주 나쁘다고 봐요."</FONT></P>
<P>&nbsp;</P>
<P>&nbsp;폭동이 있었던 런던 동남쪽 루이샴(Lewisham) 쇼핑센터 인근에서 만난 사람들에선 아직도 이처럼 폭동에 대한 경계심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 교차하고 있었다. 루이샴 경찰서를 바로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지난 8일(월요일) 오후 경찰차가 불타고 가게 유리창들이 대거 부서지는 등 폭동이 일어나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곳이다. </P>
<P>&nbsp;</P>
<P>과연 무엇이 젊은 층들을 영국 언론과 정부 당국의 표현인 '개념 없는(mindless) 폭력 집단'으로 만들었나? 비록 약탈과 방화를 행한 일 자체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영국 청년층 전체를 '생각 없는 갱단'으로 만들어버린 사연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영국에서 최근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저희들을 바보로 알고 있나 봐요.... 지난 목요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마크 더건이 경찰과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했다고 처음에 루머를 퍼트릴 때, 그리고 심지어 그가 먼저 경찰에 총을 쏘았다고 모든 언론이 보도했을 때 저희들은 모두 거짓말인걸 알고 있었어요....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 이미 다 거짓말이라고 더 자세한 상황까지도 퍼졌거든요. 사실은, 4명의 자식까지 둔 사람을 경찰이 체포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총격을 가해 죽였다고..."</FONT> </P>
<P>&nbsp;</P>
<P>루이샴 지역에서 만난 청년들의 증언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곧 진실로 드러났다. 9일 발표된 경찰 독립기구인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의 조사에서도 더건이 경찰에 총을 쏜 정황이 없다고 발표됐다. 일단 시작은 정부, 경찰에 대한 불신임이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첫날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의 경찰차 방화와 집단행동은 BBC의 표현처럼 지역 주민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을 항의하는 '시위'(Protests)였음이 분명했다. </P>
<P>&nbsp;</P>
<P><STRONG>신자유주의 경제... 다른 장소, 배경들에서 계속되는 길 잃은 청년들</STRONG></P>
<P>&nbsp;</P>
<P><FONT color=#996633>"연간 200만원 정도 하던 대학 등록금이 올해부터 두 세배나 갑자기 올라서 작년부터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여러 직종의 인원 감축을 부추겨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졸업 후마저도 기약하기 힘들고.... 일단 화가 많이 나죠."</FONT></P>
<P></P>
<P>런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 학생의 말처럼 영국의 많은 젊은 층들은 작년부터 이어진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와 NHS(국가건강서비스) 같은 공공서비스 정책 손질 등으로 이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주 깊은 상태였다. </P>
<P>&nbsp;</P>
<P>이처럼 영국 전역에서 젊은 층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온 것은 최근에 비교적 빈번한 일이 되었다.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10월 27일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청년들이 정부와 공권력에 항의하며 그 과정에서 수천대의 차가 불탄 적이 있었다. </P>
<P>&nbsp;</P>
<P>어제인 8월 10일(현지시간)에도 칠레에서 교육 개혁에 항의하는 10만 명의 대학생이 수도 산티아고의 중심가로 몰려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벌써 수년째 청년실업, 등록금 문제 등으로 많은 청년들이 계속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P>
<P></P>
<P>&nbsp;하지만 이번에 영국 청년들이 몰려간 곳은 다른 때와 달리, 의회도 트라팔가 광장도 아니고, 심지어 BBC 방송국도 아닌 바로 쇼핑센터, 마켓, 쥬얼리숍, 스포츠용품 가게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부와 언론이 이번의 청년층 폭동을 정치적 행동이 아닌 비정치적, 비윤리적, 일시적 일탈 행위로 몰아가고 있기도 하다. </P>
<P>&nbsp;</P>
<P>BBC 같은 경우도 사태 초반 '시위대(protesters)'라는 표현에서 이후 '폭도(rioters)'라고 표현을 바꾸어 쓰고 있다. 하지만 10대 초 중반 흑인 문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라는 초기의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는데, &lt;가디언&gt;지에 의하면 백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20대와 10대 후반이 주축이며 직업도 학교 교직원, 예비 직업 군인, 학생, 무직자 등 다양하다고 한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966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11/IE001336966_STD.jpg"></DIV>
<P></P>
<P>지난 8일 캠버웰 지역에서 청년들의 약탈 장면을 직접 목격한 아드리안 사이먼씨는 자신의 블로그(<A href="http://motowns.blogspot.com/2011/08/im-no-writer.html">http://motowns.blogspot.com/2011/08/im-no-writer.html</A>)를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다소 다르게 표현했다. </P>
<P>&nbsp;</P>
<P>유명 방송국에 근무하는 자신이 퇴근길에 직접 목격한 캠버웰 지역의 폭동 분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교적 평화로운 가운데 벌어지는 퍼포먼스 같아 보였다고 그는 표현한다. 위험이라고 느껴지는 분위기는 없었고, 마스크와 후드를 두른 청년들은 그들대로, 지나는 사람은 길이 막힌 불편함을 호소하고, 경찰은 어떠한 조치 없이 그냥 길만 막고 있고,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다 내리게 한 뒤 자신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버스 안에서 그대로 앉아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더라는 것이다. </P>
<P>&nbsp;</P>
<P>더욱 놀란 것은 약탈한 젊은이들이 랩탑을 들고 나와 "20파운드에 사시라"며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판매를 했고, 19인치 정도 되는 LCD TV는 작다고 판단해서인지 들고 가다 길바닥에 그냥 놓고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물론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여서 그랬는지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P>
<P>&nbsp;</P>
<P>사실 기자가 사는 지역인 런던의 뉴크로스 지역에도 대형 슈퍼체인인 세인즈버리와 전자 제품 판매점인 커리스의 유리창이 박살나고 약탈이 있었지만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P>
<P>&nbsp;</P>
<P>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들은 더욱 역설적이면서 직접적이다.</P>
<P><FONT color=#996633>"거대 글로벌 기업이 돈 버는 방식이나 우리가 약탈해서 거래하는 방식이나 본질적인 면에선 똑 같은 것 같아요. 아니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FONT></P>
<P><FONT color=#996633>"우리가 소니나 삼성 같은 LCD 평면 TV 광고를 전 세계에 대신 해준 셈이죠 뭐... 이번 폭동의 최대 수혜자들인데.... 그 대기업들은 좋아할 걸요. 다들 젤 먼저 들고 나오던데, 뉴스에도 젤 많이 나오고.... 그만큼 젊은 층에 인기 있다는 거니까...."</FONT></P>
<P><FONT color=#996633>"우리가 약탈한 거 싸게 팔면 다들 이베이(Ebay.com) 같은데서 좋아라 살 거면서.... 왜 그러지... 결국 같은 생각 아닌가?"</FONT></P>
<P>&nbsp;</P>
<P></P>
<P><STRONG>범죄에서... 결국은 다시 정치적인 행위</STRONG></P>
<P>&nbsp;</P>
<P>&nbsp;이처럼 이번 일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의견은 다양할뿐더러,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전체를 아주 무식하거나 비정치적, 비도덕적이라고 완전히 매도하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이번 폭동을 추동한 결정적 도구로 지목된 여러 곳에서 지목된 블랙베리 핸드폰 메시지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P>
<P>&nbsp;</P>
<P>9일 밤에 방송된 BBC 뉴스나잇의 보도에 의하면 '공짜... 쇼핑... 언제... 어디로 오세요' '경찰이 막지 않습니다. 우리도 편하고 자유롭게 쇼핑을 즐깁시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에 경찰이 자신들의 과잉 진압에 의한 사망 사건을 적당히 '꼼수'를 부려 덮으려다 실패하고, 그 후엔 오히려 지나치게 느슨한 자세로 대응하여 사태를 방조한 측면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다 뒤늦게 강경 대응하며 모든 책임을 일부 청년층에 전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P>
<P>&nbsp;</P>
<P>강경 진압으로 유명한 영국 경찰이 폭동이 커질 대로 커진 후인 6일이 지난 후에야 물대포 사용을 검토한다는 지극히 인도주의적(?) 발표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최근 많은 정치적 어려움에 직면했던 정치인들은 극적으로 재기하여 주도권을 쥐는 형국이다. </P>
<P>&nbsp;</P>
<P>&nbsp;정확히 10년 전 9월 뉴욕이 테러를 당했을 때 당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사건 수습 후 대국민 담화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했다. "여러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쇼핑을 즐깁시다(go back shopping)". </P>
<P>&nbsp;</P>
<P>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성지인 도심의 백화점, 쇼핑센터에서, 그렇게 모두가 쉽게 하는 것 같이 정의된 일상을 즐기지 못하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 특히 희망이 없는 시대의 청년층들에겐 이런 악의적인 행동만이 값비싼 자신들만의 유일한 쇼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씁쓸함이 더해진다.&nbsp;</P>]]></description></item><item><author>고은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거울 볼 때마다 백인 아이 되도록 기도했어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8858</link><pubDate>2011-08-11T14:20:27+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left><IMG id=IIE001336466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10/IE001336466_STD.jpg?35"></DIV>
<P></P>
<P>인종 간 입양은 미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다. 지난 5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은 현재 미국에서 이뤄지는 입양의 약 40%가 인종 간 입양이고 그&nbsp;수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P>
<P>&nbsp;</P>
<P>인종 간 입양의 시작은 한국계 입양아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아직 국제입양에 대한 개념도 생기기 전인 1953년, 전쟁 고아들의 복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한국&nbsp;아동들이 백인 가정으로 입양되어 갔다.&nbsp; </P>
<P>&nbsp;</P>
<P>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8년 지표로 본 한국의 보건복지 동향'에 따르면 1953년부터 2007년까지 해외입양을 통해 한국을 떠난 아동들이 약 16만 명에 이른다. 이중 70%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P>
<P>&nbsp;</P>
<P>미국 내에서 인종 간 입양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때가 1990년대 말. 인종 간 입양은 '다양성'이라는 미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가정 내에서 구현하는 축복받은 일로 여겨지며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P>
<P>&nbsp;</P>
<P>지금도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이나 국내입양이 쉽지 않은 곳에서 수많은 아이가&nbsp;인종의 벽을 넘어 '입양아'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들어와 가족을 얻는다.</P>
<P>&nbsp;</P>
<P>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한가족이 된 아이들은 이후 어떻게 자라날까? 이들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며 어른이 되어갈까? 가정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이란 게 정말 축복할 만한 일인가? 자녀를 포기한 생부모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P>
<P>&nbsp;</P>
<P>지난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쉐라톤애틀랜타호텔에서 열린 칸(KAAN : Korean American Adoptee Adoptive Family Network) 콘퍼런스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할&nbsp;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칸 콘퍼런스는 말하자면, 입양으로 인해 한국과 연결된 사람들이 1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일 기회다. </P>
<P>&nbsp;</P>
<P>3~4세 어린아이부터 이제 50대가 된 초창기 입양인들, 주로 백인인 입양 부모∙조부모 및 형제자매들, 입양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작가∙영화감독들, 자녀와 헤어졌던 생부모들, 입양기관 종사자들, 한국 관련 기관 및 비즈니스 종사자들까지. 스테이시 스크로더 칸 회장에 따르면 올해 등록 인원은 경기 불황의 여파로 예년보다 다소 적은 168명, 발표자와 스태프들까지 200여 명이 참가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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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개중에는 발표를 위해 한국에서 온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수십 개의 발표와 토론의 장을 오가며 국제 입양이 던져 놓은 온갖 이슈들에 대해 지식과 경험, 성취와 실패를 나눔으로써 다음 세대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했다. 올해가 열세 번째 행사인데, 주제는 '우린 꿈이 있어요(We have a dream…)'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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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별도의 프로그램을 쫓아 그들끼리의 시간을 즐겼다. 에모리대의 한국계 입양아 지원 동아리 케임(KAME, Korean Adoptee Mentorship Program at Emory)과 한인학생회(KUSA, Korean Undergraduate Student Association) 소속 학생들이 김밥 만들기, 부채 만들기, 케이팝 등의 주제로 유스 그룹과 함께 했고, 애틀랜타 연합장로교회에서 시내 견학 때 차량을 제공하고 보호자로 동행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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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나는 누구인가?' 묻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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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48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480_STD.jpg?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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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행사 첫날인 29일 금요일 오후, 서너 시간의 시간 차를 두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 상영이 있었다. 첫 번째로 상영된 &lt;입양된(Adopted)&gt;은 1970년대 미국 시골의 전형적인 백인 마을에 입양되어 30대가 된 한국계 미국인 제니퍼 페로씨의 가족 이야기와 2000년대 중국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30년 사이에 극명하게 달라진 입양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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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국 땅을 떠나 미국 공항에서 입양 가족들과 첫 만남을 가진 제니퍼 페로씨와 달리 21세기의 국제 입양은 양부모가 해당국을 직접 방문하여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수년간의 불임 시술 실패 끝에 입양을 결정했던 부부는 다인종 가족을 꿈꾸며 중국 입양 수속을 밟았고, 중국에 대해 알기 위해 다양한 정보 수집도 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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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아이를 데리고 온 후에도 지속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비디오를 틀어주고, 노래를 들려 주고, 또 인종이 다른 친구들과 자주 교류를 가지면서 아이의 정체성의 한 축으로 중국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당국도 입양 첫 세대를 아무 사후 대책 없이 해외로 보내 갖가지 문제점들을 도출한 한국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입양가족과 입양아가 중국과 긴밀한 연계를 갖도록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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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편 페로씨에게 정체성의 문제는 가슴속에 묻어둔 한(恨)에 다름 아니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의 백인 여자아이가 될 수 있기를, 그게 아니면 엄마가 자기와 같은 동양인이기를 바라던 소녀의 공허한 꿈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것이었기에 서른이 넘을 때까지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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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서 비로소 꽁꽁 숨겨 둔 '입양과 인종'에 대해 가족들, 특히 엄마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지만, 딸이 온전히 자신에게 속해 주기만을 바랐던 지난 세대의 사고방식과 아무리 백인이 되려고 노력해도 한국인이라는 외형을 바꿀 수는 없는 딸 사이의 대화는 종종 감정 대립으로 귀결됐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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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백인 가정 속의 한국인. 자신이 백인인가 싶다가도 완전히 그 속에 들어갈 수 없고, 한국인인가 싶다가도 그 안에 낄 수 없는 이방인. 그래도 그렇게 터 놓고 이야기하며 감정 폭발을 경험하고 나자 인정할 건 인정하고 포기할 건 포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도 끌어안을 용기가 생겼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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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481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481_STD.jpg?62"></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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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두 번째 필름은 &lt;차정희라는 문제에서(In the matter of Cha Jung Hee)&gt;였다. 필름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딘 보쉐이 리엄씨는 1957년생으로 일곱 살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본명은 강옥진. 그런데 차정희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평양을 건너야 했다. 왜냐하면 원래 미국 가정과 결연해 도움을 받다가 입양되기로 한 차정희라는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친아버지가 데려간 것이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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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미국으로 갈 때 신을 신발까지 선물로 보낸 미국 가정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고아원에서는 서류를 위조했고, 어린 강옥진은 차정희의 신발을 신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해야 했다. 필름은 이후 뒤바뀐 운명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던 어린 소녀와 그 소녀가 미국으로 떠난 후 고아원으로 딸을 찾으러 갔던 친어머니의 이야기, 친가족과의 재회, 그리고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았던 진짜 '차정희'를 찾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그렸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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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두 필름의 주인공 사이에는 근 20년 가까운 세대 차가 난다. 그 사이 한국도 많이 변했다. 전쟁 직후의 어수선한 한국 사회를 떠나 미국에서 자란 리엄씨가 자신을 혜택받은 사람으로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자랐다면, 페로씨에게선 친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또 태어난 나라에서 버림받은 상처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한국이 더 이상 못사는 나라가 아니었던 탓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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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해외 입양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87년 7949명에 이르렀다가 차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G20 회원국이 된 오늘날에도 한 해 천여 명의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저출산율로 고민하는 나라, 세계 최고 수준의 테크놀로지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나 그곳에서 자라지 못하고 해외로 보내진 오늘날의 입양아들이 자라면서 입게 될 정신적 혼란에 생각이 미치자 아찔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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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입양아들의 대부분이 미혼모의 자녀이고, 미혼모들이 자녀를 포기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눈총 받으면서 어렵게 자라는 것보다 외국일지라도 여유 있는 곳에서 자라는 게 행복하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칸을 통해 알게 된 입양인들의 성장 스토리는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고 외치는 듯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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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입양을 통해 새 가족과 만나면서 나이에 비해 일찍 조숙해진 아이들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정체성으로 인해 방황하고 아파하며 상상조차 하기 힘든 성장통을 겪으면서 성숙해 간다. 그 과정에서 소수는 친모 또는 친가족과 상봉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결혼을 앞두고, 자녀를 낳게 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에 상처 받으며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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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470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470_STD.jpg?2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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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STRONG>&nbsp;</P>
<P><STRONG>마음속에 숨겨둔 말 터뜨리기</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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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행사 둘째 날에는 아침부터 각종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75분씩 진행되는 세션들이 같은 시간대에 네다섯 개씩 배정돼 있었다. 그러니까 주제를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골라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관심 가는 주제가 많아도 하나를 골라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일단 들어가 앉은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경험에서 위안을 삼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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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세션 중에는 성인 입양인들로 참가자가 제한된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런 세션에서는 정말 다루기 힘든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발표자들의 이름마저 무기명으로 되어 있었는데, 성장기에 입양 가족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P>
<P>&nbsp;</P>
<P>한국계 미국인 심리학자와 친부모들이 패널로 참가해 진행된 세션도 있었는데, 한 사람은 백인 남자와 혼전 임신을 해서 아이를 입양 보냈던 친모였고, 또 한 사람은 결혼 실패와 생활고로 입양을 택했던 친부였다. 두 사람 모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고, 친자식을 찾아 헤맨 끝에 재회에 성공했는데, 지난 세월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고 입양 보낸 자식들에 대해 갖는 꿈을 이야기했다. 친부모에게도 입양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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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저녁 만찬 때는 애틀랜타 총영사관과 애틀랜타 한인회 회장단도 자리를 함께했다. 만찬 공연으로는 일인극을 선보였는데, 흑인 혼혈 배우인 리사 마리 롤린즈는 백인 가정에 입양된 흑인 소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표현하면서 인종간 입양이 안고 있는 결점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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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처럼 칸은 열린 소통의 장이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것 같았다. 부모는 부모끼리, 자녀들은 자녀들끼리, 누군가 나와 닮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유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평생 동안 이어질 친구가 생기고, 의형제∙의자매가 탄생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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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입양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나에게도 백인과 동양인 패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종적 편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민 생활에서 종종 부딪히는 인종 차별 문제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범죄처럼 딱히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목에 걸린 가시가 되어 시시때때로 신경을 건드리곤 하는데, 백인들 스스로 인종이 다른 자녀를 키우면서 비로소 이 문제를 몸소 겪게 되고 그것을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발산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472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472_STD.jpg?22"></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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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STRONG>&nbsp;</P>
<P><STRONG>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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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번 칸 콘퍼런스에 발표자 자격으로 참가한 나는 입양인들이 정체성의 문제를 극복하는 한 수단으로 한글 학습을 제안하는 성인 대상 발표와 한글 자모를 이용해 영어 이름을 만들어보고 한국 역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내가 맡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통해서 또 행사기간 내내 칸 콘퍼런스를 체험하면서 평소 궁금하던 점들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P>
<P>&nbsp;</P>
<P>지난해 내가 다니는 한인교회의 한국학교 태권도반에 6살짜리 한국계 입양아가 한 명 등록했었다. 백인 엄마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듯했지만 양부모가 이혼한 상태라 마음이 쓰였는데, 그 다음 학기에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이웃 교회의 입양 가족 초청 행사 때 우연히 그 가족을 다시 만나 물어보니,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P>
<P>&nbsp;</P>
<P>많은 학술 보고서들이 뒷받침하듯 한국과의 문화적 연대가 입양아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자신을 버린 출생국에 대한 반감 혹은 다른 이민 2세들과 달리 인종이 다른 부모를 가진 현실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극복하게 할 것인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 </P>
<P>&nbsp;</P>
<P>그런데 행사 마지막 날, 한글 유스 프로그램에 들어온 꼬마 친구들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유치원을 마쳤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입양아들이 신통하게도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물으니, 뉴욕에서 온 이 아이들은 입양 부모들이 한인교회의 지원을 받아 세운 주말 한국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전날 다른 발표장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입양아들을 위한 한국학교를 세운 백인 엄마의 사례 보고도 있었다. </P>
<P>&nbsp;</P>
<P>내가 간략한 한국 역사를 이야기로 들려줄 때, 루시라는 7살도 채 안 된 여자아이가 '신라'를 안다고 했다. 경주도 다녀왔고, 거기서 왕릉도 보았다고 했다. 한국 아이 둘을 키우는 루시 엄마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어 보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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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제가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데, &lt;선덕여왕&gt;을 본 후 영상을 애들 수준에 맞게 편집해서 보여줬었어요. 그러다 얼마 후에 한국을 방문해서 경주에 갔었죠.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더라고요."</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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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아이들은 스폰지다. 어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입양 부모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리고 한국 사회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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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468 align=cent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468_STD.jpg?78"></DIV>
<P></P>
<P>한편 올해 에모리대를 졸업한 '케임'의 전 회장 김승규씨는 며칠 사이에 입양인 유스 그룹들과 많이 친해졌는데, 칸에서 옛날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며 신기해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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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9학년 때 유학 와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한국계 입양아였던 동창생을 여기서 만났어요. 정말 세상 참 좁죠? 5년 만에 만난 건데, 무척 반갑네요."</FONT></P>
<P>&nbsp;</P>
<P>행사를 도왔던 에모리대 학생들 중에는 교포 학생들과 유학생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분리돼서 활동했는데, 요새는 점차 경계가 사라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조기유학이나 중도 이민으로 초등학교 때, 혹은 중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오는 학생들이 늘어 예전에는 확연히 구분되던 차이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P>
<P>&nbsp;</P>
<P>칸에서 내가 본 가능성도 이런 것이다. 경계가 없어지는 것, 나아가 편견이 없어지는 것. 타국에서 자라는 입양아들과 한국인 2세들, 그리고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글로벌 시대의 주역으로 함께 성장하는 미래 말이다. 그러려면 우선 입양인 커뮤니티를 한국 사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다. </P>
<P>&nbsp;</P>
<P>올 가을 6학년이 되는 내 딸아이는 첫날 행사장에 따라왔다가 마지막 날까지 나와 함께 다녔다. 뉴욕 주의 주도 알바니에서 열리는 내년 행사에도 따라가고 싶다는 딸아이를 보며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좀더 잘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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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칸에서 만난 입양인들의 정체성, 그건 한국을 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해도 그들은 한국인이다. 이중국적 문제에 대해 발표한 해외입양인연대(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의 김대원 이사가 얘기했듯, 입양인들에게 이 문제는 '국적 취득'이 아니라 '국적 회복'인 까닭이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이유경</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오바마 "미국은 여전히 AAA 등급"..."AA+도 과분"]]></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8687</link><pubDate>2011-08-09T10:48:4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26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268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일단 먼저 팔고 생각은 나중에 한다"</STRONG></P>
<P>&nbsp;</P>
<P>월요일(8일, 미국 현지시각), 미 증시는 다우존스 지수가 635포인트 하락을 기록, 10,800대에서 마감했다. 스탠다드 앤 푸어스(Standard &amp; Poor's, 이하 S&amp;P) 500과 나스닥 지수도 각각 6.7%와 6.9%씩 동반 하락해 지난 2주간 미 증시는 15%의 하락을 기록했다.</P>
<P>&nbsp;</P>
<P>지난 금요일 오후 S&amp;P가 미 정부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린 이후, 아시아와 유럽 증시의 동반 하락에 이어 미 증시도 5.55% 이상의 하락을 기록한 것이다. 2008년 월가 붕괴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P>
<P>&nbsp;</P>
<P>이처럼 미 증시가 급락한 것에 대해 ING의 폴 젬스키는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에 대해 투자자들은 하나의 반응만을 보인다. 일단 먼저 팔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것"이라고 CNN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nbsp; </P>
<P>&nbsp;</P>
<P>&lt;월스트리트 저널&gt;도 "S&amp;P의 결정은 미 재무부 채권의 급락 대신 세계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더욱 강화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자산의 매각을 부추겼다"며 월요일의 현상을 설명했다. </P>
<P>&nbsp;</P>
<P><STRONG>"미 신용등급 하락은 사건이 아니다"</STRONG></P>
<P>&nbsp;</P>
<P>한편, 월요일의 주식 급락에 대해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부채 상한선 인상 문제를 통해 드러난 미국 정치의 무능력, 사상 최초로 일어난 미국의 국가 신용도 하락, 그리고 지지부진한 유럽 부채 문제 등이 그 복합적인 이유라고 진단한다.</P>
<P>&nbsp;</P>
<P>S&amp;P가 이미 올 초부터 미국의 신용 등급 하락을 경고해 온 것과 관련, RBC 캐피탈 마켓의 경제학자인 톰 포첼리는 "신용등급 하락은 사건이 아니다"며 "그 동안 S&amp;P가 그렇게 할 것(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전제 하에 우리는 일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P>
<P>&nbsp;</P>
<P>루미스 세이레스 펀드의 케스린 가프니는 "시장을 흔드는 것은 공포인데, 그것은 신용 하락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이라고 AP통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대신 투자자들이 "유럽과 미국이 심각한 부채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나갈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P>
<P>&nbsp;</P>
<P>투자회사인 에드워드 존스의 에너지 분석가인 브라이언 영버그는 "현재 시장에는 미국이 이중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즉,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다시 시작될지 모를 미국의 경기 침체와 난관에 부딪힌 유럽의 부채 문제가 투자자들을 위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P>
<P>&nbsp;</P>
<P>월요일에는 또한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가 모기지 담보 채권에 대한 문제를 물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상대로 10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주가는 20.3%의 하락을 기록했고, 씨티그룹의 주가도 16% 이상 하락했다.</P>
<P>&nbsp;</P>
<P><STRONG>미 재무부채권 금리는 오히려 떨어져</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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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편, 역설적으로 S&amp;P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직접적인 타깃이 된 미 재무부 채권은, 10년 만기 채권의 경우 금리가 오히려 지난 금요일의 2.56%에서 2.35%로 떨어져, 2009년 1월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미 채권의 금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정부가 더 싼 값으로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amp;P의 미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국 정부는 전보다 더 비싼 이자를 물고 돈을 꿔야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터다. </P>
<P>&nbsp;</P>
<P>주식시장에서 나온 자금이 재무부 채권 시장으로 몰리는 것에 대해, 경제학자인 토마스 사이먼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안전한 곳으로의 도피"라고 설명했다. </P>
<P>&nbsp;</P>
<P>CNN도 불확실성이 팽배한 이 때 투자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신용도가 하락했지만 미 재무부 채권값은 올라가고 금리는 더 떨어진 것에 대해, "투자자들은 미 정부의 부채가 그래도 다른 어느 곳보다 투자하기에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고 해석했다.</P>
<P>&nbsp;</P>
<P>뉴욕 소재의 미쯔비시 UFJ 의 토마스 로스는 "금리가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위험하다면 어떠한 것도 꺼려하기 때문에 미 재무부 채권을 사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을 설명했다.</P>
<P>&nbsp;</P>
<P>웰스 캐피탈 메니지먼트의 제임스 폴슨은 "AA+가 실제로는 AAA다"며, "지금 시장에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으며, 갈 곳은 여전히 미 재무부 채권이다"고 말했다. </P>
<P>&nbsp;</P>
<P>프루덴셜 파이낸셜의 시장 분석가인 퀸시 크로스비는 "재무부 채권 시장은 미국의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무감한 듯하다"고 말했다.</P>
<P>&nbsp;</P>
<P>미 재무부 채권뿐 아니라 금값도 상승세를 유지, 처음으로 1온즈 당 $1700 달러대를 돌파했다. 또한 크루드 오일과 천연 가스 등의 가격도 크게 뛰었다.&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6270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9/IE001336270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미국 신용도는 여전히 AAA" - "AA+도 과분하다"</STRONG></P>
<P>&nbsp;</P>
<P>한편 월요일 오후,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미국의 신용도는 여전히 AAA"라고 주장했다. "만약 AAAA라는 등급이 있다면 나는 미국에 그것을 주겠다"는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은 물론 전세계 대부분의 투자자들도 동의할 것이라고도 했으나, 그렇다고 "미국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P>
<P>&nbsp;</P>
<P>S&amp;P에 의한 미국 국가 신용도가 하락한 이후 처음 갖는 대국민 성명에서, 그는 "시장은 계속해서 우리의 신용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우리의 문제는 분명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있다"고 강조했다. </P>
<P>&nbsp;</P>
<P>그는 해결책으로 지난 8월 1일에 미 의회가 입안한 지출 삭감안과 더불어 부유층들에 대한 보다 공정한 세금 부과 및 메디케어와 같은 의료 복지 프로그램의 개혁 등을 꼽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상식과 타협"이라고 강조, 그는 현재 극도로 대립하는 미국의 정치적 풍토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P>
<P>&nbsp;</P>
<P>이에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경제학 교수는, "S&amp;P가 인용한 미국 경제의 미래와 워싱턴의 반목을 고려할 때, AA+도 내겐 과분한 것 같다"며, 여전히 미국의 신용 등급을 AAA로 유지하는 다른 신용 등급 기관들에 대해, "(S&amp;P)와 같은 결정을 취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말했다. </P>
<P>&nbsp;</P>
<P>또한 전 재무부 관리인 닐 카슈카리도, "무디스와 피치가 S&amp;P의 결정을 따라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미국의 적자상황을 분석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진실로 AAA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P>
<P>&nbsp;</P>
<P>이제 미 경제 전문가들은 화요일에 있을 미 연방은행의 통화 정책 회의에 주목하고 있다. &lt;월스트리트 저널&gt;은 "비록 연방 은행이 취할 선택의 폭이 좁아졌지만, 현재의 암울한 경제 전망은 중앙 은행이 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길 바라고 있다"며, 연방 은행이 어떤 경기 부양책을 마련할지에 관심을 모았다.</P>]]></description></item><item><author>한경미</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전멸할 뻔한 작은 책방들은 어떻게 살아났나]]></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5914</link><pubDate>2011-08-08T16:04:3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56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3/IE001334566_STD.jpg" align=center></DIV>
<P></P>
<P>프랑스에서는 어디서나 책을 접할 수 있다. 도시이건 시골이건 새로 도착하는 기차역의 간이 서점을 비롯한 다양한 서점과 대형 문화상품 판매 공간, 대형 할인매장 등 프랑스인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부지기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반적인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서적시장은 1년에 평균 3%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서적시장이 늘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P>
<P>&nbsp;</P>
<P>프랑스 서적시장의 활성화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도서정가제이다. 프랑스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책이 다른 제품들처럼 자유경쟁 가격제도 아래 있었다. 그 결과 대형 서점의 마구잡이 할인 정책으로 작은 서점들이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작은 서점 주인들과 소규모 출판사 운영자들이&nbsp;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1981년 미테랑 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서정가제 법안인 '랑법'이 채택되는데 이로써 작은 서점들도 살 방법이 마련되었다. </P>
<P>&nbsp;</P>
<P>당시 도서정가제가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은 '책은 다른 제품과 다른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문화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도서정가제 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이 채택되지 않았다면 작은 서점들이 거의 전멸했을 것이라는 게 서점상들의 하나같은 의견이다. 당시 정가제가 도입되지 않은 디스크의 경우 지금은 소규모 가게가 전멸한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P>
<P>&nbsp;</P>
<P><STRONG>30년 전 만들어진 랑법, 작은 서점을 구하다</STRONG></P>
<P>&nbsp;</P>
<P>도서정가제 법이 순탄하게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법 제정 직후 대형 문화상품 판매 공간과 대형 할인매장은 이 법에 저항했다. 자본력에 자신이 있던 이 업체들은 법을 무시하고 이전처럼 할인율을 20%까지 높였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1982년 12월 도서정가제 법을 위반하면 벌금을 내게 하겠다고 한 데 이어, 1985년에는 처벌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위법 사례가 발생할수록 정부가 법을 더 강화하고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P>
<P>&nbsp;</P>
<P>랑법 1조는 도서정가제 법을 모든 도서에 적용하고 서점상에게 5%의 할인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점상은 보통 단골 고객에게 책값을 할인해주는데, 10권을 사면 5% 할인해주는 것이 통례이다. </P>
<P>&nbsp;</P>
<P>랑법에는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도 있었다. 랑법 3조는 독서를 권장하는 의미에서 공공도서관이나 국가기관 혹은 기업 소속 도서실 등에 납품하는 책과 학습용 책에 한해 자유가격 제도를 허락했다.</P>
<P>&nbsp;</P>
<P>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 예외 규정을 악용해 공공도서관에 들어가는 책의 할인율이 점점 높아졌다. 많은 서점이 높아진 할인율을 받아들이고 이윤을 줄여야 했다. 이를 거부하면 영업 실적이 저조해지는 일도 생겨났다. 1992~2003년 사이에 공공도서관 납품 서적의 할인율은 15.5%에서 18.5%로 높아졌다. 이 기간 중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매가 2배로 늘었음에도 서점들이 이들 단체에 책을 판매해 버는 금액이 영업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서 19%로 하락하였다.</P>
<P>&nbsp;</P>
<P>프랑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03년 6월 공공도서관에 들어가는 책의 최고 할인율을 9%로 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상황이 조금 안정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일부 지역 자치단체에서 고등학교 학습용 서적을 무료로 지급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습용 서적에도 최고 할인율 규정을 적용하자는 의견이 대두됐으나, 학습용 도서 출판사들이 '그렇게 하면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해 실행되지 못했다.</P>
<P>&nbsp;</P>
<P>이밖에도 랑법에는 특별 할인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발간된 지 2년이 지났고 서점에서 6개월 이상 보유하고 있는 책에 한해서는 서점상이 자유롭게 할인율을 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랑법 5조). 그러나 한 서점상은 실제로는 이런 할인을 적용하는 서점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발간된 지 2년 이상 된 책을 6개월 이상 보관하고 있는 서점상이 거의 없으며 그전에 이미 출판사에 책을 반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
<P>&nbsp;</P>
<P>아울러 랑법 7조는 도서 판매 장소 이외에서 도서 할인 판매 광고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P>
<P>&nbsp;</P>
<P>프랑스의 도서정가제 법은 많은 상인들에게 책 판매를 허용하였다. 판매구조가 서로 다른 상인들이 상점 한구석에 책을 갖다 놓고 파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격 경쟁이 필요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가게에 적합한 책 선별 등 나름의 판매 전략만 갖추면 된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56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3/IE001334564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베스트셀러와 실용서&nbsp;이외의 책들 살리려면 철저한 도서정가제가 필수</STRONG></P>
<P>&nbsp;</P>
<P>프랑스에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서점, 두 번째가 프낙(FNAC)이나 비르진(Virgin) 등의 대형 문화상품 판매 공간, 세 번째가 까르푸 등의 대형 할인매장이다. 여기에 인터넷 구매나 통신 판매 등을 포함하면 도서 구입 경로는 더욱 다양해진다. </P>
<P>&nbsp;</P>
<P>프랑스인들이 책을 살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장소인 서점은 전체 도서 판매의 17.7%(이하 2007년 TNS-Sofres 여론조사 자료)를 차지하고 있다. 발간된 지 오래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나 문학, 예술, 사회과학, 철학 등 전문 서적이 주로 서점에서 판매된다. 여기에 백화점 내 서점의 판매량(0.3%)과 신문상 및 '문방구 서점'의 판매량(6.4%)을 합하면 넓은 의미의 서점에서 판매되는 책은 전체 도서 판매량의 24.4%에 이른다.</P>
<P>&nbsp;</P>
<P>프랑스인들의 두 번째 도서 구매 장소는 대형 문화상품 판매 공간으로 도서 판매량 중 21.2%가 이곳에서 팔린다. 프랑스에는 이런 장소가 400여 군데 되는데, 주로 신간이나 판매 실적이 좋은 책이 구비되어 있다. 파리의 프낙(FNAC)에는 10만여 권, 지방의 프낙에는 1만5000~5만여 권, 르클레르 문화 공간이나 지방의 비르진(Virgin) 같은 곳에는 2만~3만여 권이 구비되어 있다. 이런 대형 문화상품 판매 공간은 주로 CD, DVD, 도서 등을 취급하는데 이 중 책이 전체 판매실적의 20~35%를 차지한다.</P>
<P>&nbsp;</P>
<P>프랑스인들이 책을 사는 세 번째 장소는 까르푸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다. 이곳에는 대개 5000~2만여 권이 구비되어 있다. 주로 문고판, 청소년용 책, 사전류, 실용서 학습용 책이다.</P>
<P>&nbsp;</P>
<P>프랑스 도서 판매량 중 공공 도서관이나 학교 등 단체에 파는 비율은 10%, 도서 할인 판매점(잘 팔리지 않아 출판사에서 할인을 결정한 책을 취급하는 곳인데, 출판사에서 할인을 결정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이나 중고서점은 1.4%에 해당한다.</P>
<P>&nbsp;</P>
<P>또한 인터넷 도서 구매가 최근 급속하게 성장했다. 아마존, 알라파즈 등의 사이트를 통해 책을 산 실적이 2000년에는 프랑스 도서 판매량의 0.9%였으나 2007년에는 8%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통신 판매만 하는 도서 판매망의 인터넷 구매도 포함한 수치로, 이를 제외하면 실제 인터넷을 통한 도서 구매율은 7%에 못 미친다. 인터넷 판매에도 도서정가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굳이 인터넷으로 몰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P>
<P>&nbsp;</P>
<P>긴 안목으로 보면, 책을 지속적으로 할인하는 시스템은 순환이 빠른 베스트셀러나 처세술 등의 실용서만 살아남게 하고 순환은 느리지만 영구적인 가치를 내재한 책들을 도태시킨다. </P>
<P>&nbsp;</P>
<P>이와 달리 도서정가제가 법으로 규정된 프랑스에서 서적상들은 가격 경쟁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져, 발간된 지 오래된 책, 문학과 예술 등 전문 서적을 오랫동안 판매하는 등 자신만의 판매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P>
<P>&nbsp;</P>
<P>프랑스의 도서정가제 법은 작가, 출판인, 도서산업 종사자, 서점상, 독자 등 많은 이에게 환영 받는 시스템으로 정착했다. 프랑스처럼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여럿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OECD 회원인 30개 국가 중 16개 나라가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P>
<P>&nbsp;</P>
<P>한국도 이 16개 국가 중 하나이지만 한국의 도서정가제는 여러 가지 틈새가 많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많다. 이와 달리 프랑스의 랑법은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법률의 전형으로 꼽힌다. 랑법이 제정된 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도서정가제를 법으로 규정한 것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P>
<P>&nbsp;</P>
<P>한편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이 팔리면 작가에게 8%, 출판사에게 21%, 책 발행인에게 15%, 판매자에게 36%, 배달에 12%, 영업 활동에 8%가 돌아간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56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3/IE001334563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한나영</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역겨운 정치인들... 최상층 2%만 행복해졌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7758</link><pubDate>2011-08-09T21:25:17+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67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678_STD.jpg" align=center></DIV>
<P></P></FONT>
<P><FONT color=#996633>"말도 안 되는, 역겨운, 어리석은, 좌절하게 만드는, 실망스러운"</FONT></P>
<P>&nbsp;</P>
<P>미국의 부채 한도 증액안이 하원에서 통과되기 몇 시간 전인 지난 1일 저녁(현지 시각), 미국 내에서 최고의 뉴스 시청률을 자랑하는 NBC &lt;나이틀리 뉴스(Nightly News)&gt;의 브라이언 윌리엄스 앵커는 뉴스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P>
<P>&nbsp;</P>
<P>부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또박또박 열거하면서 뉴스를 시작한 윌리엄스의 멘트는 지난달 말, &lt;워싱턴포스트&gt;가 '팩트 탱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와 공동으로 실시한 부채 한도 증액안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P>
<P>&nbsp;</P>
<P><FONT color=#996633>"워싱턴의 협상안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FONT></P>
<P>&nbsp;</P>
<P>설문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예상대로' 부정적이었다. 예상대로라는 것은 국가 부도 위기 시한인 8월 2일을 앞두고 그동안 민주·공화 양당이 보여준 태도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제의 해법을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서 찾으려 했고 국민들을 위하기보다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P>
<P>&nbsp;</P>
<P>결국 응답자 1001명 중 72%는 협상안을 두고 정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들을 마구 쏟아냈다(긍정적인 응답은 단 2%, 중립적 응답은 11%).</P>
<P>&nbsp;</P>
<P><FONT color=#996633>"유치한, 장난해?, 혼란스러운, 한심한, 헷갈리는, 미친, 멍청이…."</FONT></P>
<P>&nbsp;</P>
<P>이뿐만이 아니었다. CNN과 시장조사 기관인 ORC인터내셔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채 한도 증액안 협상에 대한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P>
<P>&nbsp;</P>
<P>전국의 성인 860명이 응답한 이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는 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안 협상에서 선출직 의원들은 버릇없는 응석받이처럼 행동했다고 대답했다. 책임 있는 어른으로 행동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P>
<P>&nbsp;</P>
<P><STRONG>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 왜 이 지경에?</STRONG></P>
<P>&nbsp;</P>
<P>증액안 협상에서 민주·공화 양당이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난항을 겪자 미국 언론은 부채 한도 증액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벌어질 심각한 상황을 연일 보도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이자율이 오르고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하게 될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론, 학생대출금이 껑충 뛰어오르게 될 것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최고 국가신용도인 AAA와 주식시장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기자 : 부채 한도 증액안 타결 후, 국제 신용평가사인 S&amp;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연방정부는 당장 다음 달부터 급료 지불도 어렵게 될 것이고 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보장 연금 지급도 불확실할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중요 정책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여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고..."</FONT></P>
<P>&nbsp;</P>
<P>미국인들은 100도(화씨) 이상의 세 자릿수 무더위와 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현실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TV에 나온 한 대학생은 부채 한도 증액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이 당장 가을학기부터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
<P>&nbsp;</P>
<P>또한 사회보장 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수혜자나 파병된 아프가니스탄 군인의 아내는 TV 인터뷰에서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P>
<P>&nbsp;</P>
<P>이런 직접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은 미국인들도 세계 최강국, 세계 1위의 경제 대국 자존심에 먹칠을 한 '국가 부도 위기' 현실에 상처를 받았고 불안해했다. 이런 불안감은 결국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졌다. </P>
<P>&nbsp;</P>
<P>실제로 7월 31일, 버지니아 스탠튼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자가 만난 한 중년남자는 대기실 안의 CNN 보도를 지켜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도대체 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정치인들을 믿을 수가 없다. 오바마가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염려가 된다."</FONT></P>
<P>&nbsp;</P>
<P>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던 남자는 자신이 공화당원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높은 실업률, 고용 창출 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점, 중국의 경제 파워가 날로 막강해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미국 경제는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67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675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천문학적인 빚과 관련된 씁쓸한 진실</STRONG></P>
<P>&nbsp;</P>
<P>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총 부채액은 14조5000억 달러다. 일반인들에게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1조, 트릴리언(trillion)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의 웨인스보로에 사는 한 신문 독자는 모호한 트릴리언 달러의 규모에 대해 이렇게 실감나게 설명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1조 달러?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마다 100만 달러를 썼어도 아직까지 다 못 쓰고 있는 금액! (켄 엘킨스)"</FONT></P>
<P>&nbsp;</P>
<P>신문(DN-R)에서도 '빚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이 현재 지고 있는 국가 부채 14조5000억 달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미국은 지금으로부터 2011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래 해마다 72억 달러를 써왔다. 그것은 하루에 1970만 달러, 시간당 82만833달러, 분당 1만3680달러를 쓴 것이다. </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지금으로부터 228년 전인 1783년, 미국 공화정 수립 이후로만 따져 본다면 미국 정부는 해마다 636억 달러, 매일 1억7400만 달러, 매 시간 730만 달러, 분당 12만1666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FONT></P>
<P><FONT color=#996633></FONT>&nbsp;</P>
<P><FONT color=#996633>2011년도 정부 예산액은 3조8200억 달러다. 이를 다시 나눠보면 하루에 105억 달러, 시간당 4억3750만 달러, 분당 730만 달러를 쓰는 것이다."</FONT></P>
<P>&nbsp;</P>
<P><STRONG>협상 타결, 그러나 "행복해진 건 최상층 2%뿐" </STRONG></P>
<P>&nbsp;</P>
<P><FONT color=#996633>"의회 양당 지도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고 정부 부도 사태를 피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FONT></P>
<P>&nbsp;</P>
<P>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에서 증액안이 통과된 뒤 백악관 연단에서 극적인 타결 소식을 전했다. CBS 아침 뉴스쇼인 &lt;얼리쇼(Early Show)&gt;에서는 증액안이 타결된 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50세 생일인 4일에 행복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 대신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P>
<P>&nbsp;</P>
<P>어쨌건 미국은 국가 부도 위기라는 난제는 '우선' 해결했다. 모두 안도했지만 이번 증액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원칙을 버리고 공화당의 '세금 인상 없는 재정적자 감축'에 전적으로 동의함으로써 향후 사회 복지 예산마저 삭감될 수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nbsp; </P>
<P>&nbsp;</P>
<P>미국의 정가 소식을 다루는 &lt;폴리티코(Politico)&gt; 2일자에서는 데이비드 로저스가 '증액안 합의로 재앙은 피했지만 어느 누구도 진정 행복하지 않다'는 기사를 실어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한 한 누리꾼의 정곡을 찌른 댓글이다.&nbsp; </P>
<P>&nbsp;</P>
<P><FONT color=#996633>"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최상층인 2%는 진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또다시 꼭두각시를 써서 자신들의 탐욕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공화당의 베이너 하원의장과 공화당이 한 일은 98%의 희생 위에서 자신들의 주인인 2%를 보호했다는 사실이다." (Marine3)</FONT></P>
<P>&nbsp;</P>
<P>부채 한도 증액안 합의를 두고 '비굴한 굴욕'을 당했다는 말까지 들은 오바마 대통령.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이번 법안에 대해 과연 오바마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망한 지지자들의 등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을까.&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67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677_STD.jpg?60" align=center></DIV>
<P></P>
<P><STRONG>"젊은이여, 국가 빚을 물려받을 것이니라"</STRONG></P>
<P>&nbsp;</P>
<P>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대에 31대 대통령(1929~1933)을 역임한 허버트 후버의 족집게 예언(?)이 다시금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P>
<P>&nbsp;</P>
<P>후버 대통령은 성경의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젊은이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국가 빚을 물려받을 것이니라(Blessed are the young for they shall inherit the national debt)."</FONT></P>
<P>&nbsp;</P>
<P>8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후버의 예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지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성지 순례 관광객은 언제 돌아올까]]></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7774</link><pubDate>2011-08-07T14:35:2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69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698_STD.jpg" align=center></DIV>
<P></P>
<P>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일 뿐 아니라 기독교 성서의 나라다. 모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 떠나는 이야기인 출애굽기의 '애굽'이 이집트이고, 아기 예수와 그의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피난을 간 곳이 이집트다. </P>
<P>&nbsp;</P>
<P>성서의 땅 이스라엘과 시나이 반도를 통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에는 해마다 성서의 자취를 찾으려는 수만 명의 성지 순례 관광객이 방문한다. 한국의 이집트 방문객도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람이 전체 단체 관광객의 1/3 정도이다. </P>
<P>&nbsp;</P>
<P>하지만 지난 2월 무바라크를 몰아낸&nbsp;혁명 이후 치안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관광산업의 중심가인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여행객보다 시위대가 더 많이 보였고, 이집트 박물관이나 피라미드 유적지에 가보아도 여행객들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nbsp; </P>
<P>&nbsp;</P>
<P>치안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집트 방문을 꺼리는 것은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집트에서 20여 년간 가이드를 한 관광업 관계자는 "혁명 이전의 관광객이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5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달에 3~4건 정도 있던 성지 순례 관광팀이 지금은 한 달에 1건 있을까 말까한 정도"라고 덧붙였다.</P>
<P>&nbsp;</P>
<P>이집트에서 육로를 통해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가 시나이 반도의 누에바다. 시나이 반도로 가는 길은 다른 곳과 달리 군인들이 지키는 초소를 여러 개 지나야 한다. </P>
<P>&nbsp;</P>
<P>기자는 8월 초 시나이 반도에 다녀왔다. 그곳에 가는 동안 수에즈와 시나이 반도 곳곳에서 세 번에 걸쳐 여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집트의 다른 지역과 달리 시나이 반도에는 겨울에 눈도 내리고 가끔 폭우도 쏟아진다. 차를 타고 누에바로 가는 길 곳곳이 지난 폭우 때 유실되어 오프로드를 한참 달려야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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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69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699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아랍에서 분쟁 생길 때마다 개점휴업... "전 이집트가 위험? 그렇지 않다"</STRONG></P>
<P>&nbsp;</P>
<P>누에바는 성지 순례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세계 배낭여행객의 블랙홀(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진다고 해서 블랙홀로 불린다)이라는 다합과도 한 시간 거리에 있어 많은 휴양객들이 찾는 휴양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집트 혁명의 여파로 휴양객들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한 리조트는 전체 35개 객실 중 8개 객실에만 손님이 있었고 전체 객실 뒤로 진행 중이던 공사 현장은 손을 댄 지 오래된 듯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P>
<P>&nbsp;</P>
<P>누에바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세 곳과 여행사 한 곳이 있다. 이 업소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성지 순례 관광객들의 증가나 감소 추이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nbsp;&nbsp;&nbsp; </P>
<P>&nbsp;</P>
<P>이 중 누에바에서 18년째 한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안길수(남, 60세)씨를 만났다. 안씨는 혁명 이후 손님이 많이 줄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이 아니"라며 웃었다. 반드시 이집트와 관련되지 않더라도 걸프전, 가자지구 폭격, 이라크 전쟁 등 중동과 관련된 분쟁이나 전쟁만 났다 하면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P>
<P>&nbsp;</P>
<P>안씨는 "3~4년마다 이런 일이 있어 왔고, 또 미디어에서는 자극적이고 가장 격렬한 상태만 보도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사실 지금 외국에서 보기에는 이집트가 위험하다고 해도 현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잘 모르지 않나. 시위는 타흐리르에서만 하고. 그런데 외국인들은 이집트 전 지역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중동 분쟁만 나면 시나이 반도도 전 지역에 관광객이 끊긴다."</FONT></P>
<P>&nbsp;</P>
<P>안씨는 대한항공이 이집트 노선을 재취항한 후 관광객 수가 평시의 70%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은 지난 7월 25일부터 카이로-서울 직항 노선을 다시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홈페이지의 이집트 노선 재취항 기념행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취항을 알리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6월의 한국국제관광전을 통해 이집트 관광청도 한국 관광객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하반기 관광객 회복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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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5700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7/IE001335700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이유경</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옹고집 공화당, 후퇴한 오바마, 패배한 미국 서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5396</link><pubDate>2011-08-02T18:25:5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24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2/IE001334248_STD.jpg" align=center></DIV>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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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일 월요일 저녁(미국 현지 시각), 드디어 미국 하원이 재무부의 부채 상한선 인상을 승인했다. 미국 재무부가 상한선 인상 만료 시한으로 정한 2일을 하루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P>
<P>&nbsp;</P>
<P>만약 2일이 지나서도 부채 상한선이 인상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노인과 저소득층, 장애인을 위한 각종 사회보장연금 및 의료비, 그리고 미군을 위한 급료 등을 지급할 수 없을 뻔했다. 또한 14조 달러에 달하는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아찔한 상황을 맞을 뻔했다.</P>
<P>&nbsp;</P>
<P><STRONG>"지출 삭감 없이는 정부 부채를 단 한 푼도&nbsp;늘릴 수 없다"</STRONG></P>
<P>&nbsp;</P>
<P>174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95명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된 이번 안의 골자는 미국 재무부에 차용능력을 확대하는 대신, 향후 10년간&nbsp;정부 지출을&nbsp;2조4000억 달러&nbsp;삭감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정부 부채를 단 한 푼도 늘릴 수 없다던 공화당 하원, 그중에서도 특히 티파티 의원들의 원칙을 대폭 수용해&nbsp;2조1000억 달러까지만 부채 상한선을 올릴 수 있게 했다.</P>
<P>&nbsp;</P>
<P>부채 상한선 인상 및 정부 지출 삭감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은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P>
<P>&nbsp;</P>
<P>화요일 정오(미국 현지 시각)에 있을 상원 표결에서 부채 상한선 인상안 통과가 거의 확실시된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하면 바로 4000억 달러의 부채 상한선 인상이 이뤄진다. 또한 내년 2월까지 5000억 달러의 추가 인상이 있을 예정이다. 이에 대응해서 향후 10년간 9107억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는 프로그램이 올 10월 1일부터 가동된다. </P>
<P>&nbsp;</P>
<P>추가로 최대 1조 5000억 달러까지 지출이 삭감될지 여부는 "슈퍼 의회"에 의해 올해 추수감사절까지 결정된다.&nbsp;추가 부채 상한선 인상은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뤄질 수 있다.</P>
<P>&nbsp;</P>
<P>이번 법안에 따라 양당의 양원 의원 12명으로 구성될 특별 합동 위원회, 일명 "슈퍼 의회(Super Congress)"는 복지 프로그램 및 방위비에서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것과 세수 확대 및 세제 개혁 등을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곳의 권고안이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방위비 지출과 메디케어 등에서 자동적인 지출 삭감이 이뤄지도록 법으로 정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24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2/IE001334244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재선을 위한 오바마의 정치적 계산?</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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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난 7월 말,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백악관에서 '그랜드 플랜'이라는 내용의 합의를 거의 이뤄낼 뻔했다. 여기에서 이 두 사람은 정부 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 지출 삭감은 물론 세수의 확대에 동의한 바 있다. 즉, 미국 중산층에게는 부시 감세안을 유지하되 부자들에게는 증세(실제로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로 세율을 회복하는 것)를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단 한 푼이라도 세수가 확대되는 것=연방 정부 확대"라 생각하는 티파티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이 안은 백악관을 벗어나서는 논의조차 될 수 없었다.&nbsp; </P>
<P>&nbsp;</P>
<P>그 후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가 나서 베이너 하원의장과 논의를 시작했다. 여기서 리드 대표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대신, 세제 정책의 '함정'을 메워 세수를 확대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공화당의 강한 저항을 받아 포기해야만 했다.</P>
<P>&nbsp;</P>
<P>후퇴가 거듭되자&nbsp;진보 진영은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를 들면, 오바마가 처음부터 양당의 타협만을 강조한 나머지, 수정헌법 제14조가 지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발휘할 능력조차 처음부터 포기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권한을 발동할 것이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다.) </P>
<P>&nbsp;</P>
<P>또한 오바마는 미국 국민을 향해 직접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지난 주 목요일이 되어서야 지역구 의원들에게 전화와 이메일, 트위터를 하라고 국민들을 처음으로 독려했다) 처음부터 공화당 내 티파티의 프레임에 갇혀 진보 진영의 주장을 변변히 펼치지도 못했다. </P>
<P>&nbsp;</P>
<P>그러나 오바마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미국 언론은 2012년 재선을 위해 무당파와 중도파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P>
<P>&nbsp;</P>
<P>7월 31일 &lt;워싱턴포스트&gt;는 "합의안의 내용들이 나오면서 리버럴은 분노했고. 오바마가 또다시 경제정책에서 항복을 한 탓에 내년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오바마에게 꼭 필요한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열의를 더욱 꺾을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러나 오바마로부터 등을 돌려온 중도 성향의 무당파를 끌어안으려 애쓰는 백악관으로서는 설령 '지는(항복하는) 거래'라고 해도 결국 이기는 전략일 것"이라고 분석했다.</P>
<P>&nbsp;</P>
<P>같은 날 &lt;뉴욕타임즈&gt;도 "아마도 이번 결과는 대통령으로서보다는 대통령 후보자로서 오바마에게 더 호의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P>
<P>&nbsp;</P>
<P>이러한 분석에 대해 백악관은 향후 지출 삭감 논의에 따라 국방비를 더 줄일 수 있고, "국내의 (복지) 프로그램을 보호하는 한편 부자들을 위한 부시 감세안을 끝낼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반박했다고 &lt;더 힐(The Hill)&gt;은 전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24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2/IE001334245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크루그먼 "미국 경제에 재앙"</STRONG></P>
<P>&nbsp;</P>
<P>현재 미국은 고실업률이 장기화되고(미국의 실업률은 6월 현재 9.2%) 경제성장은 더디기 짝이 없으며 경기를 부양할 만한 정부의 선택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이번 예산안은 경기를 더욱 후퇴시켜 경기 침체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반면에, 정부 지출을 줄임으로써 무섭게 불어나는 정부 부채에 제동을 걸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nbsp; </P>
<P></P>
<P>&nbsp;</P>
<P>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는 1일 블로그에서 "이번 법안은 실업과 경제 위기에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며,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이미 진행 중인 예산 삭감에 덧붙여, 이번 안의 지출 삭감은 제2의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으며 극우의 정치적 파워를 더욱 키워주었다"고 비판했다.</P>
<P>&nbsp;</P>
<P>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도 &lt;뉴욕타임즈&gt; 사설에서 이번 안이 "오바마와 민주당뿐만 아니라 이미 침체된 미국 경제에도 재앙"이라며, 미국을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 것이라 예상했다.</P>
<P>&nbsp;</P>
<P>&lt;허핑턴포스트&gt; 발행인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1일 CNN의 '피어스 모건 투나잇'에서 "지금 이 나라의 위기는 경제성장, 일자리, 그리고 부채의 위기 등이다. 우리에게는 부채 상한선 문제가 없다. 이 문제는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위기로, 여기에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됐다"고 한탄했다. </P>
<P>&nbsp;</P>
<P>허핑턴은 또한 "이 나라의 정말 많은 사람들, 민주당 및 공화당 지지자들을 모두 포함한 사람들이 이번 법안으로 경제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다며, 일반 미국인들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된 워싱턴의 정치문화를 비판했다. </P>
<P>&nbsp;</P>
<P>한편 미국의 유명 보수 논객인 조지 윌은 일요일 ABC의 'This Week'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으로 가는 길의 3분의 1 지점에 와 있다. TARP(월가 금융 기관에 대한 정부의 구제프로그램), 경기 부양책, 캐쉬 퍼 클렁커스(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에 대한 정부의 구제 프로그램), 케인즈 방법론 등 온갖 부양책을 다 써봤지만, 그것들은 다 효과가 없었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nbsp; </P>
<P>&nbsp;</P>
<P><STRONG>'콩가루 집안' 같은 워싱턴, 어느 쪽도 만족하지 않는 법안</STRONG></P>
<P>&nbsp;</P>
<P>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1일 하원 표결 직전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독려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지출을 삭감하고 있다. 내년 재량 지출(discretionary spending) 부분에서는 작년보다 돈이 덜 나갈 것이다. 여러분 중 이곳(워싱턴)에서 어디 이런 얘기를 전에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라며 이 법안의 지출 삭감액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일부 의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P>
<P>&nbsp;</P>
<P>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 법안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워싱턴의 정치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우리와 미국인들이 거둔 승리는 이 법안에 어떠한 세금 인상안도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캔터는 "세금 인상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불필요한 것"이라는 말로 공화당 내 티파티 의원들의 심경을 대변했다.</P>
<P>&nbsp;</P>
<P>역시 표결을 앞두고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는 이 법안에 "오른쪽 사람들(우파)이 화가 났다. 왼쪽 사람들(좌파)도 화가 났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중도파)도 화가 났다"며, 그러나 "우리 경제의 장기적 체질을 보호할 놀랄 만한 합의"라고 평가했다.</P>
<P>&nbsp;</P>
<P>해리 리드는 또한 "어느 쪽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타협의 본질이다"라고 말했다.</P>
<P>&nbsp;</P>
<P>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 법안이 "악마의 감자튀김을 곁들인 악마의 샌드위치와 같은 것"이라 비난하면서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일을 환기시키며 이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 펠로시는 "이 법안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성과가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법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P>
<P>&nbsp;</P>
<P>이번 법안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건 민주당 내 리버럴이다. 그중 한 명인 노스캐롤라이나의 버터필드 하원의원은 "분노라고까지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우린 이런 법안이 나왔다는 것에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버터필드는 이번 법안이 저소득층과 노동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P>
<P>&nbsp;</P>
<P>&lt;USA투데이&gt;는 "워싱턴(정계)은 그 자체로 많은 미국의 유권자들과 전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서로 헐뜯는 콩가루 집안처럼 보였으며, 국가의 중대하고도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를 적기에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24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2/IE001334246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최대 피해자는 미국 서민</STRONG></P>
<P>&nbsp;</P>
<P>미국은 막대한 정부 부채로 국가적 위기를 부르고 있지만, 부채 상한선을 올리는 일 때문에 이번처럼 곤란을 겪은 일은 없었다. 세계에서 미국의 신용 상한선(=부채 상한선)을 결정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으며, 유례없이 낮은 이자율로 돈을 꿀 수 있는 미국은 언제든 원할 때마다 자국의 부채 상한선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P>
<P>&nbsp;</P>
<P>이번 논란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1960년 이래 70번 이상 부채 상한선을 인상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만 18번, 부시 대통령(W. 부시) 때는 7번 부채 상한선을 인상했다. </P>
<P>&nbsp;</P>
<P>사실 미국 의회, 구체적으로는 공화당이 이번 부채 상한선 인상을 거부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부채 상한선 인상은 의회가 전년도에 이미 승인한 정책을 집행하거나 이미 집행된 돈의 지출을 결정하는 문제이고, 따라서 미국 의회는 지금까지 항상 자동적으로 상한선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화당이 부채 상한선 인상을 부르는 정부 지출 인상을 반대한다면, 애초에 예산 승인을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다.&nbsp;&nbsp; </P>
<P>&nbsp;</P>
<P>게다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 당시 1370억 달러의 흑자를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에게 물려줬지만, 부시는 그와 달리 퇴임 때 1조2000억 달러의 빚을 오바마에게 남겨줬다.</P>
<P>&nbsp;</P>
<P>허핑턴의 지적처럼 부채 상한선 인상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 정치인들이 불러온 재앙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백악관 중 어디에도 승자는 없다. 미국 서민들만 최대 피해자일 뿐이다. </P>
<P>&nbsp;</P>
<P>CNN의 'iReport'를 통해 루스코라는 한 시청자는 "내 사견은 오바마 대통령이 비합리적인 사람들과 함께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일을 관두라는 것이다…(중략) 우리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바보들의 온상처럼 안 보이려고 어설픈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탄하며, 공화당 특히 티파티 의원들의 무리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들기보다는 헌법이 부여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라고 오바마에게 주문했다.</P>
<P>&nbsp;</P>
<P>'myj'라는 또 다른 시청자는 "진짜 문제는 실업"이라고 일갈했다.</P>
<P>&nbsp;</P>
<P>&lt;뉴욕타임즈&gt;에서 마크 M이라는 한 독자는 "완전히 미쳤다. 내가 워싱턴에서 본 것 중 가장 추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고 여전히 지지하지만, 오바마는 공화당 내 악당 분자들이 경제를 망칠 수도 있게 일을 왜곡하도록 허용해버렸다"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독자는 티파티에 대해 "무지하고 외고집의 선동자 집단으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라 비난했다.</P>
<P>&nbsp;</P>
<P>같은 신문에서 알랜드라는 독자는 "나라의 경제가 피를 흘리고 있다. (이번 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서 더 피를 빼는 꼴이다. 이것이 이번 예산 법안의 핵심이다. 필요한 것은 수혈, 즉 세수를 늘리는 일이다. 이번 일은 우리나라의 비극이다"라고 말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424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2/IE001334247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김지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결혼식도 삼가는 한 달이 돌아왔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4648</link><pubDate>2011-08-01T21:12:29+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3756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1/IE001333756_STD.jpg" align=center></DIV>
<P></P>
<P>이슬람 최대의 명절 라마단이 돌아왔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이며 해마다 11일씩 빨라져, 올해는 8월 1일부터 30일까지 약간의 날짜 차이는 있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마다 라마단을 지킨다. 특히 올해 라마단은 26년 만에 가장 긴 금식시간으로 주목받는다. 라마단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 섭취, 흡연 등을 금하고 경건하게 생활할 것을 요구받는 기간이다. 라마단의 목적은 금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P>
<P>&nbsp;</P>
<P>무슬림의 종교적 의무인 구제도 이 라마단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마다 라마단 기간이 되면 구걸을 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입국하는 '원정 거지'들이 많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단속을 할 정도다. 이집트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물이나 대추야자 등 먹을거리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들이 많다.</P>
<P>&nbsp;</P>
<P>일체의 향락적인 생활이 금지되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에는 결혼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마단을 전후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기도 한다. </P>
<P>&nbsp;</P>
<P>라마단은 금식을 통해 고행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이슬람 국가 최대의 명절이기도 하다. 낮 동안은 금식을 하지만 밤이 되면 마음껏 음식을 먹고 나누며 즐긴다. 1년치 식료품의 1/3이 라마단 중에 소비될 정도다. 식료품 마트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 등이 라마단을 전후해 1년 중 가장 큰 규모의 세일을 한다. 대형 쇼핑몰인 시티스타나 까르푸 몰은 50~80% 세일을 진행 중이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3759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1/IE001333759_STD.jpg" align=center></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3755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1/IE001333755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낮에는 금식, 밤에는 만찬... 라마단 기간 중 1년 식료품의&nbsp;1/3&nbsp;소비</STRONG></P>
<P>&nbsp;</P>
<P>라마단을 이틀 앞둔 7월 30일(현지 시각), 쇼핑몰 시티스타는 라마단 직전 마지막 세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쇼핑객들이 장난감 가게와 자라, 망고 등 유명 의류 브랜드 가게로 몰려들었다. 시티스타 주변 도로는 차를 몰고 들어오려는 행렬로 가득 찼고, 지하 마트 스피니즈에서 식료품을 한가득 사서 나가는 가족들로 출구도 혼잡했다. 하지만 라마단을 대형 쇼핑몰에서 즐길 수 있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이집트 서민들은 명절 분위기를 내는 쇼핑보다는 밤 시간만이라도 넉넉한 밥상을 차리고 라마단을 보내기를 바란다. </P>
<P>&nbsp;</P>
<P>그런데 문제는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먹을 것을 미리 사재기해두기 때문에 특히 식료품 값이 많이 오르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사재기 현상과 물가 상승이 동반 발생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상공회의소는 라마단 기간에 많이 먹는 견과류와 말린 과일의 값이 작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발표했다. 작년의 수입량이 적은 탓에 올해 공급이 부족하여 값이 올랐다는 설명이다. </P>
<P>&nbsp;</P>
<P>공급이 부족하자 원산지도, 유통기한도 알 수 없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유통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가공 식품을 살 때 유통기한과 원산지를 살펴보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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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3758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1/IE001333758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들썩이는 물가... 그래도 명절은 명절</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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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과일 이외의 것들 중 예상외로 야채의 가격은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설탕, 밀가루 등 다른 식료품들의 도매가격은 라마단을 앞두고 소폭 상승했으며 소매시장에서도 바로 반영되어 설탕의 경우 2주 전에 비해 12%가량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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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left><IMG id=IIE001333761 hspace=15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801/IE001333761_STD.jpg" align=right></DIV>
<P></P>
<P>키르자만 마트에서 라마단 팩을 살펴보고 있던 니헬(43세, 주부)씨는 "가격이 올라도 라마단인데 안 먹을 수는 없고, 마트에서 세일하는 품목 위주로 쇼핑을 한다"고 했다. 니헬씨는 "시장이 더 싸긴 하지만 마트에서 파는 것들이 더 깔끔해서 마트에 온다"며 "그래도 작년보다 라마단 팩이 조금 싸진 느낌이다. 작년에는 거의 제값을 다 받았는데 올해는 그래도 5~10이집트파운드 정도 깎아줘서 선물 보따리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P>
<P>&nbsp;</P>
<P>라마단을 준비하는 것은 주부들만이 아니다. 길거리의 가게들도 온통 라마단 장식으로 단장하고 손님들을 맞고 있다. 조명 가게나 문구점에는 라마단 때 거는 등을 내놓고 팔고 있고 식료품 마트들도 견과류와 말린 과일 코너를 크게 벌여 명절 분위기를 내고 있다. 사람들은 동네 골목마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 장식을 달고, 아이들은&nbsp;밤마다 폭죽을 터트린다.</P>
<P>&nbsp;</P>
<P>혁명 이전보다 명절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명절은 명절이다. 시장을 보고, 폭죽을 사고, 라마단 등을 다는 이집트 사람들의 기쁜 얼굴 속에서 신의 뜻을 찾고 이웃을 돌아보는 라마단을 기대하게 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김지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피라미드의 땅에서도 "동방신기 사랑해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3731</link><pubDate>2011-07-30T16:44:12+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left><IMG id=IIE001332355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55_STD.jpg" align=right></DIV>
<P></P>
<P>한류가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는 아시아에 이어 중동, 유럽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아직 아시아권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이집트에서도 한류의 열풍은 대단하다. 2005년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 개설, 2010년 코리아채널 개국 등 차근차근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저변을 넓혀 온 이집트에서 7월 28일(현지 시각) 제1회 한국노래자랑대회가 열렸다.</P>
<P>&nbsp;</P>
<P>이번 대회에서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전국에서 모인 24개 팀의 참가자가 열띤 경연을 펼쳤다. 마디 도서관 공연장을 꽉 채운 관중도 세 시간 내내 응원하며 대회를 지켜보았다.</P>
<P>&nbsp;</P>
<P>본선에 앞서 지난 7월 25일(현지 시각), 한국대사관 한국어교실에서 참가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예선이 있었다. 총 33개 팀이 참여한 예선은 본선 못지않게 경쟁열기가 뜨거웠다. 여러 참가자 중 눈에 띄는 참가자들을 몇 명 만나보았다.</P>
<P>&nbsp;</P>
<P>무대 옆쪽에서 반짝거리는 나이키 운동화를 맞춰 신고 열심히 춤 연습을 하는&nbsp;세 여성이 보였다. 원더걸스의 노래로 출전하는 아르와(19세, 카이로대학교 학생)와 친구들이었다.&nbsp; </P>
<P>&nbsp;</P>
<P><FONT color=#333399>- 이번 대회에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FONT></P>
<P>"대사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포스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원래 한국노래를 참 좋아한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춤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하던데, 무슨 노래로 출전하나.</FONT></P>
<P>"원더걸스의 '이 바보'를 2주 전부터 연습했다. 본래 다섯 명이었는데 연습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은 세 명만 남았다. 그런데 '이 바보'만 하기가 아쉬워 2PM의 'without you'까지 섞어서 하려고 한다. 2PM의 노래는 어제부터 연습한 것이어서 조금 걱정이 된다."</P>
<P>&nbsp;</P>
<P>아르와와 친구들은 인기상을 받았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235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58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이집트와 한국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만들 날 오기를"</STRONG></P>
<P>&nbsp;</P>
<P>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는 참가자들 중 한국인도 눈에 띄었다. 이은희(15세, 학생)씨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한국인인데, 이집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 대회에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FONT></P>
<P>"아버지는 한국 분이신데 어머니가 이집트 분이시다. 양쪽 나라 여권이 다 있는데 언니가 농담 삼아 '너 이집트 여권 있으니 나가보라'고 해서 나오게 되었다. 원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이기도 하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심사에서 조금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FONT></P>
<P>"그렇지 않아도 그런 이야기는 주변에서 들었다. 그렇지만 상 타려고 나온 게 아니라 즐기러 나온 것이니 상관없다."</P>
<P>&nbsp;</P>
<P>예선을 통해 33개 팀 중 24팀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예선이 끝난 직후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박재양 문화홍보관을 만났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제1회 한국노래자랑대회를 준비했는데, 이 행사를 통한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FONT></P>
<P>"이 행사의 목표는 사실 경쟁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류라는 것이 없었던 곳이 이집트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오늘 참가한 참가자들만 보아도 자기 휴대폰에 한국 노래를 담아 다니고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한국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몇 년 사이에 이렇게 한류가 퍼졌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무적인 상황이다.</P>
<P>&nbsp;</P>
<P>이번 행사는 K-POP을 사랑하는 이집트 사람들의 무대지만 이집트 노래를 사랑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행사가 더 발전하고 이집트에 한류가 더 자리 잡으면 상대국의 노래와 문화를 사랑하는 두 나라 국민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교류가 이루어질 텐데 그것은 상대국과 그 나라의 문화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nbsp; </P>
<P>&nbsp;</P>
<P><FONT color=#333399>- 올해가 첫 행사이다. 앞으로 연례행사로 준비할 계획인가.</FONT></P>
<P>"물론이다. 행사 첫해에도 이렇게 반응이 뜨겁다. 앞으로 1년에 한 번씩 이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P>
<P>&nbsp;</P>
<P>또 박 홍보관은 전 세계에 한류가 퍼지면 각 나라의 K-POP 대표를 모아 한국에서 노래자랑을 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235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59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아들들에게 '곰 세 마리' 직접 가르친 이집트 엄마</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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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노래자랑 당일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로 관중의 큰 박수와 응원을 받은 것은 아무르(11세), 힛산(8세) 형제와 사촌인 알랄(12세)이었다. '곰 세 마리'를 귀엽게 불러 관중과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두 형제는 어머니 가다(36세, 주부)씨의 한국어를 향한 사랑 덕에 출전하게 되었다. 가다씨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한국어 대답이 돌아왔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가다씨는 대사관에서 한국어 레벨 2까지 공부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가정주부인데, 그냥 한국 드라마나 노래가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한 건가.</FONT></P>
<P>"결혼하기 전 한국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한국어는 알고 있었지만 더 알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P>
<P>&nbsp;</P>
<P><FONT color=#333399>- 그럼 오늘 출전한 아이들에게도 직접 한국어를 가르친 건가.</FONT></P>
<P>"물론이다. 가나다라 노래나 한국어 숫자, 오늘 부른 '곰 세 마리'도 직접 가르쳤다. 집에서 김밥과 불고기도 자주 해서 먹인다. 아이들도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P>
<P>&nbsp;</P>
<P>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들이 억지로 나온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아무르와 힛산에게 물었다.</P>
<P>&nbsp;</P>
<P><FONT color=#333399>- 오늘 공연했는데 떨리지는 않았나. 스스로 하고 싶어서 나온 건가.</FONT></P>
<P>"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 서 본 것이 처음이라 떨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나온 것이고 아빠도 많이 응원해주셨다."</P>
<P>&nbsp;</P>
<P>엄마의 한국 사랑이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을 통해 자녀들에게 전해지고, 노래자랑과 같은 행사 참여를 통해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는 것이 인상적이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234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49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쉬는 시간 내내 들려오는 "동방신기 사랑해요"</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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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날 공연 사이사이 쉬는 시간 내내 "동방신기 사랑해요" 소리가 들렸다. 페이스북으로 활동한다는 동방신기 팬클럽 'TVXQ5 이집션 카시오페아'가 외치는 소리였다.</P>
<P>&nbsp;</P>
<P>노래자랑이 끝나고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했는데 어떤 노래든 랩과 안무까지 수준급으로 소화해내었다. K-POP을 좋아하고 열광하는 모습은 한국 청소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P>
<P>&nbsp;</P>
<P>심사 결과 2NE1의 '아파'를 부른 이만씨가 대상을 차지했다. 이만씨는 무대를 보지 않고 밖에서 노래만 들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냐고 물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세련된 무대 매너로 관중을 사로잡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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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nbsp;</DIV>
<P><IMG id=IIE00133234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46_STD.jpg" align=center></P></DIV>
<P></P>
<P>심사 결과 발표와 시상이 끝나고 떡볶이와 잡채 등이 준비된 한국 음식 뷔페가 열렸다. 한국 음식에 익숙해 보이는 여학생들은 한국 여학생들처럼 떡볶이만 잔뜩 담았고, 한국 음식을 처음 보는 듯한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음식을 보며 조금씩 담아 식사를 시작했다. </P>
<P>&nbsp;</P>
<P>한국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런 대회를 통해 한국을 향한 사랑을 발산할 수 있다는 데에 참가자들은 모두 만족했다. 또 음식을 통해 K-POP이나 드라마 외에는 직접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일반 관중도 한국 문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듯했다. </P>
<P>&nbsp;</P>
<P>한국노래자랑 첫 해부터 이집트 현지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박재양 홍보관을 비롯하여 이번 노래자랑을 준비한 대사관 측의 바람대로 한국인과 이집트인이 한자리에 모여 하모니를 연출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장이었다.</P>
<P>&nbsp;</P>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235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9/IE001332354_STD.jpg" align=center></DIV></DIV>]]></description></item><item><author>윤정현</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휴가 한 달 핀란드에서 '천국'을 즐기는 법]]></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1522</link><pubDate>2011-07-29T15:56:58+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3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3_STD.jpg" align=center></DIV>
<P></P>
<P>&nbsp;</P>
<P>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푸른 초원과 그림 같은 숲. 야트막한 언덕배기 하나 보기 힘든 핀란드의 전형적인 지형이 펼쳐진다. 핀란드 투르쿠에서 포리로 향하는 길. 한적한 도로임에도 140킬로미터를 곧이곧대로 두 시간 좀 더 넘게 걸려 운행하는 정직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고속버스인데도 승객이 도중에 벨을 누르면 아무리 조그만 시골 간이 정류소에서도 세워주는 소수에 대한 배려와 같은 핀란드 사회의 특징들이 가는 내내 기자의 시선에 들어왔다. </P>
<P>&nbsp;</P>
<P>인구 8만 2000명의 작은 해안 도시 포리가 해마다 7월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올해로 46회째를 맞은 포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다. 핀란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을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포리 재즈티벌은 그중에서도 인지도와 역사 면에서 최고의 페스티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P>
<P>&nbsp;</P>
<P>핀란드인들은 대개 한 달 정도 여름휴가를 보낸다. 바쁜 일상과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소박하게 지어진 께사 모끼(Kesämökki, 여름 한철 지내는 오두막으로 보통 바닷가나 호숫가에 있다)에 머물며 자연을 벗 삼고 사우나와 수영을 반복하며 지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핀란드인들의 여름 휴가법이다. 그러나 조용한 휴가를 좋아하는 핀란드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축제가 벌어지는 곳을 찾아 때로는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필요한 모양이다. </P>
<P>&nbsp;</P>
<P>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수오미 아레나(Suomi Areena)라는 사회 대토론 행사이다. 이 행사는 2006년 처음 시작됐고, 6년째를 맞은 올해는 7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 포리 시내 곳곳에서 90개의 토론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정치인, 교수, 기자 등 각계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올해의 토론은 사회 보건 서비스와 연금 같은 사회복지 관련 주제, 고등학교 교육 개혁과 같은 교육 문제, 세금 제도, 이주노동자, 성 평등, 노동조합, EU, 에너지와 환경 문제부터 음악, 문학, 철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P>
<P>&nbsp;</P>
<P><STRONG>휴가와 사회 토론,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의 동거</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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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월 한 달은 핀란드의 열두 달 중에서 '천국'이라 불리는 시기다. 대부분의 핀란드인이 이때 4주 정도의 휴가에 들어간다. 휴가 기간에 즐기는 사회 대토론. 언뜻 생각하면 참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P>
<P>&nbsp;</P>
<P>어떤 의도로 수오미 아레나를 기획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담당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헬리 우시마(Heli Uusimaa, MTV3 방송국 소속)는 "7월은 핀란드 사회에 뉴스거리가 별로 없는 시기다. 그래서 우리가 뉴스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또, 언론은 그 사회의 여론 생성을 유지할 책임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순간 뉴스거리는 차고 넘치지만 제도권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특정 유명 인사들이 사회적·정치적 신념 때문에 방송 출연에서 배제되는 현실도 함께. 그런 점에서 포리 시와 함께 수오미 아레나를 기획한 MTV3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사회 담론 생성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
<P>&nbsp;</P>
<P>헬리 우시마는 이어 "사회 대토론과 휴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휴가 기간은 사람들이 사회 문제를 토론할 시간이 더욱 많은 시기"라며 "저녁에는 재즈를 즐기고 오전에는 1시간 15분 정도(각 토론 프로그램 소요 시간) 다소 심각한 토론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휴가 계획"이라고 답했다. 여름휴가를 한 달씩 보내는 사람들과 휴식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사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대답에서 느껴졌다.</P>
<P>&nbsp;</P>
<P>사실 이 기발한 상상력은 스웨덴의 '알메달렌 주간(Almedalen week)'이라는 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웨덴은 이미 1982년부터 고틀랜드 섬 비즈비 시에 위치한 알메달렌에서 해마다 7월 첫 주에 정치 토론과 세미나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열고 있는데, 이는 정치 분야의 록 페스티벌이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종사자,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고 있다.&nbsp; </P>
<P>&nbsp;</P>
<P>헬리 우시마는 "스웨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긴 했지만 우리 식대로 (행사를) 발전시켰다. 우리는 4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포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밝혔다. 북유럽형 복지 모델을 창안한 스웨덴, 그리고 스웨덴으로부터 현재 핀란드 공교육의 꽃이라 불리는 종합학교 모델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고 그것을 다듬어 자기 식으로 발전시킨 핀란드는 이웃이자 생산적 라이벌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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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0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0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복지 국가 핀란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생각은?</STRONG></P>
<P>&nbsp;</P>
<P>통역도, 영어로 제공되는 보도자료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현장에 가서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제일 처음으로 기자의 눈에 들어온 프로그램은 '사회 보건 서비스 분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이었다. 한국에서도 복지 담론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복지병 혹은 포퓰리즘이라는 보수층의 비난이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던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하여 북유럽형 복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나라의 시민들은 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P>
<P>&nbsp;</P>
<P>밤에는 야외 재즈 공연 장소로 쓰이는 토론 행사장은 나들이 차림의 중장년층 청중으로 이미 꽉 차 있었다. 토론자로 핀란드의 주요 정당을 대표하여 사회민주당, 참핀란드인당(True Finns' party), 중도당, 국가연합당(National coalition party) 출신의 국회의원 두 명과 장관 두 명이 나왔다. 지난 4월에 총선이 치러지고 각 정당들의 정치적 위상이 재편되면서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정책 향방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워 보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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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핀란드 중부에 위치한 위바스킬라에서 왔다는 50대 남성은 의료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사회 보건 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이번에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포리에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토론 행사와 관련하여 &lt;헬싱키타임스&gt;는 7월 15일자 신문에서 "앞으로 사회 보건 서비스 분야의 불필요한 관료 체계를 축소해 예산 낭비를 막을 것이지만 현재 수준을 넘어선 더 이상의 사영화(privatization)는 추진되지 않을 전망이다.", "핀란드는 이윤을 위해 의료 보건 서비스를 판매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국가연합당 소속 빠울라 리시꼬(Paula Risikko) 및 사민당 소속 마리아 구제니나 리처드슨(Maria Guzenina-Richardson) 보건사회부 장관의 발언을 보도했다. </P>
<P>&nbsp;</P>
<P>토론회가 끝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법한 젊은 세대에게 사회, 보건 복지 분야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쿠오피오 출신의 아이노 시르야넨(사회복지 분야 대학 연구원)과 라우마에서 온 요한나 바이닐라(유치원 교사)는 평소 기독민주당(Christian democrats)원으로서 정치 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번 행사를 알게 되어 왔다며 여러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P>
<P>&nbsp;</P>
<P>이들은 "공공영역만으로는 사회 복지 서비스를 모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 영역과 시민단체 영역도 필요하지만, 핀란드에서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공공, 민간, 시민단체 영역이 질 좋은 서비스를 유지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미국 같은 나라들과 다른 점"이라면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국가에서 사회, 보건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 '이 모든 복지 제도 운용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은 혹시 없느냐'는 질문에 "세금이 많긴 하지만 소득이 많은 자영업자들이나 기업가들에 비해 나는 세금을 적게 내는 편이다.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납세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1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1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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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핀란드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도 포리에 들러</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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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올해 수오미 아레나는 작년에 비해 내용과 규모 모두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석한 가운데 9명의 장관과 50여 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따르야 할로넨(Tarja Halonen) 핀란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토론회 참석을 위해 7월 15일 포리를 찾았다. 토론은 요르마 올리라(Jorma Ollila) 노키아 이사의 사회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반 정도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할로넨 대통령과 반 사무총장은 환경, 사회, 경제 분야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17일 MTV3 채널을 통해 핀란드 전역에 녹화 방영되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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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반 총장은 사회 분야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질문에 "각국의 GNP가 그 사회의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절대적 잣대는 아니"라며 "부탄에서는 국가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를 지표로 활용하고 있듯이 다른 나라들도 국민의 행복(well-being) 향상 정도를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 반 총장은 앞으로 전 세계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지려면 "하늘의 절반(half the sky)"인 여성의 힘을 극대화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자신 또한 사무총장으로서 UN 내에서 의사결정과 관련된 중역에 여성을 대폭 임명하고 있다며 성 평등을 힘주어 말했다. 여성인 할로넨 대통령과 청중은 이에 뜨겁게 호응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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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작 두세 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행사장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보기 드문 광경도 연출되었다. 두 딸을 데리고 온 40대 여성은 "한 달 정도의 휴식은 내 삶에 꼭 필요하다. 지금 휴가 중인데 수오미 아레나와 포리 재즈 페스티벌을 함께 즐기고 있다. 휴가는 직장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고, 딸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며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역 중인 수감자들에게도 교도소를 벗어나 여름 휴가를 즐길 권리를 보장해 주는 핀란드에서 여름철의 충분한 휴식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할로넨 대통령은 16일 반 총장 내외를 대통령 여름 별장에 초대하여 자연과 벗하는 핀란드식 휴가를 함께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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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2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2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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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조금 덜 갖고, 좀 더 느리게</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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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기자도 취재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재즈 공연을 본격적으로 즐겨보기로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핀란드에서도 여름 내내 록부터 클래식까지 수많은 음악 공연들이 열린다. 해가 짧고 추운 겨울이 길게 이어지는 이곳 핀란드에서 여름은 곧 푸름이고 휴식이며 음악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게 휴식하면 떠오르는 장르는 재즈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이파네마의 여인' 같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늘에 매달린 해먹 하나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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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큰맘 먹고 찾은 대형 공연에선 재즈의 여유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포리 재즈 페스티벌이 명성을 얻으면서 관객을 모으기 위해 너무 쉬운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가수의 발성과 동작이 뒤섞이고 장르가 재즈인지 팝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벌써 술에 취해 무대 바로 밑에서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도 보였다. 거대한 야외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인파는 미리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술과 안주를 부지런히 비워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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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4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4_STD.jpg" align=center></DIV>
<P></P>
<P>공연장을 빠져나와 길을 걷다 보니 무료 공연이 눈에 띈다. 재즈 보컬의 간드러지는 스캣(재즈에서 목소리로 가사 없이 연주하듯 음을 내는 창법)과 세션맨들의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들으니 이제야 재즈 같고 마음엔 자유가 찾아들었다. 담벼락 너머로 야외 테라스 무대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스윙과 달콤한 보사노바는 여름철 휴가지의 게으른 분위기를 한껏 살려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유명한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이 남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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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NT color=#996633>"If you have to ask what jazz is, you'll never know."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절대 모를 것이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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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서바이벌 경쟁이 난무하는 사회. 학생도, 어른도 한 가지 정답만을 강요받는 한국인에게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구절로 느껴졌다. </P>
<P>&nbsp;</P>
<P>취재 중 기자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노동만큼이나 휴식의 중요성을 존중해줄 줄 아는 핀란드 사회의 분위기였다. 그렇게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덜 갖거나 공공재로 함께 누리고, 좀 더 느리게 살 줄 아는 사회라야 느긋하게 휴가지에서 정치 토론을 즐겨보겠다는 상상력도 싹틀 테다. 명품 가방이 필수품처럼 여겨지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2억 원이 넘게 들고, 인구 1000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나누어 갖고 더 많이 쉬는 삶은 그저 순진한 꿈일까. </P>
<P>&nbsp;</P>
<P>하지만 복지 담론, 행복 담론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도 지금부터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제주도에 군사기지 대신 야외 공연장을 지어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재즈 공연도 즐기고 사회 대토론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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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IMG id=IIE001330855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5/IE001330855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장혜경</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자연 복원 위해 제방 허무는 '간척의 나라'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2598</link><pubDate>2011-07-27T16:41:35+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3157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73_STD.jpg" align=cente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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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난 6월 17일 네덜란드 정부가 제이란드(Zeeland, 네덜란드 12개 주 가운데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주) 주 붸스터스켈드(제이란드 주에 위치한 하구만)의 자연 복원 사업에 관한 정책을 발표했다. '자연 복원'은 제방을 허물어 육지가 바다에 잠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P>
<P>&nbsp;</P>
<P>&lt;신이 버린 땅, 인간이 빚은 나라&gt;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네덜란드의 자연 환경은 열악하다. 국토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홍수로 인한 큰 피해를 여러 번 겪었다. </P>
<P>&nbsp;</P>
<P>네덜란드 사람들에게 1953년 1월 31일은 대재앙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유례없이 큰 홍수가 이때 4개 주를 휩쓸었다. 1795명이 목숨을 잃고 15만 헥타르의 땅이 물에 잠겼다(네덜란드 통계청 자료). 피해를 본 4개 주는 모두 해수면이 육지보다 높은 지역이어서 마을마다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제방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방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이다.</P>
<P>&nbsp;</P>
<P>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네덜란드는 1950년에 시작한 서해안 댐 공사를 확대해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델타 플랜이라 불리는 이 공사는 14개의 댐을 건설하여 만(灣)들을 막는 공사로 60년간 계속되었다. 각 댐의 형태와 길이는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른 변화를 감안해 정해졌다. </P>
<P>&nbsp;</P>
<P>오랫동안 자연에 맞서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완공하느냐보다 얼마나 튼튼하게 완성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몇 번의 대재앙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공사 비용, 기간, 자연과 조화 문제 등을 치밀하게 고려하여 세계 건축업계에서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일컬을 정도로 거대하고 획기적인 공사를 성공시켰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157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76_STD.jpg" align=center></DIV>
<P></P>
<P>제이란드는 긴 시간 동안 델타 플랜의 완공을 학수고대했던 자치주 중 하나다. 이러한 제이란드 사람들이 지난 6년간 붸스터스켈드 자연 복원 사업을 두고 네덜란드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P>
<P>&nbsp;</P>
<P>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은 네덜란드와 이웃한 항구 도시다. 이 항만에 배를 대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영토인 제이란드의 붸스터스켈드 하구를 지나야만 한다(지도 참조). 그런데 붸스터스켈드 하구는 삼각주 지역이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퇴적물이 쌓여 만의 바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 대형 선박이 안트베르펜 항구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진다. </P>
<P>&nbsp;</P>
<P>안트베르펜 항구에 더 많은 선박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붸스터스켈드 하구의 바닥을 13미터 더 파내는 공사를 해야만 한다. 이 공사는 두 나라의 이익에 모두 부합하는 것이었다. 안트베르펜 항구가 물류를 중심으로 한 무역항으로 커지면 벨기에에 득이 될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도 무역항 주변의 물류 관련 시설을 유치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에 합의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156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63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생태계 파괴 논란과 주민 반대로 6년간 공사 착수도 못한 네덜란드</STRONG></P>
<P>&nbsp;</P>
<P>그러나 공사는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공사는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의 승인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P>
<P>&nbsp;</P>
<P>유럽연합 회원국은 생태계 보호를 위한 '나투라(Natura) 2000'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과 동시에 '나투라 2000'이 지정하는 생태 보호 지침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현재 유럽연합 가입국 영토의 18퍼센트가 '나투라 2000' 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생태계 파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나투라 2000' 지역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지역들은 생태계 보존을 위해 사람의 통제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157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72_STD.jpg" align=center></DIV>
<P></P>
<P>이 때문에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유럽연합 자연보호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도 받아야 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진행하면 이 일대의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돼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새들조차 찾지 않는 죽은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P>
<P>&nbsp;</P>
<P>이 때문에 두 나라는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자연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 일대의 땅 가운데 일부를 자연으로 복원해야 했다. 네덜란드는 600헥타르, 벨기에는 400헥타르를 자연으로 복원해야 공사로 파괴되는 생태계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5년 두 나라는 공사 진행을 위해 스켈드 조약을 맺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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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그러나 스켈드 조약 체결 이후에도 네덜란드 정부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제이란드 주민들의 반대였다. 제이란드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가 이뤄지는 곳이자, 자연 복원을 위해 600헥타르의 땅을 내놔야 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제이란드의 땅 소유자들은 '1953년 대홍수 때도 지켰고 지금도 농사를 잘 짓고 있는 땅을 바다에 잠기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 방침에 반대했다. 제이란드 주민들은 2005년 이후 지역 곳곳에 반대 팻말을 꽂고 시위를 벌였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3157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71_STD.jpg" align=center></DIV>
<P></P>
<P>이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6년 동안 미뤄야 했다. 6년이 지나도록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한 네덜란드 정부는 결국 6월 17일 이 공사에 관해 새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핵심은 제방을 허물어 바다에 잠기게 하는 자연 복원 지역을 2005년 발표한 곳이 아닌 제이란드 내 다른 지역으로 하고, 붸스터스켈드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해 물류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2013년에 1차 공사를 시작하고, 2014년에 2차 공사에 착수하며, 3차 공사는 1차와 2차 공사의 진행 과정을 보며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P>
<P>&nbsp;</P>
<P>정부는 이 결정이 농토를 지닌 농민들에게는 뼈아픈 소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이란드와 네덜란드의 미래를 생각할 때 토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P>
<P>&nbsp;</P>
<P>헹크 브레커 농림혁신부 차관은 "하구만 공사를 진행하기 전에 자연 복원 사업을 우선해야 한다. (공사로) 바뀔 자연 형태를 감안하여 주변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했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을 선택한 것은 자연 지형을 고려한 결정이다."라고 발표했다.</P>
<P>&nbsp;</P>
<P>네덜란드 정부가 새로 선택한 자연 복원 지역은 주민이 비교적 적게 사는 곳이다. 이러한 발표 후 제이란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많이 누그러졌다. </P>
<P>&nbsp;</P>
<P>그러나 야당은 급작스런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자연 복원 사업이 계속 늦춰진 것도 문제 삼았다. 녹색당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인기에 너무 연연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가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P>
<P>&nbsp;</P>
<P>벨기에도 네덜란드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이번 공사가 더 시급한 것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안트베르펜 항구를 보유한 벨기에이기 때문이다. 스켈드 조약에 따라 이미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벨기에는 네덜란드 쪽 공사가 지지부진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벨기에는 자연 복원 지역을 바꾸는 등 네덜란드 쪽에서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아 2005년 스켈드 조약 체결 후 2억 5000만 유로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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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자연과 싸워온 네덜란드, 자연에 600헥타르 환원하기로</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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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left><IMG id=IIE001331566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7/IE001331566_STD.jpg" align=right></DIV>
<P></P>
<P>네덜란드는 자연에 맞서 땅을 만들고 제방을 쌓아 그 땅을 지켜온 나라다. 지금도 네덜란드 국민이 내는 세금의 상당 부분은 제방을 쌓고 유지하는 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어렵게 만든 제방을 허물고 땅의 일부를 자연에 돌려주려 하고 있다. </P>
<P>&nbsp;</P>
<P>네덜란드가 자연에 돌려주기로 한 600헥타르가 국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결정은 앞으로 네덜란드 정부가 펼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P>
<P>&nbsp;</P>
<P>한편 녹색당은 네덜란드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연이 중요한 변수로 놓이도록 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원 150석 가운데 10석을 차지한 녹색당은 경제 발전 지상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녹색당은 지나친 경제 발전이 자연에 큰 해를 끼치며 그 피해가 인간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국회 안에서 늘 경고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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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네덜란드가 자연 보존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것인지 주목된다.</P>]]></description></item><item><author>강인규</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CDATA[국산 스마트폰의 '불편한 진실'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602</link><pubDate>2011-07-27T09:44:3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1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19_STD.jpg" align=center></DIV>
<P></P>
<P>약자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 좋은 일인가. 우선 사람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려가 필요한 이를 배려하는 것은 사람세계를 동물세계와 구분 짓는 몇 안 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P>
<P>&nbsp;</P>
<P>둘째는 누구든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제까지 존경 받으며 멀쩡히 거리를 활보했는데, 오늘 걷지 못하게 됐다고 해서 내일부터 평생을 무시와 편견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사람대접을 받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P>
<P>&nbsp;</P>
<P>셋째,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P>
<P>&nbsp;</P>
<P>'약자'라는 말은 '열등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법 앞과 신 앞에 평등한데, 어떻게 '열등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약자란, 어떤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한편, 사회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함께 요구하고 싸워가야 한다. </P>
<P>&nbsp;</P>
<P>결국 남을 돕는 것은 사람다운 일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일이고, 당연히 지켜야 할 법적·도덕적 의무를 지키는 일이다. 이것만으로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충분하다. 여기에 덧붙여 따라오는 '보너스'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창의력을 높이고 다른 방식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기술 개발의 기회까지 제공해 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좋아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돈도 되는 일'이다.</P>
<P>&nbsp;</P>
<P>바꿔 말해, 이제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사회는 경쟁력도 잃고, 그 좋아하는 돈을 벌 가능성도 희박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하고, 탈법적인 사회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여러모로 어리석은 사회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1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18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뇌파를 이용한 게임</STRONG></P>
<P>&nbsp;</P>
<P>뇌파를 이용한 게임을 해 본 일이 있는가? 그런 기술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면, 위에서 말한 '어리석은 사회'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손을 쓰지 않고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입력과 조작이 가능한 컴퓨터 장치는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뇌파를 이용해 게임을 진행하거나 관람 중인 영화 줄거리를 바꿀 수 있는 기술까지 등장했다.</P>
<P>&nbsp;</P>
<P>예컨대 무료 공개 프로그램인 '프리트랙(FreeTrack)'은 사용자의 머리 각도를 6가지 유형으로 감지해, 사용자가 고개를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정교한 게임을 조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별도의 장비 없이 일반 웹캠에 무료 소프트웨어만 내려받으면 바로 쓸 수 있다. '모든 이를 위한 무한자유도(All Degrees of Freedom for Everyone)'라는 제품 철학이 말해주듯, 자판이나 마우스가 필요 없는 이 '무접촉' 입력 기술은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되었다.</P>
<P>&nbsp;</P>
<P>미국 뉴로스카이(NeuroSky)사와 영국 이모티브(Emotiv)사의 뇌파 입력장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제할 수 있게 해 준다. 헤드폰에 설치된 전극이 사용자 뇌파의 패턴을 분석해 다양한 명령신호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뉴로스카이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스탠리 양은 이 뇌파 탐지 플랫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많은 연구자들이 우리 기술을 이용해, 자판을 쓸 수 없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통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FONT></P>
<P>&nbsp;</P>
<P>뇌파를 이용한 인터페이스(BCI)는 물리적 입력장치를 쓰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기술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뉴로보이(NeuroBoy)'라는 게임은 생각만으로 자동차를 눈앞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고 공중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원하면 주의를 모아 차에 불을 붙여 폭파할 수도 있다. 가벼운 물건은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지만, 크고 무거운 물건을 움직일 때에는 더 큰 집중력이 필요하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0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0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영화</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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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같은 원리를 적용한 '마인드플레이(MyndPlay)' 영화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이미 시중에 공개된 &lt;파라노말 마인드(Paranormal Mynd)&gt;는 세계 최초의 '영화-관객 상호작용 영화'다. </P>
<P>&nbsp;</P>
<P>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단순한 구경꾼을 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된다. 겁에 질린 표정의 남자가 당신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nbsp; </P>
<P>&nbsp;</P>
<P><FONT color=#996633>"선생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여자친구 레이첼이 이상해요." </FONT></P>
<P>&nbsp;</P>
<P>당신은 여자 속의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스트'로 초대 받는다. 관객이 주의를 집중해 귀신을 물리치지 않으면 등장인물은 한 명씩 죽음을 맞게 된다. 영화는 관객의 '업무 수행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후 세 가지 다른 결말로 끝을 맺는다. </P>
<P>&nbsp;</P>
<P>전통적 영화 규칙에 따르면, 인물은 카메라, 즉 관객의 시선을 의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뇌파를 이용한 '상호작용 영화'라는 새 형식에서 기존의 영화 규칙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이와 더불어 영화와 게임의 경계도 무너지고 만다. </P>
<P>&nbsp;</P>
<P><A style="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 href="http://www.youtube.com/watch?v=U3FmPkLs8s4&amp;feature=related" target=_blank>&lt;파라노말 마인드&gt; 예고편</A></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1_STD.jpg" align=center></DIV>
<P></P>
<P>뇌파 인터페이스가 가상의 공간에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이미 2년 전에 '염력'을 이용해 물체를 움직이는 '마인드 플렉스(MindFlex)'가 등장했다. 이 장난감은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사가 2009년 가을에 선보였다. 사용자가 정신을 집중하면 바닥에 놓인 공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P>
<P>&nbsp;</P>
<P>원리는 이렇다. 장치 아래쪽에 바람을 일으키는 팬이 있다. 집중력을 높이면 바람이 강해지고, 반대로 주의력을 떨어뜨리면 바람이 약해진다. 사용자는 마음상태로 부력을 조절해 공을 움직여 다양한 장애물 사이를 통과시킨다. 이 신기한 장난감은 내놓기 무섭게 생산분이 완전 매진되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P>
<P>&nbsp;</P>
<P>이제 뇌파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놀이기구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 생각만으로 휠체어나 자동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 기술의 활용은 지상뿐 아니라 우주항공 분야까지 적용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돕기 위한 배려가 이처럼 놀라운 혁신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2_STD.jpg?54" align=center></DIV>
<P></P>
<P><STRONG>배려, 창의력의 원천</STRONG></P>
<P>&nbsp;</P>
<P>한 사회가 남을 잘 배려하는지 보려면, 약자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면 된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어떤 대접을 받는가. 이 사회에서 그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든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10~12%를 구성한다. 국민 열 명 가운데 하나는 장애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P>
<P>&nbsp;</P>
<P>길에서 마주치는 열 사람 중 한 명이 장애인이 아니라면, 그들이 부당하게 감금되어 있음을 뜻한다. 장애인의 외출을 막는 무자비한 계단, 불편한 몸을 반기지 않는 대중교통,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이른바 '비장애인'의 시선 때문에 말이다. 장애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가둬 놓고 무시하는 사회가 이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없다.&nbsp; </P>
<P>&nbsp;</P>
<P>최신 국산 스마트폰을 꺼내 어떤 장애인 편의 기능이 있는지 보라. 한국의 통신기술에 장애인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 통신사들은 해마다 '시각장애인 전용 휴대폰' 기증 행사를 연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장애인과 통신사 자신을 더 잘 배려하는 방법은 모든 휴대폰을 장애인이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애플처럼 말이다.</P>
<P>&nbsp;</P>
<P>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포함해, 애플의 모든 제품은 장애인 접근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예컨대 애플 운영체제는 모두 '보이스오버(VoiceOver)' 기능을 갖추고 있다. 화면상의 모든 메뉴, 파일, 문서를 음성으로 바꾸어 읽어주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이 기능을 이용해 애플의 모든 기기를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다. </P>
<P>&nbsp;</P>
<P>그밖에 메뉴 글자 크기를 키우는 기능에서, 말로 여러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음성통제(Voice Control)' 장치도 갖춰져 있다. 음성지시로 전화를 걸고, 음악을 연주하고, 현재 시간도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이 흐르고 있을 때 '누구 곡이냐(Who sings this song?)'고 물으면 연주자, 작곡가, 노래 제목 등의 정보도 음성으로 알려준다. 구글의 '보이스액션(Voice Actions)'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미국 기업들이 이렇게 장애인 배려에 적극적인 까닭은 무엇일까?</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1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17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미국 사회에 보편화된 장애인 배려</STRONG></P>
<P>&nbsp;</P>
<P>장애인에 관해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잘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장애인들의 활동을 막는 물리적·심리적 장벽이 적다는 말이다.</P>
<P>&nbsp;</P>
<P>장애인보호법(ADA) 규정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장애를 이유로 취업에 불이익을 줄 수 없다. 대중교통, 공공건물, 상업시설은 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하며, 통신업체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이 통신기기를 문제없이 쓸 수 있도록 조처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 배려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법적 의무지만, 미국 사회에는 자발적인 배려의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P>
<P>&nbsp;</P>
<P>미국 어린이들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는 수준을 넘어, 함께 삶을 누려갈 동료임을 배운다. 공영방송 만화영화 &lt;드래곤 테일&gt;에는 휠체어를 탄 캐릭터가 등장한다. '아메리칸 걸'이라는 인형회사는 휠체어와 목발 등의 소품을 내놓고, 많은 어린이들이 이런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장애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배운다.&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3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3_STD.jpg" align=center></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4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4_STD.jpg" align=center></DIV>
<P></P>
<P>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한 미국인들이 그들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며, 그들과 더불어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lt;좋은 아이디어의 사회적 기원&gt;을 쓴 시카고대의 로날드 버트 교수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다양한 배경을 지난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에서 나온다.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이 자신의 틀을 쉽게 깰 수 있는 건 당연하다. </P>
<P>&nbsp;</P>
<P>지난 6월 &lt;파퓰러 사이언스&gt;가 뽑은 '올해 최고의 발명'은 기계식 의수였다. 수상자 마크 스타크는 의수 전문가가 아니었다. 헤어드라이어 밸브를 디자인하는 사람이지만, 팔 없이 태어난 친구 데이브를 돕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고, 7년 만에 값진 열매를 맺었다. 그의 발명품은 고가의 전자 의수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스타크의 의수를 처음 시연한 데이브는 의수를 끼고 한 시간 훈련 끝에 공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2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5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머리 나쁜 엘리트 사회</STRONG></P>
<P>&nbsp;</P>
<P>한국 기업은 창의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느니, '상위 1%만을 위한 어쩌구'를 읊어대는 한국 기업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들은 왜 99%의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마다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 '엘리트' 집단은 남을 먹여 살리기는커녕, 제 밥그릇도 제대로 못 지킬 것 같다. </P>
<P>&nbsp;</P>
<P>실제로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면, 그 기업이 1명 말고 나머지 10만 명을 같이 고용할 이유가 있을까?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기업이 어리석든지, 어리석을 정도로 관대하든지, 아니면 그 '1/100000 엘리트론'이 거짓이든지. </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329726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26_STD.jpg" align=right></DIV>
<P></P>
<P>서울에 살던 시절, 동네에 맹아학교 설립 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다. 그때 아파트 부녀회에서 '결사반대'를 외치며 시위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부녀회장은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맑고 밝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 곁에 장애인 시설이 온다는 게 말이 됩니까?"</FONT></P>
<P>&nbsp;</P>
<P>그 부모에게 '맑고 밝은' 건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무시하며 사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불현듯 궁금해진다. 그 '맑고 밝은 것만 보며 자란' 자식들은 지금 어떻게 성장했을까?</P>
<P>&nbsp;</P>
<P>이 사실 하나는 분명할 것 같다. 그 부모 방식대로 '맑고 밝게 자란' 자식들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매우 흐리고 어둡게 만들고 있을 거라는 사실. 물론 그들이 상위 1%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겠지만 말이다.</P>]]></description></item><item><author>장혜경</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검은 학교, 흰 학교, 회색 학교를 아시나요?]]></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706</link><pubDate>2011-07-24T20:34:33+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64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64_STD.jpg"></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65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65_STD.jpg"></DIV>
<P></P>
<P>네덜란드에 이주해 살면서 무척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검은 학교'라는 말이다. 맨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인종차별이란 단어였다. 학교에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P>
<P>&nbsp;</P>
<P>네덜란드에서는 학생들 가운데 부모가 네덜란드 출신이 아닌 가정의 자녀가 학생의 50%를 넘는 학교를 검은 학교(즈봐르트 스쿨, Zwarte schoo)라 부른다. 그와 반대면 '흰 학교(뷔트스쿨, witte school)'라 하며, 이 둘의 중간에 해당하는 회색 학교도 존재한다.</P>
<P>&nbsp;</P>
<P>7000개 가량의 네덜란드 초등학교 가운데 약 700개가 검은 학교다. 검은 학교는 대도시나 산업 단지 주변 도시에 많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는 이민자 자녀 비율이 75%가 넘는 학교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산업 이민(네덜란드인들이 3D업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한 1960~1970년대에 터키, 모로코에서 대거 이주한 사람들)이다.</P>
<P>&nbsp;</P>
<P>네덜란드 인구의 20%는 이민자다. 이 가운데 비중이 큰 인도네시아인이나 수리남인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후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산업 노동자로 온 터키인과 모로코인, 그리고 그밖의 아시아인(특히 중국, 베트남)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66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66_STD.jpg"></DIV>
<P></P>
<P><STRONG>다인종·다문화 사회의 산물</STRONG></P>
<P>&nbsp;</P>
<P>네덜란드는 다인종·다문화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곳이다. 이민에 관대했으며 이민자들에게도 사회적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국가였다. 정부는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인 모든 상황을 고려해 이민 정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이민과 관련한 교육 문제가 만만치 않음을 절감해야 했다.</P>
<P>&nbsp;</P>
<P>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나 산업 현장 주변의 네덜란드인들은 처음에 그들과 화합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외국인 차별은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돼 있는 사항이지만 네덜란드인들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P>
<P>&nbsp;</P>
<P>자녀 교육 문제에 관해서는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가 학교를 지정할 수 있다. 자녀를 어떤 학교로 보낼 것인가를 부모가 선택할 수 있다. </P>
<P>&nbsp;</P>
<P>그런데 검은 학교에 다니는 네덜란드 출신 부모의 자녀들이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하고 네덜란드 문화보다 다른 나라 문화에 동화되는 상황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그러자 네덜란드 출신 부모의 자녀들 중에서 검은 학교를 떠나거나 입학을 기피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 때문에 검은 학교에서 이민자 자녀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학교들이 검은 학교와 흰 학교로 뚜렷이 갈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피부색에 따른 구분을 떠오르게 하는 검은 학교라는 표현에 불쾌해하는 이민자도 적지 않았다.</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329767 hspace=15 align=right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67_STD.jpg"></DIV>
<P></P>
<P>역대 네덜란드 정부는 이러한 흑백 분리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 둘을 섞기 위한 정책을 폈고, 그 결과 회색 학교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회색 학교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폈다. 정치인과 사회학자, 교육자 등이 힘을 모아 흑백 분리 타파에 노력했다. 몇 가지 중요한 정책 및 정책 시행 이후의 부정적인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P>
<P>&nbsp;</P>
<P>첫째, 우편번호를 기준으로 학교를 지정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학부형들은 주소를 이전하는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검은 학교로 자녀를 보내지 않으려 했다. 이 정책은 실패했다.</P>
<P>&nbsp;</P>
<P>둘째, 학교 두 곳에 이중 대기자로 등록하게 한 후 학교에서 이민자 자녀와 네덜란드인 자녀의 분포를 고려해 학교를 지정해주는 방법이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등의 대도시에서 시작된 이 방식은 신청 순서와 무관하게 이민자 자녀이기에 우선적으로 입학이 허락되는 등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 때문에 이 방식은 인종차별 행위로 간주되어 결국 금지되었다. </P>
<P>&nbsp;</P>
<P>셋째, 학부형을 설득해 2인 1조로 학교에 등록하게 하는 방법이다. 네덜란드인 자녀와 근처의 이민자 자녀가 조를 짜서 학교에 등록하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대도시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고, 이로 인해 회색 학교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생기게 되었다.</P>
<P>&nbsp;</P>
<P>이와 함께 정부는 이민자 자녀가 많은 학교에 교사, 교육 장비 등을 추가 지원했다. 또한 이민자 자녀(이들은 이민 2세대 혹은 3세대로 조상들이 살던 나라의 말을 전혀 못하는 아이도 많다)가 네덜란드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도록 언어 교사를 배정했다. 이 모든 것은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P>
<P>&nbsp;</P>
<P><STRONG>2010년 들어선 새 정부, 검은 학교 배려 정책 철회 </STRONG></P>
<P>&nbsp;</P>
<P>그러나 2010년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검은 학교 정책이 바뀌었다. 새 정부는 검은 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검은 학교를 배려하는 정책을 철회했다. 이는 그동안 이민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고 포용적이던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P>
<P>&nbsp;</P>
<P>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은 2011년 2월 한 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그간 검은 학교에 투입됐던 정부 예산을 상당 부분 삭감할 것임을 시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P>
<P>&nbsp;</P>
<P><FONT color=#996633>"현 정부는 검은 학교를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노력해온 사항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학교와 관련 시에서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정부는 분리 정책 개선에 앞서 교육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 성과를 볼 때 검은 학교보다 흰 학교의 성적이 월등히 나은 것이 사실이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혼합을 위한 노력보다는 학교 교육 자체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FONT></P>
<P>&nbsp;</P>
<P>연정 파트너로서 반무슬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자유당(PVV)의 반 바이스터벨트는 "검정색과 흰색을 섞어서 회색이 되게 하는 정책을 교육 현장에서 실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많은 인문과학자들 역시 핵심은 피부색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의 질 자체를 향상시키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검은 학교 배려 정책에 반대했다. </P>
<P>&nbsp;</P>
<P>차디드 교수는 "이제 네덜란드는 인종과 피부 색깔에 연연하는 것을 잊어야 한다.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활용하여 더 많은 에너지가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P>
<P>&nbsp;</P>
<P>로테르담의 한 검은 학교의 교장인 얀 뷜엠 뷔데루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P>
<P>&nbsp;</P>
<P><FONT color=#996633>"회색 학교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도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은 학교는 그렇지 않은 학교에 비해 훨씬 많은 예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민자의 자녀들을 학교에 유입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검은 색과 흰색을 섞어서 회색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는 바뀐 정부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FONT></P>
<P>&nbsp;</P>
<P>오랜 세월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자리 잡은 네덜란드 교육계가 정부 정책 변화로 전환점에 서 있다.</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63 align=center src="http://ojsadm.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63_STD.jpg"></DIV>
<P></P>]]></description></item><item><author>박성우</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도청 스캔들' 머독은 최악 굴욕... 뻔뻔한 KBS  ]]></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654</link><pubDate>2011-07-22T16:35:42+09:00</pubDate><description><![CDATA[<FONT color=#996633>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5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51_STD.jpg" align=center></DIV>
<P></P></FONT>
<P>세계적으로 5만3000명의 저널리스트와 임직원을 휘하에 거느리는 대표적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19일(현지 시각)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자신이 소유한 타블로이드 주간 신문 &lt;뉴스 오브 더 월드&gt;가 연루된 도청 사건과 관련해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강도 높은 추궁을 당했다. </P>
<P>&nbsp;</P>
<P>전 세계 주요 뉴스에 생중계된 이날 청문회에서 머독은 이번 휴대전화 해킹 스캔들에 대해 알지 못했고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lt;뉴스 코퍼레이션&gt;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루퍼트 머독의 아들 제임스 머독 역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도청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P>
<P>&nbsp;</P>
<P>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번 도청 스캔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은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 언론, 경찰이 모두 연루되어 있는 충격적 사실들이 계속 폭로되고 있어 향후 더 큰 정치적 파장도 예상되고 있다.&nbsp;&nbsp;&nbsp;&nbsp; </P>
<P>&nbsp;</P>
<P><STRONG>민심 이반 속에 계속되는 책임자들의 퇴진, 구속 그리고 정치권·경찰 연루설</STRONG></P>
<P>&nbsp;</P>
<P>이번 해킹 스캔들이 터진 후 머독의 영국 내 미디어 그룹인 &lt;뉴스 인터내셔널(News International)&gt; 전·현직 발행인, 편집장들과 런던경찰청 최고 책임자들의 사임과 체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진 사임, 출두, 구속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내년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동향 파악 등 실로 막중한 현안이 몰려 있는 시기에 자진 사임한 런던경찰청의 최고 간부 2명도 포함되어 있다. </P>
<P>&nbsp;</P>
<P>그렇다면 이들을 모두 이런 요직에서 그만두게 만든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런던경찰청 최고 간부들과 언론사 전·현직 편집장들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하나같이 자신들은 "어떤 잘못된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번 일로 국민들의 신뢰(trust)를 잃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맡은 임무를 떳떳이 수행하기 힘들어 사임한다"고 밝혔다. </P>
<P>&nbsp;</P>
<P>잘못된 행동이 아니란 말은 오래된 전통인 경찰과 언론의 밀월 그리고 특종 보도를 위해 어느 정도의 과도한 취재 행위는 부득이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이야기로 여겨진다. 머독 부자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168년의 역사를 지닌 &lt;뉴스 오브 더 월드&gt;를 전격 폐간하는 결정을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독자들의 신뢰 상실"이라고 강조하였다. </P>
<P>&nbsp;</P>
<P>이번 도청 스캔들이 밝혀진 계기는 지난 2002년 억울하게 유괴되어 살해된 한 여자아이의 휴대전화 메시지였다. 아이가 실종되었을 당시 자식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가 어디선가 계속 확인되고 삭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그 부모가 품은 생존에 대한 희망... 그리고 좌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분노였다. </P>
<P>&nbsp;</P>
<P>이것이 며칠 전 전격 폐간된 대표적인 선정적 일간지 &lt;더 선(The Sun)&gt;의 일요판인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기자에 의한 것이었음이 &lt;가디언&gt; 보도로 알려진 순간, 영국 국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머독 부자의 미디어 제국, 그리고 그와 연루된 경찰, 정치권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졌다. 최근 자진 사임한 자들이 모두 스스로 밝혔듯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에 대한 존중과 국민의 신뢰였음에도 그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P>
<P>&nbsp;</P>
<P>이날 청문회는 &lt;뉴스 인터내셔널&gt; 측에서 그동안 휴대전화 도청 사건 재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뜻으로 런던경찰청에 거액의 돈을 제공해왔다는 사실, &lt;뉴스 인터내셔널&gt; 출신 기자들을 런던경찰청 공보관으로 채용하게 해온 점(공보관의 20% 정도가 &lt;뉴스 인터내셔널&gt; 출신) 등 경찰과 지배적 언론 간의 야합이 지나쳤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채택하여 캐머런 총리에게 보고했다. </P>
<P>&nbsp;</P>
<P>유착은 특히 캐머런 총리의 대변인이었던 앤디 쿨슨이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5~2006년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주변의 많은 우려를 배제한 채 앤디 쿨슨을 자신의 공보 담당자로 임명하고, 현 정부에서도 실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캐머런 총리의 입지도 상당히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nbsp;&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752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1/IE001329752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내부고발 통해 문제 해결 계기 만든 영국... 한국은?</STRONG></P>
<P>&nbsp;</P>
<P>큰 틀에서 살피면 일면 비슷해 보이는 도청 스캔들이 한국에서도, 국민들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 의혹이 집중된 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현상적으로 다른 면 또한 많다. </P>
<P>&nbsp;</P>
<P>한국에서는 의혹이 불거진 후 벌써 몇 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영국과 달리 실제 도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유력 언론사가 개입한 것인지, 정치권이 그 과정에 관련된 것인지 등 가장 핵심적인 부분조차 정확하고 상세히 밝혀진 내용 자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P>
<P>&nbsp;&nbsp; </P>
<P>영국과 한국의 사건 전개 과정도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도청 사건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과정을 살펴보면 영국 해킹 스캔들의 내부고발자인 전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기자 숀 호어는 도청 문제에 대해 괴로워하고, 습관적인 비윤리적 취재 행위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전해진다(숀 호어는 루퍼트 머독이 의회에 소환되기 전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P>
<P>&nbsp;</P>
<P>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언론사 내부의 자기 성찰적 고백을 통해 한 걸음씩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를 만든 영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도청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유력 언론사가 누구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른바 해명 문구를 내놓고 '언론 자유 탄압'이라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런 한국의 현실은 영국과 적잖은 거리감이 있다.</P>
<P>&nbsp;</P>
<P>실종된 자식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확인·삭제된(이와 관련, &lt;가디언&gt;은 &lt;뉴스 오브 더 월드&gt;가 다울러의 가족과 친구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확인·녹음한 것에 더해&nbsp;저장 공간을 확보하고자 음성사서함의&nbsp;메시지를 삭제했다고&nbsp;보도했다) 데서 느낀 '살아 있다'는 희망이 누군가의 도청에 의한 절망으로 바뀌어 버린 영국에서 도청 사건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윤리, 그리고 언론과 국민 사이의 믿음, 신뢰에 대한 성찰이다. 그 강력한 요구는 웬만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보다 더 파워 있는 루퍼트 머독조차 생애 최초로 의회에 자진 출두하여 생애 최악의 '굴욕'을 당하는 걸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628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11/IE001326281_STD.jpg" align=center></DIV>
<P></P>
<P>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의혹은 매우 강력한 언론, 그것도 스스로 '국민이 주인'이라고 말하는 공영방송과 관련되어 있고, 더불어 정치권과도 연계되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에게 야당의 핵심 정보를 비윤리적 방식으로 수집해서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핵심이다. </P>
<P>&nbsp;</P>
<P>영국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언론에 대한 신뢰의 문제는 무엇보다 사안을 대하는 진정성, 책임감과 관련이 많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핵심 인물들마저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를 꺼린다면 이는 더욱 큰 문제인 신뢰 상실의 주원인이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논란의 당사자들이 마치 도청 의혹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이면에,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해져 버린 듯한 국민에 대한 '무시'와 '위에서 내려다보기' 심리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nbsp; </P>
<P>&nbsp;</P>
<P>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2003년 잘못된 보도와 처신을 통해 국민의 엄청난 불신을 초래하고 급기야 BBC의 세계적 명성까지 추락시킨 유명한 허튼 보고서(Hutton Inquiry) 관련 스캔들을 겪었다(2003년 BBC 기자가 이라크전과 관련해 "고위층이 정보 문건을 자극적으로 각색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자 이 보도의 정보원이던 무기 사찰 전문가가 자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허튼 보고서'에 "BBC 기자가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정부 문서를 사실무근이라고 보도했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BBC는 큰 위기를 겪었다). 그 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담당기자, 편집장, 사장, 의장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은 그때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P>
<P>&nbsp;</P>
<P>한국의 공영방송은 자신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BBC의 사례를 보며, 혹시라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정확한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제기되는 의혹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영국 도청 스캔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시사점이 아닌가 싶다.</P>
<P>&nbsp;</P>
<DIV align=center>
<TABLE id=BoxTable style="BORDER-RIGHT: #e1e1e1 1px solid; BORDER-TOP: #e1e1e1 1px solid; MARGIN: 0px 0px 10px;BORDER-LEFT: #e1e1e1 1px solid; WIDTH: 593px;BORDER-BOTTOM: #e1e1e1 1px solid; FONT-FAMILY: dotum; HEIGHT:100px">
<TBODY>
<TR>
<TD id=BoxTr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x;COLOR: #999999" align=middle bgColor=#efefef height=20>영국 도청 스캔들 일지</TD></TR>
<TR>
<TD id=BoxTd style="PADDING-RIGHT: 10px;MARGIN-TOP: 20px;PADDING-LEFT: 10px;FONT-SIZE: 12px;PADDING-BOTTOM: 0px;LINE-HEIGHT:16px;PADDING-TOP: 0px;TEXT-ALIGN: justify" vAlign=top bgColor=#ffffff height=50>
<P><STRONG><FONT color=#996633>▲ 2006. 8. 6</FONT></STRONG> &lt;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gt; 왕실 부문 에디터 클리브 굿맨, 왕실 경호 요원 전화 도청 건으로 구속. 이후 4개월 형 선고.</P>
<P><FONT color=#996633><STRONG>▲ 2007. 1. 26</STRONG></FONT>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편집장 앤디 쿨슨 사임.</P>
<P><FONT color=#996633><STRONG>▲ 2007. 5. 31</STRONG></FONT> 야당 대표였던 데이비드 캐머런(현 영국 총리), 앤디 쿨슨을 자신의 언론 홍보 책임자로 임명</P>
<P><FONT color=#996633><STRONG>▲ 2009. 7. 21</STRONG></FONT> 앤디 쿨슨, 의회 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에 출석하여 편집장 재임 당시 도청 등 적절치 못한 문제가 있었음을 실토.</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1. 21</STRONG></FONT> 앤디 쿨슨, 캐머런 총리 행정부 대변인에서 사임.</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1. 26</STRONG></FONT> 런던경찰청,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도청 사건 재조사 착수.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뉴스 에디터 사임.</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4</STRONG></FONT> &lt;가디언&gt;, 2002년 유괴범에 의해 살해된 소녀 밀리 다울러가 실종되었을 때 &lt;뉴스 오브 더 월드&gt;가 다울러의 핸드폰을 도청했다는 사실 폭로.</P>
<P><STRONG><FONT color=#996633>▲ 2011. 7. 5</FONT></STRONG>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편집장 레베카 브룩스와 캐머런 총리, "충격적인 소식이다"라는 입장 표명. </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6</STRONG></FONT> 루퍼트 머독, "슬프고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 도청 피해자가 추가로 있을 가능성 제기됨.</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7</STRONG></FONT> 제임스 머독,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폐간 발표.</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0</STRONG></FONT> 루퍼트 머독, 사태 해결을 위해 런던 도착.</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3</STRONG></FONT> &lt;뉴스 코퍼레이션&gt;, 영국 위성방송 BskyB 전체 지분 인수 계획 포기.</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4</STRONG></FONT> 런던경찰청장 폴 스티븐슨이 홍보 자문관으로 임명했던 전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부편집장 닐 월리스 체포됨.</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5</STRONG></FONT> 머독의 최측근인 레베카 브룩스,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편집장 사임.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편집장 출신으로 뉴욕 다우존스 대표이자 &lt;월스트리트저널&gt; 발행인인 레스 힌튼 사임.</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7</STRONG></FONT> 런던경찰청장 폴 스티븐슨 사임.</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8</STRONG></FONT> 런던경찰청 치안감 존 예이츠 사임. 이번 스캔들의 내부고발자인 전 &lt;뉴스 오브 더 월드&gt; 기자 숀 호어, 숨진 채 발견됨(자살 추정).</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19</STRONG></FONT> 루퍼트 머독, 제임스 머독, 레베카 브룩스 등 핵심 인사들 전원 의회 청문회 소환. 추가로 &lt;뉴스 오브 더 월드&gt;의 런던경찰청 로비설이 제기됨. 루퍼트 머독, "내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P>
<P><FONT color=#996633><STRONG>▲ 2011. 7. 20</STRONG></FONT> 캐머런 총리, 아프리카 방문 일정 축소 후 귀국해 의회 출석. 본인 관련 사항에 대해 견해 표명. 향후 방송사, 소셜미디어까지 조사 대상을 확대한 해킹 관련 특별조사위원회 구성키로 함.</P></TD></TR></TBODY></TABLE></DIV>]]></description></item><item><author>김용수</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영국인들 "총리여, 공공의료를 망치지 말라"]]></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080</link><pubDate>2011-07-21T09:12:11+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34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48_STD.jpg?93" align=center></DIV>
<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346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46_STD.jpg" align=center></DIV>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P>
<P align=justify>지난 7월 5일 런던 중심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은 영국의 공공의료제도인 국가보건서비스(NHS)가 만들어진 지 6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가보건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 노동조합원 그리고 운동가들은 연합정부(보수당+자유민주당)의 국가보건서비스 예산 삭감과 민영화 방침에 반대하는 다양한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 시위를 벌였다. </P>
<P>&nbsp;</P>
<P>시위는 퇴근 시간 무렵인 오후 5시를 조금 지나 시작되었고, 런던 중심가인 트라팔가 광장 - 스트랜드 도로 - 화이트 홀 - 국가보건서비스 담당 부처인 보건부 건물 - 리치몬드 하우스 - 의회 광장 안 올드 팰리스 야드로 이어진 행진까지 해서 3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런던 전역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시위는 경찰과 충돌하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며,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지켜보았다. </P>
<P>&nbsp;</P>
<P>이날 시위는 국가보건서비스 63주년 기념일에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수많은 거리 행진 가운데 하나다. 국가보건서비스 분야 노동자들의 노조로 구성된 유나이트 유니언(Unite Union)이 주관했고 대략 10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참가 단체들은 일반적인 국가보건서비스 63주년 기념일 이벤트에 함께하는 대신, 국가보건서비스 축소 움직임에 대해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통해 연합정부를 비판했다. </P>
<P>&nbsp;</P>
<P>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연합정부의 국가보건서비스 '개혁'을 민간기업의 국가보건서비스 인수이자 민영화로 받아들였다. 국가보건서비스의 통합적이고 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제도를 종식시키려는 의도로 이해한 것이다. 이들은 연합정부가 국가보건서비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추진하는 예산 200억 삭감을 '완전한 재앙'이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349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49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NHS 축소하려는 연합정부... 시민들 "민영화 반대, NHS를 구하자"</STRONG></P>
<P>&nbsp;</P>
<P>이날 행진에서는 "삭감 반대, 민영화 반대, 우리의 국가보건서비스를 구하라(No Cut, No Carve Up, Save our NHS)", "민영화 대신 공공의료제도를 유지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와 함께 유나이트 유니언 총장 렌 맥클루스키가 맨 앞에 섰다. 각종 악기 연주자들, 뺨에는 "국가보건서비스를 사랑한다(♡ NHS)"는 문구를 적고 치마에는 "국가보건서비스는 상업용이 아닌 비매품"이라는 문구와 함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NHS 관련 예산 삭감을 상징하듯 여러 군데 꿰맨 자국을 한 간호사 복장의 여성, "우리의 국가보건서비스를 파괴하지 말라"는 피켓을 든 젊은 남성이 보였다. </P>
<P>&nbsp;</P>
<P>이밖에도 국가보건서비스 63주년을 기념하는 은색 숫자 '6'과 '3'을 든 젊은이들, "우리를 무능하게 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도록 하라"는 플래카드를 든 휠체어 탄 장애인 여성, 젊은 실업자, "환자들은 영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피켓을 든 젊은 여성, 의대생, "캐머런은 국가보건서비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피켓을 든 중년 남성 등이 시위대를 이뤘다. 인근 도로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행진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P>
<P>&nbsp;</P>
<P>이날 시위에는 한국의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주관한 '대안의료 탐방①-영국 국가보건서비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런던을 방문한 24명의 보건의료 관련 전문가들도 참가하였다. 이들은 "국가보건서비스는 영국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nbsp;&nbsp;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347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47_STD.jpg" align=center></DIV>
<P></P>
<P><STRONG>"보건 의료는 주주가 아니라 환자를 위한 것이어야"</STRONG></P>
<P>&nbsp;</P>
<DIV align=left><IMG id=IIE001329350 hspace=15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50_STD.jpg" align=right></DIV>
<P></P>
<P>행진 도중 의회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합정부의 국가보건서비스 '개혁'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국가보건서비스가 위협받고 있다", "연합정부의 국가보건서비스 '개혁'은 공적 기금을 민간에 넘겨주는 민영화로 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국가보건서비스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P>
<P>&nbsp;</P>
<P>현장에서 만난 많은 시위 참가자들은 연합정부가 개혁이란 이름 아래 국가보건서비스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들은 "보건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은 국가보건서비스에 재앙이고, 민간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국민 건강이 아니라 영리 추구"라며 연합정부의 국가보건서비스 '개혁'을 우려했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P>
<P>&nbsp;</P>
<P><FONT color=#996633>"국가보건서비스 예산 삭감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서비스 대기 시간을 길게 하며,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초래한다."</FONT></P>
<P><FONT color=#996633>"연합정부의 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FONT></P>
<P><FONT color=#996633>"오늘 시위는 국가보건서비스를 망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리기 위한 것이다." (렌 맥클루스키 유나이트 유니언 총장)</FONT></P>
<P><FONT color=#996633>"보수당의 계획은 국가보건서비스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존 히즐리 노동당 보건장관)</FONT></P>
<P><FONT color=#996633>"국가보건서비스 삭감은 심각하게 우려되는 문제다. 연합정부의 보건 개혁안은 투명성이 부족하며, 보건 의료는 주주들이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슈, 사회운동가)</FONT></P>
<P><FONT color=#996633>"예산 삭감과 보건 서비스 민영화는 이미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가보건서비스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웬디, 사회운동가)</FONT></P>
<P><FONT color=#996633>"캐머런 총리의 국가보건서비스 개혁안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보건서비스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공공보건의료제도인 국가보건서비스를 민영화하려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후손들의 일상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는 연합정부의 개혁안에 반대한다." (앤디 로더, 정신병원 노동자, 47세)</FONT></P>
<P><FONT color=#996633>"영국에는 미국식 의료 제도가 필요 없다." (전직 간호사)</FONT></P>
<P>&nbsp;</P>
<P>국가보건서비스 기념일은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연합정부가 국가보건서비스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nbsp; 그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다. </P>
<P>&nbsp;</P>
<P>국가보건서비스 제정 법안은 1946년 11월 의회를 통과했다. 1948년 7월 5일 노동당 정부 보건장관이던 베번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적 의료 제도"로서 이를 시행했다. 설립 당시 재정 시스템에 일시적인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의료 서비스를 필요로 할 때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무료로 제공한다'는 보편적·포괄적 서비스 제공 원칙은 국가보건서비스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졌다. 이러한 국가보건서비스는 많은 영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P>
<P>&nbsp;</P>
<P>유나이트 유니온의 주장대로 "국가보건서비스에 필요한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 공급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준에서 서비스 공급자와 협력을 강조하는 보건 시스템이다." 국가보건서비스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환자들의 의료 욕구, 민간기업에 의해 충족되지 않는 의료 욕구"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P>
<P>&nbsp;</P>
<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351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351_STD.jpg" align=center></DIV>]]></description></item><item><author>김지혜</author><category>민족·국제</category><title><![CDATA[카이로의 해방구 '타흐리르'에 검색이 부활하다]]></title><li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329</link><pubDate>2011-07-20T20:13:56+09:00</pubDate><description><![CDATA[<DIV align=center><IMG id=IIE001329568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720/IE001329568_STD.jpg" align=center></DIV>
<P></P>
<P>이집트 혁명 이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민주와 자유를 상징하는 이집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혁명 이후 사회의 여러 계층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시위를 벌였다. 그러던 산발적 시위 양상이 지난 6월 둘째 주의 '100만인 시위' 이후 장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P>
<P>&nbsp;</P>
<P>혁명 이후 사회 전반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과도기가 길어지는 것에 시민들은 지쳐갔고, 군 최고위원회가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단죄를 확실히 하지 못하는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P>
<P>&nbsp;</P>
<P>6월의 '100만인 시위' 이후 타흐리르 광장의 정부 청사 앞은 아예 천막을 치고 장기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타흐리르 광장 일대는 차량 진입이 통제되어 사실상 보행구역이 된 상태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 앞은 이집트 시민들의 해방구다.</P>
<P>&nbsp;</P>
<P>지하철 사다트(Sadat) 역에서 하차하여 지상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올라가려면 출구 앞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간단한 검색을 받아야 한다. 여권이나 학생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가방을 열어 카메라 소지 여부를 살핀다. 카메라를 빼앗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 찍을 목적으로 온 것 같은 인상을 받으면 주의를 준다. 참고로,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1월 25일 혁명 때도 타흐리르 광장에 들어가려면 검색을 받아야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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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타흐리르 광장 주변의 패스트푸드점과 여행사들은 언뜻 보기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블라인드 등으로 내부 노출을 차단한 상태다. 지난 혁명 때 일부 과격한 시민들 때문에 가게가 부서지는 등 피해를 겪은 적이 있어, 시위가 없는 평일 낮 시간에도 가게 내부가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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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시민들, 무바라크 정권에&nbsp;단죄 못하는 군 최고위원회에 불만</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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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일 찾은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타흐리르 광장 앞 KFC 근처에서 비상약을 구비하고 광장에 머무는 시민에게 필요한 약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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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빼곡히 걸린 현수막들 사이로 지난 혁명 때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사진과 글들이 보이고, 7월 초에 약간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경찰들의 얼굴이 인쇄된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nbs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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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낮 시간의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 국기를 파는 상인, 혁명 기념 티셔츠 등을 파는 사람, 노점 과일주스 상인, 장난감 행상 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주말 공원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해질녘이 되면 정부 청사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그날그날의 작은 시위를 벌인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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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정부 청사도 검색이 더욱 엄격해졌다. 기존에는 청사 정문에서 간단한 가방 검색만 받으면 통과할 수 있었는데, 혁명 이후로는 정문에서 가방을 사람이 직접 검색하고 여권과 앞에서 기계로 다시 한 번 검색한다. 카메라는 정문에 아예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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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이집트 국립박물관도 혁명의 여파를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혁명 이후 관광객이 급감하여, 여느 때 같으면 박물관을 한 바퀴 두르고 있을 관광버스의 주차 행렬이 사라지고 세 시간 동안 단 석 대의 관광버스만 박물관 앞에 정차할 뿐이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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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집트 국립박물관은 지난 혁명 때 부서진 건물의 일부를 수리하고 이번 기회에 박물관 기념품관을 더욱 크게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박물관의 출구를 바꾸어 외국계 기업이 운영하는 카페도 들어섰고, 관광객이 없는 것을 기회로 삼아 구석구석 새 단장하려 공사 중이다. 그러나 이집트 국립박물관 옆 여당 청사는 혁명 때 불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대조를 이루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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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하철 사다트 역 통로에서는 혁명 사진전이 한창이다. 지난 혁명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고 있는데 사진 속 타흐리르 광장과 지금의 타흐리르 광장은 다른 듯 닮아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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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곧 라마단이 되면 시위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시위가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어 앞으로 이집트 시민의 시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 과도기라는 것을 시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황적인 이유 외에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군 최고위원회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따름이다. 9월 총선거 이전에 군 최고위원회가 앞으로 이집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청사진을 제공해야 할 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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